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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Oct 19. 2018

언젠가 한 번은 꼭 온다. 번아웃 증후군

*이미지 출처: MBC <무한도전>


  "죽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는 것 같아. 근데… 자살을 부추기거나 막는 건, 아주 작은 사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 예를 들면, 자살을 망설이던 사람이 식당에 갔어. 일단 먹고 힘내보자! 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식당 아주머니가 주문받을 때도 짜증을 내고, 밥과 반찬을 놓을 때도 탁! 신경질적으로 놓는 거지. 어찌 보면 별 일 아니지만, 그는 그 일로 자살을 할 수도 있어. 아슬아슬 붙들고 있던 자존감이 그 반찬 놓는 소리와 함께 탁! 끊어졌거든."


  "반대의 경우도 있어. 이번에는 자살을 실행하려는 사람이야. 드디어 자살을 실행하기로 한 날. 하얀 실크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웠어. 그동안 열심히 모아둔 100알의 수면제를 먹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기로 한 거지. 그런데 그날따라 옆집 부부가 시끄럽게 싸우는 거야. 죽으면 그만이긴 한데, 그 소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거야. 너무 화가 나서 옆집에 찾아가 그 부부와 싸웠어. 그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갑자기 상쾌한 기분이 드는 거야. 그래서 일단 자살을 미루기로 하는 거지. 사람 감정이란 게 그래. 큰 사건으로 충격과 상처를 받거든? 근데 의외로 작은 사건으로 완전 무너지거나 깨끗하게 회복되기도 해."

 

  궤변처럼 들리는 이런 말을 왜 하는 거지? 싶을 거다.

  

  이건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의 대화를 함축한 내용이다. 지인들과 내가 이상한 모임의 사람들은 아니다. 그저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한 친구가 “나 요즘 자살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어!”란 말에서 시작된 대화였다. 얘기가 삼천포로 빠지다 보니 저 지점까지 갔던 거다. 처음에는 모임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주제라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계속 화제를 바꾸려고 했으나 사람들은 더 깊게 대화를 이어갔다.     



     

  “몰라. 딱 죽고 싶어.”


  회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던 동생이 내게 말했다.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안다. 그만큼 힘들다는 비유적인 표현이란 거. 하지만 걱정이 됐다. 언제부턴가 전화가 올 때마다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말했으니까.

  사실 그 동생은 10년 차 직장인으로 산전수전부터 공중전까지 다 견뎌낸 인내심의 달인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 회사에 출근 만 하면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밀려와 힘들다고 했다. 6개월 넘게 고통을 호소하던 그녀는 결국 퇴사했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달 후 전화가 와선


  “언니, 나 심리 상담 신청했어. 이거 언니한테만 말하는 거야.”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가까운 지인이 봤을 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대답해 달라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 것 같은지, 평범하지 않은 습관이나 행동은 무엇인지. 그녀는 많은 질문을 했는데, 사실 떠오르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녀가 퇴사 후 에도 심리 상담을 받을 정도로 불안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퇴사 후 스트레스는 사라졌는데,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더라. 점점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까지 감정이 말랑거리는 사람이었나 싶어.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어. 아무것도 못하겠어. 딱 죽고 싶다.”


  동생은 첫 심리 상담에서 의사에게 어릴 적 이야기부터 결혼하기 전까지의 인생 스토리를 털어놨다고 했다. 그때 놀란 건 얘기하다 보니 잊었다고 생각했던 아주 사소한 일들도 마구 튀어나왔다는 거다. 그런데 생각나는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 다고 했다.


  “9년 전인가? 한 달 넘게 야근하면서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있었어. 결과가 좋지 않으니까 사수가 모든 일의 책임을 신입사원인 나한테 떠넘긴 적이 있었거든? 잊고 있던 그 일까지 떠올랐다니까.”


  두 번째 상담을 갔을 때 의사는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했다. 그녀의 의욕과 에너지가 모두 탈진된 상태이기 때문에 힘들고 아픈 거라고 진단했다. 동생은 의사의 말이 이해되지 않으면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어쩌면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겼단다.     



