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퐁고, 오지 마을에서의 생활 시작

06

by 비주류여행자

다시 짐을 쌌다


루사카에서의 달콤한 2박 3일을 보내고 다시 치탄타로 돌아왔다. 도시의 공기와 시골의 공기는 확실히 달랐다. 루사카에서 먹었던 프라이드치킨의 바삭함과 청량한 콜라의 탄산감, 물을 데우지 않아도 온수가 펄펄 나오던 샤워기, 밤에도 완전히 꺼지지 않던 도시의 불빛이 아직 몸에 조금 남아 있었다. 그런데 시골로 돌아오자 그런 감각은 금세 사라졌다. 다시 흙길이었고, 밤에는 손전등 없이는 움직이기 어려웠다. 그렇게 다시 시골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치탄타는 내게 처음부터 ‘정착지’라기보다 '중간 기착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잠깐 머물며 교육이나 회의를 하고, 숨을 고른 뒤 다시 더 깊은 시골로 들어가 활동하는 식이었다. 루사카에서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또다시 짐을 싸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번 목적지는 더 깊은 시골 마을, 이퐁고(Ipongo)였다.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어차피 시골 마을 이름 하나 더 추가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치탄타도 충분히 시골이라고 느끼고 있었으니, 그보다 얼마나 더 다를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늘 그렇듯 직접 들어가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길은 멀지 않았지만,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나는 짐을 싣고 픽업트럭에 올라탔다. 거리는 70킬로미터 남짓이었다. 숫자만 놓고 보면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길은 비포장 흙길이었다. 차는 앞으로 나아갔지만, 몸은 계속 튕기고 흔들렸다. 조금만 방심해도 허리가 들썩였고, 손잡이를 쥔 손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포장도로 위의 70킬로미터와 비포장 흙길 위의 70킬로미터는 전혀 다른 거리였다.


얼마 가지 않아 창밖으로 전봇대가 사라졌다. 누군가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전기가 없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풍경이 달라 보였다. 길가의 풀과 나무,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 어슬렁거리는 닭과 염소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전봇대가 사라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곳은 갑자기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선 하나가 여기서 끊긴 듯한 기분이었다.


한참을 더 달리다 잠시 쉬어 갔다. 그곳에는 학교 건물 하나가 서 있었다. 흰 벽 한쪽에는 자전거 그림과 함께 영어 문장이 적혀 있었다. NO BICYCLE PACKING HERE. 아마 자전거를 세워두지 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PARKING이라고 써야 맞겠지만, 아프리카식 영어 발음대로 적은 듯했다. 철자 하나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고, 이는 묘하게 그곳과 잘 어울리는 문장이었다. 어설프지만 뜻은 분명했고, 바로 그런 점이 그 시골의 현실을 더 또렷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말했다. 이제부터는 핸드폰도 안 터진다고. 그렇게 흙길을 더 달린 끝에, 출발한 지 세 시간쯤 지나서야 겨우 이퐁고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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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어간 학교 건물



이곳엔 정말 아무것도 없겠구나


이퐁고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더 거칠어졌다. 차가 한 번 크게 흔들릴 때마다 몸도 함께 들썩였다. 길가에는 키 큰 풀이 바람에 흔들렸고, 멀리 낮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었다. 풍경만 놓고 보면 평화로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의 내 감정은 감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곳엔 정말 아무것도 없겠구나.


그 무렵의 나는 이미 조금은 배운 상태였다. 시골 사람들이 자주 하던 말, “better than nothing”이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없는 것보다 작은 무엇이라도 있으면 다행인 삶. 샴푸 하나를 구하기도 어렵고, 전화 한 통 걸기 위해 몇 시간을 움직여야 할 수도 있고, 밤이 되면 세상이 정말 그대로 꺼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번에는 처음 잠비아에 왔을 때처럼 막연하게 낙관하지 않았다. 대신 몸이 먼저 긴장했다.


치탄타에서의 생활이 내 기준을 조금 바꿔놓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오지 생활에 강해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외부인이었고, 도시의 기준을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불편 앞에서 쉽게 지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터야만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2주가 지나갔다.



가게 하나, 펍 하나


이퐁고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인상은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평온하다기보다는, 애초에 소리가 날 이유가 많지 않은 곳의 정적에 가까웠다. 지나가는 차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도 도시처럼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흙길 주변으로 몇 채의 건물과 집들이 띄엄띄엄 서 있었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천천히 오갔다.


마을 한쪽에는 큰 나무 아래 초가지붕을 얹은 둥근 쉼터가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낡은 흰색 건물이 서 있었다. 벽에는 희미하게 SIMS PUB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저 초가지붕 아래 공간이 단순한 쉼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일대가 바로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시간을 보내는 중심이었다.


낮의 이퐁고는 조용했다. 하지만 밤이 되면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람들은 펍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전기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생각했는데, 배터리를 연결해 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고, 술을 마시고, 몸을 흔들었다. 시골의 밤은 고요할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은 그렇게 또 한 번 빗나갔다.


가게도 하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가게’와는 거리가 멀었다. 문 여는 시간도 일정치 않았고, 어떤 날은 물건이 없어 장사를 안 하기도 했다. 비누, 담배, 성냥, 소금, 설탕, 양초, 술 같은 자잘한 물건 몇 가지가 놓여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그래도 그것이 마을의 중요한 생활 중심이었다.


