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울음소리
“또 내가 보니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서 있고…”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어린 양보다 먼저 염소의 그림자를 닮아간다.
뿔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밀어내는 습관이 있다는 뜻이었고
입술이 갈라져 있다는 뜻이 아니라, 되새김질하듯 남의 이름을 오래 씹는다는 뜻이었고
눈동자가 탁하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안의 어둠을 신앙의 말로 덮는 법을 배웠다는 뜻이었다.
정우는 그 문장을 정확히 그런 뜻으로 이해한 적은 없었다.
애초에 그는 성경을 오래 읽어온 사람이 아니었다.
주머니에 작은 신약성경을 넣고 다니는 사람도 아니었고,
삶이 흔들릴 때마다 말씀 구절을 찾아 밑줄을 긋는 습관도 없었다.
다만 며칠 전, 퇴근길 전철 안에서
휴대전화 화면을 무심히 넘기다가 우연히 요한계시록에 손가락이 멈추었다.
왜 하필 거기였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아마 제목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계시록.
무언가 드러난다는 뜻.
감춰져 있던 것이 벗겨지고,
닫혀 있던 것이 열리고,
사람이 애써 덮어온 무늬가 끝내 빛 아래 놓인다는 뜻처럼 들렸다.
그는 보험 손해사정사였다.
사고 뒤에 남는 것들을 보는 사람.
부러진 범퍼의 각도, 금이 간 유리의 방향, 바닥에 남은 제동 흔적,
사람이 했다는 말보다 금속이 하고 있는 말을 먼저 듣는 일.
무너진 순서가 어디였는지, 누가 먼저 밀렸는지, 무엇이 원래였고 무엇이 변명이었는지를
눈에 거의 띄지 않는 조각들 사이에서 가늠하는 일.
오래 그 일을 하다 보니
그는 사람의 말보다 말 다음에 남는 것을 먼저 보게 되었다.
웃음이 지나간 자리의 입꼬리,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따라오지 않는 눈빛,
상대가 돌아선 뒤 너무 빠르게 지워지는 표정 같은 것들.
그는 그것을 재능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습관이라고 부르기에도 조금 더 깊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모두 그런 감각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대부분은 살기 위해 무디게 만드는지도 몰랐다.
그는 반대로 살기 위해 그 감각을 버리지 못한 쪽이었다.
그러니 계시록이라는 말이
그에게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았는지도 몰랐다.
드러난다는 것.
겉으로는 정리된 것처럼 보이는 표면 아래
끝내 감출 수 없는 결이 떠오른다는 것.
그날 밤 그는 집에 돌아와
젖은 머리로 식탁에 앉아 요한계시록을 조금 더 읽었다.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문장들이 자기 안에 어떤 빛과 그림자를 남기는지를 듣는 쪽에 가까웠다.
어린양, 인 맞은 자들, 일곱 금촛대, 입에서 나오는 칼, 불과 유리 섞인 바다.
상징은 지나치게 크고 장면은 때로 거의 잔혹했으나
그 밑바닥에는 하나의 감각이 또렷하게 남았다.
결국 드러난다.
결국 갈라진다.
결국 겉과 속은 같은 자리에 오래 있을 수 없다.
그는 책을 덮고 한동안 식탁 위에 손을 올려둔 채 앉아 있었다.
싱크대 쪽에서는 물 한 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졌고
창밖에서는 늦은 차가 골목의 젖은 아스팔트를 길게 훑고 지나갔다.
타이어가 물을 밟는 소리는 검은 천을 얇게 찢는 소리처럼 길고 희었다.
집 안에는 샴푸 냄새와 젖은 수건 냄새와, 아직 식지 않은 전등의 미세한 열기가 섞여 있었다.
그 조용함 속에서 그는 문득 아주 단순한 궁금증을 느꼈다.
이런 책을 읽는 사람들은
실제로 어떤 얼굴로 살아갈까.
어린양을 말하는 사람들, 심판을 말하는 사람들, 구원을 말하는 사람들.
그들은 정말 더 맑아질까.
아니면 그런 거대한 언어를 입에 올리면서도
여전히 작고 익숙한 방식으로 남을 밀어내고, 스스로를 속이고,
자기 안의 어둠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며 살아갈까.
그 궁금증은 신앙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깊어질 때
그것은 때로 신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교회에 가보기로 했다.
거창한 회심 때문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잃은 것도 아니었고
벼랑 끝에서 손을 더듬다가 갑자기 종교라는 손잡이를 잡게 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오래 사무친 피로가 있었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도 몸은 쉬는데 마음은 쉬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의 가장 이상한 점은
사람을 많이 볼수록 사람을 덜 믿게 된다는 사실이라는 걸
그는 자주 생각했다.
누구나 자기를 유리한 쪽으로 기억했고
누구나 자기를 덜 잘못한 쪽으로 말했고
누구나 자기가 받은 상처는 확대하고 남이 받은 상처는 축소했다.
그런 말을 하루 종일 듣고 오면
밤에는 무엇이 진짜였는지보다
정말 진짜라는 것이 있기나 한지 의심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래서 그는 어쩌면
거짓이 없는 장소를 찾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혹은 적어도, 거짓을 거짓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를.
요한계시록이 그의 손등 위에 잠깐 차가운 빛을 흘리고 지나간 뒤에는
그 궁금증이 더 또렷해졌다.
어린양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었다.
그 말들이 실제 생활의 표정 속에서는 어떤 결을 띠는지를.
겉과 속이 갈라지는 소리가 정말 들리는지를.
교회는 서울 외곽의 오래된 주택가 끝에 있었다.
큰 대로에서 한 번 꺾이고, 편의점과 세탁소와 낡은 분식집을 지나
골목이 조금씩 좁아지는 쪽으로 더 들어가면
붉은 벽돌과 연회색 타일이 어색하게 맞물린 이층 건물이 하나 나타났다.
십자가는 지나치게 크지 않았고, 건물도 겸손한 척 과장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라고 바로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했는데
그 조용함이 누군가에게는 정직처럼 느껴질 수 있었고
누군가에게는 오래 숙련된 얼굴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겨울 저녁의 빛은 이미 많이 식어 있었다.
