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의 시작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해서 샌디에고까지 달리는 1000여 km의 첫 날은 산타 크루즈까지 135km를 달린다. 120 km 정도만 달리고 싶은데 산타 크루즈 전에는 숙소와 식당이 충분한 마을도 없기 때문에 산타 크루즈까지 가지 않을 수도 없다. 마을이 많은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130 km 이상 달려야 하는 구간이 총 3번 정도 있다.
어제 맥주와 함께 사다놓은 복숭아까지 곁들여서 아침을 배부르게 먹고 출발한다. 오늘 달려야 하는 거리가 짧지 않기 때문에 든든히 먹었다.
오늘도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흐리다. 당연히 바람막이를 입었다. 지니님에게는 내 기모 져지를 입혔는데 많이 헐렁해보인다.
이번에는 금문교까지 가서 금문교를 굴다리로 가로질러 태평양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크리시필드를 따라서 달린다.
오늘은 일요일, 어제는 자전거 대행진이더니 오늘은 달리기 대회가 있나보다. 번호표를 단 사람들이 열심히 뛰고 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자전거길인 크리시필드 애비뉴를 따라 올라간다.
바다 위에는 알카트라즈섬이, 저 멀리 샌프란시스코의 마천루가 보인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날씨가 맑아 금문교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런 날에 금문교 전망대와 소살리토를 갔어야 했는데... 이곳 배터리 이스트도 금문교를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배터리 이스트에 금문교 자전거길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다. 어떤 식으로든 자전거로 항상 금문교를 달릴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자전거길을 벗어나서 링컨 대로를 따라서 101번 도로 밑 굴다리로 가야 한다.
지금까지는 샌프란시스코 만 안의 갇힌 바다였다면 이제부터는 태평양을 따라 가는 샌프란시스코의 외곽이라 할 수 있다.
최대한 바닷가로 붙어서 가려하면 자연히 자전거가 가기 좋은 길이 있다. 길찾기 어렵지 않다.
샌프란시스코의 오션 비치가 보인다. 넓은 백사장이 10 km 이상 이어지니 가장 큰 해변도 4km 남짓한 우리나라 백사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기 캘리포니아 태평양 연안은 이렇게 긴 백사장이 여기저기에 있다.
바닷가 도로를 달릴 때는 항상 고운 모래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안그래도 폭이 좁은 23c 타이어가 모래 웅덩이에 빠질 때마다 신경쓰인다.
스카이라인 대로를 따라 넋놓고 달리다보면 주유소 앞에서 오른쪽으로 가라는 자전거길 표시가 있다. 다른 자전거 이용자들도 다 이리로 들어간다. 좀더 가면 큰길이 교차하는 복잡한 인터체인지가 있으니 자전거들은 우회하는 것이다. 한적한 동네 길을 따라가는데 파랑 저지를 입은 사람들이 우리 옆으로 계속 지나간다.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600 km를 달리는 자전거 행사 모임이라고 한다.
언덕을 넘어가는데 반대편에서 오던 차의 차창이 내려가더니 운전자 할머니가 왼쪽으로 돌라고 알려준다. 그대로 진행하면 막다른 길로 가게되고 할머니 말대로 왼쪽으로 돌아서 팔메토 애비뉴를 따라 가야 한다. 고마워요~ 할머니
길 자체가 그리 어렵지 않아 중간에 분기만 한 번 씩 잘 선택하면 고민 없이 한참을 직진하게 된다. 길찾기는 지니님에게 맡겨뒀으니 난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가로등 공사로 차들이 막혀도 자전거는 그냥 지나간다.
어느 사거리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몇 명이서 큰 길로 가지 않고 어디론가 가는 것을 보고 따라 갔더니 역시나 자전거길이 있다.
큰길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자전거길이다. 조금 돌아가는 길인데 편하게 달리니 뭐 어떠랴.
로커웨이라는 조그만 마을을 지나면 사전조사할 때 눈여겨 봐두었던 보행자 자전거 겸용도로가 보인다.
롬바드 스트리트를 연상하게 하는 꼬불꼬불한 길인데 대부분의 자전거들은 우리처럼 그냥 큰 길로 달린다.
페드로 포인트라는 마을을 지나면 넉넉하던 갓길이 확 좁아진다. 열심히 달린 것 같은데 아직 산타 크루즈까지 60마일(97km) 남았다.
갓길이 거의 없는 꼬불꼬불한 길이라서 차량 통행을 걱정했지만 차들도 조심조심 다니니 생각보단 수월하다.
조금 더 가면 터널로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벗어나 자전거 보행자용 도로로 가는 옛길로 가야 한다. 옛길이라지만 터널 자체가 개통된지 2년도 채 안 되었다. 달리다 보면 'Bikes must~' 라고 쓰이거나 'Prohibited Bicycles' 등의 자전거 통행 금지 하얀 표지판을 볼 수 있다. 가지 말라면 가지 말라는 이유가 있는 만큼 위험하니 반드시 그 지시에 따라야 한다.
이 옛길은 데블스 슬라이드(악마의 미끄럼틀)트레일이라는 길이다. 길 자체는 이름처럼 가파르거나 힘들지 않은, 완만한 길이지만 길 옆의 해안 사면이 경사가 급한 해안 계곡이라 악마의 미끄럼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래 1번 국도로 만들어진 완만하고 넓은 길을 올라가면 탁트인 절경이 펼쳐진다.
태평양의 푸르디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곳이다.
여기에는 예전에 해안 경비용으로 쓰던 벙커도 있는데 하와이에서 본 것보다 규모가 크다.
