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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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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aD Aug 27. 2022

무슨 일을 (안)할 것인가?

쓸데없이 주관이 뚜렷하면 잔뜩 잔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대학 졸업 7년 차인 지금까지 7개의 다른 조직에서 일했다. 그 7년 중 일한 시간이 46개월이고 나머지 놀았던 기간이 32개월쯤 된다. 좌충우돌하는 와중에 방학을 꼬박꼬박 챙긴 셈이다. 

한 우물을 깊게 팠으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도 있고, 전문성과 짬(에서 나오는)바(이브)를 갖춘 또래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나는 왜 남들처럼 한 회사에 만족하고 다니질 못할까, 그렇다고 '아!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유레카의 순간도 없다. 소거법으로 하나씩 해보고 지워나가는 과정은 답답하다.

하지만 나는 인생에서 일과 몰입, 성취가 중요한 사람이고, 그만큼 일의 육하원칙에 대해 까다롭다. 그리고 변덕스럽다!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일하며 보낸다면 그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찾고 싶다.

나처럼 해보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 다만 예시 1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예시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사적인 기록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내가 일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 나서는 데, 혹은 찾아 나설 용기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나의 사사로움 쯤이야, 더할 나위 없겠다.




1. 대학 시절 두 번의 인턴십

첫 번째 인턴십에서는 일할 때 몸에 가장 해로운 벌레가 '대충'이라는 걸 배웠다. (일 외의 삶에서 대충은 나의 행동 강령이다. 제발 밥 뭐 먹고 싶은지 묻지 마세요! 대충 아무거나 먹자!) 구성원 누구 하나 무엇 하나 허투루 하는 게 없었다. 졸업 후 일자리를 찾을 때에도 인터뷰어에게 병충해의 흔적이 보이면 짜게 식었다.

두 번째 인턴십에서는 '자율과 책임'에 대해 배웠다. 무슨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만 정해져 있었고, 나머지는 다 내가 정했다. 내가 출근을 하든 말든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나는 월화수 탱자탱자 논 다음에 목금에 에너지 드링크를 들이키며 휘몰이 장단으로 그 주의 일을 끝내곤 했다. 

일터에서 한 번 자유를 맛본 이상 그 전으로 돌이킬 순 없었고, 내가 필요 이상으로 구속받는다고 느껴지면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안 좋은 버릇이 생겼다.


2. 영업관리 @유통 프랜차이즈

입사: 영업 사원으로 나를 받아준 곳이 이곳뿐이었다. 유통업에 관심이 있었다. 

퇴사: 조직 구성원들이 패배감에 절어있었다. 산업과 조직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앞으로의 기회들도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진취적인 사람은 미움받았다. 회사는 직원들을 감시했다. 나의 성장에 아무 관심이 없다는 티가 팍팍 났고, 충성심이 설 곳이 없었다.

나에 대해 알게 된 것

나는 충성할 수 있는 조직에 다닐 때 행복하다. 어렸을 때 군인 하면 잘하겠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자부심 있는 조직에 다니고 싶다

왜 이 일을 하는지, 왜 이 방식으로 이 일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은 채 그 일을 하는 것은 괴롭다.


3. 프로젝트 매니저 @블록체인 업계 엑셀러레이터

입사: 전 직장과 정 반대의 매력에 끌렸다. 퇴사 사유에 '블록체인'이라고 적었다. '블록체인 업계'는 얼핏 봐도 변화가 빠른 곳이었고, 거기서 일할수만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첫 인터뷰 때 면접관들에게 반해버렸다. 처음 느껴보는 에너지, 활력이었고, 꼭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며 2차 인터뷰를 준비했다.

퇴사: 내가 무슨 일을 하는 거지? 내가 어떤 가치를 더하고 있는지 스스로 설득이 안됐다. 블록체인은 알면 알수록 모르겠었고, 3군 리그에서 뛰어야 할 사람이 언감생심 코치 옷을 입고 앉아있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블록체인을 더 파보고 싶었고, 회사에서는 그 비중을 줄이고 있었다. 연말에 입사한 나는 연봉이 동결이었는데, 당시 나는 '조직에서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군'라고 받아들였다.

나에 대해 알게 된 것

변화, 성장성, 가능성에 설렌다. 내가 지원한 모든 회사들은 속해있는 산업부터가 빠르게 성장하는 곳이었다.

나는 '스타트업 사람'에 가깝다. 다른 당근보다도 자율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 좋다


4. 창업하겠다고 깔짝대기, 부머들을 위한 공유라운지 / D2C 탈모케어 서비스

시작: 나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과 투자 의향을 보이는 조직을 만났다.

끝: '풀고 싶은 문제'를 찾아야 창업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를 같이 풀고 싶은 사람들'을 찾는 게 더 중요하고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이렇게 저렇게 팀빌딩을 시도해봤지만 지속하지 못했다.

