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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과 지니의 시칠리아 자전거 여행 10

에트나 화산 투어

by 존과 지니

2017년 5월 6일


오늘은 에트나 화산 투어를 가는 날이다. 투어 차량이 아침 8시 반에 호텔 앞으로 픽업하러 온다고 한다. B&B들은 아침 8시부터 조식을 주는 곳이 많은데 이번 숙소는 호텔이라 그런지 7시부터 조식을 주니 다행이다.


호텔 조식은 B&B들보단 조금 다양하긴 한데 먹는 것은 어차피 비슷하다. 그래도 과일이나 따듯한 음식들이 좀더 나오니 좋다. 우리가 식사를 시작하고 좀 있으니 투숙객들이 몰려들어서 소란스럽다.


8시 반이 되어 호텔 앞으로 투어 버스가 왔다. 투어 버스를 타고 카타니아를 벗어나서 에트나 화산으로 간다. 가는 길에 만나는 다른 차량들도 대부분 투어 버스다.


에트나 화산이 가까워진다. 길 옆으로 하와이에서도 익숙하게 봤던 굳은 용암들이 나타난다.


용암 사이로 보이는 하얀 선이 우리가 올라온 길이다. 엄청 높은 산인 만큼 길도 엄청 꼬불거린다. 가는 길에 자전거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에트나로 올라가는 이 길은 세계 최대의 자전거 경주 중에 하나인 지로 디이탈리아 코스의 일부인 만큼 자전거로 오르는 사람도 눈에 많이 띈다.


꼬불거리는 오르막길을 한참 달려서 리퓨지오 사피엔자(Rifugio Sapienza)에 도착한다.


리퓨지오 사피엔자는 호텔이면서 에트나 화산을 일반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는 도로의 가장 높은, 해발 1920 m 지점에 있다. 주변에 용암이 흐른 흔적이 많은데 이 호텔도 화산의 피해를 받았다고 한다. 1983년에 화산 분출로 한 번 파괴되고 다시 재건한 후, 2002년에는 민관군이 합동으로 용암의 흐름을 바꿔서 파괴되지 않았다고 한다.


투어 버스에서 내려서 준비를 한다. 투어를 예약할 때 신발과 외투를 빌려주는 서비스가 있길래 예약하면서 신청했는데 완전히 유럽 사이즈리 외투도 엄청 크고 지니님 발에 맞는 신발도 없다. 더 큰 사이즈의 신발들은 다른 여행객들이 얼른 가져가서 신어버린다. 나쁜 놈들...


리퓨지오 사피엔자에서 어제 우리가 왔던 남쪽 방향을 바라본다. 이미 해발 1920m에 올라왔으니 꽤 높이 올라온 셈이다.


가이드가 프라스틱 카드와 바우쳐를 나누어준다. 프라스틱 카드는 출입증이므로 잘 가지고 있어야 한다.


리퓨지오 사피엔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


우리나라 지하철처럼 플라스틱 카드를 태그하고 들어가서 케이블카를 탄다.


꽤나 가파른 산기슭을 아주 편하게 올라간다. 케이블카 문에 보드와 스키 걸이가 있어서 겨울에는 이 케이블카로 스키를 타러 올라갈 수 있다.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걸어 올라가는 사람도 있다. 걸어가면 돈은 안 들겠구나...


케이블카는 생각보다 길지 않지만 가파른 길을 금방 올라간다.


지니님이 신발을 못 구했는데 케이블카 출구에서 아줌마가 복장을 체크하더니 등산화를 빌려서 갈아신으라고 한다. 가이드가 오더니 투어에 포함된 부분이라고 대신 지불한다. 어째 내가 빌린 신발하고 같은 모델이다.


케이블카 스테이션에서 나가면서 다시 한 번 프라스틱 카드를 태그한다.


이제 사륜구동 버스를 타고 간다.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튼튼하고 힘 좋은 차들이다.


사륜구동 버스는 생각보다 잘 닦인 비포장길을 큰 진동 없이 달린다. 이제 에트나 산봉우리가 지척에 보인다. 해발 3350 m의 에트나 화산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이라고 한다.


버스는 에트나 화산 봉우리가 보이는 곳에서 멈춘다. 여기는 해발 2950 m이다. 에트나 화산의 세 봉우리가 보인다. 에트나 화산이 해발 3350 m라고 하니 꼭대기는 아니더라도 꽤 높이 올라온 것이다.


