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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22. 2024

모히토, 의식의 흐름대로?

24. 모노폴리(Monopoli)






음악에 모노포니(monophony)라는 용어가 있다.

모노는 하나의, 포니는 그리스어 'phonos'에서 유래한 말로 '소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모노포니는 소리가 하나인 단성음악, 즉 하나의 선율(성부)로만 된 음악을 말한다.

서양음악의 모노포니는 대부분 그레고리안 성가이다.


모노포니를 연상시키는 모노폴리(monopoli) 역시 그리스어 모노스와 폴리스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독특한 단일 도시라는 뜻이다.


기차역에서 해변이 있는 방향으로 걷고 있는데 근사한 테너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근처에 음악학교가 있나?'

하며 살펴보니 학교 이름이 붙은 명패가 보였다.

<모노폴리 '리노 로타' 음악 학교>

<Conservatorio di Musica di Monopoli "Nino Rota" >








아마도 레슨 중인지, 연습 중인지 노래는 끊어지고 이어지고를 반복한다.

출입문을 지나려는데 작은 홀이 보여서 들어가 보았다.


'혹시 여기서 커피 마실 수 있나요?'

'네~'


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아가씨가 상냥하게 대답을 했다.

교내 카페의 인테리어가 소박하고 심플하다.

커피 2잔과 마말레이드 파이가 4.5유로, 학교라 역시 저렴하다.

음악 소리가 들리길 기대했지만 그곳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곳 니노 로타(Nino Rota) 음악원은 바리에 있는 니콜로 피친니(Niccolò Piccinni) 음악원 부속 중등학교로 설립되었고 미술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자 작곡가인 니노 로타의 이름을 붙인 것이라 한다.



 






모노폴리의 역사지구 역시 성당과 유적들이 모여있는데 외관으로 볼 때 무척 오래된 느낌이다.

주세페 가리발디광장에는 카페와 젤라토 가게가 있지만 폴리냐노 아 마레처럼 북적이지 않았다.

웅장한 건축물이나 기념물이 없어도 우아함과 고상함을 품고 있다.

역시나 내 시선을 사로잡는 건 낡고 오래되어 바래고 때 묻은 벽이 머금은 세월의 흔적이다.


그 중심에는 가톨릭 대성당인 마돈나 델라 마디아 대성당(Basilica of the Madonna della Madia) 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은 성당의 건축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지붕을 지탱할 들보를 세울 양질의 목재가 바닥이 나서 공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사제는 매일 성모 마리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올렸고 1117년 12월 16일 밤, 꿈에 마리아가 세 번 나타나 다음 날 항구에 도착할 것을 알렸다.

꿈을 꾼 주교는 모노폴리 시민들과 항구에 모여 마리아의 말씀을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31개의 거대한 통나무를 실은 바지선이 마법처럼 나타났다.

그렇게 거짓말처럼 나타난 뗏목에서 나온 목재는 모노 폴리 대성당을 완성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성당 내부의 벽에는 항구로 떠오른 뗏목을 묘사하는 프레스코화가 남아있고 지역 주민들은 1년에 두 번, 거리를 행진하는 축제를 연다고 한다.










바다가 열리는 곳에 카스텔로 디 카를로 5세(castello di carlo v monopoli)가 지은 요새가 보였다.

수많은 해적선과 스페인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지어진 이 성은 결국 마을의 일부분과 함께 스페인에 의해 점령되었다.

그 후 스페인은 군인과 가족을 수용하기 위해 성을 확장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감옥으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회의 및 전시 센터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해변으로 들어서자 중국의 변검처럼 분위기가 확 바뀌어 온통 하얗다.

해안선에는 마치 백설기 같이 네모진 직육면체의 돌들이 불규칙적으로 놓여있는데 그것이 방파제 효과를 위해서 일부러 가져다 놓은 것인지 자연적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바위에는 간간히 선탠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잠을 자거나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다.














