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일하는 곳'이 아니게 되면 벌어지는 일들
평균적으로 스타트업 10곳 중 3곳은 망하고, 3곳은 평균 이하의 실적을 내고, 3곳은 그냥저냥 먹고 살 만큼의 성과를 얻는다고 한다. 투자자에게 수익을 배분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겨우 1곳 뿐이라는 거다. 그럼 내가 다니는 스타트업이 성공할 확률도 10% 정도일까? 최근 회사에서 있었던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직장 동료와 나누었던 잡담이라면 그보다도 훨씬 낮을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처럼 직원들은 대표를 닮아간다.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이라면 대표와 직원의 소통이 바로 이루어지니 더더욱 회사가 대표의 취향대로 운영되기 쉽다. 그렇다. 열정 있는 자기 취향의 동료들로 회사를 채운 김루피 대표 덕에 A사는 동아리형 회사가 되었다.
직원들 대부분이 향수에 대한 열의가 있는 데다 어느 정도 안정된 집안 환경에서 자랐다는 점까지 비슷하니 서로서로 절친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처음엔 "일도 힘든데 점심이라도 맛있는 걸 먹어야지!"하며 점심시간을 사내규정 이상으로 넉넉하게 쓰던 정도였는데, 언젠가부터는 시장조사를 빌미로 몇몇 직원들이 업무시간에 같이 백화점 구경을 다녀오는 일까지 일어났다. 외근이 잦던 김루피 대표는 직원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회사에 긍정적인 신호로 보고 덩달아 "오늘 노량진 모둠회 번개 콜?"이라며 직원들과 맛따라 멋따라를 찍어댔다.
직장 동료 간에 '이 사람이라면 믿고 일할 수 있다'는 신뢰 대신 '이 사람과 함께라면 일은 조금 대충 해도 괜찮다'는 나태함이 쌓이면 회사는 망한다. 신뢰는 업무 진행에 버프 효과를 주지만 안도감은 직원들의 평균 능력치를 너프시킨다. 동료 간의 유대감이 만들어내는 것이 신뢰인지 나태인지는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봐도 구분할 수 있다.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월요일 출근길이 그나마 덜 힘들다" 와 "같이 수다 떨기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월요일도 주말이랑 별 차이 없다"의 차이다.
A사의 사무실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고 많은 직원들은 일을 손에서 놓았다. '지금 잠깐 놀아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근거없는 낙관주의가 회사를 뒤덮어갔다. 분명 이번 주 목요일까지 완성된다던 마케팅 프로젝트가 다음주 수요일까지로 미뤄졌고, 디자이너의 모니터에 네이트 판이 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일을 놓지 않던 직원들은 한담을 나누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저 사람이랑 나랑 월급이 같다고?' 생각하며 어이를 상실해갔다.
이해한다. 앱 출시는 자꾸 미뤄지고, 뭐라도 좀 해보려면 예산은 항상 부족하고, 어차피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열두 시간인데 그 중 세네 시간쯤은 여유롭게 보내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 하지만 회사에서 "이번 신상 완전 사고 싶다!"며 같이 최저가 쇼핑몰을 찾아보느라 온 직원의 신경이 쏠리는 건 딱 그거 같았다. 대학 다닐 때 동아리방에서 선후배가 뒹굴거리며 시험공부를 하는 풍경. 공부는 더럽게 안 되도 밤이면 밤마다 "에이 오늘도 망했넹ㅋ" 하며 즐거운 치맥타임을 가지는 젊은이들 말이다. 공부를 핑계로 모이긴 했어도 아마 그들이 마음속으로 바란 건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정말 공부를 하고 싶었으면 도서관에 갔겠지.
뭐 괜찮다. 좋은 학점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어도 된다. 그렇지만 회사라면 수익을 내야 한다. 초창기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적은 월급을 받는 대신 차후 스톡옵션 기회를 보장받았을 것이다. '미래의 성공한 나'를 꿈꾸며 지금 열심히 일하겠지만, 그 성공이란 회사가 성장하기 전까진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스타트업에 일을 하지 않는 잉여인력이 있다고? 의미 없이 소모되는 인건비는 물론 다른 직원들의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것까지 손실에 넣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게 대표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다. 거기서 다 같이 어울려 노는 동아리장이 되는 것이 아니고.
원피스를 찾아 떠나는 루피와 동료들의 모험은 그 과정 자체로도 훌륭한 만화 소재다. 걔들은 나이를 안 먹으니까. 그렇지만 우리의 소중한 시간은 쉼없이 흘러간다. 게임을 하면 이겨야 하고 스타트업에서 일하면 서비스를 성공시켜야 한다. 성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찾지 못하는 대표 아래에서 일하면 당신도 직원이 아닌 동아리원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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