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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aD Dec 29. 2019

나에게 긱 이코노미란?

배민 커넥트 1주일 근무 후기

1. 나는 지금 소파에 널브러져 이 글을 쓰고 있다

1시간 40분 동안 총 4건의 배달을 했고, 3.4km를 운행했으며, 19,500원을 벌었다. 시급으로 치면 11,700원인 셈이니, 나쁘지 않다. 배달 끝나고 40분 넘게 쉬고 있으니, 좋지도 않다. 밥 먹고 소화시킬 겸 다녀온 알바였는데 배고파서 다시 한 끼 또 먹어야 한다.

사람들이 주 6일 하루 12시간 배민 알바를 뛰고 월 600만 원을 버는 사람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와서는 내게 돈 잘 벌지 않느냐고 묻는다. "응 네가 한번 해봐^^"라고 말해준다. 

자전거로 배달하는 알바생은 허벅지장작을 불태워 페달을 밟는다. 전기자전거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12인치(약 30.5cm) 휠의 샤오미 미니벨로에게 강남, 학동, 신논현의 언덕 고개는 피땀눈물이다.  



2. 손끝으로 전하는 맛집, 배달의 민족

배민은 정말이지 정규직 배달원이 필요하지 않다. 점심 저녁 식사 시간에만 콜이 미친 듯이 몰리고(물론 야식도 놓칠 수 없다), 이외 시간은 한산하다. 오후 두 시 반에는 정말이지 앱에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도 하지 않는다. 수요가 몰리는 시간에만 공급을 집중하는 것, 생산 요소(토지, 노동, 자본 +기술)를 집중 투입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인건비 최소화와 생산성 극대화라는 지상 목표를 동시에 이룩하기 위해, 배민은 배달부들에게 '건당' 배달료를 지급한다. 나와 배민의 관계는 고용관계가 아니다. 나는 '배달대행업자'다. 난 사장님이다!



3. 디지털 월세

배민도 월세를 낸다. 하루 평균 100만 명의 배고픈 손님과 음식점을 이어주는 '가상의 플랫폼'(기차 승강장)을 운영하기 위해 IT 건물주들이 구축해 놓은 서버를 쓰고 월 사용료를 낸다. '한 달에 몇 기가바이트(GB/m)를 사용했는지'가 기준이다. 건물 이름은 구름(Cloud)이다.

온라인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추수감사절 시즌 폭증하는 온라인 주문을 감당하기 위해 서버 시설을 대폭 늘렸는데, 나머지 시간에 그 설비가 남아도는 게 아까워 다른 회사들에게 이 '가상의 빈 공간'을 임대해 주고 월 사용료를 받았다고 한다. (다른 기원 설화로는, 아마존 고객과 셀러들이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이커머스 플랫폼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아마존 자체 툴과 인프라를 표준화해서 제공하다 보니 꼭 아마존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사용하기 편한 웹 서비스 인프라가 탄생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렇게 시작한 AWS(아마존 웹 서비스)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지금은 아마존 전체 매출의 반 이상을 만들며 영업 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리적 제약이 없는 가상의 부동산은 유연하다. 혹시 예상보다 장사가 잘 돼서(혹은 한날한시에 주문이 몰려서) 계약 면적보다 더 많은 공간을 사용하게 되면 일시적으로 더 사용한 만큼만 추가 요금을 지불하면 되고, 이 경우 요금은 '초 단위'로 청구된다. 

실물 부동산에게는 택도 없는 비용 구조다. 손님이 뜸한 3~5시에 식당이 브레이크 타임을 두고, 비는 시간만큼 월세를 낮출 수는 없다. 공유 주방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4. 디지털 플랫폼과 부동산

내 배달 나와바리인 강남은 공유 주방의 각축장이다. 좁은 땅 안에 사람도 가게도 다닥다닥 붙어있으니, 그 둘을 잇는 가성비가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우버에서 쫓겨난 우버의 창업자도 공유 주방 사업을 하는데, LA에 이어 강남에 두 번째 지점을 열었다. 주방 이름은 구름이다. 