화산 전문 지질학자인 가이드가 원래 봉우리가 두 개 였는데 사이에 하나가 더 분화해서 세 개가 된 것을 열심히 설명해준다. 가장 최근에 분화한 것이 2012년 4월이라고 한다.


화산재 밑으로 눈이 쌓여있다. 기본적으로 기온이 낮으면서 화산재에 덮여있기 때문에 안 녹는다고 한다.


근처의 분화구 쪽으로 걸어간다. 화산재와 용암 덩어리들이 입자가 성글면서 큰 덩어리들은 모서리가 날카롭기 때문에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용암이 흐른 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하와이에서도 용암이 흐른 자국은 많이 보았지만 높은 산에서 흘러내려온 용암 자국은 조금 다른 풍경을 만들어 준다.


다시 사륜구동 버스와 케이블카를 타고 리퓨지오 사피엔자로 내려가서 점심을 먹으러 간다. 이번에 해발 3000 m, 지난 번에 하와이의 할레아칼라에서도 해발 3050 m까지 올라갔었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해발 4200m의 마우나 케아 산에 올라갔을 때는 나도 지니님도 어지러움증을 느꼈으니 해발 3000m까지만 올라다녀야겠다.


리퓨지오 사피엔자에서 조금 내려가서 에트나 화산 감시꾼들의 숙소 앞 마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제주도처럼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인 화산석으로 집을 지었는데 제주도와는 다른 분위기다.


가이드가 챙겨온 점심을 꺼낸다. 투어 요금에 식사비까지 포함되어 있다.

두 종류의 빵과 에트나에서 난 와인이다. 시칠리아는 와인이 유명한데 화산섬의 특징으로 다른 지역처럼 교잡을 한 품종이 아닌 원래 유럽 오리지널의 포도나무에서 난 포도로 와인을 만든다고 한다.


하와이의 마우나 케아에서 먹은 다 식은 라쟈니아보단 나았지만 너무 단촐한 식사가 조금 실망이다. 와인이나 많이 마시자. 결국 가이드가 준비해온 와인 두 병을 다 마셔버렸다.


에트나 화산 일대에서 볼 수 있는 식물들도 화산 지형에 적응하기 위해 조금 다르게 생겼다.


이제 용암 터널로 들어간다.


가이드에게서 안전모와 랜턴을 나눠 받는다. 랜턴은 우리 자전거 전조등보다 훨씬 약하다. 우리 전조등을 챙겨올걸 그랬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암흑 천지다. 뒤돌아보니 우리가 들어온 입구만 환하다.


바닥은 걷기 힘들게 화산석들이 굴러다니고...


천정에는 털이 잔뜩 나있다. 아까 보았던 식물의 뿌리가 천정을 뚫고 내려와 있는 것이다. 이 뿌리들이 동굴에 모이는 습기를 빨아들여서 건조한 환경에서도 잘 산다고 한다.


용암이 긁고 간 흔적도 보이고...


이 자국은 용암 속에 갇혀있던 가스가 폭발하면서 생긴 흔적이라고 한다.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는 짧게 끝났다. 이곳이 용암이 빠져나가고 막혀버린 동굴의 끝이다. 용암 동굴은 하와이 볼케이노에서도 들어가 보았지만 조명까지 달려있는 뻥 뚫린 시멘트굴 같은 하와이의 용암 동굴보다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으면서 지질학 전문 가이드가 붙어서 설명까지 해주는 이곳의 용암 동굴이 좀더 볼만했다.


봉우리 근처도 가보고 용암 동굴도 보았으니 이제 투어가 거의 끝나가지 않았나 싶었는데 마지막 차례가 남았다. 다시 리퓨지오 사피엔자로 돌아와서 분화구 투어를 하러 간다. 리퓨지오 사피엔자 바로 오른쪽 위의 큰 분화구다.

버스에서 내려서 우리가 올라갈 분화구 쪽을 보니 전동 MTB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화산석은 바스러져 미끌어지기 때문에 순수하게 다리 힘으로는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전기의 힘을 빌리니 훨씬 수월하게 다닌다.



우리도 슬슬 걸어 올라간다.


그대로 보존된 분화구는 참 특이하게 생겼다. 바람이 굉장히 심하게 부는 곳인데도 그 모양이 유지가 된다.


