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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과 지니의 시칠리아 자전거 여행 12

메시나에서 카포 디'올란도까지 110km

by 존과 지니

2017년 5월 8일


이동 경로 및 거리 : 메시나 - 카포 디'올란도 110 km

총 누적 이동 거리 : 876 km


메시나는 이탈리아 본토에서 가까운 만큼 사람도 차들도 정신없다. 우리는 이런 정신없는 곳에서는 오래 머물기 힘들다. 오늘은 시칠리아의 동쪽 끝을 찍고 북쪽 해안을 따라서 카포 디'올란도(Capo d'Olando)에 간다.



메시나의 B&B도 방이 넓고 아침 식사도 나쁘지 않았다.기본적으로 과일과 빵, 커피 등이 있는데 B&B의 쿨한 여주인이 와플과 오믈렛도 만들어 준다. 따듯한 음식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은근히 크다.


이제 메시나를 출발한다. 어제 메시나로 들어올 때 워낙 차들에게 시달려서 나갈 때도 쉽지 않겠거니 했는데 시내를 빠져나가는 것은 생각보다는 수월하다.


우리가 가던 길의 한 블록 바로 옆이 해안 도로니 그냥 해안 도로를 따라가기로 한다.


고맙게도 자전거길이 나타나 주어서 조금 편하게 달린다. 사진에는 잘 안 보이지만 저 멀리 커다란 송전탑 같은 것이 있다. 저기가 시칠리아의 동쪽 끝인 토레 파로 (Torre Faro)겠구나.


가는 길에 꽤 큰 호수가 나타난다.


송전탑이 가까워지니 이제 곧 토레 파로 도착이다.


토레 파로에선 이탈리아 본토가 바로 코 앞에 보인다.


토레 파로의 등대이다. 해안에서 툭 튀어나온 부분(곶)에는 항상 등대나 감시탑 같은 것들이 있다.


토레 페롤로(Torre Peloro)라는 요새 비슷한 감시탑도 보인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토레(Torre; 탑) 파로(Faro; 등대)인 것인가?


데크길을 슬슬 걸어서 해변으로 가본다.


여기가 시칠리아의 동쪽 끝이다.


멀리서부터 계속 보이던 송전탑 같은 것이 이제 코 앞에 있다. 토레 파로 송전탑(Pilone di Torre Faro)이다.


거대한 송전탑 같은데 전선이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예전에 본토로부터 시칠리아로 전기를 공급하던 송전탑이라고 한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지만 이 자리에 우뚝 서서 시칠리아 동부의 상징같이 되어버렸다.


바다 건너 본토에도 커다란 송전탑이 있다. 두 송전탑이 서로 전선으로 연결해서 시칠리아에 전기가 들어왔던 것이다.


이제 시칠리아 동부 해변이 끝났다. 북쪽 해안 도로가 좋다는데 얼마나 좋을지 기대된다.


아까 들어올 때 있었던 호수를 빙 둘러서 북쪽으로 나간다.


이뻐 보이는 해변은 집들이 차지하고 있고 멀찍이서 바다를 보면서 달린다. 좀 더 바다에 붙어서 달리고 싶은데...


어느 새 메시나를 벗어난다.


슬슬 점심 시간이 되었는데 바르셀로나 포죠 디 고토 (Barcellona Pozzo di Gotto)라는 큰 도시를 지나서 계속 달린다. 식당이 많이 보이길래 여기서 점심을 먹는 줄 알았는데 지니님은 좀더 한적하고 경치 좋은 곳에서 점심을 먹고 싶은가보다.


결국 SS113번 도로가 언덕을 넘어가기 직전인 팔코네(Falcone)라는 작은 동네에서 멈췄는데... 먹을만한 게 없다. 점심 시간도 막 지나서 그나마 몇 없는 식당들도 대부분 브레이크 타임이다. 할 수 없이 동네 바에서 작은 피자를 하나씩 먹는다.


저녁마다 툭하면 피자를 먹었더니 이제 슬슬 피자가 물리기 시작해서 오늘 만큼은 피자를 먹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가장 먹기 싫은 것을 먹었다.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먹고선 언덕길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아... 이제 피자는 그만 먹을래...


