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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날씨 Oct 24. 2021

완벽한 관계가 폴리아모리에 미치는 영향

너처럼 사랑할 누군가

내가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나를 유혹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다. 딱 파트너만큼 사랑하는 존재가 하나 더 생긴다고? 자유롭고 완전하고 서로에게 깊이 관여하고 나를 떼어내서 주는 관계를 하나 더 만들 수 있다고? 이렇게 좋은 걸 하나 더...?


물론 성인과의 동등한 연인 관계와 양육자와 아이 간의 관계가 같을 리는 없고, 더 좋은 점도, 더 힘든 점도, 아니 아예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완전히 다른 관계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고 키워본 적이 없는 입장에서 나와 내 양육자와의 관계를 떠올려봐도 완전히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때때로 그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넘치고 에너지가 남는 기분이 들 때, 그래서 자꾸만 그에게 뭘 더 해줄까 물을 때, 희귀하게도 이런 순간이 찾아올 때, 남아도는 내 사랑의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쓰면 좋을지 궁리한다. 


어느 날은 아이를 떠올리지만 다른 날에는 또 다른 연인의 존재를 떠올려본다. 이쪽은 아이보다 훨씬 더 예측 가능하다. 성인 파트너와 맺는 연인 관계는 양육 관계보다 훨씬 더 익숙하고 많이 알고,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덜 복잡하고 덜 모험적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한 명과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연인 관계가 아니라, 여럿과 관계를 맺고 그것들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것은 분명 복잡하고 모험일 게 확실하고 개인적인 경험도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경험과 지식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나는 그와 완전한 행복의 시간을 보낼수록 자꾸만 이런 방향의 희망을 품게 된다. 이렇게 좋은 관계를 하나쯤 더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나는 얼마나 더 행복하고 충만해질까?


지금 파트너와 좋을수록 또 다른 파트너를 꿈꾸는 건 내가 낙관적인 사람이어서도 아니고 철이 없어서도 욕심이 많아서도 아니다. 한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가 주는 충만감이 커서 그렇다. 서로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하고 필요한 사람임을 힘껏 껴안을 때마다 온몸으로 느끼고 그의 상처와 콤플렉스와 약점까지 알고 이해하고 안쓰럽게 여기는 이 모든 일들이 황홀하기 때문이다. 


양육자도 친구도 동료도 아닌 연인이 서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는 사회적 통념에 따라 정말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어 보니 나의 모든 인간관계를 이렇게 만들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서로에게 성실하게 헌신하겠다는 약속을 품은 채 서로를 탐색한다. 그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맞닿은 부분마다 내 세계가 확장된다. 그를 향한 애정을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표현해도 괜찮다. 


우리는 종종 그림을 그려본다.

"폴리아모리를 한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나는 그의 욕망이 궁금하다.

"글쎄, 당신과 좀 다른 사람이 좋으려나? 음... 그럼 에너제틱한 사람? 같이 이런저런 액티비티도 하고?"

"오 에너제틱한 사람이라... 당신하고 잘 어울릴 수도 있겠다."

"근데 액티비티는 친구들하고 해도 되고, 당신하고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나는 그냥 당신이면 되는 것 같아요."

"에이, 마음을 좀 더 열어봐요" 하고 말하면서도 내심 이런 말을 듣고 싶던 걸까 생각한다. 그가 되묻는다.

"당신은요?"

"나는... 후, 내가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이 지난한 과정을 또 거쳐야 하는데?"

"그래요. 여자가 좋겠다. 내가 받아들이기 더 쉬울 수도 있고."

"받아들이는 건 상관없을 걸요?" 

나는 여자를 만나는 걸 상상해본다.


이것은 아직 실제 경험이 없는 사람의 나이브한 꿈일지도 모른다. 평범한 기혼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 일상에서 폴리아모리스트를 만나고 서로 호감을 갖게 될 가능성은 아주 적다. 적극적으로 커뮤니티를 찾아다니지 않은 채 앉아서 상상만 하는 것은 그야말로 상상으로 끝날 확률이 크다. 그렇지만 그와 내가 함께 상상하고 서로 원하는 것을 가늠해보는 것이 시작이라 여기며, 이것이 서로에 대한 소유욕을 점차 놓아가는 과정이기를 바란다. 


폴리아모리의 가장 어려운 점은 그의 다른 파트너에 대한 질투이지 않을까? 그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이유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나의 소유욕과 통제욕과 공허함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생각한다. 특히나 나의 다른 관계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을 때, 나는 그의 다른 관계를 얼마나 관대하게 수용할 수 있을 것인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용히 시뮬레이션해보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의 세계가 확장되기를 바란다. 나와 함께 할 수 없는 경험을 하고 내가 주지 못하는 자극을 받고 조금 더 넓은 세계가 되어 다시 나와 맞닿기를 바란다. 사랑이라는 경험을 좀 더 다채롭게 좀 더 풍성하게 느끼기를 바란다. 그것은 내 입장에서 때로 고통스럽고 때로 외롭더라도 분명 좋은 일일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은 내가 그와 함께 문제를 잘 해결해나갈 수 있을 거란 기대다. 우리가 지금까지 내면의 문제와 서로와의 문제와 외부의 문제들을 헤쳐온 것처럼 말이다. 

당신처럼 사랑할 누군가를 만날 수만 있다면. 복잡함을 해결할 에너지를 낼 용의는 충분히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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