가로등은 아직 완전히 밝아지지 못한 채 흐릿한 노란 막을 길바닥 위에 풀고 있었고
골목 가장자리의 눈은 낮 동안 반쯤 녹았다가 다시 얼어
낡은 유리접시처럼 탁하고 희게 굳어 있었다.
교회 앞 작은 계단에는 사람들의 밑창에 눌린 진창 자국이 얇게 말라 있었고
그 틈마다 회색 얼음 조각이 부서진 치아처럼 박혀 있었다.
유리문 안쪽에는 주보를 꽂아놓은 투명 아크릴 상자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고
그 안의 종이에서는 막 인쇄된 잉크 냄새와 오래된 종이 가루 냄새가 함께 났다.
문 가까이 다가가자 안쪽 공기가 미세하게 새어 나왔다.
종이와 먼지와 오래된 나무와, 누군가 지나가며 남긴 비누 냄새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과하지 않게 뿌린 향수 냄새.
그 냄새는 희한하게도 연한 베이지색처럼 느껴졌다.
따뜻하다기보다 따뜻한 척하는 색,
사람을 잠깐 안심시키는 색.
안심은 대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감각인데
정우는 그 사실을 직업처럼 오래 알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가 문을 밀자
안쪽에서 먼저 다가온 것은 사람의 말보다 공기였다.
실내의 온기는 한 번 누군가의 어깨를 스쳤다 돌아온 것처럼 부드럽고 탁했고
형광등 불빛은 유리문을 한 겹 통과하며 약간 누렇게 식어 있었다.
그 빛 아래에서는 사람의 얼굴도, 벽의 흠집도, 오래된 나무 결도
한 번씩 솜으로 문질러놓은 것처럼 둥글어 보였다.
그때 누군가가 주보를 한 장 내밀었다.
어두운 남색 코트에 회색 목도리를 느슨하게 감은 여자였다.
짧지 않은 머리는 반쯤만 묶여 있었고
묶이지 못한 잔머리들이 귀밑에서 차가운 숨처럼 가늘게 흔들렸다.
피부는 맑다기보다 조금 마른 쪽이었고
눈가에는 잠이 모자란 사람에게서만 남는 연한 붉은 기가 얇게 스며 있었다.
아주 예쁘다고 말하기 어려운 얼굴이었지만
한 번 보고 나면 잊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환하게 빛나는 종류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금이 가기 직전의 유리잔처럼
얇고 조용하고 쉽게 사라질 것 같아서
오히려 더 오래 눈에 남는 얼굴.
“처음 오셨죠.”
목소리는 낮고 조금 잠겨 있었다.
따뜻한 차 위에 얇게 앉는 김처럼 가볍게 떨렸고
억지로 친절하려고 힘을 준 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많은 말을 미리 덜어낸 뒤 남은 소리 같았다.
“네.”
그녀는 주보를 건네며 말했다.
“예배 순서는 여기에 있어요.
처음이면… 조금 헷갈리실 수도 있어서.”
그녀의 손가락이 종이 가장자리를 잡고 있는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손끝은 조금 건조했고
손등에는 하얗게 마른 결이 얇게 올라와 있었다.
종이를 자주 만지는 사람의 손 같기도 했고
겨울을 오래 버틴 사람의 손 같기도 했다.
정우가 주보를 받아 들자
그녀는 아주 짧게, 거의 변명처럼 덧붙였다.
“저는 지은이에요.”
이름을 말하는 방식마저도 크지 않았다.
자기를 소개한다기보다
혹시 필요하면 불러도 된다는 정도로만,
문턱에 작은 돌 하나 놓아두는 사람처럼 조용했다.
“정우입니다.”
지은은 그 이름을 한 번 속으로 적어두는 사람처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오셨어요.”
그 말은 흔한 인사였지만
이상하게도 안내 문구처럼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환영의 문장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보고 나서 조심스레 꺼낸 말처럼 들렸다.
다만 그녀는 끝까지 웃지 못했다.
웃음은 입가에 잠깐 걸렸다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얇게 접혔다.
그 순간 정우는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를 오래 참고 있는 사람에게서만 나는
조용한 긴장,
아직 꺼내지 않은 질문이 혀 밑에 오래 눌려 있는 사람의 표정 같은 것.
지은이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내주자
그 뒤에서 비로소 안내를 맡은 청년 하나가 다가왔다.
짙은 남색 스웨터 위에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이름표 글씨는 둥글고 정갈했다.
“아, 처음 오셨어요?”
청년은 선하게 생겼다.
정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악하게 생긴 사람은 드물지만
선하게 생긴 사람도 사실은 아주 드물다.
그 청년은 그 드문 쪽처럼 보였다.
눈매가 부드럽고, 말끝이 서두르지 않았고,
상대의 대답을 기다릴 줄 아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우는 그 청년이 웃는 동안
눈동자가 한 번 옆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보았다.
누구를 확인하는 시선이었다.
교회에 처음 온 사람의 복장이나 나이나 분위기를 읽고
어느 모임으로 보낼지, 누구에게 붙일지,
얼마나 조심해야 할지를 짧게 계산하는 종류의 시선.
그건 악의라기보다 기술에 가까웠고
기술은 악의보다 더 오래 남는 법이었다.
“네. 처음입니다.”
“잘 오셨어요.”
잘 오셨어요.
그 말은 겨울 코트 위에 내려앉는 가벼운 먼지처럼 부드러웠다.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방금 전 지은이 이름을 말하던 목소리가
이상하게 더 오래 귀에 남아 있었다.
본당은 생각보다 아담했다.
뒤쪽 벽면에는 오래된 피아노가 있었고
건반 뚜껑 한쪽 모서리가 조금 벗겨져 있었다.
강대상 위에 꽂힌 꽃은 생화가 아니라 조화였지만
멀리서 보면 구별되지 않을 만큼 잘 닦여 있었다.
형광등 빛은 노랗게 굳어 있었고
그 빛 아래에서 사람들의 피부는 모두 한 톤씩 부드럽게 눌렸다.
누구의 눈가 주름도 과하게 도드라지지 않았고
누구의 피곤도 함부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 빛은 사람을 선해 보이게 만들었다.
너무 좋은 조명은 대개 진실을 덜 보여주지만
적당히 낡은 조명은 진실을 덮기보다 흐리게 만드는 쪽이라
오히려 더 믿음직해 보이기도 한다.