다행히 언덕길은 생각보단 완만하고 오르면 오를수록 지중해의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언덕 꼭대기에 무언가 이상한 건물이 있다. 틴다리(Tindari)라는 마을의 성당 겸 역사 박물관이라는 듯하다.


언덕 꼭대기에 갔더니 식당에 모인 젊은이들이 우리를 보고서는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선 응원가 같은 것을 불러준다. 유쾌한 사람들이다.


언덕길을 내려와서 조금 달리니 풍경이 좀 독특하게 변한다.


급경사의 절벽 한 가운데에 길이 길게 나있다. 들판도 항구도 없는 곳이다. 절벽 밑으로는 파도가 세차게 치고 있다.


이 절벽길은 거대한 바위 아래의 조그만 터널을 지나면서 끝난다. 지금까지의 시칠리아가 푸른 들판과 부드러운 바다를 보여줬다면 이곳에서 또 다른 시칠리아 지중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터널을 빠져나와도 여전히 파도가 쎄긴 하다.


한참을 휴식 없이 달렸더니 이제 힘들다. 가장 먼저 보이는 바에서 음료수를 먹으면서 잠시 쉰다.


아직 20 km 정도 더 가야 한다. 가야 할 방향을 보니 저 멀리 볼록 튀어나온 지형이 두 개 보인다. 둘 중에 뒤에 멀리 보이는 곳이 우리의 오늘 목표 지점일 것이다.


어느 정도 달리니 아까 보았던 볼록 튀어나온 첫 번째 땅을 지나간다. 치아볼레탑(Torre delle Ciavole)이라는 오래된 감시탑이다.


점심이 너무 부실했는지 아까 쉬면서 음료수를 마셨음에도 체력이 고갈되었다. 먹을게 뭐가 없을까 하고 생각해봤더니 모디카에서 사온 쵸컬릿이 있다. 맛있는 쵸컬릿인데 맛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고 절반 정도를 허겁지겁 먹어치운다. 역시 점심을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


잠시 쉬면서 회복한 후에 다시 달리니 오늘 목표인 카포 디'올란도에 들어간다. 이제 마을까지 조금만 더 달리면 된다.


카포 디'올란도의 마돈나산(Monte Della Madonna) 꼭대기에 성지(Santuario di Maria S.S)가 있다고 한다.


마돈나산을 빙 둘러서 돌아가면 드디어 마을에 들어가게 된다. 하얀 등대를 지나니 예약해둔 오래된 호텔이 나타난다. 호텔 이름도 등대(Faro) 호텔이다.


낡고 오래 되긴 했지만 지저분하진 않은 호텔이다. 객실이 넓고 모든 창에서 바다가 보이는데 심지어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도 바다가 보인다. 오늘따라 파도가 거세다.


치약을 다 썼으니 마트에 간다. 여긴 마트도 일찍 닫고 편의점도 없기 때문에 배가 고프지만 마트를 먼저 가야 한다.


이제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다른 식당은 없고 피자집 뿐이다. 그 중에서 좀 좋아보이는 피자집에 갔는데 다른 메뉴가 하나도 없이 피자 뿐이다. 분명히 피자는 안 먹는다고 했는데... 이 이후로 떠나는 날까지, 아니 귀국해서도 한 동안 피자를 안 먹었다.


누군가가 시칠리아가 유럽의 부엌이라는 거창한 말을 썼다. 그건 큰 도시 위주로 며칠 잠깐 묵고 가는 사람들이나 할 말이고 작은 동네로 다니면 아침은 빵, 점심은 파스타, 저녁은 피자를 선택해야만 하는 분식 천국이다. 쌀 요리인 리조또도 먹어봤지만 여기 현지의 리조또는 내가 아는 밥 요리라기보단 불린 쌀 알갱이를 이용한 파스타라는 느낌이 강해 내 입에는 소스에 말아놓는 불어터진 밥일 뿐이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아무리 빵식을 해도 한식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한식이 먹고 싶어진 분식의 천국이 시칠리아이다.


이제 영화 시네마 천국의 무대 중에 하나인 체팔루까지 90 km 정도 남았다. 그런데, 바로 내일 세계 3대 자전거 경주 중에 하나인 지로 디'이탈리아의 4번째 스테이지가 체팔루에서 시작된다. 우리도 지로 디'이탈리아를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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