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데, 하고 싶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잘해야만 하고 싶었는데

by 사샤

회사 근처 요가원에 다닌다. 여기를 다녀볼까 싶어 상담 간 날, 담당 매니저는 한 선생님의 이름을 언급했다.


“P 선생님 수업은 전반적으로 굉장히 힘듭니다. 빡센 걸 좋아하시면 P 선생님 추천드려요. D 선생님은 소프트한 요가를 주로 하시고요….”


P 선생님은 믿고 걸러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안 그래도 이 요가원의 수업 난도를 모르겠어서 겁을 잔뜩 먹었는데 ‘빡센’ 선생님이라니. 위치상 거의 20~30대 여성 직장인들이 다니는 곳 같은데, 그렇다면 당최 누가 요가 선생님이고 학생인지도 분간 안 가는 외양의 요기니(요가하는 여성 수행자)들이 매트 깔고 다 같이 머리 서기 자세하고 있을 것 같은데, 세상에 P 선생님이라니…. (절레절레)


6iwYWYe_RuOk1VpSxCs7cOJC6Kg.png 이게 바로 머리서기 자세 후우우 (출처: '요가언니' 브런치)


물론 P 선생님을 제외한 다른 선생님들 수업을 들으면서 이 예상은 깨졌다. 옆 자리 매트에는 중년 요기니도 꽤 계셨고 아사나(요가 자세) 수행 능력도 제각각이었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P 선생님 수업은 차마 넘어갈 엄두가 안 나는 허들과 다름없었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지난주에 P 선생님 수업을 예약했다. 천천히, 긴 호흡으로 하나씩 아사나를 이어가는 하타 요가 수업이었다. 이 요가원에 다니며 ‘요가하고 싶다’는 심정에 도취된 지 한 달쯤 된 날이었다. 무표정한 채로 어느 날, 나는 스마트폰에 수업 예약 앱을 실행해 P 선생님 수업 예약 버튼을 꾹 눌렀다. 고난도 요가에 적합한 운동복을 수업 전날 밤 준비해 출근 가방 옆에 소중히 모셔뒀다.


아사나를 바꿀 때마다 매트에 무릎이 닿았다 떨어졌다를 반복할 테니, 무릎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기장의 7부 레깅스. 땀이 쏟아질 것이므로 가진 것 중에 가장 시원한 소재의 캡 나시. 요가는 특히 상체 힘이 많이 필요한 운동이어서, 빡센 수업이라면 손목에 십중팔구 무리가 갈 것이기에 짱짱한 손목 보호대. 어떻게 된 게 출근 준비보다 요가 수업 준비를 더 열심히 해놓고 잠든 나였다.


다음 날, 뭔가 기분이 싸해 시계를 보니 저녁 6시까지 10분 전. 앗, 5시 55분에 나가려고 했는데. 미친 듯이 일을 마무리한 뒤 요가원에 달려가 7부 레깅스와 캡 나시와 손목 보호대를 장착하니 저녁 6시 20분. 자, 이제 게임을 시작하지,라고 P 선생님이 눈빛으로 말해오는 듯했다. (하이 톤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를 건네는 새삼 상냥한 선생님을 앞에 두고 이런 상상을 하고 있었던 학생이다.)


매트 위에서 만난 P 선생님은 이 요가원에서 그동안 만났던 선생님들 중 제일 체구가 작아 보인다. 그런데 노란 조명을 받아 도드라져 보이는 근육들은 제일 날이 서 있다. 웃음만이 가득했던 그의 초승달 모양 눈은 단말마에 절에서 본 부처님의 깊은 눈빛으로 돌변해 있다. 먼저 아사나를 선보인 P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침착하게.


“침착하게”와 동시에 모든 요기니가 각자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그곳에서 혼자만의 수련을 시작한다. 손목을 매트에 뒀다가, 다리를 하늘로 뻗고, 무릎이 직각이 되도록 굽히기도 하면서, 양손으로 발 옆을 잡고 바닥으로 끌어당기고…. 도대체 이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자세라고? 싶은 아사나들이 P 선생님 몸으로 나타나고 그걸 어떻게든 따라 하려는 요기니들의 몸부림이 이어진다. (나는 정말, 그야말로 몸부림이다)


부들부들. 부들부들. 한 손으로 온몸을 지탱하다 이러다 손목이 나가겠다는 확신이 들자 침착하게, 천천히, 바닥으로 몸을 내려놓는다. 땀방울이 미간과 양쪽 눈가로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음을 느끼며 정면을 바라본다. 미세한 떨림이야 인내하며 아사나를 유지하고 있는 요가 동료들, 도반(함께 도를 닦는 벗)들이 보인다. ‘진짜 대단하다. 잘한다.’ 입 모양만 내본다. 중도 포기한 나는 땀으로 세수를 한 사람이 돼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댄다. 그래도 정신이 차려지지 않아, 포기를 모르는 도반들 한 명, 한 명을 잠시 관찰한다. 그러다 명치 아래가 슬쩍슬쩍 간지럽다.