예배는 조용히 시작되었다.
찬송이 흘렀고, 사람들은 익숙한 순서로 앉았다 일어났다 했다.
그는 낯선 곳에 처음 온 사람답게 몸이 조금 늦었으나
누군가가 뒤돌아보며 눈짓으로 순서를 알려주었다.
그 사소한 친절이 고마웠고
정우는 잠시, 이곳에서는 정말 조금 덜 방어적으로 살아도 되는가 생각했다.
첫날은 그 정도였다.
예배를 마치고, 차를 한 잔 받아 들고,
몇 사람의 이름을 반쯤 듣다가 돌아왔다.
교회는 아직 판단보다 냄새와 빛으로 먼저 남았다.
종이컵 가장자리의 미지근한 온도,
귤 껍질 냄새와 커피믹스 냄새,
지은이 문 앞에서 잠깐 머뭇거리며 다시 자기 이름을 두고 가던 낮은 목소리.
그는 다음 주에도 갔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도 다시 갔다.
두 번째 예배가 끝난 뒤에는
사람들과 함께 지하 식당으로 내려갔다.
쇠 수저가 스테인리스 식판에 닿는 소리,
된장국에서 올라오는 김의 누런 냄새,
갓 지은 밥의 눅진한 열기,
반찬통 뚜껑이 여닫히는 소리들이
본당에서 들었던 찬송보다 오히려 더 사람의 체온에 가까웠다.
누군가는 그에게 멸치볶음을 더 드시라며 밀어주었고
누군가는 직장이 어디냐고 물었고
누군가는 이 동네 겨울은 바람이 세다고 말했다.
그 말들은 평범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잠시 사람을 안심시켰다.
지은도 그 자리에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국자를 들고 있었고
누가 빈 그릇을 내밀면 말없이 받아 다시 채워주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중심에 섞여드는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언제나 반 발짝쯤 비켜 서 있었고
그 반 발짝의 거리가 이상하게 오래 눈에 남았다.
서연은 그와 반대쪽에 있었다.
그녀는 중심을 차지하려고 애쓰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녀 쪽으로 기울었다.
누가 처음 왔는지, 누가 아픈지, 누가 요즘 힘든지
그녀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앎을 부드러운 손놀림처럼 사용했다.
반찬을 권하는 말, 자리를 정리하는 손짓,
누군가의 말을 적당한 타이밍에 받아 넘기는 미소.
서연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중심이 되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더 매끄럽고, 더 조용하고, 더 서늘했다.
세 번째쯤 갔을 때는
이름 몇 개가 귀에 붙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 말을 시작하는지,
누가 사람들을 묶는 중심인지,
누가 웃으며 흐름을 정리하는지
그런 것들도 조금씩 보였다.
지은과도 짧은 말 몇 마디를 나누게 되었다.
설거지대 앞에서 그릇을 헹구다 한 번,
복도 창가에서 차를 마시다 한 번.
지은은 많이 말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말을 아끼는 사람과 말이 적은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정우는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침묵에는 비어 있음보다 눌려 있음이 더 많았다.
“정우 형제님.”
세 번째 예배가 끝난 뒤
서연이 그를 불렀다.
형광등 아래에서 그녀의 작은 진주 귀걸이가 젖은 빛을 냈다.
“오늘은 소그룹도 같이 하실래요?
이제 얼굴도 익었으니까 더 편하실 거예요.”
더 편하실 거예요.
그 말은 문 앞의 따뜻한 공기처럼 잠깐 사람을 안심시켰다.
그래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당 옆 복도 끝에 있는 작은 방으로
그들과 함께 걸어갔다.
소그룹실은 생각보다 더 좁았다.
문은 연한 나무색이었고 손잡이는 오래 만져 반질거렸다.
방 안은 네 사람이 앉으면 적당하고, 다섯이면 조금 숨이 막히는 크기였다.
벽에는 아이들 성경학교 사진이 액자 없이 핀으로 꽂혀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접이식 테이블이 기대어 있었다.
창문은 작았고 커튼은 연한 베이지색이었다.
커튼 아랫단은 약간 해져 있었는데
누군가 몇 번쯤 손으로 접어 올렸다 내린 흔적이 보였다.
형광등 불빛은 본당보다 더 낮게 내려앉는 것 같았다.
본당보다 좁고, 더 따뜻하고,
더 정직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더 숨을 곳이 많은 공간.
정우는 방에 들어서며 그렇게 느꼈다.
방에는 이미 둘이 와 있었다.
한 명은 마흔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짙은 갈색 패딩 조끼를 벗지 않은 채 앉아 있었고
손등이 거칠었다.
예배 시작 전에 아이를 씻기고 밥을 먹이고 서둘러 온 사람처럼
머리카락 몇 올이 관자놀이에 붙어 있었다.
다른 한 명은 안경을 쓴 남자였다.
서른 중반쯤, 말수가 적어 보였고
바지 무릎 부분이 조금 눌려 있었다.
책상 앞에 오래 앉는 직업일지도 모른다고 정우는 생각했다.
그의 표정은 온순했지만
온순함이 꼭 선함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도 정우는 알고 있었다.
온순한 사람도 쉽게 잔인해질 수 있다.
특히 자신이 옳다고 믿는 구조 안에서는.
서연이 제일 마지막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철컥, 하고 가볍지 않은 소리가 났다.
작은 방 안의 공기가 그 소리에 맞춰 조금 더 진해졌다.
정우는 그 순간,
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단순히 방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보이지 않는 어떤 규칙까지 함께 닫아버리는 듯하다고 느꼈다.
그들은 둥글게 앉았다.
가운데는 비어 있었으나
사실 비어 있지 않았다.
모임에서는 늘 가운데에 말해지지 않은 기준이 놓이기 마련이었다.
누가 많이 기도하는 사람인지
누가 오래 다닌 사람인지
누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취급되는지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 탁자처럼 가운데를 차지하고
사람들은 그 둘레에 앉아 고개를 끄덕인다.
서연이 기도를 시작했다.
눈을 감은 채 손을 모았고
말은 막힘없이 이어졌다.
감사의 제목과, 인도하심과, 사랑과, 회복과, 순종.
너무 자주 들어 익숙해진 단어들이
그녀의 입에서는 이상할 만큼 매끄럽게 이어졌다.