     

  나도 그녀와 비슷한 증상을 겪은 적이 있었다. 평소라면 하루에 끝낼 수 있는 일을, 이틀 넘게 붙잡고 앉아서도 끝내지 못했다. 그때 우울감이 심각해서 출근하는 버스에서 자살까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회사와 집에서는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를 냈는데, 어떤 날은 상사의 잔소리에 대꾸하다가 울어버리기도 했다. 첫 문단에 쓴 대화 내용처럼 뭔가 나를 톡 건드리면 큰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결과적으로 나를 톡 건드린 사건이 벌어졌다. 지방 출장을 갔다가 날씨가 좋지 않아 모든 스케줄이 취소된 날이었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근처 시장의 허름한 가게에서 멸치국수를 먹었다. 다 먹어갈 때쯤 주인장 할머니가 말도 없이 국물과 면을 툭! 내 그릇에 부어버렸다. 그리고는


  “서비스야. 사리 추가는 돈 안 받을 거니까 필요하면 말해. 또 줄 테니까. 젊은 아가씨가 얼굴이 왜 그렇게 아파 보인대? 옛날 사람들은 못 먹어서 아팠는데, 요즘 사람들은 잘 먹어도 아파. 그래서 더 안쓰러워. 그래도 맛있는 음식만 한 보양식이 없으니까. 든든하게 먹어.”


  할머니의 말에 나는 톡! 나를 단단하게 묶어놨던 어떤 실이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우울증과 스트레스가 조금씩 나아질 것 같다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왈>

  몇 년 후, 친구 결혼식이 있어 국수를 먹었던 지방에 갔었다. 그때 주인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선명해 다시 그 가게를 찾아갔으나 위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한참을 헤매다, 열차 시간 때문에 서울로 그냥 올라왔었다.

설마… 어떤 괴담처럼 귀신의 집에 갔던 건 아니겠지.



<연재를 마치며>


  안녕하세요. 이하루입니다. 드디어 오늘 위클리매거진 <나는 슈퍼 계약직입니다>의 연재를 마쳤습니다.
  처음 ‘비정규직’이란 주제로 글을 쓰기로 했을 때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인생의 꿀팁도, 성공의 기술도, 편안한 힐링도 없는 이런 나약한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기나 할까? 걱정하며 쓰기 시작했습니다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시고, 하트도 꾹~ 눌러 주시고, 출판도 하게 되어 지금까지도 얼떨떨합니다


  사실 글과 필명 뒤에 숨어서 위풍당당한 척을 했지만, 글을 쓰고 있는 현실 속 제 모습은 쫄보에 가깝습니다. 여느 직장인처럼 잔뜩 인상을 쓰며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띵~동 하고 월급이 입금되는 알람 소리에 광대가 승천하기도 하고요. 또 어떤 날은 회사의 부당함에 대해 동료들과 토론해 놓고, 같은 날 밤에는 ‘계약이 연장될까?’하는 고민으로 잠을 설치기도 하거든요. 진짜 맞네요. 제가 쫄보란 사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생각하고 정리해서 글로 남기면, 오돌토돌한 제 일상에도 약간의 뽀샤시 효과를 넣을 수 있으니까요.


  얼마 전, 본사 담당자와 의견 차이로 서로 감정이 상한 적이 있었는데요. 일이 끝난 후에 그 두서없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저도 힘이 없어요. 위에서 시키면 해야 해요. 그리고 저요. 벌써 나이가 마흔인데, 아이가 겨우 두 살이거든요. 아이는 예쁜데, 하루하루 앞이 더 깜깜해지는 기분이네요.”

  그 말을 듣고 그 담당자와 함께 웃었는데, 정말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묘한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쓴 책이 ‘비정규직’에 집중되어 있긴 합니다만, 모든 직장인이 가슴 속 깊이 ‘불안감’이란 단어를 품고, 무겁게 버겁게 출근하고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똑같은 매일을 반복하다 보면, 원하던 삶의 모습은 아니지만, 타협해 버리기곤 합니다. 다른 말로는 ‘현실’ 또는 ‘적응’이라고도 하죠.
  살다 보면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지만, 마음속 ‘불안감’ 옆에 아직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가 있다면, 계속 부채질을 하며 키워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지금 어떤 회사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업무를 하고 있건, 이것으로 인생의 결말을 속단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짧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몸은 회사의 한 부품처럼 장착되어 있더라도, 때때로 후~ 하고 마음 속에 시원한 바람을 불어 넣으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글을 읽어 주신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을 너그럽 읽어주신 분들~ 복 받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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