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멋진 걸 보면 흔히 말합니다.
영화 같다고,
또는 그림 같다고...
비유이긴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하지 말고 그 자체를 인정해야 옳다는 생각입니다.
여행지를 정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보통은 유명한 박물관이나 미술품, 커다란 호수나 빙하처럼 흔히 볼 수 없는 자연을 보기 위해 찾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잉글랜드의 보튼 온 더 워터 (Bourton-on-the-water)는 뭣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조용한 시골 마을입니다.
눈이 번쩍 뜨이게 되는 특별한 볼거리도 없습니다.
유명한 맛집이 있는 것도 아니요, 역사적인 사건이나 위인이 태어난 곳도 아닙니다.
프랑스의 꼴마르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쁜 집들이 뽐내듯 모여 있지도 않습니다.
노르웨이의 플롬처럼 빙하를 보기 위해 기차와 크루즈를 타고 가다가 들르는 관광지도 아닙니다.
여기저기 할아버지 나무(노거수:老巨樹)가 너른 품새로 팔을 벌리고 있습니다.
초록의 잔디에는 설치미술처럼 꽃잎들이 떨어져 있지요.
야트막한 시냇물이 어린아이 걸음마처럼 졸졸 흘러갈 뿐입니다.
이런 풍경엔 케빈 컨(Kevin Kern)의 le jardin이 딱 어울리겠다 싶습니다.
아! return to love도 좋겠어요.
Bourton-on-the-water
주민은 고작 350여 명.
그러나 그곳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물장난을 치는 아이들의 까르륵거리는 웃음소리,
하늘에 시라도 쓰듯 잔디밭에 누워있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노닥거리는 여인들, 너 나할 것 없이 근심 걱정 하나 없어 뵈는 여행자들입니다.
그리 많지도 적지도 않게 적절한 수입니다.
작은 마을이다 보니 그곳으로 가는 대중교통은 많지 않습니다.
Moreton-in-marsh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하루에 서너 차례 운행하는 로컬 버스를 타야 합니다.
그나마 일요일에는 운행하지 않지요.
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그곳으로 이끄는 것일까요?
small talk
어떤 치장도 하지 않은 소박한 빵집의 이름은 Bakery on the water,
오래된 나무 창틀을 가진 조그만 아이스크림 가게,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위의 어머니들이 쓰시던 정갈한 찻잔과 브로치들이 유리함 속에 들어있는 코츠월드 앤티크 & 티룸, 그리고 또 하나의 small tea room이라는 이름의 찻집,
little, small 등 이름도 작고 소박합니다.
그곳은 하이 스트리트의 골목 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상점들이 최고의 볼거리일 뿐입니다.
낯선 이방인들이 더 많이 드나드는 게 성가스러울 수도 있으련만 가끔 마주치는 노인들의 미소가 파스텔을 닮았습니다.
Bakery on the water
little sweet shop
그곳엔 화려한 호텔 간판을 내 건 곳 또한 없습니다.
대신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INN, 그러니까 옛날엔 마구(말을 타거나 부리는데 쓰는 도구)를 풀 수 있는 오래된 객점이 드문드문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행자들에게 집을 빌려주고 소득을 올리는 집들이 제법 많다는군요.
그래서인지 코츠월드는 잉글랜드에서 실업률이 최저라고 합니다.
그곳에 없는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펍(pub)이지요.
잉글랜드나 아일랜드, 스코틀랜드는 어딜 가나 흔한 게 펍이지만 그 마을에는 펍이 없습니다.
해가 지면 벌써 눈에 띄게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지요.
영락없는 시골 마을입니다.
Kingsbridge Inn
The old new inn
그곳은 특이하게도 집마다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문패에는 사람이 아니라 집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코티지는 크레이그무어 (Craigmoor)입니다.
보튼 온 더 워터로 오기 전, 모레튼 인 마시(Moreton-in-marsh)에 몇 시간 머물렀습니다.
런던 패딩턴 역에서 기차를 타고 모레튼 인 마시에 내려서 버스를 타야 하니까요.