아니, 이게 무슨 감각이야. 요가하는 시간, 몸과 마음의 감각이 최고조로 치닫는 이 순간들에만 느낄 수 있는 간지러움이다. 가슴 속에 방이 하나 있는데, 그 방에 고양이가 한 마리 사는데 벽을 살살 긁고 있다. 어, 이것 봐라…. 나, 재밌나? 지금 재밌어서 이러나? 언젠가, 잘 떠올려지지도 않는 어느 날에도 짜릿함과 함께 이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나, 못했는데? 요가 계속하기 너무 힘들어서 매트에 철퍼덕 앉아 멍 때리고 있는데? 다른 도반들은 내 눈앞에서 각종 묘기를 부리며 난리가 났고 나는 가만히 땀만 뻘뻘 흘리고 있는데…. 기분이 왜 좋지? 왜, 목 아래서부터 명치 끝, 가슴 속까지 왜, 꿈틀대는 것 같지?


‘못하는데, 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일어난다. 놓친 흐름을 다시 잡아 내 몸으로 끌어당긴다. P 선생님을 따라 하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침착하게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 후우우, 숨을 내뱉으며 조금 더 몸을 앞으로 기울여본다. 1초씩, 1초씩. 깊은 자세로 들어간다. 아까 선생님한테서 본 그 자세까지, 절대 눈에 띄지 않을 만큼의 조금, 아주 약간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나만이 알 수 있는 움직임이다. 변화다. 발전이다. 남들은 모르지만 나는 아는, 나다.


이틀 뒤 점심시간에도 고난도 수업을 예약했다. 또다시 땀 한 바가지를 쏟던 와중에, 대충 밥 먹고 사무실 들어가야 하는데 큰일이네,라고 생각하며 거울에 비친 어떤 요기니와 마주친다. 땀에 절어 지쳐버린 내가 있다. 그런 내가 귀엽다. 웃기다. 멋지다. 그리고 재밌어 보인다.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불과 3시간 전 그저 지쳐 있는 직장인이었는데, 물론 마찬가지로 지쳐 있긴 한데, 이런 지침이라면 계속해보고 싶은 그런 곳. 회사에서 걸어서 2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시공간을 초월해 온 듯한, 노란 불빛이 메우고 있는 공간. 그러다 생각난다. ‘나는 왜 못할수록 더 나다워졌을까?’ 내가 좋아하는 요기니 유튜버가 최근 올린 영상의 제목이다. (이 유튜버는 ‘신아로미’ 언니다. 내 최애 유튜버 언니.) 타국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매일 요가하는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 이 영상의 부제를 그는 ‘부족함의 기록’이라고 달아놨다.


wvkkWVWEAojnDwENLNL1Ong9GNY.png 신아로미 언니 영상 썸네일. 언니 멋져요 닮고 싶어요 (출처: 유튜브 '신아로미')


나도 나다워지고 있는 걸까? 보통은 잘해야 재밌는데. 회사 일만 해도 일이 잘 풀려야 ‘오랜만에 일하는 게 재밌네’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못해도 재밌다니. 못해도 하고 싶다니. 그 이유는 요가를 못하는 내가, 요가 실력이 한참 부족한 내가 진짜 나이기 때문인가? 어차피 1등이 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렇게 어른이 돼 버린 나다. 꼴등만치 못하더라도, 다치지 않게 나를 지킬 수 있는 선까지는 끝, 까, 지, 해보려는 나야말로 나답다고 스스로 여기는 건가? 가슴 속 안에 자리한 방, 그 방에 있던 고양이가 아닌 바로 내가 ‘그래, 이게 너지’라고 맞장구치다 명치가 간지러워졌을까? 답을 잘 모르겠어서, 이 문장을 쓰다 문득 고개를 숙여 명치를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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