다시 1번 국도를 달린다. 이미 점심 시간이라 간식이라도 먹고 싶지만 근처에 아무 것도 없다. 열심히 달리다가 몬타라(Montara)라는 작은 마을에서 주유소를 발견했다. 근처에 식당이 있지만 어차피 샌드위치 가게라 그냥 간식을 먹고 잠시 쉬기로 한다. 인구 밀도가 낮고 마을에 제대로 가게들이 없는 곳에는 보통 주유소에 간단한 마트가 있다.
간식으로 탄산 음료와 에너지바를 먹는다.
하프 문 베이 공항이라는 작은 공항을 지나가는데 제대로 된 큰 공항은 아니고 경비행기들 위주로 운용하는 공항인 듯하다.
길 왼편으로 호박 농장들이 있다. 잘 익은 커다란 호박들을 잔뜩 쌓아놓고 판다.
바닷가에는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어딘가에서 파란 저지를 입고 가는 모임이 나타나서 자꾸 마주친다. 저 사람들은 비싼 비용을 내고 주최측에서 짐은 다 옮겨주고 중간중간 보급과 숙소도 다 알아서 해결해주는 황제 라이딩을 하는 것 같다. 물론 비용은 상당히 비쌀 것이다. 저 모임에서 사전 조사하여 바닥에 경로를 표시해둔 덕분에 우리도 그 표시를 보고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땅덩이가 넓은 미국이라 넓은 바닷가를 보면서 달리는 것 만큼 광활한 산과 들을 보면서 달리는 것도 즐겁다.
눈 앞에 등대가 나타났다. 등대 건물을 용도 변경해서 만든, 어제까지 묵었던 하이 호스텔의 또 다른 체인점이다.
지난 주유소에서 먹은 음료와 에너지바로는 열량이 부족하다. 아까부터 허허벌판에 식당이나 마트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좀더 가면 주유소가 있길래 뭐라도 먹을 수 있겠지 하고 달려서 주유소에 도착했다.
마트가 없는 대신 양조장을 겸하는 맥주집이 있다.
지치고 배도 고프니 뭐라도 먹으러 들어간다.
오.. 이게 왠걸, 바베큐 립을 팔길래 풀-립으로 주문해서 먹는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이름대로 생맥주를 만드는 집인데 아직 자전거를 더 타야 하니 못 마시는 것이 아쉽다.
시간은 오후 4시를 넘어가고 산타 크루즈까지는 아직 50 km 정도 남았다.
와델 비치(Waddell beach)를 지난다. 여기는 쎈 바람에 비해서 파도가 약한 곳인지 카이트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주 보였던 파란 저지 모임은 하루 100km만 타기에 중간에 캠핑장 같은 곳에서 일정을 끊는가보다. 우리는 산타 크루즈 시내 중심의 와프까지 가야 한다.
예전에는 내가 길잡이를 했지만 지난 여행부터는 앞에서 달리는 지니님이 길잡이를 한다. 내가 사진도 찍고 길도 파악하느라 바빴던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다. 산타크루즈 시내 중심가로 직진하려 했는데 지니님이 길을 잘못 보고 일찍 시내로 들어간 덕분에 산타 크루즈 해변 도로를 타게 된다. 거리가 조금 늘어났지만 이런 풍경을 보는 것은 좋다.
오늘 숙소는 산타 크루즈 와프 바로 근처다. 위치 좋고 저렴한 것에 비해서 침구도 깨끗하고 방도 좋다.
미국은 대부분의 숙소에서 자전거를 방에 들여놓도록 해준다. 스페인은 숙소에 따라서,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거의 별도의 보관실에 보관을 해주는데 자전거 여행자로서는 대부분의 짐이 들어있는 자전거를 방에 두는 것이 편하긴 하다.
이제 씻고 빨래도 해놓고 산타 크루즈 와프를 구경하러 간다.
와프라 하면 피어 39나 피셔맨스 와프를 생각했는데 여기는 차들도 잔뜩 돌아다니는 북적북적한 곳이다.
와프 중간에 바다사자 울음소리가 나서 가봤더니 바다사자가 와프 구조물에 올라와서 살고 있다.
내일이 한가위던가. 거의 꽉 찬 달이 떠오른다.
다른 쪽에도 바다사자가 가득하다. 바로 코 앞에서 볼 수 있다. 냄새도 어마어마하다.
와프 안쪽의 식당 중에 마음에 드는 식당이 없어서 결국 돌아가서 입구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날이 추워지니 따듯한 클램 차우더 한 그릇과 참치 포케, 그리고 낮에 못 마셔서 아쉬웠던 생맥주를 주문한다.
클램차우더는 참 맛있다. 샌프란시스코 피어 39에서 클램차우더를 먹은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짜다는 말이 많은데, 우리는 싱겁게 먹는 편인데 지금까지 먹은 클램차우더들은 짜지 않았다.
포케를 주문했는데 나온 것은 포케 누들이다. 잡다한 것보다 포케가 많이 올라가는걸 원하는데... 근데 이게 또 별미다. 메밀면 식감 비슷하게 끊어지는 면과 참치살의 조화가 아주 맛있다.
135km... 여행 첫 날부터 조금 많이 달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산타 크루즈까지의 첫날 경로는 커다란 오르막도 없었고 바다와 내륙을 적절히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곳이었다. 특히 데블스 슬라이드와 간간히 나오는 해변 풍경이 멋지다.
산타 크루즈라고 하면 자전거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MTB 계열 고사양의 자전거를 제조하는 회사를 기억할 것이다. 산타 크루즈 바이시클은 실제로 여기 산타 크루즈에서 창업하고 본사도 여기 있다. 힘들어서 가볼 생각은 못했지만...
산타 크루즈는 한가하고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적적하지 않은 멋진 마을이다. 우리에겐 복잡한 샌프란시스코보다는 이런 곳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