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로 이사 가기 전에 주거지가 2군데인 나는 종종 이 질문을 받았다.
“오늘은 어디서 지내?”
부쩍 보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던 나는 으레,
“보트에서 있을 거 같아.”라고 답했다.
일반적으로 보이는 가장 첫 번째 반응은 “보트에서 지낸다니, 재밌겠는걸!”. 아마도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번쩍번쩍한 호화스러운 보트가 그려졌으리라. 그게 아니라면 인스타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눈부신 초록빛 바다 위를 미끄러지며 나아가는 새하얀 세일 보트이거나. 처음 보트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떠올린 이미지도 그들과 다를 게 없었으니 그들의 반응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보트에서 사는 삶은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일반적인 주거공간이라고 생각하면 고작 몇 평 되지 않는다. 그 공간 속에서 프라이버시를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체 길이가 12미터인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공유된다.
서서 앞으로 0 발자국, 옆으로 2 발자국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전부인 해드(Head - 화장실이란 뜻이다. 모던 화장실이 생기기 전에는 뱃머리에 있는 나무 사이 틈으로 용변을 보았기 때문에 해드라고 칭한다.)에는 두 개의 문이 달려 있다. 한쪽 문은 갤리(Galley - 부엌을 보트에서는 갤리라고 부른다) 겸 메인 살룬(Main Sloon - 테이블과 앉는 공간이 있다. 앉는 공간에서 잠을 잘 수도 있다)으로 연결되어 있고 나머지 한쪽 문은 벌쓰(Berth - 침대가 있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에 연결되어 있다. 심지어 문은 100%로 공간을 막지 않는다. 공중 화장실 마냥, 문 위로에 있는 약 10cm의 틈은 화장실을 이용하는 소리가 배 안으로 퍼지는 데 일조한다.
일례로 친구 H가 방문 시 화장실을 이용했다. 세일 보트에서는 남자라고 서서 볼일을 보는 특례가 주어지지 않는다. 단단히 고정된 육지의 바닥과 달리 세일 보트의 화장실은 흔들거리기 십상이다. 만약 물 위에서 세일이라도 하고 있다면 화장실 앉아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허벅지에 최대한 힘들 주고 자세를 고정시켜야 한다. 화장실을 사용하는 건지 다리 운동을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특히나 변기에 제대로 조준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 잔뜩 마신 맥주를 배출한다며 H도 보트의 룰을 따라 화장실을 이용했다. ‘피식'하고 사그라지는 방귀소리가 마치 옆에서 쉬는 한숨처럼 입체적으로 들렸다. 나도 모르게 터진 웃음에 그는 "들렸어?"라고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H는 같이 산지 십 년이 넘은 결혼한 아내가 있음에도 그녀 앞에서도 실수를 한 적이 없다며 어쩔 줄 몰랐다.
이미 다른 사람들 통해서 어떤 결과가 올 수 있는지 충분히 인지한 터라 보트를 방문하던 초기에는 신호가 올 때마다 마리나에 있는 공중화장실로 달려가곤 했다. 하지만 서서히 소리와 냄새가 공유될 수밖에 없는 화장실 사용이 익숙해졌다. 이쯤 단련되자 파도에 흔들리는 보트를 흔들의자에 비유하며 불편함을 즐거움으로 바꿔서 생각하는 깜냥까지 생겼다.
보우(Bow - 배의 앞머리)와 스턴(Stern - 배의 뒤쪽)에 각 벌쓰(침대가 있는 공간)가 있지만 천장이 낮기 때문에 침대에 눕다가, 혹은 일어나다가 머리를 부딪히는 건 일상다반사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장소는 메인 살룬에 있는 테이블 주변이 전부다. 반경 1 미터 안에서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에 대한 사소한 변화도 모르고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고개만 돌려도 보이고,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좁디좁은 공간. 섭섭한 일이 있어 기분이 상한다고 도망칠 곳은 없다. 대신 억지웃음이라도 머금으며 화해의 제스처를 보낼 수밖에.
주말이나 퇴근 후의 시간은 어김없이 '보트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보트를 청소하거나 정리하는 사소한 일은 프로젝트 목록에 끼지도 않는다. 우리의 모험을 시작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곳이나 수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곳들을 점검하고 업그레이드를 한다. 이 목록은 수시로 달성하고 지워지지만 동시에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전체 목록이 짧아지는 건 아직 보지 못했다. 우리는 수리공이나 설치기사를 부르지 않는다. 따라서 끝이 보이지 않는 목록은 오로지 T에게 달렸다. T는 보트의 모든 설비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바다 한가운데서 문제가 생겼을 때 고칠 수 있다고 믿기에 묵묵히 하나둘씩, 프로젝트를 혼자서 해낸다. 그의 본업은 컴퓨터에 관련된 일일지라도 손은 그 누구보다 거칠다.
하루에 몇 시간만 시간을 보낼 때는 이 모든 게 신선한 경험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이고 비와 추위 속에서 항해를 할 때는 이 좁은 공간이 우리에게 세상의 전부가 된다. '타닥타닥' 하고 비가 덱(Deck - 보트의 외각에 평편한 곳)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바깥세상에서 들리는 흔적일 뿐, 보트 속에서 우리는 바깥세상과 단절된다.
둘 만으로도 가득 차는 이 공간에서 나는 그와 나의 삶이 하나가 되는 기적을 본다.
조금만 보트에서의 삶을 이해하고 나면 어련히 이상에서 현실적인 질문으로 돌아선다.
"보트에서 살면 불편하지 않아?"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의 답변은 감성적이 된다.
"불편하지, 하지만 포근하고 낭만적이야."
마흔을 넘긴 내가 선택한 삶이 평이하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보트에서 사는 게 두렵지 않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거다.
"지금이라도 이 모험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늦기 전에 더 많은 세상을 볼 거야.
물론 T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