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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하던 오지랖의 이유

누군가를 이렇게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 했는데

by 휠로그 Mar 13. 2025

며칠 전 SNS에서 안타까운 글을 봤다. 요즘 유행하는 웨딩 '아이폰 스냅' 업체 사장님의 사연이었다. 소속된 작가가 본식 당일에 늦잠을 자서 지각을 하는 바람에 약속돼 있던 조기 촬영을 놓쳤다는 것. 해당 사장님은 마침 식장 근처에 거주해서, 부랴부랴 현장으로 가서 본인이 촬영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사과는 물론, 그 결혼식과 상관 없는 익명의 사람들에게까지 사과를 하고, 해당 커플에게는 보정본 무상 추가와 전액 환불로 사과의 뜻을 전했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그 사장님이 더 걱정됐다. 이상했다. 일면식도 없는데. 내 가슴이 울렁거렸다. 자영업이라는 비슷한 입장 때문이었을까. 정상적으로 진행돼도 무슨 소릴 들을지 모르는 게 웨딩.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니.


사실 회사에서 직원의 입장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봤다면, 큰일이긴 하겠지만 점심시간에 혹은 커피를 마시며 삼삼오오 모여 '야 걔 그랬대' 하는 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직원이 걱정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이런 사건에 대한 감정의 농도가 다르다는 거다. 


그런데 사장님이라면 진짜 하늘이 노래진다고 해야 할지 하얘진다고 해야 할지. 감히 헤어리기가 어렵다. 앞으로 평판은 어쩌나, 당장 내일부터 예약을 취소한다는 이야기가 들어오면 어쩌나 온갖 부정적인 시뮬레이션이 돌아간다. 최악의 경우에는 사업을 접고 이뤘던 모든 걸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공황 발작이 안 생기는 게 이상한 일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댓글을 썼다. 사장님 잘못만이 아니다. 사람 못 믿어서 사장님이 혼자 다 한다는 것도 시스템적으로 해결법이 아니다. 푸시 알림이든 대기 작가를 미리 선정해 놓든 시스템적인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되도 않은 오지랖을 떨었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다만 요즘 워낙 흉흉한 소문이 많이 도는데다, 넓게 보면 비슷한 업종이라 그런지 이 사장님이 심리적으로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그런데 몇 분 뒤, DM이 왔다. 해당 업체의 사장님이었다. 위로에 대한 감사였다. 그런 말을 들으려고 했던 게 아닌데 당황스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다행히 DM에 나온 프로필 링크를 가보니 성격 자체가 긍정적이고 밝은 분인 것 같았다.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았겠지만 회복 탄력성이 좋아 보이는 분이었다. 


대화를 마무리하고 나자 내가 맥이 탁 풀렸다. 왜 이렇게나 나에게 일어난 일 같고, 내가 위로하지 않으면 안 될 일처럼 느껴졌을까?


사실 위로의 메커니즘이란 게 그런 것 아닐까 한다. 으스러지도록 껴안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은 대상이 사실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라는 걸. 그리고 그런 위로를 전해 주고 싶은 사람이 보인단 건, 누구보다 자신이 위로를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갑자기 나의 모습이 와락 덤벼들었다. 근래 신변에 일어난 변화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에게 생의 의지에 대해 심문했다. 일부러 험한 일도 골라서 해보고 아침마다 푸쉬업을 하고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백팔배를 하고, 금강경을 듣고, 성경 말씀을 듣고, 약사여래본원경을 듣고, 고양이를 생각하고, 아빠를 생각하면서도 그 사이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물음이 내 삶의 의지를 시험했다. 인과와 생각의 흐름을 재구조화하는 것이 우울증을 초기에 잡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해보려 하지만 무릎에 힘이 풀렸다. 


후회란 걸 안 하고 살아 본 사람인데, 요즘 그런 후회가 들 때가 있었다. 내가 과연 배우자가 있었다면 이렇게 무너졌을까. 혹은 반대로 이런 상황으로 인해 나쁜 결과가 일어났을까. 어느 쪽이든 지금의 결과가 됐을까. 그러면서 2010년 무렵, 놓쳤던 인연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분만큼 내게 진심이었던 분을 그 이후에도 만난 적이 없다. 그렇게 좋은 분인 까닭에 지금은 좋은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말할 수 없이 답답해졌다. 삶에서 지나가는 행인의 얼굴만 봐도 즐거운 시절과, 태어난 것 자체가 형벌이 아닐까 하는 순간은 반복된다지만, 막상 후자의 시기에 들어서면 아무리 객관화를 하려고 해도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아끼던 물건 하나를 팔았다. 약간은 물활론자 기질이 있어서 팔기 전에 그걸 끌어안았다. 울지는 않았는데 울기 전의 신체 증상, 몸이 덜덜 떨리도록 춥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증상이 나타났다. 정신을 차리고, 렌터카 옆자리에 태워 중고 거래 장소까지 마음을 가다듬고 갔다. 그리고 돌아온 방에서는 그 물건이 있던 빈 자리가 눈에 가장 크게 띄었다. 앉으면 무릎이 꿇어질 것 같았고, 무릎을 꿇으면 정신없이 울 것 같아, 어제 하루는 앉지 않았다. 고된 일을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부러 웃었다. 살갑게 굴려고 했다. INFP 주제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도 잘 걸어보려고 했다. 


그펄 필요는 없는데, 곤경에 빠졌던 아이폰 스냅 사장님에게 썼던 댓글을 다시 찾아서 읽어보았다. 


그건 분명히, 나에게 쓴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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