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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외출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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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Mar 21. 2019

오래된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  
하워스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샬롯 브론테, 제인 에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그곳에 가고 싶다'

막연히 든 생각은 아닐 겁니다.

책이나 그림, 영화를 통해 알게 된 곳이겠지요.

오랫동안 미뤄왔던 나라 영국으로의 여행 스케줄을 짜기 시작했지요.

'하워스(Haworth)'

그곳에 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아니 가고 싶었습니다.


빗물이 기차 유리창에 사선을 긋던 어느 겨울,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조그만 미술관 마우리츠 호이스를 찾아갔었지요.

오로지 요하네스 베르베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때문입니다.

옛날 TV처럼 작은 액자에 들어있던 소녀의 그림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행복했지요.

그건 아마도 하고 싶은 걸 했다는 안도감과 보고 싶은 것을 보았다는 뿌듯함일 겁니다.

황홀한 궁전이나 멋진 박물관, 거대한 성당을 돌아보는 것만이 즐거움은 아닙니다.

여행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지요.




특별할 것 없이 황량한 그 언덕에는 늘 바람이 분다고 합니다.

200년 전에 에밀리가 맞고 거닐던 그 오래된 바람이 여태 불고 있다는 겁니다.  

풀과 바위, 바람 속에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곳에 가면 처절한 슬픔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브론테 자매의 삶과 죽음이 남아있는 하워스(Haworth)는 영국의 서 요크셔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워스로 가기 전에 머물렀던 곳은 보튼 온 더 워터(Bourton on the water)라는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그곳에서 하워스로 가는 여정은 간단치가 않습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지요.

그러나 괜찮습니다.

행의 목적은 도착이 아니니까요.


왠지 영국에서는 오래된 성, 그러니까 작은 고성에서 며칠  머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숙박료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고성을 개조하여 만든 숙소는 1박에 2백만 원을 호가하더군요.

포기해야만 했지요.


보튼 온 더 워터에서 묵었던 코티지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아니 처음 접해보는 시골의 농가 저택이었습니다.

고성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기품 있었지요.

모든 게 사진으로 보았던 것보다 훌륭합니다.

작은 뜰에는 골프장처럼 키 맞춰 잘 가꾼 잔디가 아니라 삐죽삐죽 제멋대로 자란 풀들이 자연스레 자라고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꽃들이 드문드문 피어 있고 하얀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거실에는 푹신하고 코다란 소파와 앤티크 장식품들이 놓여 있고 침실는 이집트 면으로 만든 침구가 보송보송합니다.

주방이나 욕실은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하여 모던하고 편리하며 세련되었습니다.

집 뒤로는 발목을 조금 넘을 정도로 야트막한 시냇물이 몸을 낮추고 졸졸졸 흘러갑니다.

많은 나라와 그보다 훨씬 많은 도시들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런 풍경은 처음이요, 그런 집도 처음이었습니다.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쉬기만 해도 좋겠다 싶습니다.

그런 집을 떠나려니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우선 기차를 탈 수 있는 모튼 인 마시(Moreton in Marsh)까지 가야 합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호스트인 죠지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냈지요.

곧바로 답장이 왔습니다.

행복하게 지냈다니 본인도 행복하다고 합니다.

언제든 다시 오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지요.

그리고 현관 콘솔에 선물을 놔두었는데 잘 갖고 갔느냐고 묻는 겁니다.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지요.

그때 T가 말했습니다.

그곳에 gift라고 쓰여있는 작은 그림이 있는 걸 보았다고요.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다 선물을 찾으러 가기로 했습니다.

코티지까지는 왕복 10여 분이면 충분한 거리였고 버스가 오려면 아직 여유가 있었으니까요.  

죠지가 준비해둔 선물은 우리가 묵었던 코티지의 전경을 그린 작은 수채화였습니다.

그림 하단에는 그린 이의 싸인도 있습니다.

아름다웠지요.

조그만 그림 한 장일 뿐이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선물이었습니다.

마치 나를 잊지 말아요 하는 물망초의 꽃말처럼 그 집이 두고두고 기억날 거라 생각합니다.



호스트 George의 선물



버스를 타고 모튼 인 마시로 갔습니다.

벌꿀 색의 외벽이 인상적이던 을은 도착한 첫날부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곳이지요.

