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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aD Nov 10. 2018

가을백수의 전 직장 회고록

20181110 두 번째 토요일


1. 지난 15개월 동안 BGF리테일에서 SC(Store Consultant)로 일했다. 이렇게 말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조끼 유니폼 입고 담당 CU 편의점 돌아다니면서 "점주님~~" 하고 다녔다. 영업 하고 싶다고 덤볐다가 좋은 경험 많이 했다.



2. SC들의 꿈은 물론 건물주지만 보다 현실적인 꿈으로 편의점 점주가 있다. (점주님들은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SC가 좋다고도 한다) 하지만 근처에 다른 편의점 들어오는 게 무서워 편의점 못한다. 매출이고 뭐고 가을 밤송이처럼 후두두둑 떨어지는데 피하지도 못하고 맞고 있어야 한다. 점포를 들어서 옮길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월급쟁이 월급이 팍팍 깎인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한가. 2016년 BGF리테일 입사 면접 때도 롤플레잉으로 경쟁 편의점 개점 시나리오가 나왔다.



3. 올해의 이슈는 단연 최저임금이다. 건너편 GS25도 최저임금 때문에 한숨만 쉰다. 그래서 점주님이 '최저임금 인상 규탄 집회'에 참석하러 CU 본사 직원들이 광화문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을 때 뜨끔했다. 나는 최저임금 인상에 찬성하기 때문이다. (주휴수당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없다고 생각한다. 전국 모든 업종에 같은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최저임금이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정 최저 임금이라고 보지 않는다. 1시간 영업해서 인건비 7,530원도 지급할 수 없는 사업장은 문 닫으라는 뜻이다. 1년 영업해서 대출 이자도 못 갚는 회사들을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는 '좀비 회사' (혹은 한계 기업, 놀랍게도 국내 대기업의 20.9%, 중소기업의 44.1%. 2018 3월 금융안정보고서, 한국은행) 라고 부르듯, 1시간에 이 정도 부가가치도 창출하지 못하는 곳들은 문 닫으라는 '생산성의 하한선'으로 이해한다. 회사 다닐 때는 무서워서 이런 얘기 못 했다.



4.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국감 출석은 건 벵갈 고양이의 출석만큼이나 놀라웠다. “우리나라 자영업자가 너무 많다. 인구당 매장 수가 과도하다”, "나는 이 방송(백종원의 골목식당) 보고 웬만하면 식당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이미 시작한 식당들은 어쩔 수 없으니, 꼭 알아야 하는 위생 원칙, 손님 대하는 법, 맛 내는 법 등을 알려준 것뿐이다.”, “도태될 분은 도태돼야 한다” 프랜차이즈 업체 대표가 국회와 카메라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5. 편의점은 '유통업' 보다 '프랜차이즈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영업관리를 해서 그만큼만 보이는 것일 수 있지만, 어차피 본사 마음대로 점포를 바꾸는 것은 가맹사업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어쩌다 점주님 동의 없이 점포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점주님이 망치로 부숴버린다고 했다. 고가의 기계 무상으로 대여해 드리니까 매출 올려달라는 뜻의, 대부분의 경우 점주님이 먼저 요구하는 기계지만, 부서지면 안 되니까 바로 빼 드렸다) 편의점 영업관리자로서 나는 12~16개의 편의점을 관리했다기보다 그 점포 점주님과의 관계를 관리했다.



6. 예를 들어, 3년 전만 해도 점주님들은 폐기(점포 비용으로 빠진다) 난다고 도시락 발주(매일 오전 전산 프로그램에 품목당 수량을 입력하면 물류센터에서 정해진 시간대에 배달해준다)를 꺼리셨다. 그러면 또 "점주님~~" 하면서 되도 않는 설득도 해보고 폐기 비용도 분담하면서(제가 다 먹을게요!!) 오픈 쇼케이스(열려 있는 유리 선반 냉장고 이름입니다)에 도시락이 놓여있도록 읍소(?)한다. 그리고 '편도족'이 등장했고, 다음은 '편디(저트)족' 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7. 편의점(이마트24 제외)은 프랜차이즈 가맹 사업으로 가맹수수료 모델을 가져가는데, 점포의 한 달 매출이익(매출-매출원가)을 가맹계약 시 정한 비율(운영 시간, 임차권자가 본부냐 점주냐 등에 따라 달라진다)대로 가맹본부와 가맹사업자가 나눠 가진다. 가맹본부는 물류망과 전산 시스템이라는 1)설비와, 마케팅, MD, 회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웬수땡아리 SC 등 2)서비스를 가맹사업자에게 제공한다. 표준화된 CU점포는 점주님의 특별한 사전 준비나 영업 노하우 없이 (백종원 없는 골목식당보다) 곧잘 굴러간다. 소비자들이 그 표준을 기대하고 편의점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농심 같은 제조사가 CU 물류센터에 넘기는 상품 원가보다 CU가 점주에게 넘기는 가격이 더 비싸다고 굳게 믿는 점주들이 종종 있는데, 전사 직원이 속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건 편의점 3사의 사업 모델이 아니다. 이마트24와 요식업 프랜차이즈들의 사업 모델이고, 대신 가맹수수료를 안 받는다)



