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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pr 09. 2018

스타트업 면접에서 구직자가 파악해야 할 것들

좋은 회사를 찾기 위한 체크리스트

  "정말 죄송해요. 이렇게 될 줄 미리 알지 못했던 제 잘못입니다."

  "저희가 어서 성공해서 여름 씨에게 더 좋은 제안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A사는 이런저런 이유로 재정난을 겪게 되었고, 부수적인 서비스였던 매거진 섹션을 없애기로 했다. 고로 에디터로 일하던 나는 권고사직당했다. 고작 1달 일했지만 얻은 것이 참 많은 곳이었다. 주 6일 출근으로 얻은 만성피로, 금수저 직원들 사이에서 얻은 소외감, 나태한 사내 분위기 속에서 얻은 만사 귀찮음. 이야 신난다! 아쉽게 잃은 것이라면 그동안 회사를 다니며 썼던 차비며 식비. 첫 달 월급이야 원래 없는 거였으니 할 말 없지만 위로금이랍시고 받은 50만 원은 그 마이너스를 메꾸기에 턱없이 모자랐다.


  김루피 대표와 김조로 대표의 미안한 표정을 뒤로하고, 직원들에게 안부 인사를 건넨 후 내 짐을 챙겨 A사를 나왔다. 생각 이상으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회사에 내 자리가 없어졌다는 허탈함보다 앞으로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어딜 가도 여기보단 나을 거니까 뭐! 퇴직한 다음 날부터 재취업을 알아보기 시작해 몇 군데에서 면접 제안을 받았다. 한 달 전이었다면 급한 마음에 취직 자체가 목표였겠지만 이젠 다르다. 나를 뽑아 주는 회사 중에서도 내가 좋은 회사를 골라야지. 아래의 체크리스트는 내가 회사를 고를 때 염두에 두었던 기준들이다. 적어도 동아리 같은 회사는 피할 수 있을 거다.


  1. 나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고 면접에 임하자

      □ 내가 스타트업에 맞는 사람인지 생각하기

      □ 내가 포기할 수 없는 '회사의 조건' 정리하기

  스타트업에 입사하려는 사람이라면 "왜 다른 곳이 아니고 스타트업에 들어오려고 하시나요?"에 대한 대답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많은 업무량, 불안정성, 적은 월급 등등 수많은 단점을 감내하면서도 스타트업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뭘까. 내가 바라는 스타트업의 이상적인 모습은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떤 특징을 가진 곳에 입사해야 할지 알 수 있다. 동시에 내가 포기할 수 없는 회사의 조건도 생각해 보자. 내 경우, 라떼 한 잔을 참아야 오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빈곤한 삶은 사절이었으니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보장하는 회사인지를 확실하게 알아봤다. 내가 원하는 모든 장점을 갖춘 회사는 없지만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는 회사는 잘 찾아보면 있다.


  2. 회사 대표 & 내가 속할 팀에 대해 알아보자

      □ 구글, 링크드인, 페이스북 등으로 회사 대표, 경영진의 정보 찾기

      □ 대표가 지닌 가치관 알아보기

      □ 팀장의 업무성향이 어떤지 알아보기

  요즘은 구글링 한 번이면 사람 정보 찾는 것쯤 금방이다. 한 회사의 대표라면 PR용 인터뷰 기사를 찾을 수도 있고, 운이 좋다면 대표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나 페이스북 페이지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직원 수가 적은 스타트업일수록 대표 개인의 성향이 회사 운영과 문화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대표는 리더의 자질을 갖춘 사람인지, 내가 회사를 다니며 대표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사전 검색과 면접 속 대화를 통해 잘 알아보자. 대표의 가치관이 회사의 분위기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내가 같이 일하게 될 팀의 팀장이 가진 업무성향은 내 마음의 평화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별한 일 없이도 밥 먹듯 야근을 하게 될지, 효율적인 일 처리를 최우선 하게 될지 등의 실무적인 문제는 팀장의 성향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3. 회사 문화가 나에게 잘 맞는지 알아보자

      □ 사내 문화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 준비해 가기

  사전에 잡플래닛 후기 등등 이것저것 알아보았더라도 구체적인 회사의 문화나 사내규정은 면접 담당자에게 듣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 "혹시 저희 회사에 궁금하신 점 있으신가요?" 물어볼 때 질문할 것들을 미리 생각해 가자. "담당자님은 일주일에 야근을 어느 정도 하시나요?" 라던가 "여기서 일하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즐거우신가요?", "제가 일하게 될 곳의 팀원 분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같은 것들. 대표보다 더 많은 시간을 회사 내에서 보내는 사람인만큼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4. 회사 재정상태를 파악하자

      □ 회사에 돈이 있는지 확인하기

      □ 회사의 지분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 회사의 수익구조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지 알아보기

