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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IONIONION Mar 07. 2018

퇴사 전과자 5범의 기록

잦은 퇴사, 그 이유가 정말 내게 있는 것일까 - 1편

1. 첫 번째 퇴사 - 도적의 산채에서


학생 신분으로 여러 스타트업과 기업에서 일을 해왔다. 첫 번째 회사는 청춘의 가능성을 보증 삼아 대출을 땡기고, 그 돈을 마음껏 유용하던 도적의 산채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선량한 청춘들이 '청년 창업'이라는 VR 게임을 웃으며 즐기고 있었다. 24살의 나도, 그들처럼 꿈과 열정에 가득 찬 상태로 입사했다. 단지,  눈가리개를 쓰지 않았을 뿐.

결국, 도적의 횡포에 못 이겨 팀은 와해되고, 도적이 데려온 신임 대표는 내게 IR 자료를 만들라 지시하며 와우를 즐겼다(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맞다). 정말 WOW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뛰쳐나왔다. 내 젊음과 시간이 너무 아까웠기에. 그게 내 첫 번째 퇴사였다.


2. 두 번째 퇴사 - 열ㅈ페이


그래도 첫 번째 퇴사에서 건진 것이 작진 않았다. IT와 광고업의 미래를 조금 맛봤고, 그 맛은 이베리코로 만든 하몽을 처음 맛봤을 때처럼 짜릿했다. 산채에서 사귄 친구들은 내게 또 다른 입사 기회를 열어줬다. 열ㅈ페이의 시작이다. 

열ㅈ페이라는 단어도 없던 시절, 지독한 여름이었다.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의 영업 인턴으로 들어갔다. 페이는 월 30만 원(식비, 통신비 미지원 황금 복지!). 사무실로 출근하고 영업에 필요한 전단지와 물품을 챙겨 중동보다 더한 서울 거리를 해가 질 때까지 돌다 사무실로 복귀하는 중노동의 삶이었다. 그 2개월 동안, 나와 인턴 동기 4명의 생활비는 오히려 마이너스를 계속 기록했다. 우리는 회사의 정직원 제안을 무시했고, 마지막 회식 때 고기를 20만 원어치를 먹었다. 한 점 한 점이 내 노동비라 생각했기 때문에. 

열ㅈ페이, 두 번째 퇴사의 이유다.


3. 세 번째 퇴사 - 아름다운 첫 번째 이별


사기꾼과 열ㅈ페이로 지쳐 있을 때, 누군가 내게 또 찾아왔다. 기업 복지 서비스를 구상 중인데 B2B 마케팅을 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사업 설명은 매력적이었다. 세상을 더 이롭게 하고 싶다는 내 가치관과도 일치했으며, 구성원들이 즐거워 보였다. 다만, 이 회사에 들어가도 호주 워킹홀리데이 일정 때문에 9개월 후 퇴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걸렸다. 솔직하게 대표님께 말씀드렸고, 그래도 괜찮으니 함께 하자고 했다. 그렇게 세 번째 도전을 시작했다. 

사업은 쉽지 않았다. 본래 하려던 서비스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고, 서비스가 없으니 마케팅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내 위치에서 회사에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세상에 제시하는 가치, 현시대 상황 등 다양한 요소들로 아이데이션을 끊임없이 했다. 그렇게 강소기업의 복지와 문화를 소개하는 플랫폼을 만들었고, 워라벨에 맞춰 행복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들을 조명했다. 

회사가 방향을 찾아갈 때, 난 이별을 준비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9개월이 너무 아쉽지만, 나 스스로와 한 약속을 지키는 것도 내겐 너무 중요했기에, 서로 웃으며 이별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퇴사 전과 4범이 되어 있었다.


타지에서 열심히 소 곱창을 뜯고 씻고 포장한 후(여러분이 드시는 그 곱창에 제 피와 땀이 담겨있습니다) 헬조선에 돌아와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남들보다 풍족한 대외 활동 경험, 해외 경험, 사회생활까지. 내 자소설은 언제나 식재료 풍년이었다. 서류 통과는 자신 있었고, 면접도 자신 있었다. 그렇게 1X 년 역사의 IT 전문지 기자가 되었고, 입사 1주일 만에 1X 년 역사의 회사가 휘청이기 시작했다. 두 개의 잡지는 하나로 합쳐졌으며, 많은 이들이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월급은 계속 밀렸으며, 믿고 의지했던 편집장님과 선배 기자는 어리바리한 주니어들만 남기고 떠나 버렸다. 

화가 났다. 나도 다른 이들처럼 월급 걱정 안 하고 싶은 게 전부였는데. 밤을 새워서 낳은 자식 같은 기사들을 잡지에 실어 팔아도, 순댓국에 소주 한 잔 마시는 것이 부담스러운 삶이라니. 한 번도 아니고 연속 4번이나 정상적인 환경에서 일하지 못한 탓일까.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하고 7개월 만에 퇴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런 내 결정이 낙인처럼 면접장에 따라다닐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어느덧 난 퇴사 전과 4범이 되어 있었다.


다음 글에는 퇴사 전과 5범 최종 진화 썰 및 그것이 정녕 '범죄'처럼 취급받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적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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