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사카,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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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주류여행자

다시 수도로 간다는 것


잠비아의 시골 마을 치탄타에 도착한 뒤 한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꽤 많은 것을 새로 배웠다. 전기가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 손전등 없이는 밤길을 다닐 수 없다는 것, ‘유치원’이라는 말이 내가 알던 세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상식이 이곳에서는 너무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도.


한 달간 시골에서 생활하면 2박 3일의 휴가가 주어졌다. 나는 보통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흘 동안 루사카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그 2박 3일은 정말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시골에서의 고된 일상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사막 속 오아시스 같은 시간이었다. 잠비아 시골에서 한 달을 살고 다시 수도로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묘하게 들떴다.


루사카는 내가 잠비아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지나간 도시였다. 그때는 그곳이 낯설기만 했다. 공항에서 내려 아케이드몰을 스치듯 지나고, DAPP 사무실에 들렀다가, 정신도 못 차린 채 버스터미널에서 낡은 버스에 실려 치탄타로 들어갔다. 그런 루사카는 내게 ‘도착의 도시’라기보다 ‘통과의 도시’에 가까웠다.


그런데 한 달 만에 다시 가게 되자 느낌이 조금 달라졌다. 이번에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니었다. 잠비아의 시골을 조금이라도 겪고 난 뒤 다시 만나는 수도였다. 그래서인지 전과는 전혀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있었다.



루사카로 가는 길


하지만 루사카로 가는 길은 평탄치 않았다. 치탄타에서 루사카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하루에 한 대, 그것도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버스였다. 숙소가 있던 Children’s Town에서 치탄타까지는 한 시간을 걸어가야 했고, 그곳에 도착하면 작은 봉고차 모양의 미니버스를 탈 수 있었다. 운이 좋으면 그 차로 한 번에 루사카까지 갈 수도 있었지만, 보통은 비포장도로가 끝나고 루사카로 향하는 큰 도로, 그러니까 Great North Road와 만나는 Landless Corner라는 곳에서 다시 차를 갈아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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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장 도로를 걸어서 1시간, 치탄타에 가면 루사카로 가는 미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문제는 이마저도 늘 일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날은 미니버스가 있고, 어떤 날은 없었다. 그래서 보통은 히치하이킹을 했다. Landless Corner까지 지나가는 차를 잡아탄 뒤, 그곳에서 다시 루사카로 가는 미니버스를 구하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히치하이킹이 당연히 무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히치하이킹도 돈을 받았다. 보통은 어디까지 가는지 확인한 뒤 값을 흥정했다. 어떤 날은 트럭 뒤에 타기도 했고, 어떤 날은 승용차를 얻어 타기도 했다. 운이 좋으면 한 번에 루사카까지 가는 날도 있었고, 아주 가끔은 돈을 받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날도 있었다. 잠비아 시골에서는 이런 방식의 이동이 꽤 일상적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운이 좋았다. 미니버스를 타고 단번에 루사카까지 갈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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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사카로 가는 미니버스(작은 봉고차)

도시가 주는 안도감


치탄타에서 루사카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그래도 처음 잠비아에 들어올 때처럼 막막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번에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고, 차가 어느 정도 흔들리는지도 알고 있었다. 이 나라의 도로가 어떤 식으로 도시와 시골을 이어놓고 있는지도 조금은 체감하고 있었다.


버스 창밖으로 붉은 흙길과 낮은 풀숲,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이 지나갔다. 가끔 마을 어귀에 사람들이 모여 서 있었고, 아이들은 차가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그러다 조금씩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Landless Corner를 지나 포장도로와 연결된 뒤부터는 길이 한결 편해졌다. 길가의 건물도, 사람들의 옷차림도, 지나가는 차의 수량도 달라졌다. 도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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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장도로와 포장도로가 만나는 Landless Corner


루사카 외곽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의외로 감동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 아, 여긴 그래도 도시구나. 그 ‘그래도’라는 말 안에는 한 달 동안의 시골 생활이 모두 들어 있었다. 전기가 항상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물을 길어 와야 하고, 밤이면 세상이 그대로 어두워지는 곳에서 지내다 보니, 포장된 도로와 비교적 많은 차, 간판이 보이는 상점들만으로도 도시의 기운이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스운 일이기도 하다. 한국에 있을 때의 나는 루사카 정도의 도시를 두고 특별히 감탄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치탄타에서의 한 달은 내 감각의 기준을 꽤 많이 바꿔놓고 있었다. 그때의 내게 루사카는 충분히 ‘문명’에 가까운 장소였다.



한 달 만에 만난 ‘보통의 것들’


처음 루사카에서 치탄타로 갈 때는 루뭄바 버스터미널에서 큰 버스를 탔는데, 봉고차 모양의 미니버스는 시티센터 터미널을 이용했다. 그곳에 내려 숙소까지는 걸어가야 했다. 지도를 보며 방향 감각을 익히고,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걸었다.


