나는 나의 영원한 기니피그 1부 - 지난 1.5년간 해온 실험 중간점검
안녕하세요!
저 자신을 기니피그 삼아 해오던 실험이 다음 챕터로 넘어갈 때가 와 기록을 남깁니다. 비슷한 실험을 하려는 다른 사람에게 용기 비슷한 걸 전할 수 있길 바라며!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도! 존버의 신이시여 앞날의 저를 굽어 살피소서!
지난 2022년 7월, 제 인생 마지막 '나인투식스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사표는 마음속 깊이 뜨끈하게 지니고나 다닐 것이지 아무 때나 조커처럼 꺼내 휘두르는 제 고약한 버릇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는데요. 그냥 '고용'이라는 시스템과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안 고칠래요
그럼 뭐해먹고살죠?
이게 지난 1년여 동안 저의 실험 주제였습니다.
고용 모델을 벗어나 디지털 세상, 온라인 조직에서 일하며 먹고사니즘을 해결해 보자!
실험은 한창 현재진행형입니다. 지금까지의 결론은
굶어 죽진 않는데.. 좀.. 대책 없네?
나 혹은 주변 사람이 크게 아플 때,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생길 때, 그래서 안정적인 주거나 자차 같은 편의를 원하게 될 때, 늙어서 노동 소득이 없어졌는데 30년 더 살아야 할 때 등등에 대한 대책이 없었습니다. 고용되면 대책 있나? 인도 커리집 알바나 배민 라이더스 할 때와 비슷한 막막함이었습니다.
막막함까지 가게 된 경로를 설명하는 것이 멋쩍긴 하지만 아무튼 제가 시도한 실험 방식은 세 가지였습니다.
결론 - 그건 불장이 오면 하자!
추가 설명 상자 - 안 읽어도 상관없습니다
Q)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까요? 내릴까요?
A)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오릅니다!
Q) 그럼 비트코인 사나요?
A) 사지 않고 버는 방법도 있습니다.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이런 행동들은 우리 생태계에 도움이 되지. 이거 하면 비트코인 줄게'라고 정리해 놓은 것(이 경우에는 채굴-mining) 들을 하면 됩니다! 웹 3.0의 디지털 커뮤니티들은 종종 비트코인처럼 '커뮤니티 화폐'와 그 화폐를 얻는 '기여 방법'이 있습니다.
Q) 그렇다면! 디지털 노동을 통해 코인을 벌어먹고 살면 되겠네요!
A) 의식주를 충당하기엔 2023년 기준 온라인 커뮤니티 화폐의 가치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코인 아니라 스톡옵션으로 받아도 마찬가지였겠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오라는 신생 조직 형태는 아직 배밀이 단계입니다. 대항해시대에 태동한 주식회사에 비교해 본다면 아직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고 그게 정상입니다.
Q) 그럼 불장이 와도 안정적인 노동 수익은 어렵지 않나요? 직업 선택의 자유는 일생일대의 투자/사업/결혼수익 이후에 오는 심리적 안정감, 그곳에서만 우러나오는 거 아닌가요? 일의 미래에서, 메타버스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란 무슨 뜻인가요?
A) 그건 실험을 계속해보면서 차차 대답해나가 보겠습니다. 고령화 덕분에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까요!
결론 - 인도인한테 개처발린다! gg!
문제점 1) 에어비앤비도 네이버 스토어도 리뷰와 평점이 사업 밑천이듯, Upwork의 프리랜서도 리뷰 없으면 안 팔린다. 처음 시작하는 이들이 누구나 겪는 문제(cold start problem). 레딧에 업워크 뉴비 팁도 많았는데 존버에 실패했다.
문제점 2) Upwork는 2020년 매출(플랫폼상 거래액) 25억 달러, 14.5만의 발주 고객이 연평균 5천 달러를 쓰고, 포춘 100대 기업의 30%가 사용하는 글로벌 프리랜서 매칭 플랫폼이다(출처). 메인 유저층은 미국, 발주도 프리랜서도 많다. 그다음은 인도와 필리핀인데 체감상 이들이 프리랜서로 입찰을 많이 하는 활발한 유저(active user)고 무엇보다 단가가 싸다!!!!!! 내가 백인이면 모를까, 비싼 가격을 부를 만큼의 경쟁력은 없다
문제점 3) 웹사이트 개발, 로고 디자인 등 업무가 명확해야 외주도 준다. 포트폴리오도 제대로 없는 않은 스타트업 잡부(오퍼레이터) 경력 5년 차에게 관심을 갖는 고객은 없다. 둥글둥글한 한국식 이력서 들고 글로벌 플랫폼에 가면 뾰족뾰족한 채용 공고에 푹푹 찔린다.