매끄러움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때로 매끄러운 말은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서
정말로 기도인지, 기도의 형식을 한 독백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정우는 눈을 감은 척하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기도는 무난했고, 단정했고,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누군가의 절박함이 아니라
누군가의 능숙함이 먼저 느껴졌다.
기도가 끝난 뒤, 서연은 성경책을 펼치지 않았다.
대신 무릎 위에 두 손을 얹고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 둘러봄은 짧았지만
각자의 얼굴에 무엇이 걸려 있는지 확인하는 눈길처럼 보였다.
“오늘은 같이 기도했으면 하는 분이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방 안의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패딩 조끼를 입은 여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안경 쓴 남자는 입술을 다물었다.
이미 아는 이름이라는 뜻이었다.
“지은 자매요.”
그 이름이 나오자
정우의 안에서 작은 장면 몇 개가 거의 동시에 켜졌다.
문 앞에서 주보를 내밀던 마른 손끝,
식당의 수증기 사이로 국자를 들던 조용한 팔목,
누군가 웃을 때 함께 웃지 못하고 입가에서 잠깐 멈추던 빛,
사람들 틈 가장자리에서
자기 몸 하나만 간신히 들여놓고 서 있던 얇은 자세.
이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 그 이름은 비로소 한 사람의 체온과 겹쳐졌다.
“요즘 관계가 많이 어려운 것 같아요.”
서연은 마치 상처 입은 사람을 조심히 들여다보듯 말했으나
정우는 그녀의 말끝에서 묘하게 굳은 것을 느꼈다.
관계가 어렵다.
그 말은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말이었다.
누가 어려운지, 누구와 어려운지, 왜 어려운지
모두 흐릿하게 지워버린 채
문제의 위치만 남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자기도 모르게 ‘그렇다면 그 사람 쪽에 문제가 있겠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말은 언제나 사실보다 방향을 먼저 만든다.
정우는 천천히 물었다.
“어떤 점에서요?”
그 말이 공기 속에 떨어지자
패딩 조끼의 여자가 시선을 내렸고
안경 쓴 남자가 손가락으로 안경다리를 만졌다.
서연만 웃음을 유지했다.
다만 눈동자가 아주 짧게 멈췄다.
“조금… 같이 가는 게 쉽지 않은 면이 있어요.”
“같이 간다는 건, 어떤 뜻이죠?”
정우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그는 공격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정확히 듣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그는 애초에 큰 목소리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고 현장에서도 중요한 건 고함치는 진술자가 아니라
조용히 남아 있는 유리 조각의 각도였다.
서연은 입가의 미소를 조금 더 다듬었다.
“자기 생각이 조금 강해서요. 공동체 안에서 부딪히는 일이 있더라고요.”
자기 생각. 공동체. 부딪힘.
단어들은 모두 무난했고
그래서 더 위험했다.
사람을 손쉽게 정리하기에 가장 좋은 말들은
대개 듣기에 나쁘지 않은 말들이다.
정우는 가만히 그녀를 보았다.
선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누가 봐도 악의보다는 신실함을 먼저 떠올릴 얼굴.
기도를 오래 하고, 봉사를 많이 하고,
누군가의 생일을 잘 챙기고,
아픈 사람에게 죽을 끓여다 줄 것 같은 얼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얼굴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더 오래 봐야 했다.
“그분이 직접 그렇게 말한 적이 있나요?”
“네?”
“관계가 어렵다고, 자기가 잘 못하고 있다고,
도움이 필요하다고요.”
서연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형광등 빛 아래서 그녀의 귀걸이가 아주 작게 흔들렸다.
“아무래도 본인은 잘 모르실 수도 있죠.”
그 말에 패딩 조끼 여자가 조심스럽게 한마디 보탰다.
“맞아요. 가까이서 보면 보여요. 본인은 모를 수 있잖아요.”
그 문장은 너무 익숙해서
정우는 거의 슬퍼질 뻔했다.
사람들은 남을 재단할 때 늘 ‘가까이서 보면’이라는 말을 쓴다.
가까이서 봤다는 사실이 마치 정확함을 보장하는 것처럼.
하지만 가까움은 종종 정확함이 아니라
간섭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정우는 의자에 등을 기대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손은 무릎 위에 얹어 두었다.
누군가 보기엔 차분했고, 누군가 보기엔 조금 경직되어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안쪽에서는 오래전부터 익숙한 감각이 천천히 깨어나고 있었다.
사건의 진술들이 어딘가 서로 맞물리지 않을 때,
조용한 모순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낼 때
그는 늘 이런 식으로 더 조용해졌다.
“그러면,”
그가 말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건
그분을 위해 기도하는 건가요,
아니면 그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가요?”
방 안의 공기가 묘하게 내려앉았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던 바깥의 냉기가 아주 미세하게 느껴졌고 누군가가 컵을 잘못 놓아 탁자 모서리에 닿는 작은 소리가 났다.
소리는 금세 멎었지만
이후의 정적은 더 또렷해졌다.
서연의 미소는 여전히 남아 있었으나
이번에는 약간 얇아졌다.
그녀는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그 잠깐의 침묵이 오히려 그녀를 능숙하게 보이게 했으나
정우는 그 능숙함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함께 분별하는 거예요.”
그녀는 차분히 말했다.
“누군가가 힘들어 보이면 그냥 두지 않는 게 공동체잖아요.”
정우는 그 문장을 속으로 한 번 접었다 펴 보았다.
겉면은 부드러웠다.
그러나 안쪽에는 이미
‘우리가 보기엔 그 사람이 힘들다’는 전제가 들어 있었고
그 전제는 당사자의 말 없이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오만 위에 놓여 있었다.
“힘들어 보인다는 것과
우리가 불편하다는 건
가끔 헷갈릴 수 있지 않습니까.”
그가 묻자, 안경 쓴 남자가 처음으로 얼굴을 들었다.
눈빛에는 놀람보다 불편함이 먼저 번졌다.
그 불편함은 정우를 향한 것이라기보다
이 방의 흐름이 어긋난 것에 대한 불편함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진실보다 흐름을 더 사랑할 때가 있다.
흐름이 깨지면 자신이 서 있던 자리가 흔들리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서연은 곧바로 응수했다.
