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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외출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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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Feb 21. 2017

사람, 스밈과 울림

호스펫2



슬픔과 아름다움은 같은 뿌리에서 왔을 겁니다.

그러니 슬픔이 깔리지 않은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게 아닙니다.

아름다움 역시 슬픔의 한 갈래니까요.

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호스펫에서 만난 한 소년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는 질문에 왼쪽으로 고개만 한 번 까딱했을 뿐 짐짓 표정이 없었지요.

반듯한 이목구비에 시종 손을 모으고 섰습니다.

무엇을 파는 곳인지 종잡을 수 없는 허름하고 작은 상점이 눈에 띈 건 얼룩진 핑크 벽과 파란 플라스틱 통, 노란 비닐봉지가 빚어내는 컬러 때문이었어요.

그 신비스러운 색깔 속에, 소맷부리며 앞자락에 때가 꼬질꼬질한 셔츠를 입고 있던 소년에게서 어떤 품위가 느껴졌다면 믿길까요?

거적때기를 걸쳐도 빛이 나는 사람이 있다는 친구 말이 생각났지요.

머리에 쓰고 있는 진한 그레이색 쿠피가 잘 어울리는 소년은 호스펫의 장동건이라 할만한 친구였어요.

이름 조차 묻지 않았던 게 무척 아쉽습니다.

얼굴에 웃음기 하나 없는 그 소년에게 슬픈 걱정거리가 없기를 바라봅니다.


길 가다 꼬마 아이를 찍었더니 그 엄마, 수줍게 말합니다.

- 짜이 한 잔 하고 가세요.

매일 아침 새벽 산책에 나설 때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200원짜리 짜이 한 잔 마시는 것이지요.

방금 마셨지만 마다할 일이 아니었어요.

짜이라는 게 대부분 소주잔 보다 조금 큰 잔에 마시는 것이라 별 부담이 없기도 했으니까요.

길 가는 여행자에게 차 한 잔 건넨 그 마음이 강물에 비치는 햇살보다 더 반짝였습니다.


이른 아침임에도 골목에 나와 노는 꼬마들이 많습니다.

돌멩이를 군데군데 올려진 슬레이트 지붕 아래서 이렇게 예쁜 소녀가 나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보네요.

아직 세상에 물들지도 때 묻지도 않은 아이의 앞길에 저 순수한 눈망울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갈래 머리를 한 소녀가 대뜸 이름을 묻더군요.

내가 이름을 알려주니 So sweet~ 하며 악수를 청해요.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다가 만나게 되는 인디언들은 이름을 묻는 일이 흔해요.

그리곤 손을 잡지요.

악수라고 할 수 없지만 손을 잡는 걸 좋아하는 눈치예요.

그 아이 역시 내 손을 잡더니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어요.

이른 아침 낯 선 외국인을 불쑥 데리고 가면 그 엄마는 얼마나 황망할까 생각되어 집 앞에서 말했습니다.

- 내가 들어가도 되는지 엄마한테 물어보렴.

집안으로 들어갔던 소녀는 쏜살같이 나와서 어서 들어가자고 합니다.

인디언 특유의  가무잡잡한 피부에 이목구비는 서양인을 닮았고 키가 많이 클 것 같은 소녀의 이름은 '아이샤',

동네 꼬마들이 신나는 일이 일어난 듯 나를 따라 주욱 그 집으로 들어갔지요.

온화한 미소를 가진 엄마와 아빠, 언니가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가족을 물으니 남동생이 있는데 샤워 중이라고 하더군요.

파란색이 칠해진 방, 연두색 거실, 소소한 가구들이지만 정갈하고 화목해 보였습니다.

손님에게 흔히 대접하는 차 한 잔은 그곳도 예외는 아닌 듯했습니다.

딱히 오고 가는 대화 없이 잠깐 머물고는 아이샤에게 E 메일 계정을 물어보니 없다고 하네요.

대신 아빠가 당신 메일을 대신 적어주었습니다. (나는 여행에서 돌아와 그 동네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두 보냈고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는 아이샤 아빠의 답장을 받았습니다.)


가운데 소녀가 아이샤
나마스테~ 인사하는 꼬마숙녀


정다운 인사를 나누고 다시 거리로 나오니 정신이 온전치 못해 뵈는 여인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합니다.

여느 인도의 여인들처럼 머리를 묶거나 땋지 않고 커트를 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행색은 초라했지만 그녀의 웃음 역시 맑았지요.



로컬 버스를 탔습니다.

어딘지도 모르는 인근 마을에 가보려는 요량이죠.

버스비도 짜이처럼 200원입니다.

