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OO이가 네 욕했어. 그러니까 그런 애랑 놀지 말고 나랑만 놀아."
안쓰러운 눈으로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마치 정의의 사도인 양 의기양양한 태도를 지니던, 작은 아이의 앙칼진 목소리가 떠오른다. 얼굴도, 내 욕을 했다는 아이의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명치가 싸하게 아파오던 그때의 묘한 기분을 서른이 넘은 지금에도 잊지 못하는 걸 보면 어린 나이에 꽤나 상처가 되었던 것 같다. 그땐 정말 그 친구가 나를 위해서 그런 말을 해줬다고 생각했다. 그 싸한 통증이 사실은 감정이 더럽혀졌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걸 깨달은 건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꼬맹이가 나랑 어지간히 친해지고 싶었나 보네. 내가 다른 애가 친한 게 질투가 났나 보네.' 라며 픽-웃고 넘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제는 꼬맹이들이 할 법엔 유치한 짓을 성인이 되어서도 뻔뻔하게 일삼는 자들을 종종 마주친다는 점이다.
대학생 때 친했던 친구가 네 얘길 안 좋게 했다며 이간질시킨 뒤 결국 본인은 그 친구와 다시 꼭 붙어 다니며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들던 A양, 다른 상사는 나에 대해 안 좋게 평했으나 본인은 좋은 평을 주었으니 본인에게 잘하라던 B상사, 사이가 안 좋은 두 후배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난 네 편이야, 걔 때문에 힘들지?' 라며 그 둘에게 모두 존경받고 싶어 하던 싶어 하던 L과장. 성인이 된 뒤 만난, 굵직하게 기억에 남는 '험담 전달꾼' 들이다.
"걔가 네 욕 하더라. 걔랑 가까이 지내지 마." 라며 원치 않은 충고를 해 사람 속을 뒤집는 그들은 정작 '걔'에게도 다가가 알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인다. '걔'라는 인간이 그렇게 최악이라면서 본인은 두 사람 모두 포기할 수 없겠는지 왔다 갔다 하며 속을 뒤집는다.
말을 전해 들은 뒤 "걔가 내 욕했다고?" 라며 '걔' 에게 복수심에 활활 타올라 곧 싸움이 일어날 것 같을 때면 그들은 대부분 비슷한 멘트를 날린다.
"네가 가서 그러면 생각해서 말해 준 내가 뭐가 돼. 마음 넓은 네가 참아라."
고구마를 물 없이 꿀떡 삼킨 것 같은 답답함에 몸서리치게 되는 건 험담을 전달한 얘도, 험담을 했다는 걔도 아닌 귀가 달려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 똥 같은 말을 들어버린 나뿐이다.
처음 이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땐 '나 생각해줘서 하는 말이겠지' , '애는 착한데 눈치가 없나 보다' 라며 험담 전달꾼을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곱씹어 생각해보자. 상대가 진짜 내 생각을 해준다면, 그러니까 남이 내 욕하는 걸 듣고 내가 상처 받는 걸 원치 않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 말을 전할 리가 있을까. 그 앞에서 내 편을 들어주었더라도 결국 내 귀에 그 말이 흘러들어오는 걸 원치 않기에 더욱 조심했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이 상처 받는 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예외적으로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소중한 이가 더 다치기 전에 진실을 폭로해주며 상대를 쳐내는 것에 도움이 되어주는 상황이 있을 순 있겠지만 말이다.
험담의 진실 여부를 가리는 것에 취해 험담 전달꾼을 곁에 두는 것 또한 조심해야 한다. 험담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에 내 소중한 감정을 허비하는 것은 쓸모없으니까. 그럴 시간에 좋아하는 과일이라도 한 입 더 먹고, 예쁜 하늘 보고,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편이 여러모로 낫지 않을까.
습관적으로 험담을 하는 자도, 그 험담을 전달하며 누군가의 상처로 본인의 흥미와 공허한 마음을 충족시키는 이도 못나디 못난, 거기서 거기인 자들일뿐일 테니.
험담 전달꾼이 위선적인 표정을 지으며 내 생각을 해주는 척할 때 "그 입 다물어."라고 세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에선 생각보다 영화 같은 사이다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럴 땐 휘둘리지 말고 나만의 상상 속으로 그 가식적인 얼굴에 '까만 박쥐의 탈'을 씌워버리자.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지극히 하찮게 취급해버리면 된다. 그들이 바라는 건 곱씹으며 아파할 내 모습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