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오비두스
포르투갈의 1월은 보통 한 달의 반이 비 내리는 기후라고 합니다.
비를 좋아하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만은 반갑지 않은 게 사실이지요.
여행을 떠나기 전 수시로 일기예보를 검색하곤 했지요.
1주일 내내 비 예보가 있을 때도 있고 내내 동그란 해가 표시되어 있을 때도 있더군요.
그런데 출발 하기 열흘 전부터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쭉 맑았으니 우리가 도착한 후 계속 비가 내리면 어떡하지? 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지요.
하지만 우리는 복이 많은가 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화창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덕분에 준비해 간 비옷과 우산은 캐리어에서 꺼내지지 않았습니다.
위의 사진 보셨죠?
저게 바로 포르투갈의 위엄 있는 하늘색입니다.
마치 그리스 산토리니를 연상시키는 저 사진은 오비두스입니다.
공기가 맑으니 햇빛이 투명하여 모든 빛깔이 빛납니다.
미세 먼지로 하늘색을 잃은 우리나라가 안타깝습니다.
오비두스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입니다.
오비두스가 맘에 들었던 디니스 왕이 결혼식 날 이사벨 왕비에게 선물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죠.
결혼 선물로 집 한 채도 거한데 마을 하나를 통째로 주다니 왕이라 다르다 싶습니다.
성벽을 따라 걸으면 주황빛 지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메인 도로의 맨질맨질 닳은 돌길이 빗물에 젖은 것처럼 윤이 납니다.
예쁜 상가들과 음식점이 즐비하지요.
그곳은 무엇보다 진자가 특산물입니다.
소꿉놀이 장난감처럼 작은 초콜릿 잔에 체리주를 따라 마신 후 잔을 먹는 게 진자(Ginja)입니다.
오비두스 집들은 벽의 모서리를 파랑과 노랑으로 색을 칠해 놓았습니다.
단지 예쁘라고 해 놓은 게 아니더군요.
그렇게 칠을 함으로써 나쁜 기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는 이유라고 합니다.
숙소는 적어도 100년은 넘었을 법한 서까래가 거실 천장을 받치고 있습니다.
키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오가며 부딪힐 정도로 낮아요.
철저한 부분 조명이라 방이며 거실 모두 스탠드뿐입니다.
어둠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지요.
우리 집 바로 옆에는 1883년부터 가업을 이어 가족끼리 운영하는 빵집 Capinha가 있습니다.
지금도 전통 방식으로 발효시킨 빵을 화덕에 굽는데요.
맛은 물론이요, 가격도 저렴하여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했지요.
우리 셋은 모두 빵을 좋아해서 어딜 가나 맛있는 빵집을 촉으로 알아내는 게 신통합니다.
빵(pão:파웅)이 포르투갈어라는 건 아시죠?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레스토랑들 대부분 브레이크 타임이었어요.
다행히 야외 테이블에서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곳을 발견했어요.
한쪽에는 반 소매 티셔츠를 입은 종업원이 숯불 앞에서 연신 고기와 생선을 굽고 있어요.
숯불에 구우면 안 맛있을 수가 없으려니 생각했죠.
식사를 할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가능한데 단체 손님이 있어서 40~50분을 기다려야 하는데 괜찮으냐고 묻습니다.
테이블 하나를 얻어 앉았습니다.
식전 빵이라도 달라고 하니 다 떨어지고 없다는 겁니다.
시장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니 참았지요.
바깔라우(염장한 대구) 구이와 포크 스테이크를 주문했어요.
짐작대로 바깔라우는 무척 짰습니다.
포르투갈 맥주 super bok를 마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샐러드와 곁들여 나온 감자튀김 접시를 싹싹 비웠지요.
기온이 높긴 하지만 포르투갈도 엄연한 겨울입니다.
그런데 온갖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어딜 가나 동백꽃이 많았어요.
마치 포르투갈의 나라꽃이나 되는 듯 동백나무가 흔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본 꽃들을 나열하면,
장미, 제라늄, 튤립, 코스모스, 수선화, 팬지, 부겐빌레아, 백일홍, 들국화, 게다가 홍매화, 목련까지 보았으니 신기할 뿐이었지요.
이름 모르는 꽃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시집 제목처럼 겨울이 꽃피는 곳이었습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 것.
현실이 미래를 잡아먹지 말 것.
미래를 말하며 과거를 묻어버리거나,
미래를 내세워 오늘 할 일을 흐리지 말 것
- 박노해 시집 "겨울이 꽃핀다." 중 (경계)
다음 날 아침 드디어 비가 뿌립니다.
우산을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일 정도의 이슬비가 멈칫멈칫합니다.
비도 만나 봐야죠.
비가 그치니 무지개가 붓질을 합니다.
오비두스에 사는 주민들은 약 3천 명, 여행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많겠지요.
그 작은 마을에 규모가 아주 큰 책방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오비두스 마을 전체 상가에서 면적이 가장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많은 책들은 언어별, 장르별로 구분되어 나무로 만든 사과 박스 같은 상자를 재활용하여 진열했더군요.
헌 책방이라는 게 더 놀랍습니다.
쥔장이 책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 알만했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물음에 얼마든지 찍으라는 대답을 합니다.
페르난두 페수아라는 포르투갈 시인이 책이 보였어요.
그가 쓴 자전적 산문집 <불안의 서, 배수아 옮김>를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 슬픈 책이기도 하지요.
좋아하는 몇 구절을 옮깁니다.
'인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하는 여인숙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이는 우리가 만든 개념이므로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예술은 우리 것이 아니면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모든 것, 즉 지나간 일들의 자취, 누군가에게 건넨 미소, 노을, 시, 객관적 우주를 의미한다.'
'나와 인생 사이에는 아주 얇은 유리 한 장이 있다.
또렷하게 바라보며 인생을 이해한다 해도, 결코 만질 수는 없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시인 페르난두 페수아는 1888년 리스본에서 태어났습니다.
시인이었지만 생전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요.
1935년 간질환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그가 낸 시집은 단 한 권뿐이었습니다.
사후 그의 집에서 발견된 원고 더미들이 꾸준히 연구되고 책으로 출간되면서 삶과 문학이 국내외에 알려졌습니다.
미출간 자료가 2만 7500장에 이르며, 아직도 국립도서관에서 분류와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하지요.
더 놀라운 것은 생전에 120개가 넘는 다른 이름, 즉 이명(異名)으로 글을 발표했다는 겁니다.
동시에 여러 공간에 존재하는 시인이었던 그는 이름만 다른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인격과 정체성의 시를 발표했다는 겁니다.
포르투를 대표하는 렐루 서점에도 그의 책들이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 보았지요.
페수아는 포르투갈의 자유이자 위로인 시인이 아닐까 합니다.
겨울이 꽃피는 곳 오비두스는 맛있는 빵, 색색의 꽃,
그리고 잊고 있던 작가 페르난두 페수아, 이슬비, 무지개가 함께 하여 더없이 아름다웠습니다.
왕비가 선물로 받았다는 오비두스는 내게도 선물이었습니다.
페수아의 말을 새깁니다.
'지금 이 순간 주의를 기울이는 일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시간을 한껏 잡아 늘이고 싶고, 아무 조건 없이 나 자신이 되고 싶다.'
아무 조건 없이 나 자신이 됩니다.
그러니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