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난민의 제주표류기 ②
1월, 중국의 어느 도시에서 바이러스가 창궐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하이까지 바이러스가 미칠 줄은 몰랐다. 며칠 후, 도시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람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중순의 어느 날, 예전에 사두었던 마스크를 꺼내 썼다. 내게 천식이 있어 늘 마스크를 준비해 둔다. 공기질이 나쁘면 언제든 쓰고 나갈 수 있도록.
그날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데 길가의 사람들이 물었다. 그런 (좋은) 마스크는 어디서 샀느냐면서. 쇼핑몰 직원도, 전동차를 타고 지나가던 이도 가던 길을 멈추고 질문했다. 어떻게 그걸 구했죠? 이거 '타오바오'(중국의 최대 온라인 쇼핑몰)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대답하고선, 이상하다 싶어 쇼핑몰에 들어가 보았다. 모두 품절. 특히 KN95 같은 마스크는 이미 동이 나고 없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이상하게 목이 아팠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겨울만 되면 찾아오는 감기와 천식 증상. 그런데 이게 코로나 증상과 똑같다고 한다. 그다음 날부터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 체온계가 없어 열을 재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는 자체적으로 격리에 들어갔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썼고, 마트에는 식료품의 사재기가 시작됐다. 야채는 구할 수도 없었다. 끼니를 오래 해결할 수 있는 카레를 만들어 놓으려고 했지만, 카레의 주재료인 '감자'하나를 살 수 없었다.
친구들이 마트의 텅 빈 판매대 사진들을 보내왔다. 어느 구에서나 상황은 같았다. 그 후 일주일을 인스턴트식품으로 버텼다. 상하이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뉴스는 없었지만, 우한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끔찍했다. 그 동영상과 뉴스들로, 상하이에는 바이러스보다 '패닉'이 먼저 왔다. 그때부터 날아온 소식들은 진짜 뉴스인지 가짜 뉴스인지는 아무도 구별할 수 없었고, 이 도시의 모두를 공포로 뒤흔들었다.
나의 기침은 줄어들지 않았다. 겨울마다 늘 있는 일. 겨울 감기가 오래가고, 기침만이 남아 천식 증상을 부르곤 한다. 그러면 보관해둔 알러지 약을 먹기도 하고, 중국의 큰 병원에서 약을 받기도 한다. 천식 흡입기는 늘 상비해둔다. 문제는 이 기침이 단순 감기인지, 천식 증상인지, 코로나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 밖에도 나가지 않고, 누구도 만나지 않고 일주일 동안 집안에 나를 가두었다. 그즈음 마침 일이 많아져 종일 집에 앉아 일만 했다.
상하이의 (한국) 친구들이 하나둘씩 한국으로 떠났다. 모두 공포에 질려있었다. 여기서 코로나에 걸리기라도 하면... 우한의 동영상 환자들처럼 아무렇게나 격리되고, 혹은 버려질 것만 같았다. (그 동영상은 가짜와 진짜가 혼재되어 진실을 파악할 수 없었다) 길가에서 픽픽 쓰러지는 사람들의 모습, 기침을 하면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관처럼 생긴 긴 상자에 사람을 넣어 싣고 가는 장면, 택시를 탔는데 기침을 하니 길가 한복판에서 버리고 갔다는 이야기, 이제 곧 상하이도 봉쇄될 거라는 찌라시, 감기로 병원이라도 가면, 코로나와 같은 증상이므로 그들을 험한 격리시설로 데려간다는 뉴스 같은 게 매일 실시간으로 날아왔다.
뉴스의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도시는 혼란에 빠졌다. 그때쯤 상하이에 남은 한국인 친구는 거의 없었다. 중국인 친구들마저도 '어서 안전한 본국으로 돌아가라'라고 조언했다. 한국엔 확진자가 고작 몇십 명 나올 때였다. 나는 돌아갈 데가 있지만 너희는 어떡해. 하고 걱정하면 "우리는 여기가 집이잖아"라고 대답했다. "나도 여기가 집이야"라고 얘기하면서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도 여기가 집이야, 라면서 무슨 일이 생기면 늘 한국으로 훌쩍 떠나는 사람들이라서.
우리도 잠깐 한국에 가있을까. 남편이 물었지만 '기침을 하는 상태'로 공항에 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기침하는 나를 보면 정말로 누군가 와서 잡아갈 것만 같았다. 감기만 나으면 가자. 고 이야기했지만 공포는 매일 더 크게 자랐다. 천식인 걸까. 흡입기를 찾았다. 유통기한이 지나있었다. 천식으로 숨을 못 쉬게 되면 어쩌지. 아니 정말 코로나면 어떡하지. 병원에 한번 못 가보고 남편을 감염시킨 채로 집안에 갇혀있어야 하나. 모든 불운의 가능성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기침하는 주기를 기록해보기로 했다. 내가 과연 집에서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가서 (고향인) 제주도에 도착할 때까지 기침을 참을 수 있는지 알아야 했다.