  이제 막 운영을 시작한 스타트업에 초창기 멤버로 들어가는 거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일반 사원으로 입사하는 경우에는 직원들 월급은 밀리지 않고 줄 수 있는 회사인지 잘 살펴야 한다. 투자를 받은 회사라면 어디에서 투자를 받았는지도 파악하면 좋다. 좋은 안목을 가진 VC가 선택한 회사라면 회사의 비전이 외부적으로도 인정받을 만한 확률이 높을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회사의 수익구조가 명확하게 존재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스타트업에 중요한 것이 많은 매출인지 많은 트래픽인지에 대한 대답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장 규모 자체가 작은 한국에서는 트래픽이 높은 서비스라도 수익을 내지 못해 망하는 경우가 꽤 있다.


  5. 내가 얻을 수 있는 보상은 확실한가

      □ 연봉은 적당한 수준인지, 인센티브 협상이 적절히 진행되는지 확인하기

      □ 내 담당 직무가 나의 경력에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보기

      □ 스톡옵션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지 물어보기

  중소기업 연봉 수준이 대기업의 61% 정도뿐이라고 한다. 많은 스타트업이 그보다 더 적은 돈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모든 스타트업의 연봉이 적은 것도 아니다. 아르바이트나 인턴이 아니고서야 절대 공짜(와 다름없는 수준으)로는 일하지 말자. 또한 내가 이 회사에서 담당하게 될 업무가 나의 경력에 괜찮은 첫걸음이 될지 잘 생각해 보자. 이 회사가 평생직장이 아닌 만큼 현업 경력을 제대로 쌓는 것은 중요한데, 내가 기대한 주 업무보다 다른 업무를 훨씬 많이 수행하게 될 것 같으면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것이 낫다. 차후 지분이나 스톡옵션을 나눠줄 계획이 있는지도 물어보자. 만약을 대비해서 돈 얘기를 할 때는 합의 하에 녹음을 해 두자. 그럴 분위기가 아니라면 이야기 내용을 노트에 기록해 두는 모습을 대표에게 은근슬쩍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6. 회사의 성공을 점쳐보자

      □ 회사가 속한 업계 현황 알아보기

      □ 회사의 주력 서비스가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는지 알아보기

      □ 회사에 구체적인 장/단기 목표가 있는지 알아보기

      □ 모든 정보를 고려했을 때, 이 회사가 3년 이상 유지될 수 있는 곳일지 판단하기

  한국에서 신생기업이 3년 후 생존해 있을 확률은 41%이고, 신생 기업의 75% 이상은 창업한 지 5년이 되지 않아 폐업한다고 한다. 생계형 창업도 모두 포함된 비율이라 정확하진 않더라도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가 망해서' 다른 곳으로 이직할 확률이 41%나 된다는 건 끔찍하다. 나를 비자발적 실업자로 만들 회사에는 가지 말자. 우선 업황이 좋은 회사라면 투자유치는 물론 성장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회사가 타깃으로 삼은 시장이 충분한 수익을 가져올 수 있는 곳인지, 별다른 경쟁력 없이 레드오션에 뛰어드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자. 회사의 구체적인 장/단기 목표에 대해 물어본다면 그 답변 내용을 바탕으로 회사의 존망을 예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면접에서 얻은 모든 정보를 적극 활용해 회사의 미래를 가늠하며 면접 결과를 기다려 보자.


  그리고... 모든 것을 고려해 들어간 회사더라도 입사 후 3달째에 진실을 알 수 있다.

  직원들과 대표가 열정을 가지고 일하고 있고, 내가 담당할 업무도 마음에 들어서 입사를 했다지만 이 회사가 내가 궁합이 잘 맞는지 확인하려면 실제로 직원으로 근무해 보는 수밖에 없다. 대개 정직원으로 입사했더라도 1~3달 정도 수습사원 기간을 거쳐야 할 것이다. 면접을 보면서 생각했던 회사의 장단점을 염두에 두고 세 달 동안 많이 고민해 보자. 첫 달은 사람들을 사귀고 들뜬 마음으로 업무를 배우느라, 둘째 달은 업무를 손에 익히느라 바빠 여기가 어떤 회사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 달부터가 진짜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이 회사를 계속 다닐지 그만두는 게 심신의 안정에 도움이 될지 마음의 소리가 알려줄 거다. 혹시나 회사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더라도 잘못된 선택을 한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진 말자. 수백억 대 슈퍼컴퓨터가 있는 기상청도 매번 예측을 틀리거늘. 날씨도 회사도, 겪어 봐야 어떤지 답이 나온다.



* 매주 수요일, 취향 가득 담긴 제 글을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매일매일 읽을거리]도 소소하게 운영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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