마치 그리스를 연상시키는 새하얀 건물에 루프탑 테라스라는 글씨와 함께 화살표 표시가 보였다.


'우리 저기 올라가서 음료 한잔 할까요? 주변 경치가 보일 것 같은데... '

'자네가 간다면 나는 어디든지 좋아, 비행기가 추락해도 옆에 있으면 하나도 안무서울 것 같다니까.'


뭐든 믿어주고 공감해 주는 BB에게 감사하다.

테이블과 의자 파라솔까지 온통 화이트에 아쿠아 블루 컬러의 무늬가 있는 쿠션으로 포인트를 준 바는 마치 포카리 스위트 광고 배경처럼 청량했다.











그곳은 5성급 호텔인 로칸다 돈 페란테(Locanda Don Ferrante)에 속한 바(Bar)로 꽤 고가다.

여행 중, 저녁 식사를 할 때는 거의 위스키를 즐기지만 낮에는 술을 피한다.

그런데 왠지 그곳에서는 술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스카치나 코냑보다는 칵테일이 좋을 것 같다.

칵테일을 즐기지는 않지만 해변에서는 가끔 모히토를 마신다.

그린 올리브와 감자칩, 그리고 풀리아 지방에서 즐겨 먹는 동그란 과자 타랄리가 먼저 서빙되었는데 하나하나 모두 맛있다.

비싼 가치가 있다.

모히토를 한 모금 마시자마자 갑자기 선명하게 떠오르는 곳이 있다.


인도의 남부 고아(Goa)라는 지역에는 수많은 해변이 있다.

그중 깔랑굿(Calangute)에 이어 안주나(Anjuna)라는 비치에 갔을 때다.

그곳에 이바(Eva)라는 이름의 야외 카페가 있는데 독특한 인테리어와 세련된 여주인이 아직도 눈에 선한 곳이다.

거기서 마셨던 모히토가 단박에 떠오르는 맛이었다.

그 말인즉슨 지금까지 마셔본 중 최고였던 이바 카페의 모히토와 거의 같은 급으로 입에 맞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방이 뚫린 공간인 루프탑에는 에어컨이 있을 리 만무, 태양은 파라솔을 넘어 다리 위로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급기야 얼굴까지 붉게 물들었다.

그래도 한잔 더 마시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가끔 옛글을 읽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떠오르며 마치 시간 이동을 하는 듯하다.

이바는 지금도 그곳에 있을까?

'안주나 비치의 보석 Eva Cafe' 일부를 소개한다.









근처에서 숙박을 한다면 몇 날 며칠이고 찾아갈 것만 같은 예쁜 카페를 발견했습니다.     

'Cafe Eva'     

맨 위 사진에 발찌를 주렁주렁 매단 맨발의 주인공이 바로 카페의 쥔장 이바예요.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진 안락의자,

면으로 만들어진 얇은 방석이 놓인 낡은 나무 의자,     

크기와 모양이 다른 면실로 짠 레이스 테이블보가 여기저기 놓여있고 하얀 회 칠을 한 작은 화분 세 개,     

리넨 천 조각 위에 올려진 하얀 조개껍데기 하나,

무채색 파라솔과 대나무로 짠 벽걸이에 걸린 작은 사진들,     

모든 디스플레이와 소품들이 하나하나 너무 아름다워 눈길을 뗄 수가 없었지요.    

   

아라비아해를 바라보는 탁월한 위치와 앤티크 한 인테리어,

맛있는 음식과 마실 거리까지 갖춘 그 분위기는 어느 것 한 가지도 부족함 없이 맘에 딱 드는 곳이었어요.          

게다가 모히또는 이제껏 경험한 마실 것 중에 단연 최고였습니다.     

럼주와 라임즙을 베이스로 민트 잎이 들어간 모히또는 스페인 술이지만 몰디브나 중남미에서도 많이 통용되는 칵테일이지요.     


