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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쏭 Aug 04. 2022

스타트업 이민기

떠나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직장인을 위한 안내서

크레쏭 연대기 (크로와상 아님 주의)


1981년 2월 탄생

1998년 - 공부보다는 친구가 소중했고, 선생님과 동등한 위치에 서기 위해 감투쓰기를 좋아했던 시절.

1999년 - 외교관의 꿈을 품고 정치외교학을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

2003년 - 외교관의 길은 멀고도 험난함을 깨닫고,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글로벌 제조기업에 입사.

2004년 - 2008년 -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보며, 세상의 바닥까지 경험했던 영업 시절.

2008년 - 2009년 - 최고 경영진의 생각을 읽고, 메신저 역할을 했던 전략 기획 업무.

2009년 - 2012년 - ‘교육’이 나의 천직임을 깨달았던 HRD Specialist 시기.

2013년 - 크레쏭 주니어 탄생, 야호!

2014년 - 직장생활 10주년 기념 도서 출판, “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

2014년 - 2019년 - ‘인사’를 ‘기획’하는 HRer 인사쟁이로 활약.

2019년 - 2021년 -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혁신을 연결하는 Accelerator.

2021년 - 스타트업 이민 결정.

2024년 - 표류 중.


연도별 프로필을 공개하는 이유는 “나 이런 사람이야!“를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앞으로 써나갈 이야기가 ‘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지금 그때의 나와 비슷한 지점에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길 바란다.




특별한 아이에서 평범한 어른으로

우리는 모두 특별한 아이였다.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아이는 없다. 부모가 되면서 더 깊이 깨달은 점인데, 모든 부모는 자기 아이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특별하게 태어난 우리는 학교에 가면서 평범해지기를 강요받는다. 그리고 주위의 누군가와 비슷해진다. 그게 일종의 사회화이기도 하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직장인을 선택했기에, 직장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직장’이라는 곳에서는 태어나서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종류의 도전을 만나게 된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공부한다고 좋은 성적을 받지 않는 것처럼, ‘사내 정치’, ‘인맥’, ‘운’ 등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요소들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만난 나쁜 친구들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10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그 풍파 속에서 단단해진 우리는 나름의 생존 방법을 하나씩 갖게 된다. 그러나 그다음에 또 다른 도전이 찾아온다.


10년차 깨달음

어떤 사람들은 빨리 그 다음을 고민하지만, 대부분의 ‘일잘러’들은 10년 동안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달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 즈음에 보통 깨닫게 된다. 나도 그랬다. 부끄럽지만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불렸다. 독한 애, 싸움닭, 다루기 힘든 애 등의 수식어도 따라다녔다. 윗사람이 “달려라!“라고 말하면 전속력으로 달리고 “물어!“라고 말하면 온 힘을 다해 물었다. 자신의 성취에 취해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정의하기 어려운 시점이 찾아왔다. 나는 그것이 10년 차가 되는 해였던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명함에서 회사 이름을 지우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회사 밖 세상은 뭐가 있을까? 내가 거기서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어떤 질문에도 속 시원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자기 객관화

가장 먼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정기적으로 이력서를 다시 썼다. 나의 이력을 연도순으로 정리하다 보면 나를 볼 수 있는 작은 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그 틈 사이로 과거의 미숙하고 여린 나와 마주하게 되니까. ‘나 참 힘들게 살았구나!’, ‘다양한 일들을 했군!’, ‘잘 버텼다!’ 등 나에 대한 연민의 감정들이 몰려왔다.


연민의 감정이 지나간 다음에는 내가 한 일들을 통해 얻은 성취와 성장을 분석했다. 나의 실력에 대한 가치를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곧바로 나의 전문성과 실력 부족이 보이면서 우울감이 나의 가슴과 머리를 지배했다. 나는 회사가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과연 나는 무엇을 얻었지? 이 밑천으로 어디 가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민 프로젝트 가동

이런 고민은 한 번 시작되니까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독이 되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해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 독을 해소할 수 있을까? 단순히 간헐적 단식을 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여행을 떠난다고 해결되지 않았다. 고민의 원인이 되는 현재 하는 일(직장)이 반드시 변화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너무나도 편안하고 안정적인 곳에 있지 않은가?


지금 익숙하고 편안한 것과 헤어지지 않으면 해독은 시작되지 않겠다는 생각에, 나는 저와 가장 거리가 먼 곳을 다음 종착지로 선택했다. 그곳은 바로 ‘스타트업’이었다. 당시 제게 스타트업은 미지의 세계와 같았다. 내 주변에는 대기업, 공무원, 전문직 종사자들만 있었고, 스타트업에 다니는 지인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곳으로 어떻게 갈 수 있을까? 무엇을 타고 갈까? 가서 무엇을 해 먹고 살까? 지금의 나는 그곳으로 가는 길을 모르겠다. 미국으로 이민 가고 싶은데 영어 한마디도 못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나의 이력서로는 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민 서류 검사에서 통과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왜냐하면 그때의 나는 스타트업에서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장생활 10년차가 되는 2014년 나는 이민을 결심했다. 그리고 7년 뒤 2021년 4월 스타트업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아직 성공인지 실패인지 결과를 말 하기는 이르다. 나는 여전히 이 세계에서 표류중이다. 그런데 분명한 건 나는 새로운 나로 열심히 성장중이다.


글로 남겨야 하는 이유

퇴직한 후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았다. 결론은 왜.왜.왜 였다. 

"송미영은 왜 나갔을까?" 한 동기의 증언에 따르면 "달마가 왜 동쪽으로 갔을까?" 수준으로 선후배들 사이에서 회자가 된 질문이었다고 한다. 퇴직 후 1년쯤 되었을 때 한 동기가 찾아왔다. 너무나 궁금해서 직접 왔다고 말이다. 자신도 나처럼 새로운 곳으로 이민을 가고 싶은데 용기가 없다고 말이다. 그녀와 대화하면서 나는 결심했다. 나의 이민 여정을 글로 남기기로.


변화를 결심하는데 누구나 장애물이 있다. 그 장애물을 치우는 데는 사람 마다 필요한 것이 다르다. 누군가에겐 '용기', 누군가는 '준비', 누군가는 '운' 이 필요하다. 나의 스타트업 이민기가 누군가의 결심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면 좋겠다. 미안하지만 스타트업 이민기는 절대 아름답지는 않다. 어떤 모습은 찌질하고 답답하고 심지어 슬프기도 하다. 그러나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써보려고 한다. 나의 좌충우돌 스타트업 이민기가 누군가에게는 풀고자 하는 문제의 실마리, 행동할 수 있는 용기가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지금 고민만 하는 수 많은 직장인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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