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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모 Nov 19. 2020

어느 편집자가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

서로에게 섭동하는 즐거운 조우를 위하여

독서모임을 삼 년 가까이 하다 보니 인터뷰를 당할 기회가 두 번이나 생겼다. 한 번의 인터뷰는 독립출판 잡지 〈편않〉과 했고, 〈편않〉 4호에 실렸다. 두 번째 인터뷰는 2020년 독서동아리지원사업의 책읽는사회기자단과 인터뷰하여 독서동아리지원센터 홈페이지에 올라갔다. 두 번의 인터뷰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그간 우리의 독서모임이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보게 되었고, 곧 삼 년을 채울 우리의 시간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사실은 독서동아리지원사업의 결과보고로 제출할 후기를 쓰다가 길어진 것이다.) 사실 내가 독서모임을 하게 된 것은 편집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과 떼놓을 수 없으니, 이것도 사실은 편집자로서의 내 이야기이다.




책이 좋아서 편집자가 된 게 아니라


2017년 하반기, 나는 인턴으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출판 편집자가 되기 위한 길을 모색 중이었다. 출판 편집자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은 구인 공고가 뜬 출판사에 이력서를 보내는 것일 테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출판사의 신입 편집자에게 요구되는 역량(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는 외국어 독해 능력과 편집자로서 일한 '경력'인 것 같다. 왜 신입에게 경력을 요구하는지는 모르겠지만.)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였고, 그렇다고 책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읽은 다독가나 책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애서가도 아니었다. 나에게 책이란, 다른 것을 사랑하기 위해 경유하는 하나의 매체일 뿐이었다. 그리 특별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별다른 스펙을 쌓지 못한 내가 어떻게 먹고살아가야 할까를 고민하던 차에 그나마 나의 적성에 맞으면서도 내가 한 공부를 활용할 수 있고, '취뽀'할 가능성이 보인 곳이 출판사였다. 이렇게 느슨하고 안이한 마음으로 진로를 '출판 편집자'로 정했지만, 진로를 정한 이후로 오히려 더 진심이 되어버렸다. 첫 출판사에 취직해 일하면서 '출판'이라는 게, '편집'이라는 게 나의 진심을 다할 만한 직업이라는 걸 느꼈다. 더 잘하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좋아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면 되려 책을 덜 좋아하게 되어버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나는 출판사에 취직해 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그전보다 책을 더 많이 읽고,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출판 편집자로 진로를 정한 이후로, 그리고 편집자로 일하는 내내 독서량에 대한 열등감과 조바심을 느꼈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면 나의 부족한 독서량이 들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쉽게 써내려가지 못했고, 같은 편집자 동료나 상사와 책에 관한 대화를 할 때도 속으로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편집자로 일하게 된 뒤로 더 독서량을 늘리기 위해 강박적으로 애썼던 것 같다. 지금도 다독가, 애서가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의 독서량이지만, 그래도 이전의 나에 비하면 꽤나 책과 친해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나는 출판 편집자로서 이 일을 오래도록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기에, 그러기 위해서라도 독서는 꾸준히 해나가고 싶었다.


심심해서 미리캔버스로 만들어본 독서모임 로고(?).



모임의 이름은 다다다, 세 살이에요


(여기서 서술한 독서모임 다다다의 역사는 내가 주관적으로 느낀 것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아마도 다른 모임원이 이 글을 본다면 꽤나 다르게 느낄 수도 있겠다.)


2017년 12월에 시작한 독서모임을 근 삼 년간 꾸려왔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기 전, 한겨레교육센터의 출판편집학교를 같이 들은 수강생 중 당시 출판 편집자로서의 취직을 희망하는 사람들 몇몇이 모여 모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취업 정보 공유와 스터디를 겸한 독서모임으로 꾸려졌지만, 취업 스터디로서의 성격은 자연스레 옅어졌고, 독서모임으로서의 성격만이 남았다. 그렇게 독서모임으로 현재(2020년 11월)까지 모임이 유지되고 있다. 모임의 이름은 '독서모임 다다다', 출판계 종사자와 비종사자가 함께하는 독서모임이다.