나라도 그들 입장이면 당연히 쳐다봤을 테지요.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됩니다.

뭐 이젠 그 시선들이 익숙해서 당황스럽지도 않게 되었어요.


마을 입구엔 또 다른 가트가 어요.

그곳 역시 도비왈라들이 부산하게 손을 놀립니다.

인근 호텔의 세탁물인 듯 눈부시게 하얀 시트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어요.

빨래는 빛의 속도로 마르겠지요.

선글라스의 짙은 렌즈 속을 파고드는 뜨거운 빛과 열기를 그들은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의 신성한 노동 앞에 한 없이 부끄러웠어요.

그저 그들의 미소를 렌즈에 담고, 그네들이 찍힌 사진을 보는 잠시나마 허리 한 번 쭉 펴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이 황금 같을 뿐이지요.


  

가죽이 벗겨지고 오장육부가 해체된 체 걸려있는 저 동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30도를 오르내리는 길거리에서 남자는 그저 일상인 양 묵묵히 칼을 놀리는군요.

위생이라는 단어는 필요 없어 보이는 나무토막 도마와 녹슨 갈고리에 걸린 생고기가 그야말로 노 프라블럼입니다. 꼬랑지 끝의 털을 보니 무엇이지 짐작이 가는군요.


온몸에 피부병이 도진 길거리 개들과는 차별화된, 아니 인도 길거리에서는 처음 보는 달마티안이 주인과 장난하는 모습이 왠지 낯선 것은 제 탓이 아닐 겁니다.

쓰레기를 뒤지다 들켜버린 소는 체면을 구긴 듯 나를 바라봅니다.



프로 솜씨가 아니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는 페인트칠 벽과 얼룩, 그 위로 클래식한 조명처럼 비치는 햇빛, pet병에 담긴 화초 하나, 우물 옆에 놓인 분홍색 물 바가지, 빨랫줄에 무심하게 걸어둔 수건 한 장을 가로지르는 빛 한 줄기, 초록색만 아니었다면 그 옛날 외할머니댁 부엌문을 닮은 작은 문 하나, 일부러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아름다운 벽 앞에 놓인 무쇠솥은 트리플 초콜릿 가루를 뒤집어쓴 듯 검게 그을었습니다. 지진도 아니요, 폭격도 아닐 터인 무너진 건물의 벽체, 그 아래서 10원짜리 화투? 놀이를 하시는 할머니들..., 동네에는 도무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무료함이 떠돌이 개처럼 맴돌고 있습니다.



갈대 짚 이엉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사이로 노란 사리를 입은 백발의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식사를 하십니다. 그 뒤로 놀랍게도 남자 셔츠를 입은 여인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어요. 도회지에서 아가씨들이 청바지를 입은 모습도 보기 드문 곳이 인도입니다. 하물며 그 작은 마을의 아낙이 남자 셔츠를 입고 있는 게 좀 의아하네요. 그릇 뚜껑을 든 남자가 공연히 웃어요. 대나무 기둥 뒤로 흘끗 보이는 남자 모습이 옛날 그림 속 이야기처럼 뭔가 얘깃거리가 될 것만 같습니다. 두 여인의 시선이 각각 다른 곳에 는 반면 두 남자의 시선은 카메라를 향합니다. 마치 스토리가 있는 그림 같아요. 구도며 거리, 빛의 감도, 뭐 그런 것들을 모두 떠나서 말이죠.




관계는 모르나 가족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입니다.

목 줄이 있는 거로 보아 가족과 다름없이 사랑받는 강아지도 한몫 거들었죠.

마치 벼르고 별러 사진관에 가서 찍은 가족사진처럼 자연스럽고 화목해 보여 두고두고 흐뭇할 것 같습니다.

일부러 한 건 아닐 게 분명하지만 아무렇게나 덧칠한 초록의 붓질로 인해 더 맘이 가는 벽엔 파란 나무 문이 있고 발치엔 낡은 러그가 놓여있습니다.

할머니는 한쪽 눈이 안 좋아 보였어요.

슬그머니 할머니의 사진을 찍은 후 보여드리니 만면에 비소가 번집니다.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몇 번이고 쓰다듬으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지요.

아마도 그건

-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가 아니었을까요?

살면서 몇 번의 사진을 찍으셨을까?

아니 앞으로 몇 번의 사진을 찍히고 돌아가실까?

생의 막바지에 다가가는 노인의 심경은 얼마나 쓸쓸할까? 하는 여러 생각이 중첩되었습니다.

생면부지 처음 만난 할머니가 내 얼굴을 쓸어주시는데 왜 눈물이 고였는지 모르겠어요.