분화구 정상에서 아래를 보니 도로 근처의 작은 분화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수풀로 뒤덮힌 제주도의 오래된 오름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에트나산 쪽의 모습은 이렇다. 중간에 분화한지 얼마 안 된 분화구에서 용암이 흘러나온 것이 보인다. 저 위의 봉우리는 위쪽 케이블카 스테이션 근처의 봉우리이고 아까 보았던 에트나산 봉우리는 보이지 않는다.


가이드에게 부탁해서 우리 둘의 사진도 남겨본다. 사실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이 몇 장 안 된다.


이제 투어는 모두 끝났으니 차를 타고 카타니아로 돌아온다. 가장 쉬운 일정과 코스의 투어였지만 꽤 걸었기에 슬슬 피곤하다. 가이드에게 저녁 먹을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와인바를 소개해줬다. 투어 버스는 호텔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하와이에서 이미 화산을 많이 보고 왔지만 에트나 화산은 또 다른 느낌의 세계였다. 친절하고 열심히 에트나 화산에 대한 많은 것을 알려준 가이드에게 감사한다. 이제 씻고 슬슬 걸어서 가이드가 알려준 와인바로 간다.


엄청난 수와 종류의 와인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것을 보니 제대로 된 와인바같다. 어제 저녁에 카타니아 중앙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았던 조그맣고 시끄러운 와인바와는 비교가 안 된다.


와인바라 그런지 와인 소믈리에가 있다. 에트나산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와인을 하나 놓고 간다. 나중에 계산표를 받아보니 20유로였던 와인이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어째 와인을 추천해달라면 비싼 와인을 가져오질 않고 20 유로 짜리를 꺼내 준다. 우리나라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터무니 없는 가격에 팔아먹으려는 사람이 없다. 가격 만큼이나 부담없이 무난한 느낌의 마시기 편한 와인이다.


마찬가지로 20유로인 햄&치즈 모듬을 주문했더니 온갖 햄과 치즈가 산더미처럼 나온다. 이 커다란 대접의 안주는 결국 다 먹질 못했다. 치즈 중에 양젖이 들어간 치즈가 많아서 지니님은 햄 종류만 조금씩 먹었다.


그런데, 이런 평범한 와인을 마시려고 숙소에서 한참 걸어서 와인바까지 온게 아니다. 와인 한 병을 비우고 소믈리에를 다시 불러서 너희가 가진 베스트 에트나 와인을 가져오라고 했더니 사다리를 타고 와인 선반 꼭대기에 있는 와인을 꺼내온다.


이것이 우리가 마신 에트나 와인이다. 에트나 화산 북쪽의 파소피치아로라는 동네에서 생산한 와인이다. 소매점에선 좀더 저렴하겠지만 여기서는 230 유로이다. 비싸고 좋은 와인을 시켜서 그런지 소믈리에도 정성껏 디켄팅까지 해서 시음을 하게 해준다. 아까 와인은 대충 놔두고 가더니...

와인이라곤 비싸봐야 1865 정도 밖에 안 마셔본 우리에게 이 와인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아까 마신 20유로 짜리 와인보다 10배 이상 맛있었다. 입 안에 꽃밭이 펼쳐지는 환상적인 느낌이 왜 사람들이 비싼 와인을 마시는지를 잘 알게 해주었다. 이러다가 비싼 와인에 맛들이면 안 되는데...


와인바의 연주가 아저씨가 우리 테이블 바로 앞에서 멋진 연주를 해주었다. 우리가 호응을 해주니 아저씨도 신이 나는지 더 멋진 연주를 해준다. 팝송부터 이탈리아 노래까지 다양한 음악을 들으면서 좋은 와인을 마시는 멋진 저녁이었다.


이제 카타니아에서 예정했던 에트나 화산 투어까지 마쳤다. 시칠리아에서 라구사, 모디카 관광에 이어 카타니아에서 에트나 화산 투어까지 연달아 하니 자전거를 좀 덜 타는 느낌도 들지만 꼭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만 하는 것이 존과 지니의 자전거 여행이다. 시칠리아까지 와서 에트나 화산도 들르지 않고 가는 것이 더 이상한 여행이 아닐까?

이제 내일은 다시 자전거를 달려서 이탈리아 본토와 가장 가까운 도시인 메시나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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