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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Jun 28. 2019

'스물 셋, 지금부터 혼자 삽니다'

집을 돌보니 내가 돌봐졌다

사실 '부동산'하면 지금까지 나에겐 좀 멀게만 느껴지는 무언가였다. 그러다가 이사를 준비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부동산은 정말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사를 준비하다가 또 책을 들이고야 말았다. 제목은 <스물 셋, 지금부터 혼자 삽니다>

아 솔직히 '스물 셋'을  보고 나이가 부러웠고, 나는 패배했다.

이 책을 읽은건, 27만 구독자라는 말도 아니었고, 스물 셋에 혼자 산다는 말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첫번째 장의 제목 떄문이었다. '스물 셋, 집이 생겼다' 아니, 뭐라구? 스물 셋에 집이 생겼다구? 이것도 무슨 금수저가 배부른 소리 하면서 '나는 이렇게 잘 사는데 님들은 왜 못해요' 같은 소리 하는 책인가? 싶은 배배 꼬인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가족과 크게 싸워서 대피하기 위한 피난처였다. 슛뚜 작가의 말대로 '날벼락처럼' 독립을 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약간은 꼬인 심정으로 편 책을 끝까지 다 읽었다.

스물 셋의 나를 떠올려봤다. 자취를 해본 경험은 없었고, 기숙사는 내가 손대는대로 바꿀 수 있는 환경도 아니라고 변명하기엔 나는 '공간'에 대한 자각이 거의 없었다. 월세를 낸다고 해도 결국에는 정붙이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슛뚜 작가는 집을 꾸미고 있었다.

집을 보다 '있을만한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건 내게는 생소한 일이었다. 의자를 더 좋은 것으로 바꾸고, 내 소유의 매트리스를 좋은 것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공간을 꾸민다는 것. 그 감각이 생소했다. 그런데 슛뚜의 말이 맞았다.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

나는 그 에너지가 부러웠던 걸까? 하고 생각했다. 낮에 달린 등을 뜯어내고 자신이 원하는 등으로 교체할 수 있는, 그걸 고르고 사다가 직접 달아놓을 수 있는 에너지가 내게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아니, 에너지는 있었다. 그런데 그걸 실행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웠던 거지. 내가 사는 공간에서 '나의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떄문에 나는 내가 사는 공간에 정을 붙이지 못했고, 슛뚜 작가는 내가 사는 곳을 있는 힘껏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무언가에 몰두하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게 다른 이에게 용기를 준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책상을 새로 맞추고 공간을 꾸미는 일의 즐거움을 꺠달았다. 그 용기를 얻은 것도 이 책의 도움이 컸다. '그래도 되는' 것이라는 걸, 계약기간이 끝나면 나가야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래도 그 안에서 행복한 공간을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걸 말해주는 게 좋았다고 할까. 그래서 지금 사는 곳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책장을 내 취향의 것으로 새로 들이고, 요리하는 공간에 조금 더 공을 들이고, 또 내가 작업하는 공간을 조금 더 쾌적하게, 내가 가장 편하고 안락하게 느끼는 환경으로 바꾸고 있다.


정들었던 공간을 떠나보내면서, 그 이유가 바뀐 집주인이 전세 세입자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말은 조금 슬펐다. 공간을 떠나보낸다는 말은 어폐가 있지만, 이런 경우는 내가 정든 공간을 강제로 보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슛뚜는 자신의 공간을 사랑하고, 새로 꾸미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도, 그러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책상은 내가 가장 편하게 글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한 책상이다. 그리고 내 왼편에는 자주 뽑아보는 책들이 꽂혀있고, 맞은 편 벽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붙어있다. 이게 무슨 인테리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내 공간을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꾸미고 있다.


슛뚜 작가는 자신이 살 공간을 상상한다. 언젠가 자신의 소유가 될 집. 내가 떠나보내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 대한 희망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슛뚜가 날벼락처럼 맞게 된 독립생활을 사랑할 수 있게 된 배경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도, 자신이 공간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만큼 그 공간에 대해 배워나가고, 그게 바로 자신이 가장 내밀하고 안락한 시간을 보내는 곳이라는 것. 그제야 부제로 적힌 '집을 돌보니 내가 돌봐졌다'라는 문구가 이해됐다.


집이라는 공간을 돌보면서, 슛뚜는 자신의 주변을 정돈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어쩌면 20대의 내가 고단하고 염세적이었던 건 그 떄문이 아닐까 생각이 될 정도로. 무언가를 그만큼 사랑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가치있지만, 그만큼 나를 사랑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 책은 분명 실용서다. 하지만 분명 날벼락처럼 독립하게 된 슛뚜가 이겨낸 시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 기록이 이제는 내 삶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시작점이 될 것 같다. 내 이사와 맞물린 책이어서 더욱 와닿는 지점이 많기도 했다. 공간을 살펴보고, 내가 돌봐주는 만큼 공간도 나를 돌봐준다는 건 내겐 새로운 시각이기도 했고.


그래서 이사 온 집에 먼저 내가 좋아하는 엽서들을 붙였다. 내가 사는 공간을 사랑하기로 했다. 어차피 떠날지도 모르지만, 이별이 있다고 해도 사랑이 사랑인 것 처럼, 나도 이 공간을 사랑하기로 했다. 



* 이 글은 21세기북스에서 책을 지원받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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