이틀 내내 주기를 적었다. 30분에 한번 15분에 한번, 또 한 시간에 한번. 기침은 정기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평균치를 잴 수 없었다. 그냥 느닷없이, 참으면 참을수록 더 몰아치듯 기침이 나왔다. 격리 일주일째, 갑자기 영영 한국에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온몸을 휘감았다. 흡입기가 없다는 생각에 더 불안했다. 저녁 즈음, 남편이 말했다. 지금이라도 갈래? "어 빨리 비행기표 끊어줘. 격리를 하더라도 가서 하고 싶어." 그때부터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침 7시 첫 비행기를 끊었다. 집에서는 새벽 3시 반에는 나가야 하니 택시도 예약해 두었다. 혹여 택시 안에서 기침이 나면, 그 소문대로 우리를 고속도로 한가운데 버려둘까 봐 가장 비싼 택시를 예약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짐을 쌌다. 뭘 넣어야 하는지, 얼마 기간 동안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디서 얼마만큼 지내게 될지도 몰랐다. 그저 정신을 놓은 채로 아무거나 담았다.
비행기표와 택시를 예약해두고 한두 시간이 지났을 때, 갑자기 뉴스 하나가 날아왔다. 밤 열두 시를 기해 상하이 시내의 모든 교통을 통제하고 도시를 봉쇄한다는 소식이었다. 버스도 택시도 다닐 수 없다고 했다. 그럼 우리는 공항에 어떻게 가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공항에도 못 가보고 집에 갇히게 되었구나. 우한에서 SOS를 보내던 많은 동영상들이 떠오르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필 우리가 택시를 타기 세 시간 전에 봉쇄라니. 낙담하고 손을 놓고 있는데, 한 시간 만에 단체방으로 새로운 뉴스가 떴다. 상하이 봉쇄는 가짜 뉴스였다. 이제 어떤 뉴스도 믿을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뉴스만은 믿고 싶었다. 다시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이미 새벽 한 시. 나는 영화 속 긴박한 탈출 씬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기침 환자'라는 죄를 지은 주인공.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영화를 찍고 있었다.
【关于市区出租车停运的通知】为全力做好新型冠状病毒感染的肺炎疫情防控工作,有效切断病毒传播途径,确保人民群众生命安全和身体健康,根据市新型冠状病毒感染的肺炎防控指挥部的公告要求,自2020年1月28日24时起,市区网约车,出租车一律停止运营,停运期间免除一切费用,另每天补助费用150,恢复时间另行告知。
恳请广大驾驶员和市民理解、支持和配合!
上海市城市交通客运管理处
2020年1月27日
(1월 28일 자정부터 시내 모든 버스와 택시의 영업중단을 알리는 -진짜처럼 보였던-뉴스)
먼저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가 알려준 팁이 있었다. '기침을 나지 않게 하는 사탕 형태의 약'이 있으니 그것을 구해서 입에 물고 비행기를 타라. 상하이 전 시내의 약국을 뒤져보았지만 모두 품절. 인구 천사백만 도시의 수많은 감기 환자들이 나 같은 심정으로 약을 샀을 것이었다. 집에 있던 '그냥 캔디'를 입에 물었다. 침이 고이면 기침을 좀 줄일 수 있을까 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듯 그 캔디 한통을 주머니 속에 꼭 품었다.
새벽 세시반, 집 앞에서 큰 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하이의 습하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머리를 휘감았다. 야반도주를 하는 사람처럼 급하게 택시를 탔다. 기사분까지 셋다 마스크를 꽁꽁 썼다. 공항까지는 한 시간. 기침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기사분께 괜한 긴장감을 주고 싶지 않았는데 30분쯤 지났을까, 몸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솟구쳐 올라오는 기침을 참을 수 없었다. 갑자기 억눌려 있던 기침이 화산처럼 폭발했다. 1분은 넘게 기침을 쏟아내자 히터를 틀어놓은 택시 안에 오싹한 냉기가 돌았다. 노련한 기사분은 애써 나를 쳐다보지 않으려 했다.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으로 가쁜 호흡 진정시켰다. 남편은 조용히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눈빛으로 말했다.
막상 도착한 공항은 오히려 평온했다. 새벽이라 한산했고, 영상으로 보던 무서운 광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알고 보니 대부분 가짜 뉴스였다. 그래도 기침 한 번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비행기 탑승시간까지도 사탕을 물고 남은 개수를 계속 세었다. 공항을 들어설 때도, 비행기에 탈 때도, 제주도에 도착해서도 열은 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지 않았다. 이제 조금만 참으면 돼. 호텔에 잘 도착만 하자. 한국이라면 병원이든 격리시설이든 다 괜찮을 것 같았다. 비행기 안에서는 가장 큰 소리가 나는 이착륙 할 때에 맞춰 큰기침을 했다. 비행기 안에는 열다섯 남짓한 사람들이 있었고, 모두가 바짝 긴장한 채로 말없이 새벽하늘을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