입가엔 미소를 지었지만 선글라스 안 쪽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맏며느리감으로 어울릴만한 후덕한 여인의 환한 미소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영화배우 뺨치게 예쁜 아기 엄마의 미소도 담습니다.

 

  

안타깝게도 다리를 못 쓰는 아이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맨 처음 만난 청년은 휠체어를 타고 있었는데 유창한 영어로 거침없이 질문을 하더군요.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전해졌어요.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드러나는 지성미는 일부러 치장해서 되는 게 아니니까요.

청년의 사진은 찍지 않았습니다.

다른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분칠을 한 듯 창백한 소년이 문간 의자에 앉아있어요.

그 아이 역시 다리를 쓰지 못하는 듯 가녀렸는데 그저 힘 없이 미소 지어주는 그 맘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저 또한 미소로 화답할 밖에요.



아~ 참으로 아름다운 방앗간을 발견했습니다.

곡식을 빻는 분쇄기 두 개가 있는 그곳은 작지만 무척 깨끗하고 반듯하게 정리가 되어 있어요.

바닥은 하얀 가루 더께가 완연했지만 먼지 하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머리를 하나로 땋아 내린 여인의 사리 속에 입은 촐리와 보라색 나무 의자가 조화롭습니다.

미간에 찍은 오렌지색 빈디가 얼굴에 화사함을 더해주네요.

또 하나의 방앗간에는 깔끔한 차림의 아저씨가 앉아계셨어요.

이 사진이 좋은 이유는 방앗간 안쪽에 쌓아놓은 레몬, 노랑, 연두색 포대 자루와 아저씨가 입고 있는 그레이 셔츠의 차분한 조화 때문입니다.

 


그 동네 길가에는 코카콜라와 오렌지 음료 로고로 칠해진 상점들이 꽤 여러 개 있었습니다.

이채로운 풍경이었지요.

빨래가 걸려있다는 거 한 가지만으로도 그 집이 정상적인 가정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도는 빨래 건조대라는 게 딱히 없는 듯 담장 위나 담벼락 등 어디나 척척 걸쳐놓으면 끝, 반나절이면 마르니까요. 어느 곳 하나 같은 모습이 없지요. 무심하게 툭 걸쳐놓은 옷들이 참으로 정겨워 자꾸만 눈길이 갑니다.

넓고 기다란 천은 다름 아닌 사리라는 걸 알고 보니 더욱 신기하더군요.

폐가의 고풍스러운 문이 눈길을 끕니다.

오래된 궁전에나 어울려 보이는 그 문에는 어떤 사연이 있어 사람이 살지 않는 건지 궁금했지요.



담장 너머로 학생들이 바닥에 앉아 책을 펼쳐놓은 모습이 보여서 교문 창살 틈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다가 들켜버렸지 뭐예요. 아이들이 환호성을 쳤거든요. 짐짓 놀라 미안한 마음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는데 어느새 선생님이 나오셔서 묻더군요.

- 들어오실래요?

내가 먼저 요청한 것도 아닌데 뜻밖에 선뜻 방문을 허락하신 선생님께 감사했습니다.

교문이라고 할 것도 없는 작은 문을 따 주셨어요.

그런데 꼭꼭 잠긴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왠지 봉쇄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지요.

안으로 들어서자 교실 안에 있던 꼬맹이부터 운동장? 에 앉은 중학생쯤 돼 보이는 남녀 학생들이 일순간 시끌벅적 난리가 났습니다.

몇 장의 사진을 찍는데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워지자 교장 선생님인듯한 분께서 등장하셔서 큰 소리로 몇 마디 나무라시자 일순간 조용해지더군요.

민망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던 잠깐의 방문이 유쾌했습니다.

그곳은 1학년부터 9학년까지 다니는 학교인데 교실이 부족한 탓에 저학년들은 교실에서 고학년은 흙바닥에 앉아 공부를 합니다.

수줍어서 얼굴을 가리는 쿠마리,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라훌,

꼬맹이들은 어찌나 까부는지 오래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공부에 방해가 될 테니까요.

뒤돌아서는 저를 향해 환호성을 치는 터에 자꾸만 셔터를 누르게 되더군요.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 후 학교를 떠났습니다.



골목골목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언뜻 보면 낡고 조악한 물건들이지만 정갈하게 닦고 정리된 모습입니다.

울긋불긋한 호리병 모양의 플라스틱 물통은 집집마다 몇 개씩은 있더군요.

그 모두가 정겨운 풍경입니다.

높고 큰 빌딩이나 고급 쇼핑 몰을 원한다면 인도에 가지 않았을 테지요.

