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랑

언덕 위의 벚꽃

by 윤담

서울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이 도시가 생각보다 훨씬 더 경사진 곳이라는 걸 먼저 알았다.
사진으로 보던 서울은 늘 강과 다리와 유리 건물의 도시였는데, 실제로 내가 발을 딛게 된 서울은 계단과 골목과 오래된 담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캐리어를 끌고 언덕을 오를 때, 바퀴는 자꾸 깨진 보도블록 틈에 걸렸고 숨은 생각보다 빨리 차올랐다. 해는 아직 남아 있었는데도 골목 안쪽은 벌써 저녁처럼 어두워지고 있었다. 주택가의 창문들에서는 하나둘 불이 켜졌고, 열린 대문 안쪽에서는 밥 짓는 냄새와 된장국 냄새가 번갈아 흘러나왔다. 전봇대 전선 위에는 까치가 한 마리 앉아 있었고, 골목 끝에서는 누군가 금속 셔터를 내리는 소리가 길게 긁혔다.
내가 자취하게 된 곳은 혜화역 뒤편에서 한참 더 올라가야 나오는 오래된 언덕 주택가였다.
이화동과 성북동의 경계가 어디쯤인지 나는 아직 정확히 몰랐지만, 사람들은 그냥 “위쪽 동네”라고 불렀다. 관광객이 낮에 잠깐 와서 벽화를 보고 사진을 찍고 내려가는 동네와, 저녁이 되면 빨랫줄과 택배 상자와 재활용 봉투가 골목 가장자리에 하나씩 놓이는 동네는 같은 곳이면서도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큰길에서는 서울이 늘 급하게만 보였는데, 그 언덕 안으로 들어오면 시간의 속도가 이상하게 달라졌다. 편의점 불빛은 더 노랗게 번졌고, 담벼락 위로 비친 나뭇가지 그림자는 더 또렷했고, 밤마다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는 얇은 벽을 타고 내 방까지 들어왔다.
내 방은 작았다.
작다는 말을 굳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 만큼 작았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싱크대가 있었고, 싱크대 옆에 냉장고가 있었고, 그 맞은편에 침대가 있었다. 책상은 창문 밑에 겨우 하나 들어갔고, 화장실 문은 반쯤만 열어도 침대 모서리에 닿았다. 처음 며칠은 너무 작아서 숨이 막힐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일주일쯤 지나고 나면 그 방의 모든 물건이 내 손에 닿는 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물을 끓이다가도 창밖을 볼 수 있었고, 창문을 열었다가 바로 침대 위로 주저앉을 수 있었고, 공부를 하다 고개를 돌리면 빨래 건조대에 걸린 교복 블라우스가 보였다. 도쿄의 집에서는 내 방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모님 집 안의 내 방이었다. 서울의 이 작은 원룸은 불편했지만, 처음으로 온전히 내 생활의 냄새가 배는 공간이었다.
나는 일본에서 온 유학생이었고, 동시에 여고생이었다.
그 둘은 자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어떤 날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다. 유학생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먼저 자유를 떠올렸다. 혼자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자취를 하고, 다른 언어로 친구를 사귀는 생활. 하지만 여고생이라고 하면 아직 설명되지 않은 미숙함과 조심스러움이 따라왔다. 나 자신도 가끔 어느 쪽의 얼굴로 살아야 할지 헷갈렸다. 혼자 계좌이체를 하고 난방비를 내고 병원 접수를 할 때는 분명 어른에 가까운 기분이었는데, 밤에 갑자기 열이 나거나 수업 시간에 한국어 농담의 뒷부분을 놓쳐 혼자 늦게 웃게 되는 순간에는 아주 어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 이름은 미야카와 마호였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그 이름을 크게 의식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 학교 출석부 맨 앞쪽에 자주 적히는 이름. 그런데 서울에 오고 나서는 누군가가 내 이름을 한국어 억양으로 부르는 일이 묘하게 낯설고 또 선명했다. “미야카와”는 너무 길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방 “마호”라고 줄여 불렀다. 한국 친구들은 내 이름이 예쁘다고 했고, 몇몇은 일본 드라마에 나올 것 같다고도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웃었다. 하지만 사실 내 이름은 특별한 이름이 아니었다. 오히려 흔한 쪽에 가까웠다. 그래서 서울에서 낯선 억양으로 불릴 때마다, 평범한 이름 하나가 이국적인 소리가 되는 것 같아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벚꽃은 내가 모르는 꽃이 아니었다.
일본에서 자란 사람에게 벚꽃은 계절이 아니라 거의 생활에 가까운 것이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사진 뒤에도 있었고, 중학교 운동장 담장 옆에도 있었고, 도쿄에서는 강변길이나 역 앞 공원 어디서든 늘 한 번쯤 보게 되는 풍경이었다. 그래서 서울에 와서 벚꽃이 핀다고 해도, 처음에는 크게 놀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꽃은 어디서든 꽃이고, 봄은 대개 비슷한 방식으로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의 벚꽃은 내가 알던 벚꽃과 조금 달랐다.
