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장 평온한 원점으로 돌려놓는 요가
언제나 가장 중요한 뉴스를 하고 싶었다. 이놈의 사회는 사실상 문제 덩어리이기에 찾으면야 기사 쓸 거리야 끝도 없이 산적해 있지만, 나는 그중에도 제일 먼저 알려야 하는 이야기들을 누구보다 제대로 다뤄보고 싶었다. (이래놓고 막상 기삿거리 찾으려 들면 안 보이는 게 함정. 이름하야 발제 지옥.) 그리고 내 세계관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죽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뉴스는 없어 보였다. 과로사를 비롯한 산재, 물난리와 불난리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 여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 등을 수년간 취재해 온 이유다.
지난해에도 누군가의 죽음을 계기로 취재를 시작했다. 그렇게 취재를 계속하던 중, 또 다른 누군가가 지난달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반년 전 내 리포트에 인터뷰를 해주셨던 취재원.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이 사회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이야기들을 분초를 쪼개 가며 알려온 분이었다. 궁금한 것들 해결하겠다고 내가 질문도 참 많이 했는데 귀찮은 내색 없이 대답도 잘해주셨었다. 알아봐 주십사 요청드린 것들도 할 수 있는 선까지 최대한 알아봐 주셨었고…. 감사한 분이었다.
부고 문자 메시지를 받은 그날도 크나큰 황망함을 느꼈었다. 오늘, 일이 있어 유족과 통화를 하게 됐고 다시금 그의 죽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의 눈빛과 목소리와 미소가 눈에 아른거렸다.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점심 식사가 아니라 점심 요가가 코앞까지 와 있었다. 심란한 마음이 굽이쳤다. 애초에 이 사건 취재에 발을 들이게 한 죽음까지, 두 사람의 생전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아, 어쩌지. 드디어 회사 앞 요가원, 첫 땡땡이 날인가. (동네 스포츠 센터 요가 수업은 1년여 동안 몇 번을 땡땡이쳤는지 모르겠….) 아, 진짜 갈까 말까. 갈팡질팡하며 살짝 두통이 올라오려고 하는 순간 사무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 위에 올려둔 운동복 가방을 집어 들었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고민의 결론을 내리지 않고, 머릿속을 멈춘 채로 몸을 움직였다. 5분 뒤, 착잡한 얼굴로 매트 위에 앉은 내가 수련실 거울에 비쳤다.
오늘 수업은 매트 필라테스. 하타나 빈야사 요가 같은 정통 요가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더랬다. 회사 앞 요가원에는 화요일 또는 목요일 점심시간에 항상 매트 필라테스 수업이 깔려 있다. ‘나는 착한 사람이야’라고 쓰여 있는 얼굴의 L 선생님이 하나도 안 착한 동작들만 골라서 45분 동안 곡소리를 내게 한다.
예전에 집 근처 필라테스 센터에서 2년 가까이 기구 필라테스 수업을 들었었는데, 체감상 매트 필라테스와는 확실히 다른 운동이다. 리포머나 체어 등 기구를 이용하지 않고 매트 위에서 맨몸으로 근력 운동을 하는 매트 필라테스는 요가의 한 종류여서인지 호흡이 더 중시되는 느낌이다. 동작 사이사이에 충분히 숨 쉬고 이완시킨 뒤에 특정 부위 근육을 강도 높게 수축시킨다고 해야 하나. 다만 P 선생님도 매트 필라테스 수업을 하시는데, 들어보니 L 선생님 수업과 달리 거의 군대식(?) 스파르타(?) 요가였어서 (숨 잘 쉬었었나. 쉬긴 쉬었는데. 허허.) 원래 매트 필라테스 수업이 정확히 어떤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 코어 근육을 단련시키는 브릿지 자세가 오늘 매트 필라테스 수업의 메인 테마였다. 어제저녁 그 빡센 P 선생님의 하타 요가 수업에서 이미 브릿지 자세와 유사한 요가 아사나들을 휘몰아치듯 했었으므로, 근육통을 견뎌 가며 자세를 해내야 했다. (찾아보니 제가 차크라사나 자세를 흉내 냈었군요. 허허.) 누운 자세로 다리를 쫙 펴서, 가위질을 하듯 다리를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하는 복근 강화 동작도 반복했다. 동작이 끝나고 호흡하고 이완하는 시간에는 딱 호흡하고 이완할 겨를밖에 없었다. 힘드니까. 힘들어 죽겠으니까. 딴생각이 날 틈이 없었다. 그래서 편했다. 몸이 힘드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몸에 집중하니까 힘들었던 마음이 잊혔다. 내 안의 슬픔이가 펑펑 울다 진정 모드로 전환됐다. 새삼 아늑하게 마지막 사바아사나를 마쳤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오전에 우울한 마음으로 하다 만 업무를 오후에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홀가분해진 내면이 긴장하고 있던 어깨를 가라앉혔다. 산만했던 시야가 한 곳으로 집중됐다. 아직 취재가 끝나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보도해야 한다. 고로 이들의 죽음을 그저 기억한다. 기억하되 너무 무거워지지 않는다. 차가운 머리와 적당히 따뜻한 가슴으로 나의 일을 할 것이다. 과하게 뜨거워지지 않겠다. 요가가 도와줄 거다. 무거워지지 않게. 뜨거워지지 않게. 진심으로 오래도록 수련하는 요기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