8. 2017년 편의점 본사 영업이익률은 CU 4.2%, GS25 3.3%, 세븐일레븐 1.1%다(이마트24는 적자다). 2018년 들어 다들 고꾸라져 1분기 각 2.1%, 1.3%, 0%다. 이때 점주들은 '영업이익액'에 주목한다. 2017년에 CU가 2090억이나 남겼으니 그 돈 조금만 떼서 점주들한테 나눠 줘도 많이 남는 것 아닌가! 어차피 다 점주들이 번 돈 가져간 거면서. 하지만 그 덩치의 매출을 유지하고 키우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 그 저조한 영업이익률 가지고 새로운 물류 센터도 만들고(에쓰씨! 물건 들어오는 시간이 어떻게 매일 달라져!), 새로운 진열대도 만들어 보고(그거 자리만 차지하고 불편해!), 새로운 PB상품도 만들어 보고(그거 맛이 좀 별로던데?), 무인편의점도 연구하고(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진열은 누가 하고!), 그 밖에 여러 불필요한 일들을 해내야 한다. 사실 그러라고 가맹 수수료 내는 것 아닌가.



9. 최저임금이 오르면 점주님이 할 수 있는 건 근무 시간을 늘리는 것뿐이다. 하루  2시간씩 더 근무하면 2019년 최저시급 8,350원, 인상분을 얼추 맞출 수 있다. 이미 10시간 일하고 있으면 12시간, 12시간 일하고 있으면 14시간, 가족친지를 동원해 근무를 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의점이 힘든 것은 최저임금 때문이 아니다. 편의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올리지 않았으면 올해 더 많은 편의점이 생겼을 것이다. (점주님들이 뭉쳐 정부나 본사에 내는 목소리의 반만 건물주들에게 냈어도 임대료가 매출 추이에 영향을 받았을 텐데 말이다. 부동산이 뭐길래)



10. 사람들은 왜 자영업으로 ‘내몰리게’ 될까? 가게 10곳이 문을 여는 동안 8곳이 문을 닫는 건 지난 10년간 지속해온 현상이라고 한다(KBS뉴스). 답이 있을까 해서 SBS 스페셜 '자영업 공화국의 눈물'을 봤다. 마지막에 전문가가 나와 한국 경제의 생산성이 떨어져서 그런거고, 앞으로 생산성을 높이면 된다고 말했다. 그게 피날레가 아니라 화두였으면 좋았을 텐데.



11. 좀 다른 얘긴데, 한국 편의점이 일본 편의점처럼 '커뮤니티 허브'가 되려면 보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매출이 높은 편의점일수록 서비스 매출 비중이 더 높다. 게다가 편의점은 '티끌 모아 태산' 비즈니스다. 전보다 한 명의 손님이 더 들어오고, 한 개의 물건을 더 파는 지난한 작업의 반복이다. 손님이라고 해봐야 푼돈 쓰며 대우받길 원하는 손놈들일 것이다. 하지만 편의점이 서비스 주체가 되고 커뮤니티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손님과 편의점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그 태도를 손님이 먼저 바꿀 리는 없다.



12. 좀 더 다른 얘긴데, 본사가 점주를 어떻게 '착취'하느냐 보다 그렇게 번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편의점 본사들 양아치 맞고, 자기 손해 보는 일 절대 안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도둑놈 아니고 사기꾼 아니다. 아마 대부분의 기업이 같은 부류일 것이다. 본사가 지나가던 사람 손 비틀어 가맹계약서 싸인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점은, 보광훼미리마트(BGF)리테일은  왜 보광그룹 소유의 회원제 골프장을 인수했을까? 크린토피아나 무인택배함 제조사를 인수했으면 생산성이든 서비스든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GS리테일은 왜 GS건설 소유의 호텔을 인수했을까?



13.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천고마비의 때깔 좋은 가을백수였다. 점주님이 '나가봐야 별거 없어' 라고 조언해 주셨다. 하지만 보고와 품의와 병렬합의와 결재중과 제일아닙니다와 무엇보다 '액션'이 지겨웠다. 상사에게 대답이라곤 "예" 혹은 "맞습니다" 혹은 "예, 맞습니다" 밖에 하지 못한 나의 무능함을 지우고 싶었다. 큰 조직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14. 역삼에 위치한 스타트업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5일이 지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인데 중고 신입이라 더 잘해야 할 것만 같다. 근처를 지나다 연락을 준다면 밥을 사고 싶다. 편의점에 가서 도시락을 먹고 싶다. 커피와 디저트도 있다.



15. 글이 길어져 처음에 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네 아저씨가 그 동네 CU 할까 하는데 어떠냐고 물어보셔서 아차 싶어 쓰게 된 것 같다. 아저씨, 일단 CU 알바 한 달만 해보세요!



16. 11월 11일에 부산의 한 여고 주변에서 빼빼로 매출이 폭증하는 것을 본 롯데제과는 빼빼로 데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올해는 일요일이라 아쉽다. 추운 주말 고생하시는 전국의 편의점 현장직 여러분 행복하세요. 대한민국 화이팅!




https://news.joins.com/article/22535261


https://m.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3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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