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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B Oct 20. 2020

연애 아니면 재혼

이혼은 싱글로 돌아와 연애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건네었다. 하지만 그 연애 끝에 다시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일 것인지는 아직 고려하고 싶은 사항이 아니었다. 결혼이라는 법적 관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법이 지킬 수 없다면 결혼이 과연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의심이 드는 건 당연했다. 이혼녀인 나에게 결혼은 무의미한 이벤트 이상은 아니었다.


여전히 결혼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을 때 T와 세 번째 데이트를 했다. 그 날의 데이트는 산책과 대화였다. 아이스크림 콘을 하나씩 들고 천천히 걷기 시작한 우리는 4시간이나 걸음을 계속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좋아하는 영화부터 사람을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등, 서로에게 궁금한 점에 대해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T가 뜬금없이 물었다.

“재혼 생각 있어요?”

“아니요. 저는 다시는 결혼할 생각 없어요. 결혼을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헤어지지 않고 사랑으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첫 번째 결혼이 완전 대 실패였거든요. 굳이 왜 결혼을 해서 더 복잡하게 해야 하는지 이제는 모르겠어요. 그냥 연애하고, 사랑하면 같이 살고 그것만으로도 괜찮을 듯해요.”

“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 친구가 재혼을 했는데 첫 번째 결혼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좋데요. 첫 번째 결혼에서 배운 점을 두 번째 결혼에서 적용하고 나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고 말하더군요. 저는 결혼을 믿어요. 사랑을 해서 평생 같이 하기로 결정하면 가족들 앞에서 이 사람과 평생 사랑하며 살겠다고 맹세할 거예요. 그래서 전 꼭 결혼식을 할 거예요.”


내가 생각했던 결혼과는 완전 다른 개념이었다. 결혼을 필요 없는 법으로 생겨난 제도라고 고려했던 나와는 달리 그에게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를 맹세하는 의식이었다. 그는 내가 꿈꿨던 진실한 결혼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줬다.


두 손을 꼭 잡은 채 걸어가시던 노부부의 뒷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나도 그들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늙어갈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잡고 싶다.


가끔씩 T와 결혼하는 상상을 한다.  T 몰래 웨딩드레스를 검색해 보고 소셜 미디어에서 프러포즈를 받는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T와 가족들 앞에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상상만으로도 콧등이 시큰거리며 눈물이 맺힌다.  


언제나 내 옆에 딱 붙어 앉아서 나를 만난 자기는 행운아라고 말하고 있는, 나의 껌딱지 T.


느끼하고 싶지 않은데 느끼하지 않을 수가 없다. T와 결혼한다면 그와 나의 가족 앞에서 나에게 다시 이 달달한 감정을 안겨준 T에게 꼭 이렇게 말해주리라.


너와 내가 부부가 되어 같이 늙어가면서
네가 가장 많이 느낄 감정은 사랑이고,
네가 가장 많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웃음이 될 거고,
네가 죽기 전까지 가장 많이 들을 말이 사랑한다는 말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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