“불편해서가 아니에요. 지은 자매는 계속 다른 사람들과 부딪혔고,
본인 생각을 너무 강하게 이야기하는 편이거든요.
신앙은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 말은 정확히 준비된 것처럼 나왔다.
그녀는 이미 여러 번 같은 설명을 했을지도 몰랐다.
다른 방에서, 다른 사람에게,
기도제목이라는 이름 아래
혹은 상담이라는 형식 아래.
정우는 낮게 물었다.
“자기 생각이 강하다는 건
질문을 많이 한다는 뜻입니까.”
이번에는 서연뿐 아니라
다른 두 사람의 눈에도 작은 긴장이 비쳤다.
그 질문이 너무 정확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이 이미 그 정확함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정우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사람이 특정 단어 앞에서 동시에 조용해질 때
대개 그 단어가 핵심이다.
“질문이 문제라는 건 아니죠.”
서연이 말했다.
“다만 계속 자기 기준으로만 보려고 하면…”
“자기 기준.”
정우가 따라 말했다.
“그 기준이 자기 기준인지,
아니면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질문인지
어떻게 구분합니까.”
그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
복도 바닥을 오래 밟아 익숙해진 사람의 보폭.
문이 열리기 전부터 이미 누군지 알 수 있는 종류의 발소리였다.
목사가 들어왔다.
오십 대 후반쯤,
키는 크지 않았고 체격은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았다.
그저 오래 목회를 해온 사람 특유의 가운데쯤 몸집.
회색이 스민 머리는 단정히 넘겨져 있었고
얇은 금테 안경 너머의 눈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금세 다정해질 수 있는 눈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는 다정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악한 얼굴이 아니었다.
어쩌면 진심으로 좋은 사람이려고 오래 애써온 얼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우는 선한 얼굴이 언제든
자기 역할을 오래 수행하며 단단한 가면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 모임 중이셨군요.”
목사는 웃으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 웃음은 익숙했고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방 전체를 훑는 척하면서
가장 먼저 서연에게 가 닿았다가
그다음 정우에게로 건너왔다.
질서를 읽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떤 이야기 중이었어요?”
서연이 잠깐 말을 고르더니 부드럽게 답했다.
“지은 자매 위해 같이 기도하려고 했는데
조금 다른 시각이 있어서요.”
다른 시각.
정우는 그 표현이 묘하게 영리하다고 생각했다.
그 말은 자신은 중심에 그대로 서 있으면서
상대를 중심 바깥의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목사는 조용히 의자를 하나 끌어 앉았다.
플라스틱 다리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얇게 났다.
그는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정우를 향해 상냥하게 웃었다.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죠.
그래도 공동체는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게 중요하니까요.”
정우는 그 말을 들으며
문장 자체보다 그것이 놓이는 방식을 보았다.
사랑, 하나, 공동체.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사람을 궁지로 모는 데 쓰일 때가 있다.
마치 아주 깨끗한 천으로 목을 조이는 것처럼.
“하나가 된다는 건,”
정우가 물었다.
“같은 방향만 보는 겁니까?”
목사는 미소를 유지한 채 대답했다.
“같아진다는 뜻은 아니죠.
서로를 품고 이해해 가는 거죠.”
그 말은 더욱 흠잡기 어려웠다.
이해, 품음.
아름다운 말들이었다.
그래서 정우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그 말 안에 빠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지금,”
그가 천천히 말했다.
“우리는 그 사람 없이 그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걸 품음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패딩 조끼의 여자가 숨을 삼켰고
안경 쓴 남자는 입술을 굳혔다.
목사의 미소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으나
눈빛이 아주 얇게 식었다.
정우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같은 얼굴로도 다른 표정을 짓는다.
목사는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때로는 직접 말하기 전에
주변에서 함께 기도로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준비.
그 말도 무난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우는 사고 보고서에서
가해자가 ‘잠깐 주의를 못 했다’고 쓰는 문장을 너무 많이 읽어왔다.
무난한 말은 대개 책임의 결을 지운다.
“그 준비가,”
정우가 물었다.
“그 사람을 위한 건지
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건지
구분이 되십니까?”
잠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복도 저편에서 아이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가 사라졌다.
난방기에서 바람 나오는 소리가 일정하게 이어졌고
형광등이 아주 미세하게 윙윙거렸다.
그 작은 소리들이 오히려 침묵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무 날카롭게 보시는 것 같아요.
지은 자매는 실제로 상처를 많이 주기도 했어요.
자기 말만 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정우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정확히 관리된 아름다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고
자기 말이 얼마나 옳은지 스스로 이미 확신하고 있는 얼굴.
그것은 악의의 얼굴이라기보다
스스로의 선함을 의심해 본 적 없는 사람의 얼굴에 가까웠다.
그런 얼굴은 때때로 가장 잔인해질 수 있다.
자신이 선한 쪽에 서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상처를 줬다는 건,”
그가 낮게 되물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서연은 처음으로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속눈썹이 한 번 내려갔다 올라왔다.
정우는 그 미세한 시간을 놓치지 않았다.
구체가 없는 판단은 늘 더 자신만만하다.
구체를 요구받는 순간
판단은 갑자기 자기 뼈가 허술하다는 걸 드러낸다.
목사가 그 틈을 메우듯 말을 이었다.
“꼭 세세한 사례를 여기서 하나하나 말할 필요는 없겠죠.
중요한 건 그 자매가 지금 어려움 가운데 있고,
공동체가 그것을 안고 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듣는 순간 알았다.
이건 감싸주는 말이면서 동시에 덮어버리는 말이었다.
사실을 흐리게 한 채 도덕의 높은 자리로 올라가 버리는 방식.
거기 올라서면 누가 더 사랑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지가 이미 정해진다.
정우는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작은 방 안의 공기는 더운 듯했으나
그 안쪽에는 차가운 것이 있었다.
그 차가움은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조차 녹지 않았다.
“목사님,”
그가 말했다.
“공동체가 누군가를 안고 간다는 말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안고 간다는 말 안에는
그 사람이 스스로 걷지 못한다는 전제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그 사람을 정말 돕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미 약한 자리로 정해놓고 말하고 있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목사는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상냥함이 유지되는 각도였다.
