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한 지 8주가 지났다. 결혼 4년 차 동갑내기 우리 부부는 자기애가 유독 강한 개인의 조합이었다. 2세 계획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미래의 언젠가'로 미뤄둔 채 각자의 일, 취미 활동이 우선이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새 생명은 분명 감동이었다. 하지만 임신으로 인해 일이며 취미 활동을 이전과 같이 유지하지 못하게 되자 마냥 웃음만 나오진 않았다. 드라마 속에서 본 임산부들은 다들 눈물을 글썽이며 항상 행복해하는 것 같던데 내 두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본격적인 입덧이 시작되면서 익숙한 공간 속에서도 구석구석 낯선 냄새들이 내 후각을 괴롭혔다. 가끔은 수돗물 냄새에서 마저 물비린내를 느껴 화장실로 달려갔다. 구토를 심하게 하던 어느 새벽. 밤잠을 이루지 못해 칙칙해진 얼굴에 실핏줄까지 터져 얼룩덜룩해진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자궁이 커지는 상황이라 복통이 종종 찾아올 때면 바람 빠진 풍선 마냥 침대 위에서 힘 없이 뒤척일 뿐이었다. 평소 대중교통을 타도 의자 욕심이 없던 내가 탑승과 동시에 분홍색 좌석을 향해 직진하는 본능을 보였고 그 좌석에 전혀 임산부로 볼 수 없는 타인이 앉아 내 핑크색 배지를 보았음에도 모른 척하는 순간에는 세상 모든 인류애를 상실한 것 마냥 슬펐다. 매일 아침 뿌리던 향수도 사용하면 안 되었고, 헬스장 출입도 잠시 중단했다. 그간 무지했던 임신과 출산의 영역에 대한 지식은 책과 인터넷을 통해 주입 중이지만 가끔 과도한 정보 탓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아직 초기라지만 나는 왜 감격해 눈물을 글썽이지도 않는 건지 살짝 걱정이 되었다. 입덧과 복통으로 괴로워 우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모성애보다 자기애가 앞서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섣부를 단정을 하며 병원에서 처음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듣던 날. 살면서 처음 느낀 오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 순간만큼은 입덧으로 인한 괴로움도 잠시 잊혔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무덤덤한 척했지만 집에 와서 심장소리가 담긴 초음파 영상을 몇 번씩이나 켜봤다.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치며 눈물이 났다. 심장 소리를 들은 다음 날은 유독 심한 입덧 속에서 몸살기까지 느끼며 고된 하루를 마무리 한 날이었다. 뜨거운 햇빛까지 내리쬐는 아스팔트 길을 걷다 보니 땀이 엄청나게 나기 시작했는데 현기증이 나면서 '이대로 나 죽겠다'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식사 시간은 아니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삼계탕 집 안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메뉴 중 가장 비싼 '전복삼계탕'을 주문했다. 맑은 국물을 한 모금 두 모금 호로록 마시다가 본격적으로 닭다리를 뜯고 전복을 씹었다. 고생한 나를 챙겨야 뱃속의 생명도 건강하게 자랄 것 같았다. 외롭고 고된 하루 속에서 혼자 삼계탕을 먹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분명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던 든든하면서도 기묘한 기분이었다.
쫄깃한 전복을 씹으며 자기애와 모성애의 균형은 어쩌면 무조건 반비례가 아닌 비례로 지켜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더불어 모성애라는 것이 꼭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닌, 스며 들 듯이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으니 지금은 당연히 낯설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삼계탕을 후후 불며 그동안 쓰렸던 속을 뜨끈하게 채워주고 나니 어쩐지 뿌듯했다. 내 안의 새 생명에게 좋은 영양분을 전해준 것 같은 뿌듯함에 발걸음 마저 단단해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