도쿄에서 보던 벚꽃이 대개 공원이나 강변처럼, 사람들이 ‘벚꽃을 보기 위해’ 모이는 자리에 피어 있었다면, 서울의 벚꽃은 더 생활 가까이에 있었다. 적어도 내가 살던 언덕에서는 그랬다. 벽돌담 위로 가지가 불쑥 넘어와 있었고, 오래된 연립주택 2층 창문 바로 앞까지 꽃송이가 닿아 있었고, 전봇대와 전선 사이에 연분홍이 걸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일부러 정리해둔 풍경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자리 위로 꽃이 조금 무심하게 드리워져 있는 느낌. 봄볕 아래 빨래가 펄럭이고, 그 아래로 벚꽃잎이 같이 날리고, 편의점 비닐봉지를 든 학생들이 그 사이를 지나가는 장면이 나는 이상하게 오래 좋았다.
내가 제일 좋아한 곳은 자취방으로 올라가는 언덕 중간쯤의 꺾이는 자리였다.
한쪽에는 낮은 벽돌담이 있고, 그 위로 벚나무 가지가 길게 기울어와 있었다. 낮에는 햇빛이 그 담장 위를 비스듬히 긁고 내려갔고, 저녁이 되면 가로등 불빛이 나뭇가지 사이에서 희미하게 번졌다. 꽃이 가장 많이 피는 며칠 동안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계단처럼 생긴 경사 길 위를 따라 아래로 천천히 밀려 내려갔다. 그 모양이 꼭 누군가가 아주 얇은 종이를 한 장씩 찢어 흘려보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일부러 그 자리에서 한 번씩 걸음을 늦추었다. 도쿄에서 보던 벚꽃은 익숙해서 자주 그냥 지나쳤는데, 서울의 벚꽃은 왜인지 놓치면 안 될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내가 이 도시에서 아직 완전히 내 것이 된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풍경이라도 기억 안쪽에 오래 붙들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윤재를 처음 제대로 본 것도 그 언덕이었다.
한윤재.
내 옆자리와는 한 줄 떨어진 창가 쪽에 앉는 같은 반 애.
처음부터 눈에 띄는 애는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시끄러운 애들 옆에 있으면 조용해지는 쪽, 누가 먼저 웃겨야 따라 웃는 쪽, 수업 시작 전에 이미 문제집을 펼쳐놓고 있는데 막상 선생님이 질문하면 대답은 짧게 끝내는 쪽.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보게 되는 데가 있었다.
웃지 않으면 눈매가 조금 길어 보여서 처음에는 차가운 애인 줄 알았다. 그런데 누가 말을 걸면 바로 대답하지 않고 꼭 한 박자쯤 늦게 고개를 드는 버릇이 있었다. 셔츠 소매를 늘 대충 접어 올리고 다녔고, 가방은 한쪽 어깨에만 걸쳤다. 흐트러진 듯한데 이상하게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 쪽의 애였다. 웃을 때는 입보다 눈가가 먼저 풀렸다. 아주 잠깐, 정말 모르는 사람은 놓칠 정도로만.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을 자주 오해했다. 차갑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자기 세계가 너무 단단한 사람이라고 짐작해버리곤 했다.
그날 나는 편의점에서 우유와 컵요거트와 할인하던 삼각김밥을 사서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비닐봉지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바람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꽃잎 몇 장이 봉투 위에 붙었다 떨어지자 나는 손등으로 가볍게 털어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조금 서툴게 내 이름을 불렀다.
“미야… 카와?”
나는 돌아봤다.
윤재였다.
그는 약간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미안. 이름 잘못 부른 것 같아서.”
나는 작게 웃었다.
“맞아. 근데 그냥 마호라고 불러도 돼.”
“아.”
그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는 하얀 고양이 키링이 들려 있었다.
“이거 네 거지?”
나는 순간 놀라 가방 지퍼를 내려다봤다. 며칠 전 일본에서 친구가 출국 전에 선물해준 작은 키링이 사라져 있었다. 하얀 털실 꼬리가 달린, 특별할 것 없는 물건인데 이상하게 아끼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남에게는 그냥 값싼 기념품 같아 보여도, 어떤 순간을 같이 묶어두는 역할을 하는 것들.
“어디서…”
“아래 편의점 앞에 떨어져 있었어.”
그가 말했다.
나는 봉투를 한쪽 손으로 옮겨 쥐고 얼른 받아 들었다.
“고마워. 진짜.”
“친구가 준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일본에서.”
그는 잠깐 키링을 보더니 말했다.
“다행이네. 잃어버렸으면 좀 그랬겠다.”
그 말은 특별히 꾸민 데가 없어서 오히려 더 진심 같았다.
나는 그가 그냥 건네주고 갈 줄 알았는데, 그는 내가 가방 지퍼에 키링을 다시 달 때까지 잠깐 기다려주었다. 꽃잎 하나가 그의 어깨에 내려앉았다가 내가 올려다보는 사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언덕길에서는 잘 떨어지네, 이런 거.”
그가 말했다.
“서울 언덕이 너무 가파라서 그래.”
내가 대답하자 그는 아주 짧게 웃었다.
“그건 맞다.”
그게 우리의 첫 대화였다.
짧았고,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날 이후로 나는 언덕에서 그를 다시 마주칠 때마다, 그가 친구들 사이보다 혼자 있을 때 훨씬 더 조용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같은 동네 방향으로 집에 가는 모양이었다.