버스를 타려면 몇 시간 기다려야 했지요.
기차역 근처의 빨래방에 짐을 맡기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그 덕에 맛있는 점심 식사도 했어요.
그냥 평범한 가정 집 이름 Leven house
귀엽고 사랑스런 빨래방 간판
치즈 가게에 진열된 코츠월드 산 주류
Chanders cottage
그곳 집들의 외벽 대부분이 달걀노른자와 벌꿀을 섞은 듯한 색의 자연석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돌이었지요.
신기했어요.
게다가 좋아하는 컬러인지라 심장이 계속 두근거렸습니다.
예뻐 예뻐, 어머나 예뻐, 어쩌면 좋아...
과자 나라, 장난감 나라에 도착한 아이처럼 우리는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습니다.
띄엄띄엄 있는 버스가 차라리 고마웠지요.
그렇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테니까요.
앤티크 샵에서 쇼핑을 하고 큼지막한 올리브 절임과 수제 치즈도 샀습니다.
저녁 식탁이 좀 더 풍성해질 겁니다.
Moreton in mash의 Teahouse
Jurassic limestone house
Jurassic limestone house
Tearooms
우리가 머물 코티지 크레이그무어도 벌꿀색이었습니다.
그 특별한 색깔의 돌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했어요.
그 돌은 쥐라기 석회암 (Jurassic limestone), 코츠월드 인근 지역에서 많이 발굴된다고 합니다.
천연의 돌을 깨서 벽돌 모양으로 다듬은 후 집 짓는 데 사용한 것이었어요.
크기가 제각각 다른 돌들을 요렇게 조렇게 아귀를 맞춘 모습이 그대로 보입니다.
똑같은 모양과 크기의 벽돌을 획일적으로 쌓아 만든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요.
그러니 그곳의 집들은 기본적으로 수천 년의 시간을 머금고 있는 셈입니다.
탄탄하고 견고한 장점도 있겠지만 푸근하고 정이 어린 멋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크고 작은 자연석 벽이 아름다운 집
할머니와 손녀의 외출
크레이그무어의 지붕은 짙은 회색 돌로 만든 슬레이트를 얹었더군요.
정원이나 화단이라고 하기엔 인위적인 꾸밈이 없고,
잔디와 꽃들이 피어있으니 마당이라고도 하기도 뭣한 작은 뜰엔 보랏빛 수국, 하얀 아네모네, 으아리 꽃, 작은 장미들이 무리 지어 피어있습니다.
집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현관의 작은 처마에는 너와가 올려 있습니다.
세월을 말해주듯 거무튀튀하게 바래고 군데군데 패인 흔적도 보입니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거실에는 허리 굵기와 비슷한 나무 대들보가 천장을 가로지른 모습이 든든합니다.
커다란 다이닝 테이블에는 키가 작은 꽃병이 놓여 있습니다.
먼 데서 온 손님을 반기듯 조랑조랑 웃습니다.
그레이와 올리브 색 벨벳 소파에는 푹신한 쿠션들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베이지 톤의 중국풍 액자들이 줄 지어 걸려 있습니다.
돌이 드러나게 마감된 한쪽 벽에는 겨울을 덥혀주었을 벽난로가 있어요.
현관의 오른쪽에는 나지막한 천장의 주방이 있습니다.
주방을 지나면 오래된 그림 속의 한쪽처럼 정갈한 방이 나옵니다.
아마도 집안일을 돕던 퉁퉁한 아낙이 묵었던 방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Craigmoor Cottage 뜰
dining room
거실 창으로 보이는 뜰
2층과 3층에도 각각 두 개의 방이 있습니다.
베딩 컬러는 매우 중요합니다.
방의 인상을 좌우하기 때문이지요.
어둠 속에 눈 감고 자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금실 은실로 짠 침구에 화려한 꽃무늬라면 실망했을 터입니다.
순백의 시트와 이불이 우아하고 기품 있게 갖춰져 있습니다.