바다에 부서지는 햇빛은 보석보다 더 반짝이고 간간히 까마귀가 처마 끝에 날아와 깍깍거리며 살랑거리는 바람과 새콤 시원한 모히또 한 잔에 몸은 벌써 최고의 릴랙스 타임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카페 옆에 오두막 같은 작은 집에서 나온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남자가 이바의 룸메이트,     

안주나에 여행 왔다가 그곳이 너무 맘에 들어 아주 눌러앉게 된 이바는 프랑스 사람이었어요.     

물론 생계를 위해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템들을 예쁘게 꾸미고 작은 소품과 셔츠를 판매하며 여행자들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그녀가 한층 멋지고 아름다웠습니다.     

심지어 화장실까지 예쁘더군요.     


맘 같아선 두어 시간 후면 보게 될 석양 때까지 앉아있고 싶었지만 워낙 협소한 공간에 테이블은 많지 않고 손님은 많은 터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어서야 했지요.     

그곳에 앉아있던 1시간 반은 그야말로 힐링 타임이었고 모히또를 마실 때마다 그곳이 생각날 것을 예감했습니다.       









막내 MH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자, 언니들~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 있어? '의식의 흐름대로' 그냥 그렇게 가보자고요.'


'의식의 흐름대로' 라면 모히토를 한 잔 더 마셔야 하는 걸까? 그만 마셔야 하는 걸까?


솔직히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내 기준대로 말하자면 마음은 한잔 더~, 하지만 머리는 노!

이럴 때 나는 대부분 이성을 택한다.

그날 역시 그랬다.

'의식의 흐름대로' 그것 참 어려운 말이다.


폴리냐노 아 마레에서 바다 수영을 하고 있는 자매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마테라 가는 버스 티켓 예매하려고 하는데 자매님들은?'

'언니, 우리는 내일도 여기 오고 싶어. 우리는 폴리냐노 기차표로 부탁해.'

'그래? 내 생각에는 여기 모노폴리도 한가하고 수영하기 좋아 보이는데 한번 와보는 게 어때?

카라 포르타 비앙코 베키아(Cala Porta bianco Vecchia)라는 작은 해변이 있는데 자갈이 아니고 모래라 좋아 보여. 더구나 해변 근처에 레스토랑도 많아서 편할 것 같고...'

'아~그래 언니? 그러면 우리는 내일 모노폴리로 갈게.'

'오케이, 알았어.'


마테라행 버스와 자매들 기차 티켓을 예매한 루프탑에서 내려오는데 2층에서 낯이 익은 얼굴이 보였다.


'실례합니다. 혹시 저를 기억하세요? 어제 로코로톤도에서 만났지요.'

'아! 기억하지요. 여기서 또 만났네요. 반가워요.'

'세상 참 좁네요.'


그녀는 어제 로코로톤도의 카페에서 만났던 리였다.

동행한 남자와도 서로 인사를 나누고 반가움을 전하며 자매들은 지금 바다에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기차가  폴리냐노 아 마레에 도착했을 때 수영을 하고 온 듯한 젊은이들이 우르르 올랐다.

젖은 머리카락은 부스스하고 쇼트에 티셔츠 한 장 걸쳤을 뿐인데 빛이 난다.

젊음이란 저런 것이구나 싶다.

나도 저 시절이 분명 있었는데 그때는 빛나는 걸 모르고 지났다.


한 철학자가 말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제거하면 행복할 수 있다고...

늙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젊을 수 없는 법,

나는 내일보다 젊다.

그러니 매일 젊다.


그날 저녁, 자매들이 그들의 숙소로 저녁 식사 초대를 했다.

아가미 한껏 열린 SH는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스테이크, 해산물 가게에서 사 온 갑오징어 숙회, 루꼴라로 만든 겉절이, 해물 순두부탕 등 근사하고 푸짐한 저녁 식사 테이블을 완성했다.

먹고 웃고 마시고 또 하나의 저녁이 저물었다.


남아있는 나흘의 여행도 해피 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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