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자긴 했는데 오늘은 와이메아에서 코할라 산허리를 돌아서 최북단의 마을인 하위(Hawi)를 지나 다시 처음 출발했던 코나(Kailua-Kona)까지 달려야 한다. 만만찮은 언덕까지 있는 130km의 강행군이다. 중간에 적당한 곳에서 쉴까 하다가 쉬는 것도 애매해서 그냥 달려보자고 한 것이다.
진하게 푸른 맑은 하늘의 아침이다.
어제 맛있는 만찬을 즐긴 식당 옆으로 마마라호아 하이웨이(Hi-19)를 따라간다. 아침 먹으러 들러볼까 싶었던 다른 식당에 사람들이 줄줄이 모여있길래 포기하고 지나간다.
그대로 마마라호아 하이웨이를 따라가면 바로 코나로 가게 되지만 우리는 하위를 들러야 하니 중간에 빠져서 코할라 마운틴 로드(290)로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넓은 초지 뒤로는 1670m의 코할라 화산이 솟아있고, 그 뒤로는 와이피오 벨리와 폴롤루 벨리라는 엄청난 계곡이 있다. 여기서는 그냥 부드러운 능선의 산이지만 저 너머는 깎아지른 절벽이라니 눈으로 보지 않고는 못 믿겠다.
와이메아도 큰 동네는 아니라서 얼마 안 가서 마을을 금방 벗어난다. 오늘 달릴 거리를 생각하면 아침을 먹었어야 했는데...
빅아일랜드에서는 하루하루가 풍경이 완전히 다르다. 오늘은 광활한 고지대의 초지가 펼쳐진다. 이런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자전거 여행이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자전거 소리가 거슬리는지 숲 속의 소떼들이 우르르 도망간다.
800m의 와이메아에서 출발했는데도 내리막길을 조금 내려갔다가 올라와서 그런지 아직 900m까지 밖에 못 올라왔다.
아직 정상은 아니지만 중간에 경치를 볼 수 있는 쉼터가 있어서 잠시 쉰다.
오후에 가게 될 서부 해안이 저 멀리 보인다. 마을이라 할만한 것이 제대로 안 보이는 것이 오후에도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서 지금까지 거의 못 찍었던 커플 사진을 한 번 찍는다. 7일 동안 햇빛에 시커멓게 그을려버렸다. 배 좀 집어넣어야 했는데...
충분히 쉬었으니 다시 출발한다. 정상은 어디쯤에나 나올는지... 계속 정상 같아 보이는 곳에 도착하면 다시 저 멀리 오르막이 보인다.
둥근 산봉우리 같은 것들도 실제로는 다 예전에 폭발했던 분화구라고 한다.
드디어 이 길의 최고 지점인 1086m 정상을 지나간다. 이렇게 빅아일랜드 일주 코스의 가장 높은 구간을 올라왔다.
여기서부터 하위까지는 거의 쭉 내리막이다. 쭉쭉 내려간다. 밥먹으러 가야지~
하위까지 가는 길도 가로수 뒤로는 모두 목장이다.
내려가는 길 양쪽으로 윈도우 바탕화면 같은 초록 언덕이 펼쳐진다.
중간에 하위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길 번호는 여전히 Hi-250이지만 코할라 마운틴 로드가 아닌 하위 로드가 된다.
푸른 바다가 가까워진다 싶으면 하위에 도착한다.
하위에는 커다란 반얀트리가 있다. 반얀 트리 나무 기둥에 아이들이 자전거를 주차해 놓았다.
반얀 트리 나무 아래에 시장이라고 하기엔 조그만음식점과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하위 파머스 마켓이다.
여러 가지 농산물도 팔고 있고...
아침도 안 먹고 언덕을 넘어왔으니 배가 많이 고프다. 딱 봐도 몸에 좋을 것 같은... 노점 치고는 꽤 비싼 음식을 한 접시 씩 주문한다. 풀에 가려서 안 보이지만 나는 스테이크, 지니님은 새우 플레이트다. 맛은... 보는 대로 건강한 맛이다.
반얀트리에서 조금 밑에는 하위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상점가가 있다. 마침 파커 목장의 소들을 실은 트럭이 지나간다. 짐칸에서 신나 있는 양치기 개들이 귀엽다.