느낀 점: 한국 시장은 아시아 대륙의 끝, 인공섬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라는 남한산성에 둥지를 틀고 있다. 군량이 점점 부족해 말라죽더라도 밖으로 나아가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릴 순 없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경쟁한다.
결론 - 오오! 이것이 일의 미래!! 근데.. 나 아직 미래형 소화 못하겠어..
탈중앙화된 조직, 탈중앙화된 문제 해결 방식이란 무엇일까요? 같이 대답을 만들어가야 할 질문이지만, 우선 현시점 이더리움 재단의 방식을 살펴봅시다.
이더리움 재단은 이더리움 커뮤니티가 잘 되길 바라고, 이를 위해 노력해 줄 사람들이 필요하지만, 대학 캠퍼스에 채용 설명회를 열지는 않습니다. '우리 이런 일 해보려고 하는데, 저런 능력 갖춘 사람 있니?' 하고 필요한 일감을 정의해서 공지하지도 않습니다. 면접도 안 봐요. 오히려 데칼코마니처럼 정 반대입니다.
평소 이더리움 커뮤니티를 기웃거리던 사람이 '어 이거 문제인 거 같은데? 내가 이렇게 해결해 볼게! 견적은 이 정도?' 하고 제안서를 내면, 커뮤니티 사람들과 보조금 위원회 사람들끼리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해보고 '그래! 착수금 쏴줄게!' 하고 입금해 줍니다(ㄷㄷ).
저도 운 좋게 '동양의 탈중앙화 조직(DAOeast)'에 대한 리서치 보조금을 받았었습니다. 가문의 영광이죠. 제가 하고 싶은 리서치 이외에 그 어떤 행정 업무도 안 합니다. 하지만 수입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동료 중에 이를 생업으로 삼는 사람은 없고, 주 업무 대비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바람에 마감일 하루 전 날 달리는 방식으로 협업하게 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수입의 불안정함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문제 해결 전문 분야'와 손발이 잘 맞는 '팀'을 꾸려서 보조금을 시리즈로 받는 방법도 있습니다. 지난 프로포절의 결과가 구렸다면 아무도 발주하지 않겠지만요!
글로 적고 나니 애개? 싶긴 하지만 그래도 배운 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1. 루틴으로 의지치를 보강하는 게 정석이겠으나, 루틴이 자꾸 바스러짐
1-2. 파트타임 고용 및 원격근무라는 치트키로 얼마간 해결했으나, 온라인 조직이 아니었으며 나를 제외한 나머지 조직원이 모두 풀타임 오피스근무였음. 서로에게 힘든 협업 방식
1-3. 루틴은 평생 삼보일배 하듯이 삼일마다 한 번씩 작심삼일 해야 할 듯
1-4. 동창회나 결혼식 가서 동기들의 뽀송한 모습을 보면 '내가 왜 안정감을 버렸을까?' 의문이 휘몰아칠 수 있으므로 모임은 잘 안감
2-1.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를 고용하신 주군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는 편이라 충심 지속시간 약 5개월 처음에는 동시에 여러 일을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고 몰입이 되지 않았음
2-2.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과 프사/목소리/채팅만으로 협업한다? 같이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음
2-3. 거부감에 대한 해결책으로 디지털 자아를 위한 물리적 시공간을 마련해 줌. 우쭈쭈를 위해 별도의 부캐 전용 공간(코워킹 패스)도 마련해 주고, 해가 진 이후 해당 공간에 가서 일을 시작함
2-4. Web3 자아 전용 이메일 계정을 새로 팜. 복수의 메일 계정이 있다는 게 무척 어색했으나 1년 만에 계정 개수가 구글이 '동시 로그인' 하게 해주는 10개 제한을 넘어감
2-5. 시간이 흐르고 '디지털 동료' 들을 처음으로 물리적 세상에서 만났는데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0과 1의 디지털 존재들이 물질화(materialize)되어 나의 몸과 악수를 하고 웃고 떠드는 경험. 그 이후의 '디지털 협업'은 훨씬 더 몰입도가 높아졌다. 오프라인 만남이 온라인 협업의 열쇠라고 생각한다. 자주 만날 필요도 없다! 1년에 두어 번이면 충분하다.
이 글을 쓴 이유는 '앞으로 이런 실험을 하고 싶다'라는 계획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는데요. 배경 설명이 글 하나 분량으로 나와버렸네요. 회고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2부에서 앞으로 ?년간 할 실험에 대해 소개드리겠습니다.
2023년 연말 결산을 통해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오는 한 해의 충만함을 기약하면 너무 좋겠지만 너무 귀찮기 때문에.. 기니피그 시리즈를 통해 차차! 간간히! 점검해 보겠습니다. 미래의 나야! 점검해 주렴! 챗지피티 4.5야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