그러나 상냥함이란, 오래 훈련된 사람에게는 표정의 근육과 비슷해서
안쪽 생각과 무관하게 얼마든지 유지될 수 있다.
“형제님은 아직 이 공동체를 깊이 알 시간이 많지 않았으니
전체 맥락을 다 모르실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말이 조금 달라졌지만
뜻은 같았다.
처음 오셔서. 전체 맥락.
아직 잘 모르셔서.
정우는 그 문장이 결국
당신은 아직 바깥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았다.
직접 밀어내지 않고도 상대를 문턱 바깥에 세워두는 법.
사람들은 예의를 잃지 않은 채 배제하는 기술을 발달시켜 왔다.
그는 잠시 웃었다.
웃음이랄 것도 없는 얇은 숨 같은 것이었다.
“맞습니다. 제가 모르는 맥락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묻는 겁니다.
맥락이라는 게 사실인지,
여러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해석한 감정인지
저는 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 안의 공기는 이제 완전히 전과 달랐다.
처음 들어왔을 때의 부드러운 난기와
기도의 단정한 울림은 사라지고
누군가의 옷깃 안쪽에 숨어 있던 차가운 금속 같은 것이 드러나 있었다.
서연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웃지 않는 그녀의 얼굴은 오히려 더 아름다웠으나
그 아름다움에는 작은 경멸이 스며 있었다.
자기 선의를 의심받는 사람의 억울함.
그러나 정우는 알았다.
억울함은 언제나 무죄의 증거가 아니다.
가장 능숙한 위선은 자신조차 위선이라 느끼지 못한다.
“형제님은 너무 이성적으로만 보세요.”
서연이 말했다.
“신앙은 논리로만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 문장은 거의 결정타처럼 던져졌으나
정우에게는 오히려 가장 오래 익숙한 회피처럼 들렸다.
논리를 감당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종종
그 위에 더 높은 말을 덮는다.
마음, 영성, 사랑, 공동체.
그 말들이 모두 거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면죄부도 아니다.
“맞습니다,”
정우가 말했다.
“신앙은 논리로만 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논리를 버리고 시작하는 순간
대개 가장 먼저 남는 건 힘 있는 사람의 해석입니다.”
그 말은 작았으나
방 안에서 가장 무거운 문장처럼 가라앉았다.
안경 쓴 남자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패딩 조끼의 여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목사는 침묵했다.
그 침묵은 생각의 침묵이라기보다
어떤 방식으로 이 상황을 다시 정리할지 계산하는 침묵처럼 느껴졌다.
정우는 그 순간 확신했다.
이 방 안의 문제는 누가 악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자기들이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너무 쉽게 믿는 마음.
그 마음이 교활함을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고
독선을 사랑의 언어로 포장하게 만들고
위선을 겸손의 표정 속에 오래 눕혀 둔다.
염소는 송곳니를 드러내고 오지 않는다.
대개는 양의 표정을 오래 연습한 얼굴로 온다.
그는 문득 지은의 얼굴을 떠올렸다.
문 앞에서 주보를 건네던 손,
식당에서 국자를 들고 있던 조용한 어깨,
질문을 삼키다 만 사람의 마른 눈.
어쩌면 그녀는 큰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그저 너무 일찍 어떤 균열을 본 사람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균열을 본 사람이 가장 먼저 겪는 일은
늘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건물 벽에 금이 갔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모른 척 벽지를 다시 바르는 사람이 더 환영받는 법이니까.
목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낮은 목소리였다.
상담실에서, 장례식장에서, 병실에서
사람을 달래기 위해 오래 써온 톤.
“형제님의 문제의식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완전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실수할 수 있고, 오해할 수도 있죠.
그래서 더 기도하고, 더 조심하고, 함께 가는 겁니다.”
문장은 겸손해 보였다.
실수할 수 있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우는 그 겸손이 이상하게도
지금 이 자리의 구체적인 책임을 한 발 뒤로 물리고 있다는 걸 보았다.
완전하지 않다는 말은 진실이지만
때로는 가장 손쉬운 면죄부다.
누가 틀렸는지 따지기 전에
우리는 다 부족하다는 큰 담요를 덮어버리면
상처 입은 사람만 더 춥게 남는다.
“그렇다면,”
그가 조용히 말했다.
“지금 필요한 건
기도 이전에 확인 아닙니까.
우리가 오해하고 있을 가능성을
먼저 열어두는 것 말입니다.”
목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연은 시선을 거두었다.
패딩 조끼의 여자는 손등을 쓰다듬었고
안경 쓴 남자는 처음으로 아주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이 누구 편인지,
혹은 아무 편도 아닌 자기 피로의 소리인지
정우는 알지 못했다.
오래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방 안은 이미 많은 것이 지나간 뒤의 방처럼 느껴졌다.
말들이 서로를 긁고 지나가며 남긴 미세한 흠집들.
이전과 똑같은 의자, 똑같은 형광등, 똑같은 베이지 커튼인데도
공기의 결이 달라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아무도 보지 못하던 먼지가
이제는 빛 속에서 천천히 떠다니는 것 같았다.
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스치며 낮은 소리를 냈다.
그는 누굴 노려보지도 않았고
정답을 선언하지도 않았다.
다만 더 오래 앉아 있을 이유가 사라졌다는 듯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저는 오늘 여기 처음 소그룹에 들어왔으니까,”
그가 말했다.
“제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누군가가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의 상태를 정리하는 일은
제게 조금 위험해 보입니다.”
그는 목사를 보았다.
“그리고 사랑이 정말 사랑이라면
설명보다 확인이 먼저여야 하지 않습니까.”
누구도 그를 붙잡지 않았다.
붙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순간 그 방 안의 누구도
자기 말이 얼마나 확신에 차 있었는지 되돌아볼 준비가 되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은 대개 스스로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동안
가장 깊이 닫혀 있다.
정우는 문으로 걸어갔다.
손잡이는 들어올 때보다 덜 차가웠다.
그 사이 그의 손이 조금 뜨거워졌는지
아니면 방 안의 온기가 금속에 옮았는지 알 수 없었다.
문을 열자 복도의 공기가 들어왔다.
작은 방 안보다 차갑고 묽은 공기.
그런데 이상하게도 훨씬 솔직한 공기였다.
