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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희 May 07. 2024

다름없이 태연하게


내가 먼저 한줄기 연기가 되어도
남편은 밥을 먹고
아들은 커피를 볶고 마시고

태양은 뜨겁게 이글거리고
지구촌 저쪽에선 끊임없이
전쟁과 테러로 무너진 건물 안
허름한 난민들은 하나라도 더, 더
구호물자에 악다구니 쓰겠지
가늘고 긴 팔과 손가락들이
얽히고설켜 또 다른 작은 전쟁이
벌어지는..아낙들과 아이들은 꾀죄죄한 겁먹은 얼굴로 카메라에 찍혀 온갖 미디어 매체를 장식하고

더하여 어김없이 홍수와 폭설로
세상은 뒤집혔다가 언제 그랬냔듯
말끔하게 색색의 꽃을 피우고
계절이 바뀌어 낙엽이 보도블록을 장식하면, 전쟁 없는 이쪽 지구촌은 센티해진 소녀들, 머리 희끗한 삶의 굴레에 지친 중년, 지팡이 또는 유모차를 끄는 노구,
인생무상이든 뭐든 시 한 구절 떠올리거나 읊게 할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다지
...나이들어서 슬픈 게 아니라 정신이 여전히 늙지 않는 것이 더 슬픈 것이라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마음만은
늘 청춘이라는 이 말만큼 우리를 안타깝게, 저미게 하는 게 있을까

내가 연기가 된들, 아니 네가 먼저
항아리 속에 재로 남는다 해도
엄마와 오빠를 보내고, 많이 울다가 작게 흐느끼다가 천천히 조금씩 괜찮아지듯
다름없이 태연하게 삶은 진행형으로 그러할 거야, 또 그래야하고
.
.

텔& 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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