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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도빈 Mar 21. 2023

귀가

귀가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는 아파트 지하 2층에 차를 세우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많이 피곤한가 봐요? 눈이 충혈 되었어요, 함께 탄 20층 여자가 물었다. 그는 간단한 목례로 대답하고 7층에 내려 도어락을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서프라이즈! 생일 축하해! 머리에 고깔을 쓴 그의 두 아들이 아홉 개의 초가 서 있는 케이크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가쁜 숨으로 ’후~ 후!’ 불어 불을 껐다. 


그와 아내, 부부는 안방에 마주 앉았다. 

“감염… 된 거야?”

남자가 고백하기 전에 여자는 알아챘다. 여자는 방금 흐르기 시작한 그의 코피를 엄지손가락으로 닦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미안해… 그런 것 같아”

남자의 눈에 피눈물이 맺혔다.

“당신이 뭐가 미안해. 운이 없었던 거야. 사고야, 사고.” 

남자는 아내의 손을 끌어와 잡다가, 이내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긴 숨을 내뱉더니 말했다.

“이제 나는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어. 아빠도 남편도 자식도 동료도 친구도.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사람이야. 쓸모없는 존재가 될 거야. 미안해”

이 사람, 여전히 불쌍한 남자. 여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자는 몸을 움츠리더니, 곧 괴물이 될 남자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어떡해 당신. 어쩌면 좋아 우리”

남자는 준비가 끝난 것 같았다. 


그는 큰 아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와락, 아들을 껴안았다. 

“아빠, 술 마셨어?”

어느새 엄마보다 키가 커진 아들에게 아빠는 대답 대신 아이를 더욱 세게 끌어당겼다. 그러다 두 사람은 어깨동무를 하고 앉았다. 아빠가 고백했다.

“아들아, 아빠가 멀리 좀 떠나야 할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아빠 대신 아들이 엄마 외롭지 않게 많이 웃게 해줘. 동생은 아직 어리니까 형이 보살피고 이끌어야 해.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안부 자주 전하고. 그리고 필홍이 삼촌 알지?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해. 그리고 또…”

아들이 끼어들었다.

“아 뭐가 이렇게 많아. 공부하기도 힘들어 죽겠고만”

그는 아들의 눈을 보며 생각했다.

‘아빠가 미안해. 우리 아들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고 결혼을 하고 아빠도 되고, 그렇게 살아가는 데 아무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해,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그는 그가 불행한 것이 실감이 되었다.

아들이 그의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많이도 마셨나 보네? 걱정 마 아빠, 나 아무 문제없어”

이제 그의 귀에서도 뜨거운 것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작은 아들에게 갔다. 아빠 펀치를 받아라 뱅! 뱅! 아빠는 장난스럽게 아이를 툭툭 건드렸다. 아들도 화답하듯 발차기를 하더니 엉덩이를 좌우로 실룩실룩 댔다. 그리고 아빠의 배에 얼굴을 묻었다. 아빠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춘 후 아들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우리 막내. 오늘 뭐했어? 엄마랑 미술관 갔어?”

“스파게티도 먹었어! 근데 라면이 더 맛있어! 거기서 그림도 그렸어. 아빠 한 번 봐줄 수 있어?”

보아 뱀이 스테고사우루스를 잡아먹는 그림이었다. 아빠가 아들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와 정말 멋지다. 최고야! 아빠 없어도 그림 계속 그려줘 아들. 엄마 말 잘 듣고, 형이랑 싸우지 말고. 절대로 거짓말도 하지 말고. 차 조심해야 한다. 알았지?”


그가 현관 앞에 섰다. 그의 눈은 아까보다 더욱 붉었다. 작은 아이가 깔깔대며 눈을 까 뒤 집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뭐야 아빠도 바이러스에 감염 된 거야? 그러니까 좀비 되서 피 흘리고, 막 사람 물어뜯고 그러는 거야? 하하!

그는 가족의 얼굴을 보고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물었다.

“아들! 아빠가 얼마만큼 사랑한다고 했어?” 

온 가족은 거의 동시에 외쳤다.

“우주만큼!”


그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지하 주차장에 내렸을 때, 이미 호송차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호송차에 올라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저 감염된 것 같아요. 죄송해요”

아버지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이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아, 내 아들로 태어나 줘 고맙다. 아버지도 곧 따라 갈게”

그는 길게 한 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또 다른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감염됐어...”

엄마도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통곡했다.

“아이고 내 아들. 어쩌면 좋아 내 새끼. 아이고 내 새끼. 엄마가 구해 줄게. 구하러 갈게. 사랑한다 사랑해 내 아들…”

그는 코와 귀에서 흐르는 피를 연신 닦으며 절규했다.

“엄마! 엄마 나 좀 살려줘. 나 살고 싶어. 나 이제 어떡해… 엄마! 엄마!”

호송의 일을 하는 그들이 더는 못 기다리겠는지, 그의 전화기를 뺐었다. 그리고 그의 몸을 사슬로 결박하고는 머리에 헬멧을 씌웠다. 호송차안은 어느새 고요해진 것만 같았다. 살고 싶다는 절규와 기도만이 헬멧 안에서 웅 웅 소리를 내며 메아리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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