내가 바라던 모습이 바로 그곳에 영화 세트장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만한 동네에 이방인의 등장은 빠르게 전달될 수밖에 없습니다.

딱히 문이라고도 할 수 없이 헝겊 조각 한 장으로 가려놓은 손바닥만 한 방이나 대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담장 너머로 사람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손을 흔들거나 웃어줍니다.



할아버지 등 뒤로 보이는 노랑 보자기 가방 같이 보이는 건 해먹을 접어서 걸어놓은 것입니다.

발치에 보이는 연두 색, 벽 아래의 누런 컬러가 아주 그만입니다.

무대를 연상시키는 노란 천막과 그 옆으로 아기자기 장난감처럼 걸린 빨래들이 한 편의 드라마 같아요.

할머니의 노란 사리가 원더풀을 외치고 싶네요.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 트로피를 들고 계신 듯 초록의 사탕수수 한 줄기를 든 할아버지는 특급 모델 뺨치게 멋진 포즈예요.

비닐 매트와 사리가 들려있는 빨래 줄 앞으로 종려나무 이파리가 마치 커튼 자락처럼, 클레오파트라의 머리카락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인도 사람들의 배경에는 늘 유화보다 강렬한 아크릴 물감이 펼쳐져 있어요.

가끔은 이렇게 파스텔풍의 집도 나타납니다. 아기 돼지가 엑스트라인 양 종종거리고 걸어가고 있어요. 계단 중앙에서 문틀의 아래쪽에 포인트로 칠한 감각이 대단합니다.

내가 왕이다 하듯 화려한 수탉이 이방인을 피해 달아나지도 않고 도도하게 앉아있습니다.

문간에 서 있다가 우연히 눈이 마주친 아낙에게 눈인사를 건네니 미소로 답합니다.



벽과 문의 색깔은 우연이 만들어졌겠지만 참으로 묘하게 끌리네요.

도저히 그냥 쓱쓱 지나칠 수 없는 예쁨들이 곳곳에서 불쑥불쑥 나타납니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흥분을 감출 수 없었어요.



같은 집, 다른 느낌의 사진 세 장

이곳이 인도입니다.



시골에서 가장 정겨운 곳 중 하나가 Baber shop입니다.

1인용 이발소가 재밌어요.

어릴 때 이발소를 지나치다 보면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어요.

큼지막한 솔로 솜사탕 같은 비누거품을 수북하게 발라놓고 기다란 가죽 줄에 칼날을 쓱쓱 문지른 다음 면도칼로 수염을 깎아주는 모습이에요.

칼날이 무뎌진 칼을 숫돌에 간 후 칼날을 마감하는 방법을 스트로 핑이라고 한다죠.  

칼을 숫돌에 갈고 나면 칼날 끝에 붙어있는 미세한 쇳조각을 떼어내는 걸 뜻하는 것이죠.

윙~ 하는 전동 소리 시끄러운 7중 8중 전기면도기 보다 너무나 정겹고 남성미를 느끼게 합니다.

인도는 여전히 많은 걸 사람의 손으로 합니다.

버스 티켓을 사거나 교통 카드 대신 사람이 돈을 받고 거슬러줍니다.

조그만 식당에 가도 손님보다 종업원의 수가 더 많을 정도입니다.

세탁기 대신 사람의 손으로 빨래를 하고 꽃을 따서 목걸이를 만들고 아직도 많은 것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해나가지요. 그 느림이 미학이 정겹습니다.

역사적인 문화유산을 보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맛이 느껴지는 동네 탐방이 즐겁습니다.

리포터냐?, 포토그래퍼냐? 간간히 질문을 하고 나면 이어지는 말,

마치 6.25 때 우리나라 아이들이 미군 병사를 만나면 초콜릿을 달라고 하던 것처럼

- 펜 있으면 줄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들은 펜을 달라고 했지만 백 속에는 단 하나의 펜 밖에 없었기에 그때마다 쏘리~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자에 앉은 사람과 서있는 사람의 키와 표정이 이채롭다


노점 식당은 마치 브레이크 타임? 인 것처럼 탈리(인도식 백반)가 다 떨어졌다고 하네요.

조그만 상점에서 이를 모를 빵 하나 사고 짜이 한 잔에 그늘에 앉습니다.  

한낮의 거리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지나가고, 오토 릭샤나 버스가 간간히 지나갈 뿐 한산하네요.

호스펫은 대도시보다 훨씬 깨끗했습니다.

허름한 집과 벽이나 지붕이 낡았을 뿐,  자세히 들여다보면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알 수 있었지요.

