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외출 13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나무 Feb 14. 2019

빛이 그려놓은 물 그림

3. 아베이루



한 도시에서 3박 이상 머무르는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포르투에서 9박, 리스보아 6박이지만

아베이루, 오비두스, 코임브라는 2박씩 정했지요.

그곳들은 시간 여유가 없는 여행자들이 포르투나 리스본에 묵으면서 한 나절 다녀가는 곳이니까요.


아베이루는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표현으로 포르투갈의 베니스라고 합니다.

베니스 입장에서 여간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이탈리아 사람이 아님에도 그 말이 마땅찮으니까요.

베니스에 곤돌라가 있다면 아베이루에는 몰리세이루가 있습니다.

아베이루는 지금도 소금이 유명합니다.

1576년에 큰 태풍이 아베이루를 집어삼키고 지나갔습니다.

그때 석호 평야가 생겼지요.

몰리세이루는 산호초 지역인 석호 평야에서 채취한 천연비료를 강의 상류로 실어 나르던 배였습니다.

지금은 화학 비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관광용으로 용도가 완전히 바뀐 셈이죠.



색깔이 있는 기름을 물에 풀어 만든 그림 같습니다.

빛이 물에 그린 그림이죠.

바람과 빛과 시간이 손을 잡습니다.

물은 움직이는 캔버스가 되고 나는 그 순간을 네모에 담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사진들입니다.

빛과 색이 물을 만나서 만든 그림.

아름답습니다.

자연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입니다.




아베이루의 호스트 디나는 기차가 도착하는 시각을 알려주면 차를 갖고 역으로 마중 나오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커다란 러기지가 세 개나 되는데 가능하냐고 물으니 문제없다고 했지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기차역을 나오니 디나로 짐작되는 자그마한 여인이 서 있었습니다.

그녀도 우리도 단박에 서로를 알아보았지요.

그런데 문제없다는 그녀가 타고 온 자동차는 혼다 승용차였습니다.

러기지 두 개를 트렁크에 집어넣기란 그야말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일과 다를 바가 없었지요.

마침내 자동차 트렁크가 닫혔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대단한 끈기와 정열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사람과 짐을 모두 싣고 자동차가 출발하기 무섭게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우선 아베이루는 언덕이 없고 평지로 이루어진 도시라는 것,

우리 셋은 안도와 기쁨의 리액션으로 일제히 환호성을 쳤지요.

그리고 오늘부터 월요일까지 축제가 벌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행운아라는 것,

모든 곳을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

그러더니 가난한 집과 부자집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아느냐고 묻더군요.

그 대답은 가난한 집은 문과 유리창이 한 개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문이 한 개 유리창이 두 개인 집 앞에 자동차가 멈췄습니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아~ 그러니까 당신은 부자군요.'

그야말로 똑소리가 나는 여인 디나는 유쾌하고 활기차게 웃었습니다.


집은 운하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했으며 무엇보다 1층이라 만족스러웠지요.

길고 하얀 복도 옆엔 방 두 개가 나란히 있고 그다음에 거실과 주방이 습니다.

하얀 나무창에는 빳빳하게  풀을 한 흰색 커튼이 걸려있습니다.

무엇이든 필요하거나 궁금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을 하고 또 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포르투에 이어 모든 호스트들의 길고 친절한 설명이 한 시간씩 계속되리라는 것을요.


 

주택들이 모여 있는 골목들에는 지나는 사람이 거의 없이 조용합니다.

낡은 아줄레주와 얌전한 레이스 커튼 만이 창을 지키고 있어요.

숙소를 나와 골목길을 걷습니다.

참으로 평화로운 금요일 오후 3시입니다.


아베이루 소금



뭐 하는 거지?

처음 보는 광경 있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그들은 커다란 우산을 거꾸로 들거나 기다란 나무에 매단 그물채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하얀 백묵 가루 같은 자욱이 길바닥에 흩어져 있고요.

작은 성당 옆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조각들이 가득 든 비닐봉지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골목길에서 커다란 비닐봉지에 언가가 잔뜩 들어있는 걸 들고 가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것과 같았지요.

넙적한 모양인데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도무지 짐작이 되질 않습니다.

후드가 달려있는 누런 색의 옛 수도사복을 입은 사람들도 보입니다.

그것이 아마도 디나가 말했던 축제려니 짐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는 곳을 보니 성당 옥상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뭔가를 던지기 시작했고 우산과 그물채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저것이 단단해서 맞으면 다칠 수도 있으니 머리나 눈을 조심하세요.'

하며 그 하얀 물체의 깨진 조각을 하나 건네줍니다.



의문의 하얀 물체는 설탕을 발라 구워 만든 과자였습니다.

몇 걸음 더 지나가자 5일장 서듯 노점상이 즐비했는데 솜사탕, 캔디, 그리고 그 하얀 과자들을 팔고 있었지요.

알고 보니 옛날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놀이처럼 성당 옥상에서 과자를 던져주던 신부님을 기리기 위해 매년 행해지는 행사였어요.


과자를 던져주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갈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 던진 과자를 받으려는 사람, 그 모두가 행운을 얻는다고 여기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가난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일종의 게임처럼 과자를 나누셨던 신부님의 기지가 아름답습니다.

미행을 잊지 않고 이어나가는 순박하고 선한 사람들의 모습도 보기 좋고요.

조용한 미소가 그려졌습니다.

디나가 말했듯 우리는 행운아입니다.


그물 채 위에 신부님의 사진이 붙어있다.
축제를 알리는 포스터의 그림
노을빛을 듬뿍 받은 아베이루 운하







  

이전 12화 운전 25년 만에 첫 사고를 냈다, 그것도 골웨이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