'배민 키친' 앞에는 언제나 민트색 오토바이들이 줄지어있다. 식당 사장님께서는 요리만 하시고, 주방 기구와 시설이 모두 갖추어진 (풍문에 의하면, 자기가 준비하는 메뉴에 딱 맞는 주방 시설-화구 몇 개, 온도 몇 도짜리 오븐-이 갖추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이곳에 '월세'만 내면 된다. 배달 인프라는 덤 혹은 핵심이다. 이러면 식당이 대로변에 있을 필요도, 1층에 있을 필요도 없다. 건물주들 근심이 깊어간다. 여러분은 지금 배민 배달 프리랜서가 건물주를 걱정하는 글을 읽고 계십니다.


우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공유 경제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우버와 에어비엔비 모두 '연결'하는 일을 한다. 온라인에서 쉽고 빠르게 최적의 상대를 찾아 연결해준다. 엄지 손놀림 한 번이면 휘리릭 내가 원하는 조건의 곳들을 한데 모아 둘러볼 수 있다. 빅데이터로 훈련된 추천 알고리즘들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아서 취향 저격도 탕탕! 언제나 명중이다. 이렇게 온라인이 압도적으로 더 잘하는 일을 오프라인에서 해 보겠다고 덤비면 공실이 난다. 유통업계 재벌들이 조막만 한(했던) 온라인 스타트업에 한 대 맞고 휘청휘청한다.


그런데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플랫폼은 '연결' 까지만 해결해줄 수 있다. 그 연결이 물리적 세계에서 마법처럼 일어나려면 손발 달린 자들의 피땀눈물이 필요하다.



5. 디지털 하도급, 긱 이코노미

인건비는 임대료보다/만큼 큰 비용이다. 인건비 경쟁에서도 오프라인 상점은 온라인 플랫폼에게 형편없이 발린다. 온라인 플랫폼 노동자들은 플랫폼과 '고용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아 노동법 규제도 없고 인센티브만 잘 주어진다면 필요한 만큼만 쓰고 쿨하게 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계약서(고용계약이 아니라 서비스 대행 계약이기 때문에)에 근로 시간도 적혀있지 않아서 영국에서는 'Zero-hour Contract'라고 부른다.


나의 첫 배달은 쿠팡이츠였다. 쿠팡은 배민과 달리 '묶음배송' (음식점 1-> 음식점 2-> 고객 집 1-> 고객 집 2, 한 번에 두 건의 주문을 처리할 수 있는 대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 안돼서 노동 강도와 시급이 모두 더 낮다. 40분 일하고 5,750원을 벌었는데, 페달 밟느라 배고파 져서 사 먹은 서브웨이가 7,100원이라서 조금 슬펐다. 콜라 먹지 말걸.


대방의 첫 배달지 한강뷰 아파트 컴언요


 

6. 고생과 월급

나의 어머니는 젊게 사신다. 퇴근하고 소파에 드러눕지 아니하신다. 거실에 마늘이나 콩을 쌓아 놓고 까시는데,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더니 아무튼 여가 생활은 콩 까기로 갈음하신다. 

자식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딱 하나, 고생 않고 사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고생 없는 일이 있을까? 월급날이면 생각한다. 이 사람은 내게 이 돈을 주기가 얼마나 싫었을까! 

경제는 수요와 공급이다. 그래프 하나에 변수 두 개로 모든 걸 설명한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제라는 것을 분자 단위로 원자 단위로 쪼개고 쪼개다 보면 결국 '교환'이다. 교환이 모여 시장이 되고, 시장이 모여 시장주의자들이 된다. 나의 고생을 월급과 교환한다. 나의 고생은 시장에서 교환되는 상품일 뿐, 별다른 의미는 없다. 회사를 자아실현의 장으로 착각한 워커홀릭들이 퇴사해서 브런치 작가가 된다.