복도 끝 창문 밖으로는 가로등 불빛이 비스듬히 내려와
주차된 차 지붕 위에 얇은 은빛을 얹고 있었다.
누군가 벗어 놓은 아이 신발 한 짝이 벽 아래 놓여 있었고
세면대 쪽에서는 물 한 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들은 사소했으나
방금 그 방 안에서 오간 거대한 말들보다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사소한 것들은 대개 꾸미지 못하니까.
그는 몇 걸음 걷다가 멈췄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 서 있었다.
지은이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두운 남색 코트에 회색 목도리를 느슨하게 감은 채
손에는 여러 번 접힌 주보를 쥐고 있었다.
손끝이 종이 모서리를 너무 오래 눌러
하얗게 질려 있었다.
형광등 아래 선 그녀의 얼굴은
문 앞에서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마르고 더 조용해 보였다.
눈가의 붉은 기는 조금 더 번져 있었고
입술은 말을 오래 참은 사람처럼 얇게 말라 있었다.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더 건드리면 금이 갈 것 같은 표정.
정우는 그 얼굴보다
그 얼굴이 지금 버티고 있는 방식 쪽을 먼저 보았다.
그녀가 어디까지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건 이상하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지금 저 표정으로 서 있다는 사실,
자기 이름이 닿은 공기의 가장자리에서
도망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한 채 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고 약간 잠겨 있었다.
“들으셨어요?”
정우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거짓말은 필요 없었고
정직함도 때로는 칼날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짧게만 말했다.
“조금요.”
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지 않은 얼굴이었다.
놀랄 자격마저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사람처럼.
“늘 저런 식이에요.”
그 말은 담담했으나
담담함 아래에 오래 눌린 피로가 있었다.
분노보다 더 지친 톤.
분노는 아직 관계를 기대할 때 생기지만
피로는 기대를 거의 버린 다음에 남는다.
정우는 그녀의 손에 들린 주보를 보았다.
가운데가 여러 번 접혀 종이가 조금 무뎌져 있었다.
사람이 불안할 때는 종이를 자주 접는다.
그는 그런 사소한 흔적에도 익숙했다.
“왜 안 나가셨어요.”
그가 묻자
지은은 잠깐 웃는 듯하다 말았다.
“나가려고 했는데 차마 발이 안 떨어져서요.”
복도 창문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안쪽 형광등과 바깥 가로등 빛이 겹쳐
그림자 가장자리가 흐릿했다.
정우는 그 흐릿함이 묘하게 좋다고 느꼈다.
선명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울 때가 있다.
사람 마음은 원래 그렇게 단정하지 않으니까.
“제가,”
지은이 말했다.
“계속 질문했거든요.
왜 꼭 오래 다닌 사람 말이 더 맞는 것처럼 되는지,
왜 누군가 불편하다고 하면
그게 바로 기도제목이 되는지,
왜 우리는 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막상 누가 진짜 힘든 얘기하면 조용해지는지.”
그녀는 말을 하며 웃지 않았다.
억울함을 강조하려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냥 너무 오래 자기 안에서 굴려 더 이상 장식이 남지 않은 말.
그래서 오히려 더 투명했다.
“제가 틀렸을 수도 있죠.
근데…”
그녀는 복도 끝 창문을 잠깐 바라보았다.
유리창에 서린 김 위로 손가락 한 마디 길이의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계속 느껴졌어요.
여기서는 질문하는 사람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고.”
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아주 작은 숨이 나왔다.
그것이 동의인지, 슬픔인지,
혹은 스스로도 오래 버티고 있던 무엇이 건드려졌기 때문인지
그는 구분하지 못했다.
작은 방에서는 아직도 낮은 목소리들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진 않았지만
목사의 부드러운 톤과
서연의 단정한 목소리가 번갈아 공기를 눌렀다.
그 소리를 들으며 정우는 문득
교회란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말들로 가장 서늘한 배제를 행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기 쉽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 회복, 순종, 섬김.
그 말들이 진짜일 때도 분명 있으나
진짜라고 해서 자동으로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다.
말은 사용되는 자리에서만 의미를 드러낸다.
“계속 다니실 거예요?”
지은이 물었다.
질문은 가볍게 던진 것 같았지만
눈빛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그녀는 정우의 선택을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아직 누군가가 이 장면을 보고도
끝까지 자기 감각을 믿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 같았다.
정우는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는 본당 쪽을 한 번 바라보았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누군가 의자를 정리하는 소리가 났다.
벽에 걸린 십자가 아래, 사람들의 그림자가 느리게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평화로워 보였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알 수 없었다.
겉으로 평화로운 곳이 반드시 평화로운 것은 아니며
겉으로 거친 곳이 반드시 악한 것도 아니다.
그는 그런 단순한 결론들을 오래전부터 믿지 않았다.
“모르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다만 한 가지는 알 것 같습니다.”
지은이 그를 보았다.
“교회 안에도 염소가 있어요.”
지은은 처음으로 아주 작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숨이 잠깐 흔들린 것에 가까웠다.
“양도 있나요?”
그 질문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정우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복도 창문 밖으로 바람이 지나가며 전선 그림자를 흔들었다.
유리 위의 빛이 잠깐 일렁였다.
그 흔들림 속에서 그는 문득
양과 염소가 꼭 사람의 종류로만 나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한 사람 안에도 둘 다 있고
어떤 날은 양 쪽으로, 어떤 날은 염소 쪽으로 조금 더 기울 뿐인지도. 그렇다면 무서운 것은 염소가 있다는 사실보다 자기 안의 염소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
“있겠죠.”
그가 마침내 말했다.
“아주 조용하고 자기 이름을 잘 말하지 않는 양들이.”
지은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그리고 복도 창문에 손바닥을 잠깐 댔다 떼었다.
손자국이 둥글게 남았다가 천천히 흐려졌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보다 공기가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순간이 있다.
복도의 희미한 조명,
닫힌 문 너머에서 눌려 새어 나오는 목소리,
창문에 맺혔다 사라지는 김,
누군가 놓고 간 아이 신발 한 짝.
그 모든 것이 서로 엉겨
이상할 만큼 선명한 하나의 장면이 되었다.