거기서 기차를 타고 리즈(Leeds)로 향합니다.

모튼 인 마시에서 리즈까지는 5시간이 걸렸지요.

그리고 리즈에서 다시 기차를 바꿔 타고 키슬리(Keighley)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다시 하워스까지 가야 합니다.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무주 구천동에서 한양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여정입니다.

하루 종일 가고 또 가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기차 여행은 언제나 편안하고 느긋합니다.

생방송처럼 펼쳐지는 영국의 들판과 집들을 바라보는 일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으니까요.


키슬리에서 하워스까지 버스도 있지만 기차를 타기로 한 건 이유가 있습니다.

그곳엔 특별한 기차가 있기 때문이지요.

증기 기차(steam train)를 타 볼 요량입니다.

Worth Valley라는 구간은 아직도 빈티지 증기 기차가 운행합니다.

운행하지 않는 날도 있고 자주 다니지 않기 때문에 시간표를 확인해야 합니다.

키슬리 역에서 1일권 증기 기차 티켓을 끊으면, 하워스는 물론 다섯 개의 전형적인 요크셔 지방 시골마을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습니다.

언젠가라는 가정은 부정에 가까운 기대라는 걸 알지만,

그 언젠가 워스 밸리와 코츠월즈에서 한 두 달 살아봤으면 싶습니다.



Worth Valley 홍보 포스터



키슬리 역은 옛날 시골역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기차는 타지 않아도 플랫폼을 구경할 수 있는 티켓도 판매하더군요.

칠판에는 열차 시간표가 쓰여있습니다.

전광판에 켜진 현대식 시간표보다 비뚤비뚤한 분필 글씨가 따뜻하고 정겹습니다.


바코드나 QR코드를 스캔하는 현대식 티켓이 아니었습니다.

두꺼운 마분지로 만든 조그만 기차표,

그런 기차표를 만져본 게 얼마 만일까요.

옛날식 역무원 제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펀칭을 해줍니다.  

낡은 의자는 쿠션 없이 딱딱하지만 그 맛도 새롭습니다.

기차의 나무 프레임은 오랜 세월 동안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합니다.

어린 시절 학교 복도의 마룻바닥에 초 칠을 해서 반들거리던 것과 비슷합니다.

김이 퐁퐁 나는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에 탄 사람도 지나가던 사람들도 서로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짓습니다.

천천히 움직이는 옛날 기차를 타니 과거로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브론테 자매를 만나러 하워스로 가는 길은 그렇게 느릿느릿 지나가도 좋았습니다.



증기 기차

     






키슬리 역




영국의 전원 풍경은 밋밋하리만큼 심심하더군요.

초록이 지천이어야 할 8월의 들판은 어느새 가을걷이가 가까운 가을처럼 누런 곳이 많았습니다.

가끔씩 목탄으로 비뚤비뚤 금을 그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야트막한 돌담이 보입니다.

영국은 일반적으로 가축을 방목합니다.

울타리였지요.

말이나 소, 양 떼들이 한도 끝도 없이 풀을 뜯어먹기 때문이라는군요.

돌담으로 경계를 지어놓고 매일 다른 울타리로 이동시키는 것이죠,

그사이 풀이 다시 자라니까요.


마침내 긴 여정을 마치고 하워스 역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의 숙소는 YHA 호스텔,

숙소를 호스텔로 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나이를 들지 않을 수 없네요.

하지만 여행에서 숙소란 잠만 자는 곳이 아닙니다.

언제든 피곤하면 들어가 느긋하게 쉴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식사 준비도 할 수 있어야 하지요.






2018년은 에밀리 브론테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유난히 여행객이 많은 건지,

인구 6천 명의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여섯 명이 묵을 숙소는 마땅치 않았습니다.

적당해 보이는 호텔은 방 세 개를 예약하자니 금액이 만만치 않고요.

그러다 YHA 호스텔을 발견했습니다.

외관이 거의 고성 스타일로 100년은 되어 보였지요.

2층 침대가 세 개 놓인 6인실이 99 파운드, 그러니까 1인당 25000원으로 가격도 저렴하고요.

이참에 수학여행 간 여고생처럼 한 방에서 옹기종기 자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하워스 역도 키슬리 역과 다를 바 없이 소박합니다.

