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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Sep 21. 2018

아빠의 출근


  “우리 아빠 커밍아웃했어!”

  “응?”

  “커.밍.아.웃.”


  이럴 때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대화 사이의 공백을 못 견디는 나지만, 이번에는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화두를 던진 친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대답을 기다렸다. 겨우 20초 정도가 흐른 것 같은데 참을성 없는 그녀가 먼저 침묵을 깼다.


  “우리 아빠, 퇴직한 거 말했다고!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한테!”


  아, 잠시 잊었다. 그녀가 매일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있단 사실을. 가끔 지나친 비유법으로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지만 이번처럼 센 적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가 ‘아빠의 퇴직’을 커밍아웃이라 부른 건 적절한 표현이었다.     




  3년 전, 어두운 조명이 깔린 카페에서 친구가 털어놨다. 아빠가 2년 전에 회사를 퇴직했고, 그 후 1년간 다른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다고, 근데 그 사실을 어제 알게 됐다고. 계약직마저 끝나 완벽한 실업자가 되었음에도, 지난 1년간 아버지는 평소와 똑같이 매일 출근했다고, 정말 가족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고. 끄덕끄덕. 차분한 표정으로 친구의 작은 한숨까지 놓치지 않고 집중했다. 그러나 내 마음도 커피 잔을 꽉 쥐고 있는 그녀의 손처럼 당혹스러웠다.


  그녀의 아버지는 30년 가까이 한 회사에서 근무했다. 취업준비생이라면 한 번쯤 꿈꿔보는 대기업이었다. 수많은 경쟁자 속에서 빠른 속도 로 승진했고, 해외 주재원에서 임원까지 두루두루 거쳤다. 밖에서는 능력 있는 샐러리맨이었고 집에서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이제 와 고백하면, 나는 그녀를 무척 부러워했었다. 대학 졸업 후 취업과 사회생활로 힘들었을 때는 더욱 그랬다. 나의 아버지와는 달랐으니까.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힘들다고 말하면, 본인의 경험을 곁들인 격려로 딸을 위로했다. 그러나 내 아버지는


  “내가 널 너무 편하게 키웠나 보다. 어른이 됐으면 아파도 견디고, 슬퍼도 참고, 싫어도 내색하지 말아야지. 착각하지 마라. 네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에 네가 맞춰야 하는 거다.”


  라며 매몰차게 혼냈다. 나는 아버지가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직원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쉽게 말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평생을 작은 사업장에서 ‘사장님’ 소리만 듣고 살아온 아버지는 직장인의 영역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판단했다.


 사실 두 아버지의 행동은 매우 달랐지만 마음은 같았다. 그건 자녀 스스로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당연한 것을 나는 꽤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됐다. 그러나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에는 좀 늦었다. 아버지들에게 힘든 시간이 찾아와 버렸으니까.


  문제는 빠르게 흘러간 시간과 변화된 사회였다. 그래서 친구의 아버지는 회사를 퇴사했다. 아니 해야 했다. 성실하게 출근하여 누구보다 회사에 충성했고, 많은 성취들이 있었지만, 회사는 더 이상 그녀의 아버지가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예상했던 일이다. 생각보다 일찍 벌어진 일이라 무척 놀랐을 뿐이지만. 친구의 아버지는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을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정리되면 말하려고 했는데 2년이란 시간이 걸릴지는 몰랐을 것이다.     




  가족에게 퇴직 사실을 알리던 날. 아버지의 표정은 덤덤해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할머니, 할아버지, 작은 아버지, 고모에게는 이 사실을 절대 알리지 말자.”는 말을 3번이나 반복했다. 절대, 꼭이다, 알았지?

  는 말을 3번이나 반복했다. 절대, 꼭이다, 말았지?하는 식의 말들을 추가해서 말이다. 하긴 아버지가 30년간 지켜온 능력 있는 샐러리맨이란 타이틀은, 부모님의 기쁨이고 형제들의 자랑 이었을 것이다. 정작 친구가 당황했던 건, 아버지의 다음 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일도 같은 시간에 넥타이를 매고 집을 나설 거야. 걱정 마. 드라마에 나오는 아빠들처럼 공원에서 넋을 잃고 앉아 있거나 싸구려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구직 정보 신문을 보진 않을 거니까.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할 거야. 강의도 듣고, 운동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새로운 일에 집중할 거야. 너희들도 아빠가 출근한다고 생각해. 새로운 인생으로.”


  친구 아버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단정하게 넥타이를 맨다. 그리고 7시 30분이면 현관문을 열고 어디론가 출근을 한다. 회사에 다닐 때와 다를 바 없는 규칙적인 일상이라 가족들은 가끔 아버지의 퇴직 사실 을 잊어버릴 정도다. 그랬던 그녀의 아버지가 3년 만에 부모님과 형제 들에게 “퇴직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내가 곧 결혼하잖아. 그래서 아빠도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 같아. 예식장에 손님들 오는 것도 그렇고. 예비 신랑도 이제 가족인데,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싫으셨겠지. 근데 우리 아빠 그렇게 커밍아웃하고도 여전히 매일 아침에 출근해. 에휴, 진짜 못 산다. 근데 한편으론 진짜 대 단한 것 같아. 우리 아빠지만 말이야.”


  친구의 기분과 감정을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커피 잔을 부드럽게 보듬고 있는 그녀의 손을 보면서 짐작해볼 뿐이었다.    




  그리고 왈> 이 글을 쓸 때쯤, 대학 동문이 모여 있는 단체 카톡방에 장문의 메시지가 올라 왔다. 나와는 학번 차이가 많이 나는 대선배였다. 그는 한 회사에서 15년쯤 근 무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팀이 해체된다는 통보를 받고 불과 한 달 사이에 상황에 떠밀려 회사를 퇴사하게 됐다고 했다. 선배의 메시지에 마음이 너무 먹먹해져서, 퇴근길에 놀이터에 앉아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곧 일어날지 모를 일. 선배의 메시지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만 공유한다.



그동안 의리와 정으로 이곳에서 일해 왔습니다.
막연하게 언젠가 회사를 그만두겠지 생각했지만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져 충격이 옵니다.
(생략)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살아야 할 텐데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네요.
그래도 인연이 닿은 여러분이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염치없는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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