정우는 그 장면을 오래 기억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다른 교회 앞을 지나거나
겨울 저녁 유리문 손잡이를 잡거나
누군가 사랑이라는 말로 다른 사람을 정리하는 장면을 보게 될 때
오늘 이 복도와 이 차가운 유리와
자기 이름이 없는 자리에서 자기 이야기를 들은 여자의 눈빛을
문득 떠올리게 되리라는 걸.
그는 천천히 계단 쪽으로 걸었다.
지은도 함께 걸었다.
둘은 나란히였지만 아주 가깝지는 않았다.
그 거리 덕분에 오히려 서로를 덜 위로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과한 위로는 때로 사람을 더 작게 만들기 때문이다.
유리문을 열자 바깥공기가 얼굴로 밀려들었다.
차갑고, 얇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주차장 아스팔트는 오래 마른 강바닥처럼 잔금이 가 있었고
멀리서 버스가 코너를 도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분식집 철문을 내리는 소리,
편의점 자동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세상은 여전히 제 갈 길로 움직이고 있었다.
교회 안의 거룩한 언어와 무관하게
밖의 공기는 놀랄 만큼 공평했다.
누구에게나 차갑고, 누구에게나 얇고, 누구에게나 솔직했다.
지은은 목도리를 조금 고쳐 맸다.
정우는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추우시죠.”
그가 말하자
지은은 이번에는 조금 분명하게 웃었다.
“안이 더 추웠어요.”
그 문장은 짧았고
너무 정확해서 더 길게 이어질 필요가 없었다.
정우는 따라 웃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였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표정으로.
교회 2층 창문 하나에 불이 켜졌다가 꺼졌다.
아마 누군가 마지막으로 방을 정리하는 중일 것이다.
정우는 올려다보았다.
유리창은 바깥 빛을 받아 잠깐 은빛으로 번들거렸고
그 안쪽에 누가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며
보인다고 전부인 것도 아니다.
그는 오늘 다시 한번 그 단순한 사실을 배웠다.
사람들은 선하게 생길 수 있다.
아름답게 웃을 수 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기도할 수 있고
타인을 위한다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자기 기준의 바깥으로 밀어낼 수 있다.
악은 종종 추하게 오지만
더 자주, 잘 정리된 얼굴로 온다.
그것을 알아보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자신도 그 얼굴을 좋아하고 싶을 때는 더 그렇다.
정우는 마지막으로 교회 문을 바라보았다.
유리문 안쪽의 불빛은 여전히 따뜻해 보였다.
처음 왔을 때와 똑같이.
겉보기는 변한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것은 그의 눈과,
아마 지은의 어깨 높이쯤에 내려앉은 공기의 결 정도일 것이다.
그는 문득 알 것 같았다.
양과 염소는 마지막 날에만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런 순간마다, 아주 작게 갈라지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없는 자리에서 그를 쉽게 정리하려는 마음과
한 번쯤 멈추어 정말 그런가 묻는 마음,
사랑의 말을 방패처럼 쓰는 쪽과
그 말이 누구를 다치게 하는지 끝까지 보려는 쪽.
그 미세한 갈림 앞에서
사람은 매번 조금씩 자기편을 정하는지도 모른다.
바람이 한 번 더 불었다.
지은의 목도리 끝이 어깨를 스치며 작게 흔들렸고
풀려 나온 머리카락 몇 올이 뺨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그녀는 그것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귀 뒤로 넘겼다.
그 사소하고 오래 배인 동작이
오히려 이 저녁의 모든 무거움을 잠깐 가볍게 만들었다.
둘은 골목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발밑에는 낮에 녹다 만 눈이 얇게 얼어 있었고
가로등 불빛이 그 위에 작은 비늘 같은 빛을 흩뿌렸다.
어디선가 삶은 어묵 국물 냄새가 바람을 타고 왔다.
멀리서는 개 짖는 소리가 두어 번 들렸다.
세상은 늘 그렇듯 거창한 결론 없이
사소한 것들의 층으로 저녁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저녁 속에서
정우는 이상하게도 조금 덜 외로웠다.
무엇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교회가 달라진 것도 아니고
서연이나 목사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자기가 본 것을 끝까지 보았다는 사실,
그리고 누군가도 같은 추위를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사람을 버티게 했다.
어쩌면 구원은 거대한 빛보다
이런 식으로 오기도 하는지 모른다.
한 사람의 질문이 다른 사람의 질문과 마주치는 순간,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골목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지은이 먼저 멈췄다.
“오늘… 감사합니다.”
그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감사하다는 말이 얼마나 쉽게 빚이 되기도 하는지 알기에
대수롭지 않게 받는 쪽을 택했다.
“별말씀을요.”
지은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목도리 끝이 겨울바람에 한 번 가볍게 흔들렸다.
정우는 그 뒷모습이 골목 어둠에 천천히 스며드는 것을 잠시 보다가
자신도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교회의 십자가는 뒤에서 작게 빛나고 있었다.
멀어질수록 더 단순한 모양이 되었다.
정우는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마음속으로 아주 조용히 생각했다.
어린양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일보다
자기 안의 염소를 알아보는 일이
어쩌면 더 먼저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겨울 공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의 뺨을 얇고 차갑게 스쳐 지나갔다.
작가의 말
거룩해야 할 공교회가
사람의 의지에 흔들려
누군가를 몰아내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그 안에서 가장 먼저 조용해지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겸손이다
그리고 그 겸손이 사라진 자리에서
양은 울음을 삼키고
염소는 목소리를 얻는다.
저는 신앙은 있으나 교회에 머물지 못한 사람입니다.
마음 한켠에는 늘 교회를 향한 그리움이 남아 있지만, 그 안에서 겪었던 배신과 상처는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저로 하여금 공교회를 쉽게 신뢰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기도합니다.
여전히 믿고 싶고, 끝내 믿음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글은, 믿고 싶지만 선뜻 다시 다가가지 못하는 마음이 오래 머문 자리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러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소리 없이 자리를 지키며, 겸손과 사랑으로 신앙을 견뎌내는 양 같은 이들이 있다는 것도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비난을 위한 글이라기보다, 상처를 지나온 한 사람이 교회를 생각하며 남긴 조용한 기록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어디에 있든 진실한 마음으로 믿음을 지켜가는 모든 분들의 신앙을, 저는 깊이 응원합니다.
윤담 배상.