역을 나오니 빨간 공중전화와 빨간 우체통이 보입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이 떡 하니 보였습니다.

호스텔까지는 800m 남짓한 거리지만 캐리어를 끌고 오르기는 불가능해 보였지요.

대부분 기차역 앞에는 택시들이 적어도 한 두 대는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동네는 택시라는 건 없어'하듯 캡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차역 안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했지요.

어딜 가나 사람들은 낯 선 이방인에게 친절합니다.

부름을 받은 2대의 택시가 달려왔고 우리를 호스텔로 데려다주었습니다.



하워스 기차역


하워스 역에서 브론테 마을까지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


장엄한 자태를 뽐내는 호스텔은 내부 역시 고풍스러웠습니다.

스테인드 글라스로 멋을 낸 창과 오래된 계단이 건물의 옛 영화를 짐작하게 합니다.

리셉션에서 인원수대로 여섯 장의 타월을 빌리고 아침 식사를 예약했습니다.

배정된 방으로 올라가니 세 개의 2층 침대가 연두색 이불을 얌전히 덮고 우리를 맞습니다.

여고생처럼 깔깔거리며 나는 2층, 너는 1층 하며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으니 허기가 몰려옵니다.

하지만 오래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브론테의 집과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오르자면 길을 되짚어 내려간 다시 언덕을 올라야 하니까요.

대충 짐을 내려놓고 바람의 언덕을 찾아 나섰습니다.


YHA 호스텔
호스텔 내부



회색빛 돌기와를 얹은 집들이 군데군데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결코 낡고 허름한 게 아닌데 서글퍼 보입니다.

내리막길을 느릿느릿 걷는 동안 친구들은 누구도 말이 없습니다.

다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또는 제인 에어의 한 장면을 되새기고 있는 모양입니다.


'황량한 것도 아름답구나'라는 걸 처음 느꼈지요.

언덕 위엔 풍력발전기가 돌고 있습니다.

Wuthering heights가 가까워졌다는 뜻이겠지요.

워더링 하이츠는 바람이 쌩쌩 많이 부는 언덕이라는 뜻이지만 저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폭풍의 언덕>라고 번역된 폭풍(storm)과는 좀 차이가 있지요.

그곳의 집들은 짙은 회색 벽돌을 많이 사용하더군요.

그래서 마을 자체가 어두워 보입니다.

게다가 늘 사나운 바람이 불기 때문에 비극이 나올 수밖에 없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언덕을 거의 내려왔 간단히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허름한 음식점인 그곳은 선택할 메뉴가 단출했지요.

손가락보다 두툼한 감자튀김이 한 바구니 곁들여진 피시 앤 칩스와 치킨 앤 칩스, 그리고 낡은 플라스틱 컵에 담긴 콜라가 서빙되었지요.

영국의 품위와는 전혀 동떨어진 비주얼이었습니다.

마치 한양 가던 선비가 주막에 들러 국밥 한 그릇 먹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허기를 채울 수 있어 고마웠지요.


브론테의 집으로 향하는 작은 오르막길은 영화 세트처럼 예스런 모습이었습니다.

펍과 레스토랑, 기념품을 파는 상가들이 저마다 조붓한 크기로 들어서 있었지요.

그 자리에서 족히 몇십 년은 살아온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론테 자매의 이름을 붙인 맥주, 기념품 컵, 세 자매의 사진을 프린트한 쿠션 등이 눈에 띄었어요.

하워스는 브론테 자매의 흔적을 빼고는 딱히 볼거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에 7만 명의 여행자들이 하워스를 찾는다고 합니다.









1820년, 아일랜드 출신인 패트릭 브론테(Patrick Bronte) 목사는 부인과 하워스로 전근해서 목사관, 그러니까 일종의 관사에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들은 섯 자매와 아들 하나를 두었지요.

하워스에 이사를 해서 1년 남짓 되지 않아 패트릭의 아내가 그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샬롯은 겨우 다섯 살, 에밀리는 세 살, 막내 앤은 돌도 채 지나지 않은 갓난아기였습니다.

이모와 브론테 가의 하녀 태비의 손에 키워진 아이들이 어느덧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세는 넉넉지 못했습니다.