그 순간 나는 묘한 안도감과 절망을 동시에 느꼈다. 그래도 가게가 있긴 있구나. 그런데 정말 이게 다구나. 시골에서는 이런 감정이 자주 겹쳐서 왔다. 없을 줄 알았던 것이 있으면 반갑지만, 막상 보니 너무 적어서 다시 막막해지는 식이었다. 기대치가 워낙 낮아져 있으니 작은 것에도 안도하게 되는데,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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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중심에 있던 술집



큰 나무 아래 첫 회의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은 나를 큰 나무 그늘 아래로 데려갔다. 남자들과 여자들, 아이를 안은 엄마들까지 하나둘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풀밭에 앉았고, 누군가는 다리를 펴고 비스듬히 기대앉았다. 자전거는 나무에 기대어 있었고, 멀리 학교 운동장 같은 공터에서는 아이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 장면은 생각보다 훨씬 평화로웠다. 동시에 나는 그곳에서 너무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나만 모든 것이 달랐다. 얼굴도, 말도, 옷차림도, 그 마을에 서 있는 방식까지도.


회의는 간단한 소개 자리였다. 누가 나를 데리고 왔는지,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 설명하는 자리였다. 치탄타에서도 이런 식의 첫 만남은 자주 있었다.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사람들은 일단 모여 앉아 얼굴을 확인하고, 말을 나누고, 분위기를 살폈다. 하지만 이 회의는 단순한 설명 자리가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마을이 나를 한 번 훑어보는 시간이었고, 나 역시 이 마을을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뜻밖의 춤사위


그런데 회의는 내가 예상한 방식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오간 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누군가 박자를 만들기 시작했고, 손뼉이 이어졌다. 몇몇은 웃으며 몸을 흔들었고, 사람들은 원을 그리듯 둘러섰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도 그 안으로 끌려 들어가 있었다. 말하자면, 느닷없이 춤을 추게 된 것이다.


나는 원래 사람들 앞에 나서서 춤을 추거나 분위기를 주도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자리를 몹시 어색해하는 쪽에 가깝다. 한국에서도 그랬고, 미국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시험하는 표정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자는 표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웃고, 손짓하고, 어깨를 두드리고, 박자를 맞추며 안으로 끌어들였다. 나도 어색한 몸짓으로 그 가운데 섰다. 잘 추는 춤은 아니었다. 몸은 뻣뻣했고, 박자도 완전히 맞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웃고 있었고, 사람들도 웃고 있었다. 그 순간 중요한 건 춤을 잘 추느냐가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있느냐였다. 돌이켜보면 그건 이퐁고가 내게 처음 건넨 환대의 방식이었다.


말로 길게 설명하는 대신, 너도 우리 안으로 들어오라고, 일단 같이 웃고 같이 움직여 보자고, 그렇게 몸으로 받아들이는 방식. 그 순간 나는 조금 놀랐고, 조금 부끄러웠고, 조금은 기뻤다. 무엇보다도, 낯선 마을 한가운데서 잠깐이나마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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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했던 이퐁고에서의 첫 만남



머릿속 이해와 현실의 괴리


처음 이퐁고에 들어설 때, 나는 그곳을 “전기도 없고, 전화도 안 되는 더 깊은 시골 오지 마을” 정도로만 이해했다. 사실 그 정도 이해도 나쁘진 않았다. 적어도 치탄타보다 더 불편하리라는 건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것과 현실을 몸으로 겪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곳에서의 2주 생활은 내게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견디기 쉽지 않은 나날들이기도 했다. 가끔은 꼭 전화를 해야 하는 날이 있었다. 그럴 땐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을 이동한 뒤, 다시 걸어서 30분 정도 산을 올라야 했다. 산 중턱에 큰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가서야 겨우 신호가 잡혔다. 그 주변에는 핸드폰 충전용 로드 포장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 바위 근처가 유일한 통화 지점이라는 걸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이퐁고는 치탄타보다 훨씬 더 시골이었기에, 사람들은 나를 더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는 거의 매일 마을 사람들 집에 초대를 받았다. 수첩에 적어야 할 정도였다. 오늘은 누구네 집 저녁, 내일은 누구네 집 점심, 이런 식으로 며칠치 일정이 금세 채워졌다. 어떤 집은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달아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고, 어떤 집은 정말 가난했지만 나를 위해 닭을 잡아 주기도 했다.


이퐁고에서의 생활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관심과 환대 덕분에 몸은 힘들어도 마음까지 완전히 지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낯섦은 늘 천천히 온다


재미있는 건, 정말 낯선 장소일수록 낯섦이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엔 그냥 좀 시골 같다고 느낀다. 그다음엔 불편한 점이 하나씩 보인다. 전기가 없고, 전화가 안 되고, 가게가 너무 작고, 물을 구하기 어렵고, 밤이 무섭다는 걸 차례로 알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닫는다.


아, 여긴 내가 알던 세상과 정말 다르구나.


이퐁고가 그랬다. 처음에는 그저 시골 오지 마을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오지’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뜻을 품고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조금 두려우면서도 조금 궁금했다. 치탄타가 내가 잠비아의 입구를 처음 배운 곳이라면, 이퐁고는 그보다 한 발 더 깊이 들어가는 시작점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아직 몰랐다. 정말 힘든 건, 도착 그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서의 일상이 시작된 뒤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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