학교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참 와야 하는 건 똑같았고, 역에서부터 다시 언덕을 올라야 하는 것도 비슷했다. 정확히 같은 골목에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갈라지는 길이 나오기 전까지는 늘 같은 방향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마주치면 인사하는 정도였는데, 몇 번 반복되자 자연스럽게 같이 걷게 되는 날이 생겼다. 윤재는 먼저 말을 많이 거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먼저 물으면 대답은 꼬박꼬박 했다.
“수학 시험 어땠어?”
“망했어.”
“진짜?”
“아니, 완전 망한 건 아니고. 애매하게 망한 쪽.”
“그게 더 싫겠다.”
“맞아.”
그런 식의 대화.
짧고, 조금 건조하고, 그런데 이상하게 공기가 편해지는 대화였다. 반대로 내가 말을 잘 못 알아듣고 잠깐 멈추면, 그는 같은 말을 조금 더 쉬운 단어로 다시 말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맙기도 하고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외국어로 사는 사람은 늘 그런 식으로 자주 흔들린다. 누군가가 배려해줄수록, 내가 아직 완전히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또렷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재의 배려는 이상하게 덜 부담스러웠다.
그는 내가 일본인이라서 특별히 친절한 척하지 않았다. 한국어 실력이 좋다고 과하게 놀라지도 않았고, 일본 드라마 이야기를 일부러 꺼내지도 않았다. 대신 내가 무거운 사전을 들고 있을 때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들어주고, 내가 감기 걸린 목소리로 “오늘은 발음이 잘 안 돼”라고 말하면 “원래 감기 걸리면 한국인도 발음 이상해”라고 툭 말하는 쪽이었다. 그런 태도는 이상하게 나를 덜 외국인처럼 느끼게 했다.
벚꽃이 가장 많이 피던 토요일 오후였다.
엄마가 아침에 메시지를 보냈다.
서울 벚꽃 예쁘면 사진 보내줘.
나는 평소 사진을 잘 찍는 편이 아니었지만, 그날은 언덕에 핀 꽃이 너무 많아서 진짜로 보내고 싶었다. 담벼락 위로 벚꽃 가지가 넘겨와 있었고, 아래 계단참에는 햇빛이 얇게 고여 있었다. 그런데 막상 휴대폰을 들이대면 전봇대가 걸리고, 지나가는 차가 들어오고, 내가 보고 있는 느낌이 화면 안에서는 자꾸 사라졌다. 몇 번이나 구도를 바꾸며 서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찍어줄까?”
윤재였다.
나는 돌아보다가 조금 놀랐다.
그는 자전거를 끌고 있었고, 이마에 땀이 조금 맺혀 있었다. 검은 후드집업은 손목에 묶여 있었고, 셔츠 소매는 반쯤 걷혀 있었다. 운동을 하고 오는 길인지 손등과 손목이 평소보다 더 눈에 들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아니, 괜찮아.”
그는 잠깐 내 휴대폰과 나무를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엄마한테 보내줄 거잖아.”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알아?”
“표정이 딱 그런데.”
“무슨 표정?”
“누구한테 보내야 되는데 마음에 안 들게 찍혀서 약간 짜증난 표정.”
나는 결국 웃으며 휴대폰을 건넸다.
“그렇게까지 보여?”
“조금.”
그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아주 천천히 각도를 맞추었다.
그 모습이 생각보다 진지해서, 나는 괜히 자세를 바로 세웠다.
“그냥 서 있으면 돼?”
“응. 아니, 잠깐.”
그가 손을 조금 움직이며 말했다.
“거기서 한 발만 오른쪽. 아니, 네 오른쪽.”
“아.”
“맞아. 그대로.”
바람이 한 번 불었다.
꽃잎 몇 장이 내 머리카락과 어깨에 닿았다 떨어졌다. 그는 화면을 보다가 아주 작게 말했다.
“좋다.”
나는 그가 나한테 한 말인지, 화면을 보며 혼잣말처럼 한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묻지 못했다.
그는 사진을 몇 장 찍고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화면 속 언덕은 내가 보던 그대로였다. 담장 위로 기울어온 꽃, 낮은 계단, 오후의 비스듬한 빛, 그리고 그 안에 서 있는 나. 도쿄에서 자라며 수없이 많은 벚꽃을 보았는데도, 그 사진의 꽃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덜 정돈되어 있고, 더 생활 가까이에 있고, 그래서 더 사적인 봄처럼.
“잘 찍는다.”
내가 말하자 윤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보이는 대로 찍은 건데.”
“그게 어려운 거야.”
“그래?”
그는 믿지 않는 얼굴로 웃었다.
그날 그는 내 손에 들린 세탁물 봉투까지 잠깐 들어주었다.
한 손에는 자전거, 다른 손에는 내 빨랫감이 든 에코백. 너무 능숙한 모양은 아니어서 오히려 더 웃겼다.
“내가 들게.”
내가 말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거의 다 왔잖아.”
“근데 자전거도 있잖아.”
“괜찮아.”
“안 괜찮아 보이는데.”
그 말에 그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을 때 윤재는 평소보다 훨씬 나이 어린 얼굴이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그가 학교에서 보이던 것보다 실제로 더 부드러운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며칠 뒤, 같은 반 한국인 친구인 지민이 점심시간에 나를 붙잡고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마호야, 너 이거 봤어?”