 

2017년 12월, 한때 같은 진로와 고민을 공유하며 모임을 시작했던 모임원들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각자의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편집자로 일찍 취업을 한 사람과 아직 '취준생'인 사람, 출판이 아닌 다른 직종으로 취직한 사람 등 서로가 처한 상태가 달라지면서 모임에서 공통적으로 공유되던 영역이 줄었다. 이 과정에서 모임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은 떠났고, 그럼에도 남고 싶은 사람들은 남았다. 그렇게 인원이 줄면서 모임의 분위기가 바뀌었고, 주로 모이는 모임원들만 꾸준히 나오며 2년간 모임이 지속됐다. 


그렇게 모임을 이어오던 작년 말, 이 년 가까이 지속해온 우리의 모임이 조금은 정체되는 것이 아닐까, 같은 사람들과 모여 비슷한 이야기를 비슷한 수준으로 반복하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과 고민이 생겼다. 이 년간 모임을 이어오며 서로 친밀감이 쌓이기도 했고, 서로가 인정하고 공유하는 가치관과 취향, 사고의 결이 비슷해서 했던 말의 반복, 혹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다 통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았다. 더군다나 읽을 책을 선정하는 데 있어 그 어떤 제한도 두지 않고 최대한 다양한 책을 읽으려 하는 우리 모임의 성격상 주제 하나를 두고 시간을 들여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이 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2020년에 들어서면서 모임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새로운 진행 방식을 갖추고, 새로운 사람들을 받아들이며 독서모임 다다다의 2기를 시작했다. 2기를 시작하는 멤버 일곱 명이 각각 독서모임 기획자가 되어 하나의 주제를 잡아 그에 맞는 책 1~3권을 선정해 독서모임을 1~3회차 정도 구성해 진행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2020년 한 해 동안 진행할 일곱 개의 기획이 모였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한겨레 출판편집학교 수강생 혹은 그 외 출판계 지인 정도에 한정한 닫힌 모임으로 운영했지만, 2기부터는 SNS 계정을 만들어 누구에게나 열린 독서모임을 운영해보기로 했다. 누가 관심이나 가져줄까 싶은 맘이 반 이상이긴 했지만 어쨌든 인스타그램을 통해 독서모임 다다다의 활동을 꾸준히 업로드하기 시작했고, 다행스럽고 감사하게도,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고 모임에 참석해주는 분들이 나타났다. 그렇게 독서모임 다다다 2기가 출발했다. 새롭게 바꾼 진행 방식은 모임에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가 돌게 해주었고, 새로 모임에 와주신 분들 덕분에 신선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었다. 정체되어 있던 모임에 다시 생기가 도는 걸 느꼈다.

 

그렇게 모임을 쇄신해가는 와중에 2020년 독서동아리지원사업에 선정돼 지원금도 받고 관련 행사도 진행하는 등 좀 더 풍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0년엔 코로나도 찾아왔다. 코로나가 확산되고 방역 단계가 심화되면서 계획했던 것들을 하기가 힘들어졌다. 코로나 때문에 제약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독서동아리지원사업이 없었다면 2020년을 맞으면서 시도한 독서모임 다다다의 새로운 변화가 지금만큼 성공적이진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지원금을 받아 책을 구입하고, 이재민 만화평론가를 모시고 온라인 전시와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전시를 다녀오고, 영화를 관람하면서 좀 더 풍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책읽는사회기자단과의 인터뷰였다. 인터뷰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지난 삼 년간의 시간을 반추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독서모임 다다다와 함께한 시간이 나를 어떻게 바꿔왔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인터뷰를 통해 지난 삼 년간을 돌아보게 된 것이 계기였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인데, 왜 굳이 독서모임? 


내가 독서모임을 꾸준히, 그리고 여전히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처음에 구구절절히 늘어놓은, 편집자로서 나의 부족한 독서량에 대해 열등감과 초조함 때문이다. 독서모임마저 하지 않는다면 나는 책을 안 읽게 될 것이고, 그러면 지금 하는 일을 오래도록, 그리고 '잘'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내가 독서모임을 하는 원동력이다. 바꿔 말하면, 나는 편집자로서 일에 욕심을 내고 있다. 그래서 독서모임은, 그리고 독서는 나에게 일종의 자기계발이자 자기관리다. 