나에 대해 알게 된 것

책임지는 걸 무서워한다. 채용 공고를 작성하다가 '내가 다른 사람의 일터와 생계를 책임질 수 있나' 싶어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일할 때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5. 신사업 개발 @모빌리티 스타트업

입사: 구직 사이트에 올라와있는 것 중에 가장 재밌어 보였다. 모빌리티의 미래에 완성차업체는 없고 소프트웨어/서비스 회사들만 있을 것 같았다. 인터뷰어에게 반해버렸다. 이후 나의 보스가 된 그 사람 때문에 <나의 직장 상사 연대기>를 썼다.

퇴사: 그 사람이 조직을 떠났다. 그의 후임이 팀을 운영하는 방식에 동의할 수 없었다. 조직이 사업 외적인 이유로 대환장 대변동을 겪었고, 경영진이 바뀌면 신사업부터 정리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에 대해 알게 된 것

좋은 사람, 배울 점 많은 사람과 일하고 싶다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과 일하면 행복하다. 내 인생의 모든 에너지를 문제 해결에 쏟아붓게 된다.


6. 경영지원/오퍼레이션/CS @핀테크 스타트업

입사: 대표의 카리스마에 끌렸다. 관행과 관성을 가볍게 무시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비전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퇴사: 일터에서 나의 감정 또한 무시됐다. 스스로 꽤나 드라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일터에서의 감정도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나에 대해 알게 된 것

나도 혹시나 일에 몰두하게 되면 동료들의 감정을 무시하게 되지 않을까. 좋은 반면교사였다.

나는 작은 조직이 맞는 사람인가 보다. 아직 부서 구분이 없는 작은 조직에서는 동시에 여러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냥 문제를 해결한다는 게 중요할 뿐 어느 직종이 더 가치 있고 보람차고 그런 건 잘 모르겠다.


7. 오퍼레이션 @논스 (논스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 직접 탐구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입사: 비전에 가슴이 뛰었다. <논스, 드디어 졸업합니다!>에 적힌 그대로다.

퇴사: 비전이 바뀌었다. 혹은 비전까지 가는 경로가 바뀌었다.

나에 대해 알게 된 것

일할 때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22.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어 좋았고, 돌이켜보니 전부 배부른 고민이었다.

커뮤니티를 만들고 유지하고 키우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재밌다. 어차피 앞으로는 고객도 유저도 없고 다 커뮤니티일 텐데!


8. 프로젝트 매니저 @블록체인 업계 엑셀러레이터2 

입사: 블록체인 판에 다시 뛰어들고 싶었다. 같이 일할 사람들이 좋은지 아닌지는 입사 후에나 알 수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내 지인이었고 '좋음'이 보장돼있었다. 탄소배출권과 블록체인을 다루는 프로젝트와 일할 수 있는 기회였고, 더 고민해볼 것도 없었다.

퇴사: 다오(DAO,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라는 새로운 조직화 방식에 빠졌고, 다오에서 일하고 싶었다. 내게 다오는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한데, 예를 들면 100% 재택, Remote First(재택이 기본값이고 출근은 선택 사항) 업무 환경에서만 가능한 삶의 방식인 것이다. 이는 내가 지금까지 안고 살아온 제약 조건(constraint)과 전혀 다른 설정값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걸 해보고 싶었다.

나에 대해 알게 된 것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더니 왜 그만둔 거지? 내 안에 원숭이가 잠들어있는 게 틀림없다. 꽂히면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더 자유로운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쪽으로 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만한 책임과 자기 절제(Self-Discipline)를 갖추었나? 당장 아침에 일어나는 것, 혼자 밥 챙겨 먹는 것도 잘 못한다.


9. 그리고 지금

요즘에는 유튜브 영화 요약을 1.75배속으로 보는 데 푹 빠져있다. 영화 한 편을 15분 안에 몰아쳐 보니 뇌가 도파민에 절여져서 온 정신이 손바닥 안에 팔려있다. 덕분에 지난 한 달간 수백 편의 영화를 봤다고 할 수도 있고 한 편의 영화도 보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다. 30년 몸담았던 웹2.0 세상을 떠나 다오 세상에서 밥 벌어먹으려니 힘드네~ 라는 핑계를 걸어 놓고 유튜브를 보고 있다. 

이렇게 나는 나 아니면 나를 고용할 사람이 없는 궁지 혹은 경지로, 몰아넣고 혹은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다오의 길로!


나에 대해 알게 된 것

무척 게으르다. 외부 자극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내 의지로 내가 움직일거라 낙관하지 말자.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10. 함께 <이번생에 다해보자> 매거진 쓸 사람을 찾습니다.

글쓴이/글에게 기대하는 건 특별히 없습니다. 대충.. 하고 싶으신 분? 매거진 제목에 어울리는 글이면 더 좋겠죠! 예를 들면, 나는 은퇴 후에 혹은 다음 생에 이런 걸 하며 살고 싶은데, 그걸 사실 지금부터 조금씩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저렇게? 

하지만 제 글부터가 그런 내용이 아니듯이, 쓰고 싶은 아무거나 써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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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TTL CF 2021 <- 이거 알면 최소 밀레니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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