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꾸렸다. 마음만큼이나 너절한 옷을 개켜 넣었다. 구멍 뚫린 가슴에선 서늘한 바람이 돌아 나온다. 그래, 가자. 무엇에 더 미련 두라. 아들도 저만치 커버렸잖아. 눈치 보며 미루었던 결심에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 삶의 고비마다 찾아가는 친정집. 마주 앉은 어머니는 조용히 말씀하신다.
아이를 업고 갔을 땐 열 살까지만 키우고 가거라 하더니, 아이가 열 살이 넘어섰을 땐 고등학교만 졸업시키고 가라고 하셨다. 남편이 너를 때리는 것도 아니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닌데, 성격이야 맞추어가며 살아야지. 네 성격은 나무랄 것 없다고 생각하냐며, 대책 없는 딸을 다독이신다. 사는 일이 힘든다고 혼자되는 길을 택한다면 너는 아들이 눈에 밟혀 우는 날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참고 살아가다 보면 웃는 날이 더 많을 테니 견뎌보라며 두 손을 잡고 당부하신다. 가장 약한 부분인 아이가 눈에 밟힐 거라는 어머니 말씀에 절제되어 있던 감정이 솟구쳐 왈칵 눈물을 쏟아낸다. 힘없이 가방을 내려놓는다.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아주는 어머니가 계심에 다른 길에 한 눈 팔지 않고 지금에 이르렀다. 사실, 꼭 이 길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굳이 허락을 받고 떠날 필요는 없었다. 더 단단히 붙잡아 주기를 원하고 찾아간 길이 아니었는지.
외딸, 외아들로 성장해서 중매로 만난 남편은 나와 스물네 살 동갑으로 그 해 십이월 그믐을 며칠 앞두고 서둘러 결혼했다. 사랑에 대해, 결혼에 대해 무엇인들 제대로 알았을까.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 보살피라는 엄청난 계약을 우리는 별안간 하고 말았다. 그래도 결혼 초엔 서로의 단점도 장점으로 보였다.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는 그런대로 남자는 여자의 결점까지 매력으로 보아주는 것 같았다.
3년이 흐르고 다시 5년.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단점과 결점에 대한 용서와 이해는 갈수록 엷어졌다. 서로 고약한 버릇으로 치부되었다. 오고 가는 눈길도 곱지 않다. 남자는 지나치게 깔끔하고 여자는 지나치게 털털하다. 초식을 좋아하는 남편과 육식을 좋아하는 아내. 가만있지 못하고 늘 톡톡 털어내고 쓸고 닦는 남자. 부지런하고 분별력 있는 꿀벌 같은 남자. 누워있길 좋아하고 책을 보며 공상을 좋아하는 베짱이 같은 여자.
깔깔한 남편 옆에 있으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날이 많다. 운명, 숙명으로 다가온 부부 인연. 이만큼 속살을 비비며 살아냈으니 상대의 기분을 눈짓만 보아도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빗나가기 일쑤다. 미움과 참담함으로 똘똘 뭉친 유치한, 치사한 기분의 소용돌이를 빠져나오지 못한다. 사소한 일로 냉전이 계속되는 날엔 누가 더 현명하고 누추한지 아무리 선을 그어본들 누더기처럼 초라해지기만 한다.
마음 안 맞는 사람끼리 오랜 시간 줄다리기를 하며 살아왔다. 손아귀에 힘도 빠지고 팽팽하던 동아줄은 조금씩 헐거워진다. 이제는 안다. 남편이 나보다 몇 배의 인내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남자라는 이유로 속으로 삼킨 말은 얼마나 많을 것이며 거친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참아내느라 더 깊은 가슴앓이를 했을 것이다. 내 감정에만 파고들어 남편을 힘들게 하는 날이 많았다. 아직도 철없이 나풀대는 여자를 이해해 주는 남편에게 이제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지난 결혼기념일, 나무를 사다가 시간이 날 때마다 누구도 모르게 못질을 하고 락카 칠을 하며 몇 날에 걸쳐 야무지고 튼튼한 책장을 만들어 내게 선물한 남편. 누구나 갈 수 있는 멋진 곳을 여행하는 것도 좋았겠지만 나는 이 선물이 몇 배나 행복하다. 책을 꺼내 들 때마다 남편을 만지듯 책장을 애무한다.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