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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waysAwake Mar 12. 2017

축구 선수가 고개를 돌리는 이유

# 일상에 대한 사소한 해석

축구 경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약간은 비정상적 일지 모르겠으나 글의 시작을 위해서 적는다.


나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 네이버에 올라오는 축구 하이라이트는 본다. 유명한 유럽 축구팀 하이라이트 경기는 아무 생각 없이 킬링 타임에 최적이고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가끔 터지는 환상적인 골에는 괜히 혼자 대박이네, 하고 감탄하기도 한다. 이건 남자의 태생적 본능이다.


골 장면도 흥미롭지만, 나는 또 다른 장면을 예의 주시한다. 바로 골 득점 선수 기쁜 마음에 어디론가 뛰어가면서 고개를 뒤로 돌리는가 안 돌리는가, 하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아래 사진을 보면 된다.

득점자가 고개를 뒤로 돌려 무언가를 바라보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첫째로 골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재확인 차원일 수 있다-위 사진의 고개 돌림은 골 확인이 맞다-. 둘째 앞으로 뛰다가 뒤로 가려는데 상황이 괜찮은지 확인하는 걸 수 있다. 셋째로 팀원들이 자신을 따라오는가를 확인하기 위함일 수 있다. 나는 셋째에 주목한다. 거기엔 사람의 인간적인 정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불안한 것이다. 세리머니를 하려는데 팀원이 안 따라오면 어쩌지?, 아무도 자기를 축하하러 뛰어오지 않으면 어쩌지, 라는 미묘한 불안감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런 해석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유럽 리그에서 골을 넣을 때의 감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측해볼 수는 있다. 메시도 불안하고, 호날두도 불안하고, 수아레즈도 불안해한다.  불안은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불안하다. '불안하다’는 말, 대충 무슨 의미인지 와 닿기는 하지만 정작 설명해보라면 횡설수설하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불안’의 범주는 너무 거대하기 때문이다.


‘현대인’과 ‘불안’이라는 단어의 조합은 이제 하나의 패러다임처럼 여겨진다. 현대인들은 불안하다. 하나 이 ‘불안’은 내가 시작 문장에 써놓은 ‘불안’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현대인들의 불안’에서 ‘불안’은 말 그대로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를 뜻한다. 취업은 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자식은 키울 수 있을까, 노후 준비는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오는 불안감이다. 나는 이 불안감을 ‘저급 불안’이라고 칭하고 싶다. 결국 경제적인 안정감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에서 오는 불안감이니까. 세상 물정 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불안은 ‘그래, 열심히 살면 없어질 거야’라고 억지로 긍정하고 싶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인생, 너무 씁쓸하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불안은 바로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급 불안’이다. 하루에 많게는 몇 번씩이나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따라오는 그 불안감 말이다.

우리는 쉽게 불안해진다. 매번 인사하던 친구가 갑자기 ‘쌩’ 까면 불안해진다. 실수라도 하면 누군가 자신을 두고 뒷담 화하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밥 같이 먹을 사람을 찾지 못해 불안해한다. 문자메시지에 답이 없어 불안해진다. 하이파이브하자고 손을 내밀었을 때 외면당할까 불안하다.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안이라는 녀석에 쉽게 점령당하고 만다.


예전 나는 많이 불안했다.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하루에 몇 번이고 불안함이 가슴속을 어지럽혔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사소한 일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단 하나, 불안한 날이면 종일 ‘내가 왜 불안해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는 것이다.


늦은 밤 내린 결론은 인간이기에 불안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불안은 인간의 필수조건이라 여기게 됐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놓인 상황에 대해 불안해해야만 한다. 스스로 불안이 주는 고통을 느껴봐야 한다. 그래야만 남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위로할 수 없다. 불안은 더 이상 불필요하거나 없애버려야 할 것이 아니다. 불안감에 밤을 지새우고 있는가? 그 불안을 들여다보자. 그 안에서 당신이 인간관계에서 바라는 가치들을 더욱 뚜렷하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마음으로 남을 더 깊이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축구 경기로 돌아가면, 골 득점 팀원이 축하해주는 사람이 별로 민망해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고 뒤따라 뛰어가는 것이다. 그게 시작이다.


PS. 다음과 같은 상황에 골 득점자는 뛰어가면서 고개를 돌린다.

1. 환상적인 패스를 받아 숟가락만 얹은 득점자

2. 새로 이적하거나 한 신입 득점자

3. 누가 골을 넣었는지 애매한 상황의 득점자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한 번쯤 위와 같은 상황이 나오면 득점자 고개의 행방을 관찰해보자. 축구 경기에 볼거리가 추가되는 건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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