7. 거대한 전환

생산의 3요소는 노동, 자본, 토지라고 한다. (기술까지 추가해서 4요소라고 하는 게 요즘 트렌드란다) 세 가지 모두 산업혁명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개념이었다고 한다. 가내수공업과 장인정신의 시대, 나와 나의 노동을 분리해서 생각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지구 표면이 이렇게 비쌀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 미국인은 달과 화성과 금성의 표면을 팔아 100억 넘게 벌었다고 한다. 갓블레스아메리카. 봉이 김선달 선생님도 조선 시대 사람이었기에 망정이지, 이북의 대동강이 정말로 한양의 모 재벌가 소유가 될 뻔했지 뭔가! 


16세기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은, 식민지 시장이 성장하며 당시 최첨단 고부가가치 산업이었던 모직 제조업에 봉건 영주들이 뛰어들면서 장원에 살던 농노들을 쫓아내고 울타리를 둘러쳐(enclosure) 양을 키웠기 때문에 그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목축업은 농업에 비해 훨씬 적은 노동(양치기+개)만을 필요로 했고, 대대로 경작하던 땅에서 쫓겨 난 농민들은 빈민이 되거나 도시로 몰려 가 '긱 이코노미스트' 혹은 '산업 역군'이 되었다고 한다.

이를 본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에 "양은 온순한 동물이지만, 영국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다"라고 썼다.

요즘에는 양 말고도 다양한 것들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다.



8. 88만 원 세대

고교시절 반 강제로 읽었던 <88만 원 세대>라는 책은 내 월급이 88만 원쯤 될 거라는 지독한 예언을 남겼다. (사실 88만 원 세대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등장하기 시작한 IMF 이후 대학생활을 한 80년대생을 일컫는다. 비정규직 평균임금 119만 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한 수치가 88만 원이다. 88년생들이 성인이 된 07년도에 출판된 책이라고 한다. 역시 책은 제목이 중요한가 보다. '90년생이 온다'를 보라) 승자독식의 정글에서 아무런 '바리케이드'(예를 들면 공직에 계신 부모님) 없이 고작 스펙 몇 줄 가지고 경쟁으로 내몰린 20대들이 대부분 비정규직 일자리에 안착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11월 OECD는 <한국 청년고용 리뷰 보고서(Investing in Youth: Korea)>를 발표했다. 2018년 한국의 청년 고용률은 43%로 OECD 평균(54%) 보다 낮지만, 청년의 임시직 비율은 감소(00년 47.7% -> 17년 35.4%)하고 있단다. 신기한 건 청년 니트족(NEET, 교육/취업/직업훈련 하나도 해당 없다!) 비율이 18.4%로 OECD 회원국 평균(13.4%) 보다 높고, 이 중 대졸 이상이 45%로 OECD 평균(18%)보다 2.5배 높다는 부분이었다. 00% 경제성장도 부동산 버블도 경험하지 못한 '단군 이래 최고 스펙' 세대에게 비정규직으론 부족하다. 5글자로 긱 이코노미, 4글자로 프리랜서, 3글자로 사장님, 2글자로 백수, 1글자로 나!



9. "이 책은 기술 거품의 중심에 서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당신의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 쓰였다"

앤드루 양은 2020 미국 대선의 민주당 경선 주자로, 그의 저서 <보통 사람들의 전쟁> 은 위 문장으로 시작한다. 기술 발전 -> 자동화 -> 대량실업 -> 트럼프!!!!! 의 상황을 설명하며, '보통 사람들'의 현실은 주요 6개 도시(뉴욕,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시카고, 엘에이, 워싱턴 D.C.)와 6개 산업(금융, 컨설팅, 법무, 기술, 의료, 학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배부른 소크라테스의 지식 노동도 알고 보면 동일한 작업의 반복이고, 따라서 모조리 자동화 가능하다. 그러므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육체 노동자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 다 함께 기본 소득을 실시하자는 책이다.