 


한 무리의 꼬마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집을 사진 찍는 게 신기했는지 저마다 내 손을 잡아끌며 자기네 집으로 가자합니다.

- 우리 집으로 가요.

- 우리 집은 저쪽이에요.

그때 한 아이가 내게 말했습니다.

- 내 친구도 찍어줘요.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지요.

바깥쪽을 빼꼼히 바라보다가 앙상한 다리를 이끌고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파란 옷에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친구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에 궁금함을 갖고 밖으로 나오는 거였어요.



속상했습니다.

가슴이 무척 아팠습니다.

한참 까불며 뛰어놀아야 하는 아이가 무릎걸음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슬픈 눈으로 아이를 바라봐선 안된다고 생각했지요.

어떤 아이에게 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반가움을 표시했고,

다른 아이보다 많은 사진을 찍어 그 아이의 예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한 아이가 다짜고짜 집으로 달려 들어가더니 키우고 있는 물소를 끌어안으며 포즈를 취했습니다.

사실 그 아이는 자기가 예뻐하는 물소를 자랑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코를 질질 흘리며 소를 끌어안는 모습이 애완견을 사랑하는 모습보다 더 진지하고 깊었습니다.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를 모두 들어내며 환하게 웃는 아이는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어요.

그야말로 빛이 났습니다.

무엇에 홀린 듯 아이를 사진에 담아냈지요.

그 천진하고 순수한 마음이 결코 변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은 각자의 집에서 강아지들을 들고 나옵니다.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하나둘 문 밖으로 어른들이 나오고 계셨어요.

민망함에 손을 흔들거나 목인사를 했더니 웃음으로 답하십니다.

아이들의 손목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팔찌가 걸려있어서 팔을 내밀라고 했더니 일제히 팔을 내밀어요.

말도 참 듣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그 동네 선생님들은 편하겠다 싶었지요.



버스를 타고 호스펫 버스 스탠드로 돌아오니 허기가 집니다.

도무지 의자와 식탁이 놓여있는 음식점을 찾기가 힘든 곳이에요.

대부분 길에 서서 바나나 잎 식판? 에 음식을 담아 손가락으로 집어먹는 형태가 많지요.

음식점을 물으니 한결 같이 같은 곳의 이름을 대 줘서 찾아가니 그곳을 호텔 레스토랑이었어요.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거든요.

어렵게 찾아 들어간 음식점에서 탈리를 먹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음식을 먹으니까 어디든 손 닦는 곳이 있어요.

때때로 큰 물병을 테이블로 가져다주는 경우도 있는데 마시는 물이 아니라 손을 씻으라는 물이니까 조심해야 하지요.

탈리란 인도어로 큰 쟁반 혹은 접시를 뜻하는 말이에요.

우리나라로 말하면 된장찌개 백반 같은 의미의 음식입니다.

요구르트 비슷한 맛의 커스터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카레를 큰 쟁반 위에 얹어서 밥과 함께 나오지요.

때때로 난이나 짜파티를 곁들여 줄 때도 있더군요.

베지테리안이 많기 때문에 탈리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치킨, 포크, 램, 채소...

입에 맞는 것도 있지만 그럭저럭입니다.

쌀의 찰기가 없어서 숟가락으로 먹기 모다 그들처럼 손으로 조물조물 뭉쳐먹어야 더 맛이 있긴 하겠다 싶습니다.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소녀처럼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변하든 상관없이 저 꽃 묶음처럼 아이들이나 어른들의 맑고 순수함이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 가득했습니다.

와인 샾으로 맥주를 사러 가는데 아가씨가 말했어요.

- 머리핀이 참 예뻐요.

갖고 싶냐고 묻지도 않고 머리핀을 풀어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여분의 핀도 있거니와 나는 한국에서 또 살 수 있지만 그녀는 내가 주지 않으면 가질 수 없으니까요.

여행 중에 쇼핑을 하는 기준도 그것입니다.

딱 그곳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인데 맘에 들면 사는 편이죠.

소위 명품이라는 것들은 세상 어디에서나 다 살 수 있고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소수 민족이 한 땀 한 땀 손으로 수를 놓은 손지갑 하나는 오직 하나뿐인 것처럼요.

그녀는 내가 준 머리핀을 두고두고 잘 쓰리라 생각합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가는 동안 태양은 마지막 힘을 다해 빛을 발하네요.

눈처럼 하얗게 빛나는 갈대꽃,

붉은 노을을 등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새들이 호텔 창으로 보이네요.

오늘 하루, 꿈속에서도 만나질 것 같은 많은 사람들 덕에 세상에 없이 행복했지요.

조용하고 아름다운 저녁입니다.

호스펫, 이곳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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