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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Apr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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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지어는 정숙함의 표현이 아니다



출근하는데 몸이 가볍다 생각했다. 코트를 벗고 자리에 앉았는데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브래지어를 안 한 상태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블라우스 위로 도드라진 유두를 보니 귀여웠다. 어째서 이게 뭐가 문제인 거지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다시 코트를 걸치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 코트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몸통에 브래지어의 압박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어깨 결림과 흉부의 답답함이 없어서 좋았다.


오전에 회의가 있었다면 출근하자마자 회의실에 들어가 그곳에서 코트를 벗으며 자리에 앉았겠지. 그랬다면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주 앉은 신입의 눈이 동그랗게 되는 걸 보고도 사태 파악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눈치를 채더라도 그땐 돌이킬 수 없겠지.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뻔뻔한 표정으로 주간 업무 분장하고 진행사항 보고 받는 거지. 그러면서도 몸은 한껏 긴장되고 옷에 쓸려서 유두가 더 도드라지면 하아. 반차 쓰고 퇴근하며 급하게 약속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브래지어를 풀 때의 해방감,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가벼운 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을 때의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성능 좋은 브래지어 덕분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을 좋아한다. 그 덕분에 깊게 클리비지 라인이 생기는 것도 좋아한다. 가슴이 돋보이는 차림이 필요한 자리라면 잘 고른 브래지어만으로도 옷태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중력을 거스르지 않고 편하게 자리 잡은 가슴을 못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양쪽 유두의 위치가 미묘하게 다른 점이라든지, 브래지어의 도움 없이 자연스럽게 굴곡진 가슴의 선 자세도 수수하면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런 점을 부각하기 위해 등장한 브라렛. 고유한 자기 가슴 모양을 사랑하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의 아이템으로 포장되는 브라렛을 냉큼 사보긴 했지만 거추장스럽게 돈을 써야 할 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홑겹의 얇은 원단 또는 레이스로 되어 있어 여성스러우면서도 섹시한 느낌을 준다. 볼륨감을 전혀 강조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실루엣을 드러나는데 그렇기에 입으나 입지 않으나 별 차이가 없었다. 브라렛의 기능은 여기부터 여기까지가 가슴입니다 라는 표시를 와이어가 없는 얇고 부드러운 천으로 하는 것 말고는 없어 보였다. 여전히 흉곽은 조여야 하고 말이다.


남자들에게 브래지어란 선물의 포장지, 과일의 껍질 같은 느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단히 모욕감을 느꼈다. 승부용 속옷을 준비한 게 무색해질 정도로 값비싼 브래지어로 만든 가슴을 제대로 감상도 하지 않고 거추장스럽다는 듯 벗겨버리고 가슴을 우악스럽게 만져댄다. 남자들은 브래지어를 오직 풀거나 벗겨내기 위한 것처럼 여긴다. 그러면서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여도 할라치면 당황한다. 유두 감별사라도 되는 사람처럼 여자의 가슴 부위에 도드라져 나온 게 있으면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난리가 난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걸 과시하기도 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두려운 것인지, 대놓고 토플리스 차림을 한 것도 아닌데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것뿐인 몸을 보고 남자들은 그것이 엄청난 색기의 발현이라도 되는 양 군다. 크고 풍만한 가슴은 좋은데 유두가 달려있으면 안 되기라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유두란 너무나 음란해서 그 흔적이라도 보이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유혹이 되는 것인지.


브래지어는 정숙함의 표현이 아니다.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있는 동안에만 몸을 보정하는 기능을 하는 것일 뿐이다. 가슴을 고정시켜주는 것이 목적이다. 유두를 가리는 것도 브래지어의 역할이라고 하지만. 1900년에 특허를 받은 브래지어와 자세 교정대를 결합시킨 디자인은 가슴 주변부와 어깨와 등을 지지할 뿐 가슴 부분은 뚫려있었다. 1970년대에는 브래지어 자체에 유두를 인위적으로 부착해서 니플 포인트를 드러내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결국 유두는 문제가 있는 신체 부위가 아니라 유두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이 문제일 뿐이다. 보수적인 사회일수록 여성의 몸을 억압하고 억압의 주체인 남성들의 뇌내는 음탕해지기만 한다.  


뭐든 그렇게 성적 코드로 바라봐주는 덕분에 단둘의 밤에 유혹은 한결 수월한 측면이 있다. 얇은 셔츠 위로 버튼처럼 솟은 그걸 검지로 눌러봐. 큭큭큭거리며 우리 둘만의 비밀을 나누는 거지. 옷 위로 두드러진 유두를 그대로 입에 가져가 셔츠가 젖을 정도로 빨아댈 때 오는 만족감은 성급히 옷을 벗겨 맨몸으로 만들고 적당히 젖었다 싶으면 밀어 넣기 바쁜 애들의 조바심보다 훨씬 에로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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