시장의 존재 이유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다. 시장은 비효율을 싫어한다. 비효율이란 무엇인가? 한 명이 할 수 있는 두 명이 하는 것이다. 비효율이란 무엇인가? 알고리즘과 로봇이 1/100의 시간에 해낼 수 있는 일을 천 명의 사람이 하는 것이다. 심지어 인건비에는 어마어마한 간접비가 붙는다. 사람이란 어쩔 수 없이 술병이 난다거나 옆자리 동료를 때린다거나 난데없이 퇴사를 외친다거나 하는 것이다.

일자리는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일자리가 필요한가?


나는 줄곧 주변 친구들에게 기뻐하며 "인간 노동의 시장 가치가 0으로 수렴하고 있다"라고 말하는데, "너도 인간이야"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로봇을 노예처럼 부리면 우리 모두가 로마 귀족처럼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최소한 의식주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가 나의 유토피아, 즉 아무 데도 없는 장소다. 


헤이 클로바, 풍악을 울려라!



10. 경제 활동 (52/24*7 = 31%)

아무튼 배민은 정규직 배달원이 필요하지 않다. 배민은 (당연히!) 무인 배달 로봇에도 투자하고 있다. 건대에는 지금 '뭐 먹을 건대?'라고 쓰인 '캠퍼스 로봇 배달부'들이 돌아다니고 있다(기사). 긱 이코노미는 '무인 경제'로 가는 과도기적 노동 형태일 뿐, 이마저도 '정규직'은 아닌 셈이다.


동물들은 누구나 먹고살기 위해 경제 활동을 한다. 식물처럼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에너지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원시 시대에는 하루 3시간의 노동, 사냥과 열매 따기면 충분했다고 한다. AD 2019년 한국은 주 52시간 근무가 얼마나 치명적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 중이다. '놀토'는 내가 중학생이던 2006년에 (그나마 격주로) 처음 시작됐는데, 그때 뉴스에서 얼마나 시끄러웠던지 나는 한국이 망하는 줄 알았다.


경제 활동이란 무엇일까?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으며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걸까? 그래서 아무도 돈 주고 살 만큼 원하지 않는 것들을 조물조물 만드는 건 '경제 활동'이라고 부르지 않나 보다. 

요즘은 디지털 플랫폼들이 나<>지구 반대편의 나만큼이나 이상한 사람을 연결해주는 '초연결 사회'라서 그런지 경제 활동의 범위가 폭발적으로 넓어지고 있다. 유튜브만 봐도 그렇다. 내가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봐 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거기에 광고 몇 개만 붙여도 그 수입으로 먹고살 수 있을 정도다! (직장인 2대 허언 중 하나가 "유튜브 시작할 거야"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물론 "퇴사할 거야"다)



AD 2020년을 맞아 경제 활동의 의지를 갈고닦는다. 나는 광합성을 할 줄 모르니까!



긱 이코노미 한 줄 정리 - 하루 2~3만 원 벌이, 월세는 택도 없다




+a. 2019년 12월 13일의 금요일

배달의 민족은 4.7조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아 독일의 딜리버리 히어로(시총 약 12.4조, 세계 음식 배달 1위-중국 제외)에 인수됐다. 김봉진 (구) 배민 대표는 (현) 딜리버리 히어로 개인 최대 주주(약 5%)가 됐다. 두 법인은 '우아 딜리버리히어로 아시아'라는 50:50 지분의 공동 법인을 설립하고, 김봉진 대표가 의장을 맡으며, 기존에 배민이 진출해있던 베트남을 포함해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아시아 지역 사업을 공략한다.

그리고 그 날 나는 배민 계약을 종료했는데, 배민 커넥트 신규 계약 체결 독촉 문자가 오늘까지 계속 오는 걸 보면 배민 X 요기요의 99% 한국 시장 지배력에 플랫폼 노동자들이 당혹스러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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