학교 익명 커뮤니티였다.
벚꽃 언덕에서 윤재가 내 사진을 찍어주는 장면이 멀찍이서 찍혀 올라와 있었다. 화질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우리 둘이었다. 제목은 장난스럽게 “언덕 벚꽃 실화냐” 비슷한 것이었고, 댓글들은 가볍고 시끄러웠다.
윤재 의외다
저 일본인 학생 아님?
분위기 뭐야
사귀냐
그런 것들.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사실 사진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꽃이 예뻐서 찍어준 것뿐이고, 그 장면에 누가 어떤 의미를 덧붙이든 실제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수치심 비슷한 것이 올라왔다. 내가 가볍게 보일까 봐, 혹은 윤재가 괜히 이상한 소문에 휘말릴까 봐, 아니면 무엇보다 내가 남몰래 조심스럽게 아끼기 시작한 장면이 낯선 사람들의 농담으로 소비된 것 같아서.
“별거 아니야.”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근데 애들이 원래 이런 건 빨라.”
나는 그 말이 더 싫었다.
원래 그렇다는 문장은 종종 어떤 불편도 제대로 위로하지 못한다. 그냥 참고 지나가라는 뜻처럼 들리기 쉽다.
그날 이후 나는 며칠 동안 윤재를 조금 피했다.
복도에서 멀리 보이면 괜히 시선을 돌렸고, 하교 시간에도 일부러 동아리실에서 시간을 끌다가 늦게 나왔다. 스스로 생각해도 유치한 반응이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며 인사하기에는 내 안이 너무 복잡했고, 그렇다고 먼저 사진 얘기를 꺼내기에는 그것 자체가 너무 민망했다.
그런데 문구점 앞에서 결국 마주쳤다.
노트 한 권과 검은색 볼펜을 사서 나오는데, 맞은편에서 윤재가 올라오다 나를 보고 멈췄다.
“마호.”
그가 먼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응” 하고 대답했다.
“요즘 왜 피해.”
너무 바로 물어서 나는 오히려 거짓말을 못 했다.
“안 피해.”
“피하던데.”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가 들고 있는 비닐봉지를 잠깐 내려다봤다가 다시 내 얼굴을 봤다.
“사진 때문이지?”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침묵이 사실상 긍정이었다.
윤재는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
그 사과가 뜻밖이어서 나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
“네가 왜 미안해.”
“내가 찍었잖아.”
“그건 네 잘못 아니잖아.”
“그래도.”
그는 잠깐 말을 고르듯 입술을 다물었다가 덧붙였다.
“네가 불편하면 좀 그렇지.”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묘하게 더 민망해졌다.
내가 혼자 오해하고, 혼자 피하고, 혼자 복잡해한 사이에 그는 이미 사과해야 할 위치가 아닌데도 나의 불편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그냥 좀 놀랐어.”
내가 조용히 말했다.
“한국은 이런 거 진짜 빨리 얘기되네 싶어서.”
윤재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일본은 안 그래?”
“아니, 거기도 비슷해. 근데…”
나는 말끝을 흐렸다.
윤재가 묻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는 기다렸다.
“근데?”
“나는 여기서 외국인이니까.”
그 말이 나오자마자 내가 먼저 후회했다.
마치 내가 우리 사이에 선을 그은 것 같았다. 그러나 윤재는 바로 화내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용한 얼굴로 나를 봤다.
“나는 너 외국인이라고 생각 잘 안 했어.”
그가 말했다.
“그냥… 같은 반이고, 맨날 그 언덕에서 만나는 애고. 그 정도였는데.”
바람이 불었다.
문구점 유리문에 붙은 광고지가 살짝 떨리고, 벚꽃잎 하나가 그의 운동화 앞에서 빙글 돌았다 멈췄다.
나는 그때 이상하게 목이 조금 메었다.
누군가가 나를 설명 없이 그냥 사람 한 명으로 대해주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특히 내가 스스로를 자꾸 ‘외국인 유학생’이라는 말 안에 넣어둘 때는 더 그랬다.
“미안.”
내가 작게 말하자 윤재는 금방 대답했다.
“왜 또 네가 미안해.”
“그냥.”
“또 그냥.”
그는 그렇게 말하고 아주 짧게 웃었다.
그 짧은 웃음 때문에 그 며칠간의 어색함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아주 극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각자 친구들이 있었고, 연락도 매일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하교 길이 비슷할 때면 더 자연스럽게 같이 언덕을 올랐고, 내가 자취방에서 혼자 저녁을 먹기 싫은 날에는 편의점 앞 벤치에서 삼각김밥을 먹으며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급식 시간에 내가 김치볶음밥에서 당근만 골라내고 있으면 윤재가 “편식해?” 하고 물었고, 내가 “당근은 일본에서도 별로였어”라고 하면 그는 “그건 핑계 같은데” 하고 말하는 식이었다. 윤재는 말을 길게 하지 않는 대신, 필요한 순간에는 이상할 만큼 정확한 말을 했다.
“오늘 피곤해 보여.”
“티 나?”
“응.”
“왜?”
“눈 밑이 좀 그래.”
그런 말.
겉으로는 툭 던지는 것 같은데, 묘하게 나를 오래 보고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들.