패트릭 목사는 에밀리와 샬롯을 두 언니들과 함께 값싼 기숙학교에 보냈지요.

이 대목에서 제인 에어가 연상됩니다.

기숙학교에 보낸 이듬해, 첫째와 둘째 딸인 마리아와 엘리자베스가 영양실조와 결핵으로 사망했습니다.

부친은 땅이 꺼지는듯한 슬픔에 휩싸였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는 서둘러 에밀리와 샬롯, 두 딸을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자칫하면 딸 넷을 모두 잃을지도 모르니까요.

역시나 소설은 자전적 경험을 기초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기숙학교는 후에 샬롯 브론테(1816~1855)의 소설 <제인 에어 Jane Eyre,1847>에서 분노에 찬 필치로 묘사되었으니까요.        


에밀리와 샬롯 브론테는 그녀들이 쓴 소설 속 주인공들 못지않게 씩씩했습니다.

1844년 샬롯이 스물여덟 살, 에밀리가 스물여섯 살 때 하워스에 학교를 설립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여의치 않았습니다.

브론테 가문의 하나뿐인 아들 브랜웰이 알코올 중독과 마약으로 물의를 일으키곤 했던 이유도 포함되었지요.


당시 여성 작가는 영받지도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자매는 모두 작가가 되었습니다.

1846년 세 자매는 공동 시집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를 첫 출판했습니다.

그 후 샬롯은 '교수'라는 작품을 여러 출판사에 보냈지만 그때마다 거절당했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는 약이 되어 <제인 에어>를 탄생시켰습니다.

제인 에어가 발간된 1847년, 에밀리 브론테(1818~1848) 역시 <폭풍의 언덕>을 출간했습니다.

하지만 1년 후, 에밀리 브론테는 지켜보는 가족 하나 없이 소파에서 쓸쓸히 사망했지요.

사인은 결핵이었고 그녀의 나이 겨우 서른이었습니다.



폭풍의 언덕 초판본



에밀리의 유일한 작품인 <폭풍의 언덕>은 현재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멜빌의 모비딕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히고 있지요.

많은 작가들의 뛰어난 예술 작품이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던 것처럼 당시 그녀의 소설도 좋은 평을 받지 못했습니다.  

막내 앤  브론테(1820~1849) 역시 언니들이 책을 출판하던 같은 해에 <아그네스 그레이>를 냈습니다.

그러니까 1847년은 에밀리와 샬롯, 앤에게는 운명적인 해였고 더없이 행복한 해였습니다.

셋 모두 각자의 책을 출간했으니까요.

하지만 에밀리가 죽고 1년 후, 막내 앤 역시 스물아홉의 나이에 언니를 따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외아들 브랜웰(1817-1848)은 그림에 탁월한 소질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에밀리 브론테와 같은 해에 사망했습니다.

아버지 패트릭 목사는 한 해에 아들과 딸 둘을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막내딸까지 잃고 만 겁니다.

그야말로 줄초상이 이어졌지요.

그의 곁에 남은 가족은 오직 큰 딸 샬롯 브론테 하나뿐이었습니다.


종이가 귀하고 비싸던 시절이라 아주 작은 노트에 깨알만한 글씨로 글을 썼던 자매의 친필



 <제인 에어>는 출판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19세기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독립적인 주체로 성장하는 여주인공의 삶은 세상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샬롯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쳐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부목사였던 니콜스와 결혼했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서른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가까스로 임신을 했습니다.

설상가상 입덧이 심해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지요.

쇠락해진 몸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결핵은 결국 그녀마저 쓰러뜨리고 말았습니다.

샬롯은 서른아홉에 태중의 아기와 함께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나 남은 딸마저 자신을 앞세운 비운의 아버지 패트릭 목사는 84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지요.

목사님이었기에 가능한 세월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800년대 중반, 여성 작가들은 필명을 남자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세 자매 역시 Currer Bell. Ellis Bell. Acton Bell이라는 남자 이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이며 쇼팽의 연인이던 조르주 상드 역시 남장을 하고 다녔습니다.

조르주 역시 필명으로 영국의 남자 이름인 조지의 프랑스식 발음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는 그 당시에는 '여자가 무슨 글...' 하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출판은 더더욱 꿈꿀 수 없던 시대였지요.