더군다나 독서모임 다다다가 유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지켜나가고 싶은 기조 중 하나는 책을 '출판'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도 보통의 독서모임처럼 책의 내용적 측면에 대한 감상과 의견을 주로 나누기는 하지만, 그에 더해 출판인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책의 요소들, 디자인과 편집, 기획, 마케팅 등의 측면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아주 전문적인 의견을 나누는 것은 아니라서(그래봤자 아직 경력 1~3년 정도밖에 안 된 사람들뿐이다), 출판계 비종사자인 모임원들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이다. 오히려 일반 독자 입장에서 출판계 종사자의 책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출판계 종사자 입장에서 일반 독자의 입장을 들을 수 있으니 더욱 좋다. 


이처럼 책의 외적, 내적 측면을 찬찬히 다 뜯어보는 다다다의 대화는 그야말로 나에겐(편집자에겐) 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다. 출판과 편집의 관점에서 책을 보는 훈련을 하고, 일반 독자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들을 수 있는 장이다. 그러므로 나는 철저히 자기계발의 측면에서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그게 다는 아니다. 유익함만을 따지며 했다면, 삼 년이라는 꽤 긴 시간 동안 모임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면 나는 끈기가 부족한 사람이라 유익하기만 한 걸 삼 년이나 해내지는 못한다.


사랑해요 장도연!



‘책’이라는 중심축을 두고 도는 별들의 운동


책을 읽는다는 건, 독서란 결국 홀로 해낼 수밖에 없는 행위이다. 책을 펼치고, 첫 문장부터 시작해 마지막 문장까지, 자신만의 호흡으로 읽기를 행한다. 그리고 그 읽기의 시간 동안 책에 담긴 글에 대한 사유와 감상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것이다. 그렇게 책을 읽어나가며 자신만의 취향과 지향을 만들어나간다. 내가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는 이렇게 오롯이 나만의 것이던 사유와 감상을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고, 반대로 다른 사람의 사유와 감상을 내가 접하면서 나만의 취향과 지향이 휘어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김연수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는 ‘섭동’이라는 천문학 용어를 이렇게 설명한다. 



“별들의 집단 내에서 각 별들은 중심 주위를 돌게 되는데, 이런 운동을 일으키는 주된 힘은 집단 전체의 중력이다. 그러나 별들은 가까이 지나는 다른 별들로부터 계속 인력을 받는다. 이때 두 천체가 서로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을 충돌이라 하고, 진행경로를 바꾸면서 서로 비켜가는 경우를 조우라고 한다. 조우가 일어날 때는 섭동을 통해 서로 간에 에너지의 주고받음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진행경로와 속도가 변하게 된다. 그게 바로 섭동이다. 천왕성의 경로가 불규칙한 까닭은 그 근처에 있는 다른 행성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_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문학동네, 352쪽



나는 독서모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섭동’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모임 자리에 둘러앉은 우리의 대화는 마치 ‘책’이라는 중심축을 두고 도는 별들의 운동 같다. 책에 대한 각자의 사유와 감상은 그 자리에서 ‘조우’한다. 그렇게 각자가 고유하게 가지고 있던 ‘진행경로’와 ‘속도’는 변한다. 나는 이처럼 나만의 사유와 감상으로 인해 성립된 취향과 지향이 다른 사람들의 사유와 감상과 조우하면서 휘어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사유와 감상이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서 이뤄지는 것은 ‘충돌’이 아니라 ‘조우’니까(충돌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독서모임의 차원에서는 조우가 훨씬 즐거운 일이다). 충돌하지 않고 조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건 독서모임 다다다에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독서모임 다다다가 서로에게 섭동하며 즐거운 조우를 누릴 수 있는 모임이었으면 좋겠다. 



Photo by Guillermo Ferla on Unsplash



*배너 사진: Photo by Andy Holme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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