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해진 내 몸과 마음이 참 좋다
요가를 하면 몸이 말랑말랑해진다. 내가 만나는 요가 선생님들은 몸이 “녹아든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신다. 여러 아사나(요가 동작)를 시도하고 그 과정에 호흡을 하며, 스스로에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몸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너무 달아올라 못해 이내 이마에서 땀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심지어 운동복으로 가려지지 않은 맨살들, 그중에도 손바닥이 땀으로 미끌거려 아사나를 하는 데 애를 먹기도 한다. 몸 전체를 이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만드는 다운독 자세를 할 때가 특히 그렇다. 양 손바닥으로 매트를 지지해서 밀어내야 하는데, 바닥으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매트 밖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손바닥들…. (이런 날에는 매트 위에 필히 수건을 깔고 그 위에 양 손바닥을 올려야 한다. 그래야 아사나들을 버티고 이어갈 수 있다.)
흠뻑 젖은 손바닥과 발바닥이 유발하는 분노만 잘 잠재우면, 말랑말랑해진 내 몸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곧 찾아온다. 이 순간들이 참 좋다. 요즘 들어 왼쪽 목과 어깨, 날개뼈 주변에 담이 잘 결리는데 이 말랑말랑 상태가 되면 아주 씻은 듯이 나은 것처럼 담 녀석이 사라져 있다. 업무와 스트레스로 천근만근이었던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말랑말랑 단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대부분의 아사나도 훨씬 완성도가 높아진다.
물론 요가를 얼마간 진행한 뒤에야 (보통 20분 이상은 해야 했던 것 같다.) 들어설 수 있는 구간이기에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요가 자체가 힘에 부칠 수는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 말랑말랑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달까. 몸이 말랑말랑해지면 마음도 함께 말랑말랑해진다. 움직임 명상이 본격화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극대화한다. 요기니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그 순간의 나를, 나는 좋아한다. 사랑한다.
일주일에 두 번씩 헬스장 트레드밀 위에서 러닝도 하는데, 이때도 몸이 말랑말랑해지긴 한다. 러닝도 하다 보면 팔과 다리를 왔다 갔다 하는 움직임에 탄력이 붙으며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한다. 달아오른 채로 멈추지 않고 뛰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뛰는 행위 자체가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러너들이 중독된다는 그 일시적 행복감, 바로 ‘러너스 하이’ 같은 걸 나도 느끼는 건지. 요가의 말랑말랑 경지와 확실히 비슷해 보인다.
그래도 요가가 더 좋다. 삶의 무게로 삐딱하게 가라앉았던 내 몸이 다시 똑바로 서게 된 기분. 어제보다 오늘 아주 아주 조오금 성장한 나만의 아사나. 고난도 아사나를 시도할수록, 다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도로 생산되는 집중력. 이 과정을 놓치지 않고 야금야금 곱씹으며 깊어지는 명상. 그 결과 숙면을 취하고 일어난 듯 ‘새 사람’이 되곤 하는 나 자신. 그러니까 뭐, 러닝도 좋지만, 러닝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요가는. 요가의 말랑말랑은 넘사벽이다.
빈틈없는 일상을 지나오고 있다. 흘러가는 삶 속에서 오랜만에 숨 가쁜 파도를 만났다. 빈틈을 만들어줄 요가가 더욱이 필요한 나날들이지만, 물리적 그리고 정신적 여유가 부족하다. 지난 수요일에는 아침에 동네 요가를 가는 데 실패했다. 연이어 점심시간에 회사 앞 요가원에 가는데도 실패했다. 일어나자마자 한 짐 챙겨 15분 넘게 끙끙거리며 걸어갈 자신이 도저히 나지 않아 요가 포기, 오전 업무가 늦게 끝나 모든 정신이 일에 팔려 있어 또 요가 포기…. 약간의 좌절감을 뒤로하고 이날은 요가가 선물하는 말랑말랑을 시원하게 포기했다. 대신 러너스 하이를 택했다.
그래도 월요일과 화요일 점심시간에 빈야사와 매트 웨이트 요가 수업을 들었다. 이틀 내리 근육통에 시달릴 만큼 제대로 요가했다. 출근 전에 몸이 너무 찌뿌둥하고 굳는 느낌이 들어,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 에일린 요가 언니와 함께 10분 아침 요가도 했다. 충분히 말랑말랑해지진 못했지만 말랑말랑 경지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가득 찬 한주였달까. 아무튼 강박을 갖고 싶지는 않다. 그게 요가일지라도 말이다. 나 먹을 거 사주고 옷 입혀 주는 내 회사 일, 이 직업에 열정을 쏟아야 하는 시기를 맞았으니 그에 걸맞게 열정을 이쪽으로 부어줘야지 어쩌겠나. 일해서 돈도 벌고 해야 요가원도 두 곳이나 등록할 수 있는 것을. (동네 요가와 회사 앞 요가. 둘 다 포기할 수 없다. 히히.)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곳은 전라도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복귀하는 기차 안이다. 머나먼 출장길에 굳이 무거운 노트북을 이고 지고 다닌 이유는 오직 <요가하는 기자> 브런치 북 마감. 용산역에 도착하면 밤 9시가 넘는다. 집에 도착하면 10시가 훌쩍 넘겠고. 바로 씻고 자야 내일 출근할 텐데, 출근 전 내 행선지는 동네 스포츠 센터다. 수요일에 실패했던 아침 요가를 기어코 해낼 것이다. 고로 내일 오전 6시에 일어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요기니만이 가질 수 있는, 요가를 향한 불굴의 의지. 원거리 출장으로 지친 심신을 다음날 아침 요가로 달래줄 것이다. 이 글이 올라간 금요일 오전 7시, 아마도 나는 지금 동네 요가를 하러 걸어가는 중이다. 땀을 뻘뻘뻘 흘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