그림이나 음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시대에 명성을 떨친 여류 화가나 여성 음악가 이름을 들어 보셨는지요?

재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예술가로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아서입니다.

그런 걸 보면 성 차별은 비단 조선에만 있던 게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여성이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던 시절, 세 자매는 작가가 되어 남성들의 세계에 도전했습니다.

그것도 런던처럼 대도시가 아닌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말입니다.


황량한 자연을 배경으로 거칠고 격렬한 히스클리프의 캐서린에 대한 강렬한 집착과 사랑,

그리고 인간의 애증을 강렬하게 묘사한 소설 <폭풍의 언덕>.     

일과 사랑에 당당했던 한 여자의 뜨거운 삶을 묘사한 소설 <제인 에어>,   

비록 그들의 생은 짧았으나 깊고 뜨거웠습니다.


거무튀튀한 외관만 보더라도 오래된 건물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는 Black Bull pub이 메인 스트리트의 중심에 있습니다.

브랜웰의 단골 술집이라고 하네요.

블랙 불 옆으로 성공회 사제였던 브론테의 아버지가 근무하던 하워스 Parish Church가 있습니다.

교회 옆으로 학교와 묘지가 있더군요.




오른쪽이 샬롯, 가운데가 에밀리, 왼쪽이 앤. 오빠 브랜웰의 그림으로 가운데 희미한 부분은 본인 얼굴을 지운 것으로 추측



팻말을 읽어보았습니다.

'브론테 일가의 무덤은 여기 없다. 여기에는 1825년부터 1855년까지 30년 동안 브론테 가족을 돌봐준 타타의 무덤이 있다.'   

하워스 교회로 들어가면 브론테 가족 중 마리아와 패트릭 그리고 에밀리. 샬럿. 브렌웰이 교회 지하의 납골당에 함께 묻혀 있다'는 글이 쓰여 있습니다.  







브론테 가족이 살았던 목사관은 박물관(Bronte Parsonage Museum)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문을 닫은 시각, 들어갈 수 없었지요.

지는 해와 함께 그림자놀이를 하며 브론테 자매들이 거닐었을법한 언덕에서 한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브론테  박물관 뒤로는 그들의 작품 속에 실제로 등장하는 무어(Moor)라는 언덕이 펼쳐져 있습니다.

무어란 잡초와 야생화 히스가 뒤덮인 황야 지대를 말합니다.

하워스의 언덕도 그렇지만 요크 지역에는 무어가 많다는군요.

자매들은 마을 언덕 위에 있는 폐가 저택(Top Withens)까지 산책을 다니곤 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폭풍의 언덕>의 모티프를 얻었다고 전해지지요.          

영국식 돌담이 둘러쳐진 들판을 넘으면 히스가 무성한 황야가 펼쳐집니다.

언덕에는 보랏빛 히스(heath, heather) 꽃이 만발해 있습니다.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 히스클리프(Heathcliff)란 이름이 그 꽃에서 착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히스꽃이 자라는 절벽', 히스클리프의 성품을 볼 때 그럴듯합니다.




old school





브론테 뮤지엄 기념품 shop



한참을 다 보면 브론테 다리, 두 그루의 나무 옆에 서 있는 탑 위든스까지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보통 걸음으로 서너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엄두를 낼 수 없었지요.

물론 처음부터 그곳까지 갈 요량으로 하워스를 찾은 건 아니었습니다.

폭풍의 언덕을 향해 걷는 시늉만 하다가 뒤돌아 왔습니다.

대신 브론테 자매가 살던 집 근처 언덕에서 작가의 숨결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폭풍의 언덕에서 언쇼의 집으로 그려진  탑 위든스


탑 위든스에 명시된 안내문
히스꽃이 지천에 피어있는 언덕



작은 티 룸에 잠시 렸습니다.

얼 그레이, 잉글리시 블랙퍼스트에 티라미수를 곁들였지요.

브론테 자매들의 짧은 생은 안타깝지만 그들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입니다.

박물관에 들어가 그들 삶의 흔적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던 아쉬움은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잠시나마 그 언덕에 머물렀음에 만족했습니다.

 



할 수 있고

해도 되고

하고 싶으니

하는 것,

나에게 그것은 여행입니다.


폭풍의 언덕을 걸어가는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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