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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ilet Jun 22. 2020

처음부터 나 자신이었다

D-53

2019년 7월 말, 결혼하려던 사람과 끝내 결별을 하고 난 후 나는 다양한 방도로 연애를 시도했다. 나의 삶의 이유, 삶의 빛이라고 했던 사람이 사라지자 나에게 극심한 외로움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하루하루가 의미가 없었다. 눈 뜨면 기계처럼 회사를 갔다가 퇴근하면 집에 돌아와서 누워있다 술과 약에 취해 잠들었다. 나라는 사람은 왜 이 삶을 지속해야 하는 걸까. 


과거 글에서 뻐꾸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다른 새의 둥지에 자식(알)을 낳고, 다른 새끼 새들을 다 둥지 밖으로 밀어버리는 뻐꾸기. 그 모습에서 나를 찾았다. 엄마의 다른 자식들을 유산시켜버린 나. 부모의 이혼을 불가능하게 한 불필요한 존재.


나의 뇌는 우울함으로 빠져들기 좋아한다. 슬프지 않으면 찾아내서라도 슬퍼지려고 한다. 이게 나의 생존을 위한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우울함에 빠져 지내는 지는 나도 이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현실을 왜곡하고 쓸데없는 감정 낭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PT 트레이너 선생님이 물었다. 8월 13일(목)까지 그 남자를 위해 이렇게 운동하는 거예요? 나는 대답했다. 아니요. 저를 위해서 하는 거예요. 그 남자는 그날 떠나갈 수도 있어요. 항상 각오는 해야죠. 그럼 시간을 갖자고 제안한 사람은 누구예요? 그 친구예요. 정말 성숙한 생각인데, 두 사람 모두 대단하네요. 난 그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나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오늘 만 보를 걸었다. 주 6회 운동을 약속했기 때문에 PT가 없는 날에는 만 보씩 걷기로 했다. 걸으면서 계속 그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보고 싶진 않은지 그냥 술김에 나에게 전화를 할 수는 없을지 그냥 다시 만나면서 생각해보자고 도저히 못 참겠다는 그의 말이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내가 죽기 직전까지 가지 않는 이상 나를 그전에 만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그 날 만나야만 한다.


그 날을 목표점으로 나의 생각에 최대한 많은 변화를 주고, 몸을 움직이고, 아이를 낳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모두 나를 위한 것이다. 앞으로 내 인생의 올바른 변화구를 찾고자 노력하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또는 삶이 흔들릴 때도, 이 삶을 끝내고자 했던 나도 모두 나 자신이었다. 그런 나를 존중하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더 나은 더 성장한, 성숙한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나의 삶의 이유는 나였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더 나를 위해 살아갈 것이다.


-2020년 6월 22일 


너무 보고 싶어서 돌아버릴 것 같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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