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병에는 약도 없다
예방법 : 습관적 괜찮아 금지
쿨병에 자주 걸린다. 스스로에게 유독 관대하지 못한 성격 탓일까.
내 경험에 근거한 쿨병 증상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괜찮지 않은데 '괜찮아'를 습관적으로 남발한다.
2. 상처 받았는데 상처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니까 '나는 이런 것 따위에 상처 받지 않는 강한 사람'이라며 담담한 척한다.
3. 너 정말 쿨하다, 이해심이 많다. 등의 칭찬을 들으면 으쓱하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4. 괜찮은 척하다 보니 진짜 괜찮은 걸로 착각한다.
5. 시간이 흐르면서 엉뚱한 상황에서 괜찮지 않았던 감정이 막무가내로 터져 나온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치면서 때때로 수치심, 분노, 억울함 등의 감정을 느낀다. 감정을 인지하는 순간 타인의 시선을 먼저 의식하는데 익숙해져 버린 나는 별거 아니라고, 괜찮다고. 난 이 정도로 상처 받을 만큼 약하지 않은 사람이라며 강인함을 연기했다.
전 직장에서 퇴사하며 받은 상처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에게 상처를 준 자들을 그저 루저 취급했고 상대할 가치도 없다며 나의 단단한 겉표면만을 갈고닦으며 연기했다.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약 4개월의 직장 공백기 동안 숱한 고민을 했다. 창업을 할지, 회사를 다시 다닐지, 좋아하는 취미를 직업화하여 수입을 창출할 방법은 없을지에 대한 미래 가능성을 고민하느라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게다가 소중한 사람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실질적 경험을 하게 되며 감정의 요동은 복합적으로 더욱 심했다. 하지만 그것들을 계속해서 마음속에 묵혔고 이성적이어야 한다며 스스로 채찍질했다.
내면 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독들은 예기치 못한 순간 터져 나왔다. 면접을 본 회사에 합격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다시 직장생활을 하기로 결정한 순간이었다. 스스로에게 축하해줘야 할 기분 좋은 순간이었으나 순간 이전 직장에서 받았던 상처들이 떠오르며 두려워졌다. 분명 새로 근무를 하게 될 곳은 이전 직장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곳이었음에도 나도 모르게 두 곳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끝없이 뿜어져 나오는 감정의 독들에 당황스러웠다. 최근 겪은 상실감으로 인한 아픔들도 함께 터져 나오기 시작하며 눈구멍을 통해 많은 눈물들을 흘렸다. 온갖 생채기 같기만 하던 작은 감정들까지 모두 터져 나왔다. 어린 시절 울다가 우는 이유를 까먹는 것처럼 점차 왜 우는지도 모른 채 울고 있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내 감정을 정의하지 못하고, 조절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수치심이 그 독을 더욱 건드렸다.
커다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까만 밤을 지낸 다음 날. 눈물과 콧물을 잔뜩 뺀 바람에 이마가 지끈거렸다. 아이같이 울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중간중간 실소를 머금었다. 눈물을 터트리고 나니 잠시 두통은 달고 있어도 건강해진 기분이다.
울고 싶을 땐 울어.
울어도 괜찮아.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남들에게 쉽게 하던 위로를 스스로에겐 절대 해주지 못한 매정한 내가 아쉬웠다. 더 독이 쌓이기 전에 보듬어 주고 쿨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내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라고 해줄걸.
쿨병에는 약도 없다.
습관적으로 괜찮다며 상처를 숨기기 전에 내 마음속을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내가 찾아낸 유일한 예방법이라 볼 수 있겠다. 기계가 아닌 감정 있는 사람이니까 괜찮지 않을 수 있는 거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나만의 쿨병 백신을 더 찾아보려 한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