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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aD Jul 04. 2023

23년 하반기 이튿치 일급루팡 단상

일필휘지 一筆揮之, 글씨를 단숨에 죽 내리씀 (표준국어대사전)

언제부턴가 나는 적는다는 걸 관뒀다. 그래서 손가락 사이사이 낀 펜의 느낌, 모양새가 영 어색하다. 그 동작을 담당하는 근육들이 뻣뻣해진 지 오래다.

다만 그렇게 누워만 있던 펜을 수직으로 집어세운 것은 마음이 답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답답함은 아무렴 지금의 나, 내가 나를 밀어 넣은 이 수렁텅이에 대한 응석이다. 무엇이 이토록 언짢나?


일하기 싫다. 돈이라고 싸잡아 부르는 그 무언가, 통장 잔고라며 내 휴대폰 액정 안에서 오르내리는 그 무언가를 쏘아 올리기 위해 하기 싫은 것들을 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음속 똬리는 십년 차 방물장수가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동글동글 동짓날 새알을 빚듯이 정성껏 빚어낸 나의 새알을 그깟 노름판에 팔아야 한다는 것에 희끗희끗 흰머리가 나도록 골이 나있다.


맹자는 "변치 않는 생산이 있는 사람에게는 변치 않는 마음이 있고, 변치 않는 생산이 없는 자에게는 변치 않는 마음이 없다"라고 했다. (有恒産者 有恒心 유항산자 유항심 無恒産者 無恒心 무항산자 무항심) 

광합성을 못하니 사람들은 재주껏 남을 등쳐먹는다. 노동의 끝에는 나의 변덕스러운 마음이 있다.


새큼한 잉크 냄새를 풍기며 양피지 공책을 열어젖힌다. 변덕을 물리치는 굿판을 벌인다. 이는 오랜만에 장맛비 젖듯 흠뻑 빠져든 소설을 만나서 신이 나서다. 혹은 거울 속 내 모습이 보이는 티비 속 까칠 주연이 뒤집어보면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설정에 반해 피어난 불꽃 들꽃 같은 자신감이다.

혹은 애인이 열띤 팬이라는 작가의 글을 읽고 '나도 이 정도는 쓰겠다' 전열을 가다듬는 삼십 대의 앙칼짐이다. 


그래서 이 글은 퇴고가 없다. 내가 그만치 공을 들였다간 그치보다 못하지 않느냐는 핀잔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퇴로를 항상 열어둔다. 소방법을 준수한다. 이 글은 일필휘지였고, 절차탁마했다가는 다들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여름 장마의 골목 어귀에 빗소리와 찻소리를 틀어놓고 펜을 놀리니 종이에 비와 비에 젖은 파란 버스가 묻는다.



발행 이후 퇴고를 했다. 일필휘지라는 말을 지우지 않은 이유는, 그동안의 내 글쓰기 습관과 반대로 앉은 자리에서 생각나는대로 받아적은 글을 그대로 출판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받아적은 글을 묵혀두었다가 쿰쿰한 냄새가 날 때 쯤 그 냄새만을 살려 글을 새로 썼다. 인터넷에는 수정 이력이 남지 않는다. 아무튼 처음 종이에 적었던 글 그대로 발행하는 것이 나에게도 재밌고 읽는 사람에게도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아, 당분간은 첫 시상 그대로 발행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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