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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Feb 03. 2018

Q

어둠이 가져다 준 자유


남자의 시력은 형편없었다. 안경이 없으면 인간의 형체가 흐릿하게 보인다고 했다. 그 사실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침대로 유인했다. 남자의 셔츠를 벗기며 안경도 벗겨버렸다. 안경을 놓아둔 곳도 찾지 못하는 남자에겐 미안했지만 그의 시각을 빼앗아버리는 것이야 말로 이 섹스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안경을 벗으면 네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불마저 끄는 거야?”


칠흑 같은 어둠은 아니었다. 침대 주변을 비추는 아주 약한 빛은 남겨놓았다. 그 빛을 느낄 수 있는 나와 달리 남자는 완벽한 어둠 속에 있었다. 침대에 누운 남자는 팔을 뻗어 더듬거렸다. 남자의 배 위에 앉은 나는 내게 뻗어오는 그 팔을 잡아 바닥에 붙여놓았다. 버둥거리며 나를 만지려고 하는 손을 무릎으로 눌렀다. 움직이지 말라는 나의 신호를 받아들인 남자는 몸에 힘을 풀었다. 칭찬해줘야겠다 싶어 상체를 숙여 남자의 입가에 한 쪽 가슴을 가져다 댔다. 눈도 못 뜬 고양이 새끼가 젖을 빨려고 본능적으로 꼭지를 찾아 무는 것처럼 가슴을 빨아대기 시작하는 남자가 기특했다. 그 순간 다시 남자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가슴을 만져서 느껴 보려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 움직임을 눈치 챈 나는 무릎에 힘을 줘 손을 꾹 눌러버렸다. 아직은 손을 쓸 때가 아니었다. 물론 남자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눌린 손이 아프다는 신호로 자신이 빨고 있던 유두를 세게 깨물었다. 나는 고통의 신음을 섣불리 흘리기보단 상체를 더욱 깊숙이 숙여 가슴으로 남자의 얼굴을 덮었다. 한 곳에 집중되어 있던 통증이 흐트러졌다. 그런 자세로는 자연스럽게 무릎에 실었던 무게도 줄어들었다. 남자 역시 꽉 다물었던 턱을 벌렸다.


손은 뻔했다. 보이지 않으면 가장 먼저 의존하게 되는 촉각이 손이었다. 오늘 밤에는 다른 곳의 촉각으로 나를 느끼길 바랐다. 남자의 몸을 타고 올라갔다. 내가 닻을 내린 곳은 남자의 얼굴. 남자의 얼굴 위에 올라 앉은 나는 생생한 율동감이 전해질 정도로 골반을 움직였다. 얼굴은 금방 흠뻑 젖어 움직일 때마다 미끄덩거렸다. 남자는 극심한 갈증에 시달리다 오아시스라도 만난 사람처럼 몸의 틈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핥고 빨아 마셨다. 잘 보이지 않으면 소리에도 민감해진다. 깜깜한 와중에 그 소리는 증폭되고 있었다. 우리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숨소리는 죽이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벅저벅한 소리는 페니스가 내 몸 안에서 마찰할 때와는 다른 음을 내고 있었다.


시각을 차단 당해 내 몸을 뚜렷이 들여다 볼 수 없게 된 남자 앞에서는 마음껏 음란한 몸짓을 취할 수 있었다. 어둠이 가져다 준 자유였다. 존 버거는 <바라보는 방식>에서 ‘시선은 권력과 통제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자가 나를 주시하면 나는 약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옷이 한 겹씩 벗겨지고 그렇게 속살이 드러나 보여지는 존재가 될 때마다 평가 받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애정을 가지고 나를 봐준다 하더라도 시각적 동물이라고 말하는 남자가 만족해하는 여체 이미지와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감을 가져도 충분히 좋을 장점보다 부족한 부분만 크게 보여 알몸이 될 때마다 위축되곤 했다. 남자들과 달리 어째서 내 몸을 끊임없이 검열해대고 만족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 사실에 굴욕감 마저 느껴야 했다.


잘 보이지 않은 남자를 고르고 빛을 최대한 차단한 건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어떤 날의 기억 속에는 연인이었던 남자가 토라져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왜 우리는 환하게 불을 켜고 섹스를 하지 않는 것이냐’며 묻기도 했다. 남자는 밝아진 방 안에서 자신의 페니스를 박아대고 있는 지점만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길래 어쩐지 동물적인 측면에서 귀엽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밝은 곳에서 여자의 나체를 느긋하게 감상하며 그곳에 자신의 흔적을 흩뿌리려는 남자의 욕구에는 순진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닐 터였다.


남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감탄하게 되는 여자 몸에 대한 묘사는 뻔했다. 탐스러운 자연산 복숭아지만 비욘세도 그 옆에선 납작해 보일 정도의 엉덩이. 가는 허리에 새하얀 가슴은 아마도 풍만한 쪽을 선호할 것이다. 보드랍고 촉촉하고 반들반들한 피부는 잡티도 없이 도자기 같아야겠지. 유두나 질의 경부가 연한 분홍 빛이면 금상첨화. 남자들은 자신의 중심부를 단단하게 만드는 몸매를 보면서도 여체의 어딘가에서 처음 혹은 순진이란 단어를 떠올릴 지점을 필요할 테니까.

남자들이 시각이 중요하다고 말할 때 축 처진 가슴이나 펑퍼짐한 엉덩이를 보겠다는 것이 아니다. 몸 너머 여자의 실체를 직시하기 위해 보는 것도 아니었다. 보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빤히 알아버렸는데 그런 남자의 시선이 내게 박힌 채로 섹스하고 싶지 않았다.


눈이 나쁜 남자는 침대를 더듬거리더니 다리를 벌리고 누운 나의 양 발목을 붙잡았다. 남자의 손은 종아리, 무릎 뒤, 허벅지 안쪽을 찬찬히 쓰다듬으며 내 몸 사이로 파고 들었다. 그렇게 내 위로 올라온 남자의 얼굴은 번들거렸다. 그 얼굴을 붙잡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집어넣었다.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맛은 짭조름하면서도 질퍼덕했다. 구미가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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