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물만 파는 것에 약한 편이라서요

꾸준히 깔짝대 볼게요

by 안나

다이어리를 펼쳐 놓고 무언갈 계획하는 것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편인 나에게 일요일 저녁은 무언갈 계획하는 시간이다. 필체가 고르게 유지될 수 있도록 손가락 지문에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는 아끼는 펜을 잡은 채 별 거 아니지만 별 거 인 계획들을 적어 나가면 기분이 좋다.


'헬스장 주 2회 이상, 필라테스 주 2회 이상, 골프 연습 주 2회 이상, 영어 공부 매일,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 쓰기 주 1회 이상' 이 모든 것을 꾸준히 행하는 것이 이상적인 목표지만, 직장인이라는 신분의 현실로 돌아오면 매일 이른 아침 눈을 떠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업무 스트레스, 직장 내 무의미하나 부정적으로 다가온 감정 경험 등을 하루 종일 겪은 뒤 처진 어깨로 터덜 터덜 걷게 되는 퇴근길. 분명 헬스장을 들려 집에 가자고 했건만 뻔뻔하게 헬스장을 지나 쳐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누워버린다. 이런 날이 반복되다 보면 스스로에 대한 미움이 커져버리다가 동시에 '내가 그렇지 뭐'라며 자기 비하 단계에 돌입할 태세를 갖춘다.


애초에 계획을 하지 않았더라면 스스로에게 실망할 일도 없었을 거라며 계획하는 행위를 중단해본 적도 있지만 이윽고 다시 다이어리를 펼쳐내곤 한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엄격한 계획을 조금 유하게 바꾸고 목표의 80~90% 정도를 이루는 날이 꾸준히 반복되자 가슴 펴고 당당하게 입꼬리를 슬며시 올려볼 수 있었다.


이처럼 여러 시행착오 끝에 한 우물만 꾸준히 파다가 금세 지쳐서 허우적 대는 대신 간헐적으로 조금씩 깔짝대 보는 편을 택했다. 그 깔짝임을 몇 년째 행하다 보니 나도 몰랐던 재능이나, 흥미로운 취미를 터득하는 행운이 오기도 했다. 예를 들면 비실 비실하게 땅을 겨우 지탱하던 하체에 힘을 실어주어 일상의 활력을 북돋아주는 근력 운동에 흥미를 갖는다거나, 블로그에 이 글 저 글 써보면서 내 주요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게 된 점 등이랄까.


이렇게 무한한 깔짝임으로 얻어낸 몇 가지 취미는 지루한 일상 속 활력을 선물해주었다. 명치가 꽉 막힌 듯 숨 막히는 월요일 저녁을 운동으로 마무리하며 한주의 시작을 토닥 토닥하는 루틴을 몇 달째 지속하고 있기도 하고, 다양한 성격의 글을 출근 전, 잠자기 전 등 틈틈이 읽어보며 약한 마음에 영양분을 공급해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목표를 정해놓고 단기간에 꼭 이루어야 하는 요소라면 한 우물만 깊게 파는 것이 필요하겠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내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들고 싶은 목표라면 한 우물만 깊게 파는 것보다 이 우물 저 우물 깔짝대며 내게 가장 달콤한 우물을 찾아보는 방법을 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일상의 대부분을 '회사원'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오늘도 내 입맛에 잘 맞고 잦은 웃음을 줄만한 요소들을 찾아내기 위해 짧은 시간 속에서 타인이 쓴 글을 읽기도 하고, 두서없더라도 날 것의 글을 써보기도 하고, 평소보다 스쾃을 한 세트 더 해보기도 하고, 어제 삶은 계란보다 더 맛있는 삶은 계란을 맛보기 위해 미세한 시간을 조절해보는 등. 끊임없이 깔짝대 본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이전 02화쿨병에는 약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