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 존중의 시대

by 안나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체력을 충전하는 나는 전형적인 내향인이다. 초등학생 때도 학원에서 어려운 시험을 보고 난 뒤 성적이 좋지 않아 울적한 마음이 든 날이면 아파트 단지 구석 벤치에 앉아 화단의 꽃과 풀을 바라보며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곤 했으니까. 하루 중 5~10분이더라도 혼자 글귀를 읽거나 일기를 쓰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내 삶은 건강하게 유지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 행위를 누락하기 시작하면 언젠가 꼭 탈이 났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생각들은 몸속 어딘가에 찌꺼기로 남아 갑작스레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게 만들어버리곤 했다.


그렇다. 나는 '집순이'기질이 다분한 인간인 것이다. 현실적으로 매일 같이 밖에 나가서 사회 활동을 해야 하기에 주말 중 하루만큼은 꼭 집 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내면을 충전해야 살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내향적인 성향을 단점인 것 마냥 숨겼다. 외향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부러웠고 그들을 따라 하려 애썼다. 직장 속에서도 밝고 명랑한 사람의 가면을 쓰며 연기했고 주말 또한 빈 시간 없이 약속으로 꽉꽉 채워가며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감정과 체력을 필요 이상으로 쏟았다. 하지만 모든 이들에게 인정받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었고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스스로 작아져버렸다. 이렇게 살다 보니 당연히 혼자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은 없었다. 스스로와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후순위로 밀려나다 보니 나를 가장 소홀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항상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고 소화가 되지 않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은 덤이었다.


그 시기에 다행스럽게도 점차 '혼자 있는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트렌드화 되기 시작했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아서였을까. 혹은 여러 가치관을 존중하는 의식들이 증대함에 따라 발생한 자연스러운 변화였을까.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게 해주는 다양한 이들이 집필한 글귀를 다양하게 접하기 시작했다. 그 문구들은 하나씩 맘속에 들어와 내면의 날 쓰다듬어주었다. 토닥토닥. 벅차오름을 느꼈다.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늘 대중의 모습에 맞추기 위해 가면을 쓰다가 진짜 내 모습을 잃어버렸던 내게 이러한 집순이(혹은 집돌이) 존중의 시대는 치유 그 자체였다.


'혼자' 무언가를 하겠다는 누군가에게 "그건 좀 너무 외로워 보이지 않아?" 라며 안쓰럽게 보던 주위 사람들 조차 점차 '혼자' 잘하는 사람들이 되어갔고, 오히려 '혼자'를 심하게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모두들 혼자와의 시간을 값진 시간으로 보내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감정적으로 격해졌을 때 잠시 심호흡을 하고 오라며 자리를 피해 주는 센스와 같이 타인의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배려까지 다양하게 갖춰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내향형과 외향형의 합은 여러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한다.


물론 여전히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긴 하지만, 스스로 내 가치관을 지키다 보니 고집쟁이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사회에서 비주류가 될 것만 같아 불안해하며 외향적인 사람으로 스스로를 꾸며대던 나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저는 처음에는 낯을 가리는 편이에요",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말하는 것보다는 글로 표현하는 걸 선호해요", "많은 지인과의 가벼운 만남보다는 소수의 사람들과 깊은 만남을 추구해요" 등 타고난 성향을 자신감 있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하거나 다른 성향을 가진 자들을 유하게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요즘 같이 집순이, 집돌이 존중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 기쁘다. 나와 다른 성향을 규정하지 않고 존중해준다는 것은 누군가를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배려다. 집순이인 나 또한 파워 인싸 (외향형) 들을 존중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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