나는 감기에 걸린 어느 날 그 정확함을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아직 서늘한 초여름 초입이었다. 목이 먼저 칼칼해지더니 저녁에는 열이 올랐다. 자취방 침대에 전기장판도 없이 웅크리고 누워 있는데, 방은 작아서 오히려 열기가 더 답답하게 맴도는 것 같았다. 엄마한테는 괜찮다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괜찮지 않은 밤에는 원래 그런 메시지를 먼저 보내게 된다.
윤재한테서 메시지가 온 건 저녁 여덟 시쯤이었다.
오늘 안 보여서. 어디 아파?
나는 잠깐 망설이다 답했다.
조금 열나. 그냥 감기 같아.
답장은 금방 왔다.
약 먹었어?
아직. 귀찮아서.
그 뒤로 답이 없길래 나는 그냥 잠들 뻔했는데, 삼십 분쯤 지나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 인터폰을 보니 아래에 윤재가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약봉투, 다른 손에는 편의점 죽이 들려 있었다.
내려올 수 있어?
메시지가 같이 와 있었다.
나는 후드집업을 걸치고 머리를 대충 묶은 채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문을 열자 저녁 공기 속에 비 오기 전 냄새가 얇게 섞여 있었다.
“이걸 왜…”
내가 말하자 윤재는 약봉투를 내밀었다.
“약국 아직 안 닫았더라.”
“근데 네가 왜 여기까지 와.”
“혼자 있다며.”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나는 오히려 더 말문이 막혔다.
“죽은 맛없을 수도 있어.”
그가 덧붙였다.
“남은 게 이거밖에 없어서.”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기분으로 봉투를 받아 들었다.
“고마워.”
“식후에 먹으래.”
“응.”
“그리고…”
그는 잠깐 내 얼굴을 보다가 시선을 피했다.
“열 많이 나면 병원 가. 혼자 참지 말고.”
그 말은 다정했지만 과하지 않았고,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그는 그 뒤에 더 머무르지 않고 돌아갔다. 나는 자취방으로 올라와 약봉투를 뜯다가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외국에서 혼자 아픈 밤에는 누군가의 평범한 친절이 이상할 만큼 크게 도착한다.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우리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서로가 학생이라는 사실, 나는 언제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학교 안에는 입이 빠른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둘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분명 조금씩 자라고 있었지만, 그 감정이 실제로 어떤 자리를 가져야 하는지는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두 번째 오해가 왔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아버지가 몸이 좋지 않다는 연락이 일본에서 왔다.
큰 병은 아니라고 했지만 엄마는 한번 들어왔다 가라고 했다. 나는 급하게 항공권을 알아보고, 학교에 결석계를 내고, 자취방 냉장고를 비우고, 일본에 가져갈 옷 몇 벌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윤재에게 말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미루었다. 이렇게 갑자기 간다고 하면 이상할까 봐. 혹은 내가 없는 동안 그가 전혀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무서워서. 기대가 생길수록 사람은 실망할 가능성도 더 정확하게 계산하게 된다.
결국 윤재는 다른 애를 통해 먼저 들은 모양이었다.
출국 전날 저녁, 언덕 초입에서 만났을 때 윤재가 먼저 말했다.
“내일 일본 간다며.”
나는 그 말에 걸음을 멈췄다.
“아…”
“들었어.”
그는 짧게 말했다.
나는 괜히 비닐봉지 손잡이만 만지작거렸다.
“아빠가 조금 아프셔서. 잠깐만 갔다 올 거야.”
윤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딱 그 정도의 반응.
나는 그 짧은 대답을 들으며 갑자기 마음이 서늘해졌다. 사람이 섭섭할 때는 이유가 큰 데서 오지 않는다. 내가 마음을 많이 준 사람의 반응이 생각보다 작을 때, 그 작음 하나가 이상하게 크게 느껴진다.
“미리 말하려고 했는데.”
내가 덧붙였지만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윤재는 한참 뒤에야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그 문장을 결국 끝까지 읽지 못했다. 정말 괜찮다는 뜻인지, 더 묻고 싶지 않다는 뜻인지, 서운하지만 티 내고 싶지 않다는 뜻인지. 사람은 자주 상대가 주지 않은 의미까지 제 마음대로 덧붙인다. 특히 이미 불안할 때는 더 그렇다.
“잘 갔다 와.”
그가 말했다.
나는 억지로 웃었다.
“응.”
그날 그는 평소처럼 같이 언덕 끝까지 올라오지 않았다.
길이 갈라지는 초입에서 그대로 멈췄다. 그 짧은 거리 하나가 그날따라 이상하게 멀었다.
일본에 있는 동안 우리는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아버지가 괜찮아지고 있다고 보냈고, 그는 다행이다 라고 답했다. 그 뒤로는 뜸했다. 나는 도쿄에서 엄마와 병원에 다녀오고, 친척집에 들르고, 예전 동네를 한 바퀴 걷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꾸 서울의 언덕을 생각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참 이상해서, 곁에 있을 때보다 떨어져 있을 때 더 정확해지는 경우가 있다. 같이 걸었던 길, 받은 약봉투, 벚꽃 사진, 짧은 대답 하나하나가 늦게 다시 떠오른다.
서울로 돌아왔을 때는 장마가 시작된 뒤였다.