너무 웰빙으로 먹었더니 배가 덜 찼다. 와이메아의 숙소 아주머니가 추천해준 바베큐 척 웨건을 찾아서 좀 더 먹기로 한다. 타이음식 같아 보이는 치킨 플레이트를 주문한다.
지니님이 질색을 하는 고수를 살살 걷어내고 맛있게 먹는다.
그런데... 타이 음식 노점은 바베큐 척 웨건의 옆집이었다. 까짓거 또 먹으면 되지. 진짜 바베큐 척 웨건에 들어가서 바베큐 폭립을 주문한다.
우리가 먹을 바베큐 폭립이 구워지고 있다.
큼직한 바베큐 폭립으로 식사를 마무리한다. 아주 특별한 맛은 아니고 평범하게 맛있는 촉촉한 바베큐 폭립이다. 새우, 소, 닭, 돼지로 골고루 먹게 된 셈이니 배가 든든하다. 이로서 뜻하지 않게 하위의 길거리 음식은 모두 먹었다.
이제부턴 해안 도로(Hi-270)로 코나까지 80km 정도 더 달려야 한다.
하위부터 카와이하에까지는 사람 사는 곳이 거의 없는 벌판이다. 바다 옆으로 펼쳐진 벌판이라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이렇게 지역마다 풍경이 다르니 하와이의 풍경은 질리지 않는다.
한참을 달리다가 슬슬 더위에 지치려는 때에 상점가가 하나 나타난다. 카와이하에 항구에 딸린 상점가이다.
점심을 너무 풍족하게 먹었으니 여기서는 빙수를 먹기로 한다.
우리나라 같은 팥빙수가 아니라 보슬보슬한 얼음에 색소만 뿌려주는 빙수다. 색소 종류가 다양하다.
카와이하에부터는 와이메아 출구에서 갈라졌던 마마라호아(Hi-19) 도로와 다시 만난다.
코나로 갈수록 하늘이 흐려진다. 비가 오지는 않고 구름 사이로 빛의 커튼이 만들어진다.
하와이 자전거 일주가 끝나가는 것을 하와이가 축하해주는 것 같다.
중간에 몇 개의 리조트도 있고... 코나가 하와이의 중심지이기도 해서 그런지 차들도 점점 많아지지만 아무리 길이 막혀도 넓디넓은 갓길을 침범하는 차는 없다. 벌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인 것일까?
길가의 풍경이 또다시 바뀐다. 후알라라이(Hualalai) 화산이 1800년에 분출한 흔적이다. 20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사막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바다가 있다는 것을 빼면 카우 사막과 비슷한 느낌이다.
후알라라이 화산에서 흘러나온 선명한 용암의 흔적 뒤로 ㅣ 멀리 마우나로아 화산이 보입니다.
해가 저물 시간이 되니 산기슭 집들의 창문에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인다. 이 시간에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다행히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에 코나에 도착한다. 드디어 이번 여행의 목표인 빅아일랜드 완주가 끝났다. 마을 입구의 상점가에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잠시 쉰다. 지니님은 그동안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오늘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이제 빅아일랜드 완주를 기념하는 만찬을 즐겨야겠다. 일주 내내 마셨던 코나 맥주를 만드는 코나 양조 회사가 코나 시내에 있다.
코나 맥주도 종류가 많기 때문에 무얼 마실까 하다가 맥주 샘플러를 주문한다.
그리고 캡틴 쿡 피자와 포케를 주문한다. 무난하게 맛있다.
오늘 밤부터 하와이를 떠날 때까지 묵을 숙소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취할 정도로 마시진 않았지만 술을 마셨으니 자전거를 타지 않고 숙소까지 걸어간다. 골목길을 돌고 돌아 마을 끝에 있는 집인데 중간에 사람이 다니는 개구멍이 있어서 거리를 단축할 수 있었다. 민박집 주인 아저씨가 조용하게 맞이해준다.
오늘도 밤하늘의 별이 많다. 오리온자리와 겨울밤의 대삼각형을 보니 아직 겨울임을 새삼스레 느낀다.
와이메아에서 하위까지 약 400m 상승의 언덕길을 넘고 하위에서 코나까지 약간 오르내리는 길을 따라서 코나 도착, 코나 브루잉에 들렀다가 숙소까지 총 130km를 달렸다. 이로서 약 550km의 빅아일랜드를 완주하였다. 이제 내일부터 3일 동안은 느긋하게 관광과 휴식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