라이트 브라운 서랍장위엔 라이트 그레이 스탠드 한 쌍이 올려져 있고 그 사이엔 작은 쿠션이 놓여 있습니다.
그 쿠션엔 레터링이 있습니다.
'sail into your dreams'
한참 동안 그 문구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더군요.
그게 뭐라고, 사소한 문구 하나에 감동이 밀려옵니다.
마치 큰 대접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주인의 안목이 돋보이는 부분은 또 있었습니다.
화이트 컬러의 욕조와 수전은 독일 명품 듀라빗(Duravit)의 제품이고 세면대 거울 앞에는 초록색 에르메스 어메니티가 줄 지어 서있습니다.
이쯤 되면 호텔의 스위트룸 부럽지 않습니다.
잠시 구경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집에서 2박을 하게 된 것이 감사했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뭔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요, 할 수만 있다면 남은 세월을 그곳에 묻고 싶었습니다.
코츠 월드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cot(양) wold(우리), 즉 양들의 우리가 있는 언덕이라는 뜻과 Cod(인명) wold(고어로 숲), 코드 씨의 숲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답니다.
바이버리 지역엔 양들을 키우던 목조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하니 나는 전자에 무게를 둡니다.
Moter Museum이 있습니다.
박물관이라는 타이틀이 거창하다 싶지만 개인이 수집한 올드카, 장난감 자동차, 자동차 관련 표지판 등이 전시되어 있지요.
그리고 Bourton-on-the- water를 1/9 사이즈로 축소해서 만들어놓은 모델 빌리지가 있습니다.
모델 빌리지의 집들 역시 모두 코츠월드의 돌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지역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 1937년에 오픈했는데 집 하나 만드는데 최소한 12달이 걸렸다고 합니다.
유명 관광지를 축소해서 민어처로 만들어 놓은 곳은 많습니다.
하지만 디테일로 따지자면 그곳이 최고더군요.
빵집이며 우체국, 개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묵고 있는 코티지를 찾을 수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더욱 놀라운 것은 현재의 이 마을이 모델 빌리지와 거의 같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1937년 이후에 새로 지은 집이 거의 없고 그때 그 모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새마을 운동이라는 미명 아래 사라진 초가집, 기와집들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대문은 물론이요. 사립문, 정지로 들어가는 문, 창호지 문도 모두 사라졌으니까요.
원래 계획은 다음날, 버스로 30분 떨어져 있는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에 위치한 바이버리(Bibury)와 스토 온 더 월드(Stow on the world)에 가보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 어디를 간다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그 말처럼 말입니다.
친구들도 다르지 않았고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야말로 '쉼'입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시냇물에는 오리들이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은 작은 아이가 핑크 색 원피스를 입고 다리를 건너갑니다.
그 아이가 소녀가 되고 숙녀가 되면 그 아름다운 순간을 추억하겠지요.
그 정경에서 '평화'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평화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왠지 평화는 '전쟁과 평화' 같은 표현에 어울릴법한 단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끝내 평화를 대신할 말을 찾지 못했지요.
때때로 그런 단어가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그 말을 대신할 수 있는 표현이 뭐 없을까?
peace나 happiness의 어감이 차라리 부드럽군요.
부드럽고 따뜻하며 식상하지 않은 다른 우리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always tell the truth
call home
love each other
keep your promises
practice kindness & compassion
laugh out louder
use kind words
don't be afraid to ask questions
be thankful
do your best
smile
say I love you
help each other
listen to your parents
live your life without regrets
forgive & forget
try new things
say I'm sorry
have patience
hug often
use kind words
believe in yourself & dream big
코티지의 콘솔 위에 놓인 family rules.
어느 하나 공감되지 않는 말이 없더군요.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봅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듣기만 해도 가슴 한편이 싸해지는 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말,
가족.
고적하여 생각이 많았던 곳,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던 곳,
그리고 오롯 쉼의 공간이 되었던 보튼 온 더 워터가 그립습니다.
Family Rules
Bourton on the water의 저녁
전나무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