비가 자주 왔고, 골목은 늘 약간 젖어 있었다. 자취방 문을 열자 오래 비워둔 방 특유의 닫힌 냄새와 눅눅함이 올라왔다. 창문을 열자 멀리서 버스 브레이크 소리가 났고, 언덕 아래 편의점 불빛이 비에 젖은 보도블록 위로 번졌다. 나는 그 풍경이 이상하게 안도되었다. 불편하고 작고 낡았는데도, 이곳이 이제는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에 간 첫날, 윤재는 복도 끝에서 나를 보고 먼저 걸어왔다.
“왔네.”
그가 말했다.
“응.”
“아버지는?”
“이제 괜찮아.”
“다행이다.”
그 반가움이 내가 기대한 만큼 크게 보이지 않아, 나는 괜히 실망했다.
사람은 참 이상하다. 상대를 기다렸다면 좀 더 드러나게 기다린 얼굴을 하고 있어주길 바란다. 그런데 윤재는 원래부터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타입이 아니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자꾸 잊었다.
오해는 그날 오후 완성되었다.
하교 후 언덕 아래 슈퍼 근처에서 윤재가 어떤 여자아이와 같이 걷는 것을 본 것이다.
그날은 비가 막 그친 뒤였다. 골목 모서리마다 물이 조금씩 고여 있었고, 윤재는 검은 우산을 접어 들고 있었다. 옆에 있던 여자아이는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교복 치마 위에 회색 후드집업을 걸치고 있었고, 손에는 편의점 봉지가 들려 있었다. 윤재는 그 애가 무언가 빠르게 이야기할 때 옆에서 듣고 있었고, 가끔 짧게 웃었다. 완전히 편한 표정이었다. 누가 봐도 오래 아는 사이 같았다. 여자아이가 우산 끝으로 고인 물을 툭툭 건드리자 윤재가 뭐라고 한마디 했고, 그 애가 입을 삐죽이며 웃었다. 그 사소한 움직임들이 이상하게 더 선명했다. 내가 끼어들 자리가 전혀 없는 장면처럼 보여서.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장면이었지만, 혼자 오래 마음을 키운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장면도 쉽게 날카로워진다. 나는 그 둘을 본 순간 그대로 발길을 돌려 다른 골목으로 돌아 집에 갔다.
그날 밤 윤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잘 도착했어?
나는 한참 뒤에야 응 이라고만 답했다.
며칠 뒤, 나는 그 여자아이를 다시 봤다.
이번에는 학교 근처 분식집 앞이었다. 비가 조금씩 오고 있었고, 처마 밑에는 사람들이 몇 명 서 있었다. 나는 우산을 접으며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먼저 와 있던 윤재를 봤다. 그리고 그 옆에, 그날 언덕에서 같이 걷던 여자아이도 있었다.
나는 그대로 돌아서려다가 멈췄다.
그 애가 먼저 나를 봤기 때문이다.
“어? 오빠, 저번에 말한 일본 친구?”
그 말에 나는 발을 멈췄다.
오빠.
그 두 글자가 너무 쉽게 상황을 바꿔버렸다.
윤재도 뒤늦게 나를 봤다. 잠깐 놀란 얼굴. 그 여자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내 쪽을 보며 웃었다.
“안녕하세요. 저 윤재 오빠 사촌이에요. 저도 고등학생이에요.”
그러고는 윤재 쪽을 흘끗 보며 덧붙였다.
“오빠가 얘기한 사람 맞네.”
나는 그 자리에서 얼굴이 천천히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비 때문인지, 분식집 안의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며칠 동안 혼자 만들어놓은 마음의 모양이 갑자기 너무 우스워졌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윤재가 아주 작게 내 이름을 불렀다.
“마호.”
나는 괜히 우산 손잡이만 만지작거렸다.
“아… 응.”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누가 내 오해를 풀어준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을 너무 앞질러 가 있었던 거라는 걸.
그날 저녁, 나는 윤재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언덕에서 잠깐 볼 수 있어?
답장은 금방 왔다.
응. 언제든.
우리는 벚꽃이 피던 바로 그 자리 근처에서 다시 만났다.
이제 꽃은 없고 잎만 무성했다. 낮에 비가 한번 지나간 뒤라 공기에는 젖은 흙냄새와 뜨거운 시멘트 냄새가 같이 남아 있었다. 가로등 불빛은 잎사귀 사이로 잘게 부서져 길 위에 떨어졌다.
윤재는 먼저 와 있었다.
“무슨 일.”
나는 숨을 한번 고르고 말했다.
“나 오해했어.”
그는 잠깐 눈을 가늘게 떴다.
“뭘.”
“그때 같이 있던 여자애.”
윤재는 몇 초 동안 나를 보다가, 웃음을 터뜨릴 것 같았지만 끝내 참고 말했다.
“아…”
그 반응이 더 민망해서 나는 고개를 숙였다.
“사촌동생이야.”
“알아. 이제.”
“어떻게.”
“직접 들었어.”
윤재는 짧게 웃었다.
“아, 그래서.”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미안.”
“또 사과해.”
그가 말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근데, 솔직히 조금 서운했어.”
나는 그 말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왜?”
“일본 간다고 남한테 먼저 듣고.”
그는 시선을 잠깐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나를 봤다.
“그리고 혼자 결론 내린 것도.”
