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Mar 29. 2024

밥 생각

어쩐지 해결될 것 같은 적당한 스트레스에는 치킨과 떡볶이 곱창 같은 짜릿한 미각 충족 요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절대 감당 못할 것 같은 걱정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을 땐 가슴이 답답하고 배도 아파서 뭘 먹고 싶은 생각 자체가 들지 않는다. 소중한 지인들과 식사자리 마저 나의 어둠이 그들을 가라앉게 만들까 봐 최소화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평소 얘는 먹는 재미로 사나 보다 싶은 애가 갑자기 입맛 없다며 끼니를 거르면 심각하게 걱정이 된다. 마치 내가 하루를 마친 뒤 식사를 거르고 방 안 가만히 있기만 하면 나의 배우자 K가 치킨 시켜줄까? 하며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가끔은 나에게 최적화된 위로 치킨인 건가 싶어서 심각하다가도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는데 그 '피식-'이 다시 힘을 낼 씨앗이 된다. 그래서 내 가족이, 친구가 평소보다 어두워 보이면 괜히 무심한 척 새로 생긴 브런치 맛집에 가자며 쿡쿡 찔러본다. 어릴 적 (뭐 때문인진 기억이 안 나지만) 펑펑 울어 두 눈이 팅팅 부은 다음 날이면 부모님이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하던 게 우연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오늘은 비가 추적추적 내려 어쩐지 기운 빠지는 날이었다. 딱히 짜릿하게 기뻐할 만한 사건이 있지 않, 적당히 거슬리는 일들이 소소하게  그런 날. 투둑투둑 떨어지는 빗방울 우산으로 받아내며 바삐 걷다가 '이따 뭐 먹지'라는 생각이 스친다. 뜨끈한 국물이 있는 백숙이나 쌀국수가 먹고 싶어 진다. 후식으로는 자몽이 들어간 아이스 블랙티도 개운하게 마시고 싶고.


밥생각이 떠오르는 걸 보니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았던 하루였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정 거름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