도시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수많은 가게들이었다. 물건을 파는 곳이 있다는 사실, 뭔가를 사고 싶으면 당장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당연한 일상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치탄타에서 살면서도 어느 정도는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도시로 나오자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참고 지내고 있었는지가 한꺼번에 드러났다. 차가운 음료를 바로 사 마실 수 있다는 것, 비누나 샴푸 같은 생활용품을 바로 구할 수 있다는 것, 길을 걷다 배가 고프면 아무 식당에나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원래는 너무 평범해서 특별하다고 느끼지도 않았던 일들이, 그때는 하나같이 고마운 것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 순간, 사람이란 참 쉽게 기준이 바뀌는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는 불편이라고 느끼지도 않았던 것들이, 잠비아 시골에서 한 달을 지낸 뒤에는 안도감의 이유가 되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루사카가 대단히 세련된 대도시처럼 보였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먼지도 많았고, 어딘가 정돈되지 않은 느낌도 있었고, 내가 익숙하게 알던 도시의 질서와는 다른 종류의 혼잡함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는 선택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도시는 시골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졌다.



헝그리 라이온의 프라이드치킨


10달러짜리 도미토리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잠시 여유를 가졌다. 도미토리였지만 투숙객은 거의 없었다. 거대한 방에는 2층 침대 10여 개가 놓여 있었다. 주로 아프리카 배낭여행을 하는 여행자들이 묵는 숙소 같았다. 화장실에 가서 수도꼭지를 트니 물이 나왔다. 세면대가 있고, 양변기가 있는 화장실을 마주하니 꼭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배가 고파 저녁을 먹으러 숙소를 나왔다. 잠비아에는 헝그리 라이온(Hungry Lion)이라는 치킨 프랜차이즈가 있었다. 일종의 로컬 KFC 같은 느낌이었는데, 주로 닭다리 프라이드치킨이나 햄버거 같은 메뉴를 팔고 있었다. 처음 보는 프랜차이즈에 대한 호기심과, 시골에서는 절대 먹을 수 없는 프라이드치킨에 대한 욕망으로 나는 바로 들어가 치킨 세트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먹는 바삭한 프라이드치킨의 맛과 톡 쏘는 콜라의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한국이었다면 특별한 경험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너무도 평범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루사카에서 먹은 그 치킨은 정말 특별했다.



루사카의 한식당


이번에 루사카에 온 이유 중 하나는 다른 한국인 DI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미국에서 함께 생활하다가 나보다 세 달 먼저 잠비아로 파견된 친구들이었다. 나는 잠비아 중부인 치봄보로 파견되었고, 그 친구들은 잠비아 북부인 카사마로 가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프로젝트도 성격이 조금 달랐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상의 이야기와 각자 맡은 프로젝트 이야기를 나눴다. 루사카에는 한식당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나 한식을 먹으며 한국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그 순간만큼은 꼭 한국에 와 있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도 루사카에 가면 종종 그 한식당을 찾곤 했다. 한 번은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북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사장님 말로는 잠비아에도 북한 사람들이 종종 오는데, 그 한식당에도 식사를 하러 온다고 했다. 무섭지 않냐고 묻자, 무섭다기보다 걱정되는 게 하나 있다고 했다. 혹시 북한 사람들이 자기 식당에서 한국으로 망명하겠다고 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라고. 그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당시 잠비아에는 중국에서 파견된 노동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도로를 만들고, 대형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북한에서 온 노동자들이라고 했다. 가끔 한식당을 찾는 북한 사람들은 그런 노동자들을 관리하거나 감시하는 고위직 같다고 했다. 늘 말끔한 양복 차림이었고,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단 옷을 입고 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프리카 한복판의 한식당에서도 한반도의 현실이 묘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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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의 한식당(2011년)

다시 시골로


루사카에서의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그 2박 3일은 마치 군대에서의 첫 휴가 같았다. 흔히들 첫 휴가 4박 5일을 ‘4.5초’ 같다고 하는데, 내게 루사카에서의 2박 3일은 딱 그런 시간이었다. 정말 ‘2.3초’처럼 지나가 버린 달콤한 휴가.


도시의 시간은 늘 생각보다 짧게 느껴졌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을수록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갔다. 다시 짐을 챙길 때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루사카에 더 머물고 싶다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체념이 함께 있었다. 이상하게도 사람은 조금 편한 곳에 다녀오고 나면, 다시 불편한 곳으로 돌아가는 일이 더 힘들어진다. 한 달 전 처음 치탄타로 들어갈 때보다, 오히려 이번 복귀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돌아가는 길에는 처음 루사카에서 탔던 그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를 타면 한 번에 치탄타까지 갈 수 있어 편리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시골 쪽으로 향하면서 나는 창밖을 오래 바라봤다. 도시의 건물들이 점점 멀어지고, Landless Corner를 기점으로 포장도로는 다시 흙길로 바뀌었다. 사람들의 밀도는 서서히 옅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또다시, 내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던 잠비아의 시골 풍경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때는 아직 몰랐다. 치탄타로 돌아온 뒤 머지않아, 나는 전봇대가 사라지는 더 깊은 오지 시골로 들어가게 될 거라는 것을.


IMGP5205.JPG 치탄타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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