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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계적 글쓰기 Sep 28. 2020

우린 적당히를 강요받고 있다

투머치를 투머치하게 지적하는 사회


우리집은 3층이다. 2016년에 이사해 5년째 살고 있다. 위층에는 청소를 좋아하는 부부가 산다. 얼마나 청소를 좋아하는지 평일에는 아침 저녁으로 청소기 소리가 나고, 주말에는 많으면 대여섯번까지 청소를 한다. 그 윗집에서는 강아지를 키운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짖는 소리가 경쾌한 것으로 보아 작은 말티즈일 것이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가르켜 요즘은 TMI라고 한다. TMI는 적당한 커뮤니케이션을 모르는 사람에게 쓰기 좋은 최적의 언어다. 예를 들면 회식 자리에서 팀장님의 이야기가 쓸데없기 길다면, 직원들은 비밀 카톡방에서 TMI라 흉을 보고 있는 것이다.      


TMI - Too Much Information의 줄임말로, 불필요한 너무 많은 정보를 뜻함     


TMI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건 2017년쯤이다. 그토록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의 비효율에 빠져 살았던 걸까? 그리 오래 된 신조어는 아니지만 TMI는 정말 빠른 속도로 10~20대와 뉴스, 미디어를 사로잡았다. 소중한 내 시간을 불필요한 정보로 채우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니 TMI를 두팔벌려 환영해야겠지만, 일상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TMI에는 왠지 모를 약간의 껄끄러움이 있다.       


‘TMI’란 신조어를 가만히 정리해보면 ‘(내 생각을 기준으로 했을 때) 불필요한 너무 많은 정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지극히 주관적이라서 상대방은 지금 넘치는 정보를 주는 건지, 적당한 수준을 유지하는 건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한 대학생은 “TMI라는 말이 너무 자주 보인다. 이제는 좋아하는 친구에게 털어놓는 내 이야기가 TMI로 취급될까봐 걱정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분명 TMI는 없으면 좋은 건데, Too Much의 기준이 없으니 판단조차 할 수 없다. 그렇게 선을 넘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딱 필요한 만큼만 얘기해야 하도록 서로가 서로를 몰아세우고 있는 느낌이 든다. TMI가 죄악으로 취급받을수록 뭔가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한다는 압박이 커지는 느낌이다. 

 

   

메이저리거였던 박찬호는 종종 야구 후배들 앞에서 강연을 한다. “제가 텍사스에서 있었던 일인데요...”로 시작해서 한시간 넘게 이어졌다는 이야기에 미디어와 누리꾼들은 ‘투머치토커(TMT)’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수많은 짤방이 만들어졌고,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공간에서 그는 놀림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도 박찬호는 주눅들지 않았다. 별명이 생긴 이후에도 많은 강연 장소에서 긴 이야기를 했고, 해당 콘셉트로 광고를 찍기도 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가 투머치토커라는 별명이 부끄러워 그 다음부터 강연을 자제했다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전설적인 메이저리그 선배의 이야기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면? 심지어 야구 후배들은 그의 강연 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느낀다면? 하지만 아무도 청중의 속내는 물어본 적이 없지 않은가. TMT 역시 Too Much의 기준이 없다.      


TMT - Too Much Talker의 준말로 너무 말이 많은 사람을 뜻함 


TMI나 TMT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말을 재미있게 해야 하고, 적당한 선에서 끊을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서로가 대화를 할 때 상대를 신경 쓴다는 건 배려로서 칭찬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정도가 살짝 부족했다고 해서 웃음거리가 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조금 어설프다. 조금씩 깎이기도 하고, 날카롭게 다듬기도 하며 관계를 만들어간다. 단 한줄의 낭비 없이 할말만 딱 하고 끝맺는 사이에서 어떤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상대방의 이야기가 조금 불필요해도, 조금 더 길어져도 배려하고 기다려준다는 신조어가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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