그 짧은 문장 안에는 그동안 내가 혼자 궁금해하던 것들이 조금 들어 있었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던 건 아니구나. 나만 혼자 흔들린 게 아니었구나. 그 사실이 안도이면서도 동시에 더 떨리게 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몰랐어.”
내가 조용히 말했다.
윤재도 거의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우리는 잠깐 말을 잃었다.
멀리서 누군가 웃는 소리가 나고, 오토바이 한 대가 언덕 아래 큰길을 지나갔다. 서울의 여름밤은 완전히 고요하지 않아서, 오히려 이런 말들을 하기에 덜 무서운 것 같기도 했다.
“윤재.”
내가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응.”
그 한 음절이 이상하게 깊게 들렸다. 지금까지는 이름을 직접 부를 일이 별로 없었는데, 막상 입 밖에 나오자 사람이 갑자기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나,” 내가 말했다. “그때 사진 찍어준 날부터 좀 이상했어.”
윤재는 아무 말 없이 들었다.
“무슨 뜻인지 나도 잘 몰랐는데. 그냥… 네가 신경 쓰였어.”
말하고 나니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었다.
좋아한다는 말까지는 아니었지만, 거의 그 근처였다. 윤재는 잠깐 입술을 다물고 있다가 아주 낮게 말했다.
“나도 그때부터였어.”
“언제?”
“사진 찍어준 날.”
그가 조금 웃었다.
“아니, 사실은 키링 주워줬을 때부터 조금.”
나는 그 말이 너무 늦게 도착한 고백처럼 느껴져 웃으면서도 웃을 수 없었다.
“그럼 왜 아무 말 안 했어.”
“네가 외국에서 혼자 와서 사는 거 알잖아.”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괜히 부담될까 봐.”
부담될까 봐.
그 말이 다정해서 마음이 아렸다. 좋아하면서도 상대를 밀어붙이지 않는 쪽을 택하는 마음. 어쩌면 그게 우리가 고등학생이라서 가질 수 있었던 가장 서툴고 진지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우리는 손을 잡지 않았다.
키스도 하지 않았고, 사귀자는 말도 따로 없었다. 다만 언덕 끝에서 헤어질 때 윤재가 말했다.
“다음 봄에도 여기 꽃 피면.”
나는 웃으며 물었다.
“그때는 또 사진 찍어줄 거야?”
그는 아주 잠깐 나를 보더니 대답했다.
“네가 원하면.”
원하면.
그 문장은 붙잡는 말이 아니어서 더 오래 남았다.
하지만 어떤 관계는 시작되는 순간부터 이미 여운을 함께 가진다.
가을이 가까워질수록 아버지 일 때문에 나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확정은 아니었지만, 서울에 오래 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 자꾸 현실 쪽으로 가까워졌다. 나는 그 사실을 윤재에게 바로 말하지 못했다. 막 겨우 이름을 얻기 시작한 감정 앞에서, 끝을 먼저 꺼내는 것은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은 계절 동안 더 조심스럽게 가까워졌다.
도서관에서 마주치면 같은 테이블 끝에 앉았고, 시험이 끝난 날에는 언덕 아래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었고, 윤재는 내 한국어 발음 중 이상한 부분을 가끔 조용히 고쳐주었다.
“그거 ‘괜찮아’ 말고 ‘괜찮아?’는 톤이 달라.”
“어떻게?”
“이렇게.”
그가 말하면 나는 일부러 따라 하다 실패했고, 그럴 때마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너 진짜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니야. 어렵단 말이야.”
“거짓말.”
반대로 나는 일본어 인사 몇 개를 가르쳐주었는데, 윤재의 발음은 생각보다 형편없었다.
“아리가또.”
“아니, 그렇게 세게 말하면 이상해.”
“그럼?”
“조금 더… 힘 빼고.”
“어려워.”
“봐. 나도 어려워.”
그런 대화를 하다 보면,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숨 쉬는 방식을 조금씩 익혀가는 것 같았다.
결국 떠나는 날은 너무 빨리 왔다.
가을의 서울은 봄보다 덜 화려했지만 더 오래 기억될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 공기가 한번 마르면 골목의 색이 선명해졌고, 벚꽃이 피던 나무에는 누렇게 마른 잎이 조금씩 매달렸다. 나는 캐리어를 닫으며 처음 이 방에 들어왔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이 골목이 너무 낯설고 가파라서 겁이 났는데, 이제는 눈을 감고도 계단 모서리의 금 간 자리와 편의점에서 나는 튀김 냄새, 저녁 여섯 시쯤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까지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윤재는 공항까지 오지 않았다.
우리 둘 다 그게 더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공항은 너무 또렷한 장소라서, 애매하고 미완인 관계를 견디기 어렵다. 대신 전날 저녁, 우리는 언덕 위 작은 벤치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다. 벚꽃은 없었고, 마른 잎 하나가 벤치 아래에서 바람에 밀려 굴러다녔다.
“진짜 가네.”
윤재가 말했다.
“응.”
“언제 다시 와.”
나는 한참 뒤에야 대답했다.
“모르겠어.”
확신 없는 약속은 하고 싶지 않았다.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현실보다 앞서가면 남는 사람만 더 오래 상처받는다는 걸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윤재는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마호.”
“응.”
“그때 봄에, 사진 찍어주던 날.”
