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세투발
'여기 가보는 게 어때?'
친구 M이 말했습니다.
포르투갈의 지도를 보고 찾은 세투발은 리스보아에서 가까운 도시입니다.
기차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가격이 저렴한 버스를 택했습니다.
그곳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떠났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닮은 다리를 건너갑니다.
강폭이 10km나 되기 때문에 바다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만 그건 테주강입니다.
테주 강은 타호 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스페인 중부에서 서쪽으로 흘러 대서양으로 들어갑니다.
강의 길이가 1,008km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최장이라고 해요.
이 넓은 강을 가로지르는 긴 다리의 이름은 '4월 25일 다리'.
1966년에 완공된 이 다리는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 혁명을 기념하여 붙여졌다고 합니다.
낙백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넋을 놓는 것' 또는 '처지가 형편없어진'의 뜻입니다.
세투발은 그 낱말이 떠오른 곳이었습니다.
낡은 시간, 버려진 시간들이 도란도란 고여 있더군요.
골목 어귀를 돌아서거나 언덕을 오르는 동안에도,
온갖 쇄미한 것들이 내 발을 붙잡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가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요.
'에이~ 볼 것도 하나도 없네, 괜히 왔어'
'쓰러져가는 집만 잔뜩 하고 지저분해'
나는 왜 오래된 것들에 넋을 놓는지 모르겠습니다.
낡고 깨지고 녹슬고 부서진 것들이 토해내는 빛깔이 아름다웠습니다.
점심을 먹고, 잠시 비를 긋던 시간을 제외하면 3시간 남짓 머물렀을까요?
700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뭔가에 홀린 게 분명합니다.
빈 집이 오래된 시간을 보듬으며 무인도처럼 띄엄띄엄 떠 있습니다.
비둘기와 갈매기들이 빈 창틀을 프레임 삼아 주인 대신 지키고 앉았네요.
기형도 시가 생각납니다.
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세투발에 도착해서 처음 눈길을 끌었던 집입니다.
처마가 우리나라 기와지붕을 닮았어요.
처마 끝을 올리는 이유는 햇빛이 더 많이 들게 하려는 뜻이라고 하지요.
지붕 아래 외벽의 아줄레주가 특이합니다.
아마도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인가 봅니다.
포르투갈에는 위인이나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의 이력이나 생애를 아줄레주로 만들어 붙이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 엄마, 그리고 딸의 초상이 각각 열두 장의 아줄레주 타일로 세 군데 벽에 붙어 있습니다.
그 가족은 얼마 동안 그곳에 살았을까요?
집안일을 돌보았던 집사와 하녀들은 어느 곳으로 흘러 들어갔을까요?
금이 가고 떨어져 나가고 부서져버린 집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 아줄레주 속 주인공들의 눈은 아직 살아있는 듯 보였습니다.
바닷가 바위에 앉아있는 남자는 신사복을 잘 차려입었습니다.
단정하게 청색 블라우스를 입은 단발머리 소녀의 눈매가 총명해 보입니다.
엄마를 닮았어요.
각각 다른 크기와 모양으로 멋을 낸 유리창에는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색 유리도 보입니다.
꽤 공을 들인 집이라는 걸 알 수 있지요.
오래된 도시의 골목에는 뼈만 남아 있는 빈 집이 많습니다.
그곳에도 행복한 웃음소리가 자란자란 흘러나온 때가 있었을 테지요.
아기의 놀소리가 들려오기도 하고 주방 집기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들렸겠지요.
창틀에 걸린 제라늄에 물을 주고 새로 짠 레이스 커튼을 바꿔 달기도 했을 겁니다.
오래된 시간을 견뎌오면서 만들어진 색깔은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만들지 못합니다.
햇빛과 비와 바람이 빚어 놓은 벽이고 문입니다.
낡음이 빛나는 건 자연스러워서입니다.
모든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에서 시작합니다.
일부러 만들어 낸 것이 아니어서입니다.
단순한 색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시간을 발 밑에 묻고 만든 상처입니다.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에 삭아버린 핑크빛 페인트칠을 한 벽에 세 개의 창이 있습니다.
하나는 닫혀있고
또 하나는 커튼을 내린 채 열려있고
나머지 하나는 유리가 깨져 있습니다.
'타인의 취향'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매 순간, 끊임없이 선택하면서 살아갑니다.
즉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라고 정의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무의식의 기재가 바로 취향입니다.
취향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요?
타고나는 것도 있고 부모나 집안의 분위기로 인한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취향에 수준이 있을까요?
취향은 수준의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단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수준이 높고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수준이 낮은가요?
빨간 바지를 즐겨 입는 사람과 검정 셔츠를 즐겨 입는 사람의 수준을 높고 낮음으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단지 취향일 뿐이죠.
취향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생깁니다.
성격, 경험, 감수성 그리고 주변에서 늘 봐오면서 익숙해진 안목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합니다.
시간마저 낡아버린 듯한 집이나 벽, 빛바랜 문과 창틀을 보면 환호하는 나의 취향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값이 비싸고 싼 것을 떠나 반짝이는 보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공하지 않은 투박한 돌이 좋습니다.
유행을 따르지 않는 옷이 좋습니다.
처음 입어도 10년 된 듯한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이 풍기는 옷을 좋아합니다.
오래 입어서 소맷부리나 깃이 헤진 듯한 것에 손이 갑니다.
아크릴이나 스틸 액자보다 길거리 벼룩시장 모퉁이에 무심하게 놓여있는 낡은 액자가 더 좋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노래보다 오래된 음악을 좋아합니다.
유럽을 좋아하는 이유는
오래된 집과 빈티지한 가구 때문입니다.
중세 시대의 고풍스러운 의상이 갖고 있는 컬러들이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럽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컬러를 좋아하는 거군요.
이런 것들이 나의 취향입니다.
혹자는 내게 말합니다.
'왜 만날 이런 무너져가는 집을 찍어? 근사하고 멋진 것을 찍어봐'
이 말은 옳지 않습니다.
내 취향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삭아서 뜯어져 버린 방충망을 실로 투박하게 꿰매 놓은 게 구질구질해 보이지 않고 정스럽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쓴 흔적이니까요.
옷을 만들어 입고 싶을 만큼 낡은 벽이 예쁩니다.
허물어져 가는 지붕 위, 녹슨 담벼락 앞에도 풀꽃이 피어있습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라던 함민복의 시가 생각납니다.
꽃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 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이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의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 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사라지리라
깨진 유리창의 안쪽에 나무판자를 덧대놓은 창이 많습니다.
유리가 많이 비싼가 봅니다.
주황 기와에 초록 이끼가 세 들어 삽니다.
그 덕에 기와들은 포근해졌을 겁니다.
슬레이트 지붕 군데군데에 함석을 덧대어 기웠습니다.
저 집에서 빗소리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소리가 궁금합니다.
비대칭의 지붕과 다락방의 작은 창
언밸런스한 창문
한 동안 이 집 앞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어느 화려한 궁전보다 더 정감이 넘치는 집입니다.
이런 집에 세 들어 지치도록 살아보고 싶습니다.
주황색 기와에 핀 이끼와 집 앞에 새워둔 초록색 트럭의 보색이 온기를 줍니다.
발코니의 철재 망 하나하나의 모양이 모두 다릅니다.
핑크색 벽면에 노랑과 파랑 문틀이 무너져가고 있어도 아름답습니다.
코랄색 페인트로 말끔히 칠하고 흰색 창틀을 가진 집이 아름답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그 옆 지붕에 초록 풀이 자라고 있는 와인색 벽의 집이 내 눈엔 더 멋져 보인다는 얘깁니다.
그게 내 취향이니까요.
테이블이 대 여섯 개 밖에 안 되는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지성미가 물씬 풍기는 중년 남자들이 식사를 하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테이블을 넘어오지 않았습니다.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았음에도 거의 들리지 않았으니까요.
젊은 부부가 꾸려나가는 음식점이었습니다.
남편은 요리를 하고 부인은 서빙을 합니다.
포르투갈 레스토랑은 스테이크의 굽기 정도를 묻지 않더군요.
거의 핏기만 가신 수준의 고기가 나왔습니다.
미안하지만 더 구워 달라고 요청하니 스스럼없이 당연하다는 듯 접시를 가져갔지요.
얼굴 가득 미소를 담고서요.
하지만 좀 더 익혀 나온 것도 역시 레어,
하나도 못 먹고 고스란히 남기기보다는 한 번 더 부탁하는 게 낫겠다 싶었지요.
드디어 우리가 원하는 정도가 완성되었습니다.
게다가 맛이 훌륭했어요.
수프도 고소하고 고기의 간도 좋고 진한 커피도 향기로웠습니다.
그런데 값은 더 훌륭합니다.
음료를 포함한 그 모든 것이 1인분에 8유로, 약 만원이었으니까요.
세투발이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었습니다.
여기도 팝니다, 저기도 팝니다.
매물이라는 뜻의 Vende se라는 표지가 붙어 있는 집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곳을 떠나는 걸까요?
세투발에 집 하나 사면 좋겠습니다.
해묵은 아름다움은 고상한 품위가 있습니다.
가볍지 않아 더 믿음이 갑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나이듦에 아쉬움을 가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시간은 버려지지 않습니다.
낡은 시간이라는 건 없습니다.
세월이 빠르다고 한탄하지 말 일입니다.
시계를 10분만 들여다보면 압니다.
시간이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하게 지나가고 있는지를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는 옛말처럼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하지 않고 탓만 할 일이 아닙니다.
노인들이 낡은 집을 지키고 살아가는 세투발, 그곳에 머물렀던 한 나절이 행복했습니다.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요.
골목에서 간간히 만나지는 사람은 할머니나 할아버지,
지나가던 아저씨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 할머니랑 사지을 찍는 건 어때요?
수줍으면서 기뻐하는 키 작은 할머니와 무릎을 굽혀 키를 맞춰주는 M을 찍었습니다.
아~ 그 노랫말은 옳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