그는 말끝을 잠깐 흐렸다.
“나 사실 그때부터 좋아했어.”
나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가을 공기가 목 안쪽으로 얇게 들어왔다. 그 말은 늦었지만, 이상하게도 늦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던 걸 마지막에 확인하는 기분에 가까웠다.
“나도.”
내가 말했다.
그는 나를 보았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근데 좀 늦었지.”
내 말에 윤재가 아주 조금 웃었다.
“응. 좀.”
우리는 그 사실을 둘 다 부정하지 않았다.
좋아한다는 것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그 나이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슬펐고, 또 이상하게 덜 슬펐다. 정확한 이름을 얻은 감정은 때로 놓아주기에도 조금 더 정직해진다.
헤어지기 전 윤재는 작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안에는 얇은 금속 책갈피가 들어 있었다. 벚꽃 모양이 아주 작게 새겨져 있었다.
“왜 이거야?”
내가 묻자 윤재가 말했다.
“책 사이에 끼워두면 안 잃어버리잖아.”
그 말이 너무 윤재 같아서 나는 웃다가, 끝내 웃지 못했다.
키링을 주워주던 첫날부터, 그는 늘 내가 잃어버릴 것 같은 것들을 조용히 붙잡아주는 쪽의 사람이었다.
“고마워.”
나는 책갈피를 손안에 쥐며 말했다.
윤재는 잠깐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다음에 어디서든 벚꽃 피면 사진 보내.”
“도쿄에서?”
“응.”
“서울 아니어도?”
“응.”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꽃이 아니라 네가 보는 거.”
그 문장은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았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그 사람이 보는 풍경이 궁금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같은 꽃이라도 어떤 공기 속에서, 어떤 표정으로 보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지는 것.
다음 날 나는 서울을 떠났다.
비행기 창밖으로 도시가 멀어질 때, 나는 한강도 남산도 아닌 그 언덕을 생각했다. 벚꽃이 피던 봄, 비에 젖은 여름, 마른 잎이 구르던 가을. 그 길 위에서 나는 누군가를 조금씩 오해했고, 조금씩 이해했고, 결국 아주 분명하게 좋아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일본에서의 생활은 다시 나를 덮었다.
학교도 바뀌었고, 가족의 일도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서울의 자취방은 다른 학생에게 넘어갔다. 그런데도 봄이 오면 나는 여전히 먼저 서울의 공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도쿄의 벚꽃은 여전히 예뻤지만, 서울의 벚꽃처럼 담장과 전봇대와 좁은 골목 위로 생활 가까이 드리워진 느낌은 아니었다. 도쿄의 봄은 조금 더 정돈되어 있었고, 서울의 봄은 조금 더 사람 사는 자리 가까이 와 있었다.
어느 봄날, 도쿄의 강변길에서 벚꽃이 핀 것을 보다가 나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꽃은 물가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고, 하늘은 옅은 회색이었다. 나는 한참 망설이다 그 사진을 윤재에게 보냈다.
벚꽃 폈어.
답장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기도.
그리고 잠시 후 한 줄이 더 왔다.
언덕 생각난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보았다.
사람은 보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자주 장소를 먼저 말한다. 그 언덕, 그 골목, 그때의 꽃. 직접 말하면 너무 선명해지는 마음을, 하나의 풍경에 기대어 겨우 꺼내는 식으로.
나는 답장을 쓰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가 또 지웠다.
나도.
서울 가고 싶어.
그때가 자주 생각나.
그 많은 문장들 사이를 오가다가, 결국 보내진 것은 아주 짧은 말이었다.
나도.
그날 밤 나는 책장 안쪽에 끼워둔 벚꽃 책갈피를 꺼내 보았다.
금속은 여전히 얇고 차가웠다. 손끝에 닿자 서울의 봄밤 같은 것이 아주 잠깐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 머무르지 않았지만 오래 남는 것들은 대개 그런 식으로 손에 잡힌다. 너무 짧아서 오히려 낡지 못한 감정, 이름을 얻었지만 끝까지 완성되지는 못한 마음, 다시 만난다 해도 결코 같은 계절로는 돌아갈 수 없는 풍경.
서울의 벚꽃은 그 뒤로도 매년 피었을 것이다.
그 언덕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 길을 급히 올라가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또 별것 아닌 장면을 사랑으로 오해했을 것이다. 어쩌면 오해란 마음이 먼저 가 있는 자리에서 가장 잘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오해는 풀리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진짜 모양을 드러낸다.
나는 이제 안다.
그 봄의 서울이 아름다웠던 이유는 꽃 때문만이 아니라, 그 꽃 아래에서 누군가를 조금씩 오해하고, 조금씩 이해하고, 끝내 완전히 붙잡지는 못한 채 오래 기억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벚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나는 여전히 잠깐 서울 쪽을 생각한다.
창문을 열면 들어오던 저녁 공기, 자취방 싱크대 밑의 눅눅한 냄새, 언덕길 담장 위로 넘겨오던 연분홍, 그리고 그 길 어디쯤에서 내 이름을 어색하게 불러 세우던 한 남학생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도 이상하게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아주 천천히 흩날린다.
꽃잎처럼 가볍게.
하지만 손을 대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 방식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계절이 늘 그렇게 남는 것처럼.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